마라에서 나오미로 ( 룻1:19~22)
19.이에 그 두 사람이 베들레헴까지 갔더라 베들레헴에 이를 때에 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라 20.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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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엔 다 뜻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이든 한 여인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 본문의 주인공인 ‘나오미’라는 여인의 이름의 뜻은 ‘즐거움, 희락(喜樂)’입니다.
이 나오미가 가지고 있었던 인생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사실 그녀는 10여년 전 즈음, 자기의 남편과 두 아들들과 함께 자기 고향인 베들레헴에 임했던 기근(饑饉)을 피하여 모압으로 이주해 가서 지냈는데, 그 와중에 남편과 자식들 모두를 잃고 결혼 시켜 얻은 두 며느리 중 한 며느리만 데리고 쓸쓸히 돌아와야만 했었던 것입니다. 고로 (룻1:4,5)=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룐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현재적 삶은 … 과거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난 쓰디쓴 ‘마라’의 물 맛과 같았을 것입니다. (출15:22,23)=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 이르렀더니 그 곳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그 이름을 마라(쓴 것)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그런 쓰디 쓴 현재적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왜요? 10년 전에는 모든 것이 다 풍족하게 소망을 품고 모압을 향해 출발했으나 이제는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철저하게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귀향 당시,“...온 성읍이 그들로 말미암아 떠들며 이르기를 이이가 나오미냐 하는지 라.”(룻1:19 하)고 했더니, 나오미는 너무도 괴로워 더 이상 자신을 ‘나오미’(즐거움)가 아닌 ‘마라’(괴로움)라고 불러 달라고 고향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룻1:21 상) 고 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극도로 힘들고 지친 상태였기에 이렇게 말합니다.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룻1:20,21) 얼마나 괴로웠으면, 머릿속에 맴도는 말들이 온통 이런 것들 뿐이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겐 이 모든 소망과 낙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던 ‘나오미’라는 여성이 왠지 낯설어 보이지 않습니다. 과연 ‘나오미’의 생애에는 하나님의 어떤 놀라운 뜻이 숨겨져 있었으며, 또한 하나님께서 그녀의 인생 종반전을 어찌 풀어 가셨는지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본론)
가) 나오미에서 마라로
원래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 땅이었던 모압 땅을 향해 이주 하던 당시엔, 그래도 풍족함과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모압엔 풀도 잘 자라고 농사도 그런대로 된다고 하니 지금 가물이 빠진 이 고향 땅 베들레헴보단 훨씬 낫겠지! 라고 하며…… 그 동안 쌓아 둔, 비교적 여유있는 양식과 곡식, 가축 떼 등을 가지고 고향을 의기양양(意氣揚揚)하고 당당하게 걸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엔 일들이 잘 풀렸고 두 며느도 얻고 뭔가 삶에 큰 보람을 느께게 되었습니다. 이사 오길 잘 했지! 라고 스스로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고로 그녀의 이름대로 ‘나오미’, 곧 그 이름 그대로(즐거움)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3~8을 보면 이랬습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그들이 거기에 거주한 지 십 년쯤에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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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라고 했어요. |
나) 하나님이 주시기로 하셨던 땅으로 다시 돌아오다
나오미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으며, 철저히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왔다 했습니다. 정말 그녀는 빈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전혀 계산하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난안을 너희에게 주리라”하신 땅입니다. 모압 땅은 사실 그 가나안 땅과는 거리가 먼 땅입니다. 그 땅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축복도 나오미에게로 돌아 오시게 되었습니다. 신실한 며느리이자 효부였던 며느리 룻을 통해서였습니다.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그의 며느리 모압 여인 룻과 함께 돌아온 것입니다(룻1:22 상).
사실 며느리 룻은 나오미를 만나기 전 어떤 여인이었습니까? 모압 여인으로써 모압의 신 그모스를 섬겼던 이방인(異邦人) 중에 한 사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나오미가 또 이르되 보라 네 동서는 그의 백성과 그의 신들에게로 돌아가나니...”(룻1:15 상)라고 한 이유가 거기 있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를 만난 후 룻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오직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자신의 친정과 모국을 뒤로 한 채, 오직 언약백성의 길을 함께 걷고자 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룻이 이르되 내가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니이다 하는지라. 나오미가 룻이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함을 보고 그에게 말하기를 그치니라.”(룻1:16~18) 고 했습니다. 룻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있엇습니다. 나오미도 더는 그녀의 진심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고로 큰 며느리 오르바는 모압의 친정에 머물렀으나 룻은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 믿음의 길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감동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축복하지 않을 수 없으셨던 겁니다.
후일 나오미는 자신의 입으로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라고 칭하게 될 그 룻과 함께 귀향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짐이 될지 덕이 될지 아무 것도 모른 채 말이지요.
다)마라에서 다시 나오미로
(룻1:22 하)= “...그들이 보리 추수 시작할 때에 베들레헴에 이르렀더라.” 라고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당시 보리 추수를 시작할 때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굶주림에 지친 나오미는 건강조차 나빠져서 며느리 룻에게 부탁을 합니다. 며늘아! 우리에게 먹을 것이 없으니 네가 들에 나가서 밭에 추수하다 쩌어진 곡식 이삭이라도 주워머가. 그래야 모굼이라도 부지할 것이 아니야!” 라도요. 그래서 며느리 룻은 그러자며 베들레헴 누군가의 밭에 가서 거기에 떨어진 이삭을 줍게 됩니다. 그런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주우러 나간 룻을 시아버지였던 엘리멜렉의 친친 부자인 보아스의 밭에 이르게 하시고 호의를 입게 됩니다. 보아스는 룻이 이삭을 줍는데 하인들이 방해하지 못하도록 도와 줍니다. 그리고
또한 보아스를 통해 나오미의 팔았던 땅을 되받도록 해 줍니다. (룻4:9,10)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룐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라고 했어요,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 룻이 보아스와 재혼하여 나아준 오벳에게서 가깝게는 다윗이 나오게 되고, 멀게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시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할렐루야!
(룻4:18~22 하) =“…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았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쓰디쓴 마라를 단물로 능히 바꾸시고 마라를 나오미로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출애굽 당시의 모세가 마라를 만났을 때, 백성들이 우리를 다 죽일거냐며 하나님과 모세에게 원성이 자자할 때, 모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출15:25 상)
모세가 부르짖었더니 어찌 되었습니까? 목이 말라 모든 이스라엘이 갈증으로 죽어갈 상황에서! 써서 마시지 못할 죽음의 샘물이 마실 수 있는 단물로 바뀌었습니다. (출15:25 하)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게 되었더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도 모든 것을 잃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약속의 땅으로 돌아 왔을 때…하나님도 그녀에 게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롯을 통해 행복한 말년을 보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오미는 믿음의 며느리 룻을 칭찬하게 됩니다.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룻4:15) 했습니다.
결론)
여러분!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네 인생은 끝날 때까지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으십니까? 이제 겨우 인생의 전반전가 후반전을 마쳤음에도 마라와 같은 인생을 살고 계시진 않습니까?
성경 속에는 인생의 후반전이나 종반전에서 멋진 역전승(逆轉勝)을 거둔 사람이 허다합니다.
(마1:5,6)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마1:3 상) /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라고 했습니다.
먼저는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본) 나오미가 그러하고 룻이 또한 그리했으며, 예수님의 족보에 함께 기록된 다말과 라합, 밧세바가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야곱이나 욥이나, 다니엘과 요셉이 또한 그리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전반전이 너무 부실했습니까? 연장전이 되도록 패전 일색의 삶이라 생각되십니까? 소망과 낙이 없어졌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약속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신실한 믿음… 새로운 믿음으로 후반전이나 종반전에서…멋진 역전승을 거두는 것은 어떻습니까? 자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그분의 도우심과 함께 라면 능히 이루고도 남을 승리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011420 안익선 목사/ 참고:비전 가이드 연구소 설교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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