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스크랩]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자

호걸영웅 2014. 11. 28. 00:24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자

이사야 30 : 18 - 26

젊은 사람들이 취직하기 위해 열심히 준비를 합니다. 모 회사에서 사원 모집을 한다는 광고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응시를 했습니다. 응시자들이 모인 방에 CCTV를 설치해서 녹화를 합니다. 시험관들은 정한 시간에 나가지 않고 CCTV만 보고 있습니다. 정한 시간 지나니까 응시자들은 각지 각색이였습니다. 초조하게 앉아다 섯다 하는 사람, 시간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회사가 있냐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조용하게 눈을 감고 기다리는 사람이였습니다. 그 회사는 인터뷰도 없이 학력이나 실력을 보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사원으로 채용을 했습니다.

어떤 총각이 소개 받은 처녀와 선을 보았습니다. 처음 만나고 두 번째 만날 때는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쯤 늦게 갔습니다. 처녀는 정확하게 와서 기다리는 것을 총각을 멀리서 지켜보았습니다. 처녀는 시간이나 늦어도 조급하게 여기거나 시계를 보면서 초조하게 여기지 않고 조용하게 책을 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한 시간이나 늦게 처녀에게로 와서 ‘늦어서 미안합니다’라고 했더니, 처녀는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지요’라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 결혼을 했답니다.

자동차들이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립니다. 그런데 운전자들이 신호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을 참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앞차가 바로 출발하지 않으면 빵빵하며 화를 냅니다. 참지 못해 사고를 내는 사례가 많습니다. 그렇게 서둔다고 빨리 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기다리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누군가는 나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면 불행입니다. 자녀들은 기다려 주는 부모가 있을 때 행복합니다. 자녀들이 늦게 올 때 부모는 애를 태우며 기다립니다. 그러다 돌아오면 반가워하십니다. 그러나 부모가 안계시면 그러한 행복은 더 이상 없습니다.

기다리다가 그를 만났을 때 행복입니다. 그런데 기다려도 만나지 못 할 때가 있습니다. 기다리는 자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불행입니다. 세월호 침몰로 많은 사람들이 배안에 든 자녀나 가족이 살아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중에 몇 사람은 살아 나와 기다리는 가족들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죽은 시신으로 기다리는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시신마져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18절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자’가 있고 또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자가 누구입니까? 19절에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곧 선택 받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을 여호와께서 기다리시고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기다린다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를 기다리는 것보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기다린다는 복입니다. 내가 기다리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은 불행입니다. 그리고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없을 때 더욱 불행입니다. 누가 나를 기다리느냐?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기다리는 백성들은 ‘패역한 자식들’이라고 하였습니다(1,9). ‘패역한 자’란 ‘나의 반역한 자’란 뜻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고 하나님의 백성 된 그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애굽으로 내려 간자 들입니다(2). 패역한 자들은 ‘죄에 죄를 더하며’(1), 여호와의 법을 듣기도 싫어하였습니다(9). 선견자들과 선지자들이 바른 말을 하는 것을 듣지 않고 바른 길을 버린 자들입니다(10).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지만(15), 그들은 ‘아니라 우리가 말 타고 도망하리라’고 하며(16), 애굽으로 내려 간 그들을 여호와께서 기다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패역한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싫어하고 옳은 말씀을 전하면 아니라고 하며 세상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즐겨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패역한 자들을 여호와께서는 기다리십니다. 이렇게 패역한 자들을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기다리십니다(18).

탕자가 아버지를 떠났습니다. 탕자가 떠나는 그날부터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탕자는 아버지가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기다리신다는 것을 언제 알았습니까? 집에 돌아와서 알았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기다리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죄에서 벗어나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만약 탕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기다리지 않고 문을 굳게 닫고 있었더라면 탕자는 크게 실망하여 다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 탕자는 돌아오지 않고 그것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한 순간도 탕자를 잊지 않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성공해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죽지만 말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거지가 되어 돌아 왔을 때 아버지는 조금도 실망을 하지 않고 달려가 탕자의 목을 안고 반가워했습니다. 탕자는 자신을 기다리시는 아버지가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나와 여러분은 무한한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애굽으로 떠나 패역한 백성이 되었지만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며 긍휼히 여기시기 위해서 기다리십니다(18).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셔서 기다리십니다. 일어나셨다는 말씀은 기다림의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애굽으로 돌아간 패역한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방안에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문밖에 나가서 기다렸습니다.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가 먼저 보았습니다.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가니 아직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돌아오는 것을 보았을 때 반가워 달려가서 입을 맞추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나와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세상과 더불어 살고 있는 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기다리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돌아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돌아오라고 권면하면 듣기 싫어합니다. 죄에 죄를 더하고 세상 속으로 더 깊이 숨어버립니다.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백성들 가운데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돌아온 것이 아닙니다. 몸은 왔지만 마음은 떠나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 안에 살기를 기다리십니다.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은혜를 주시고자 기다리십니다. 긍휼히 여기시기를 위해 기다리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자는 복있는 자입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우리는 돌아가야 합니다. 기다리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신 자들이 돌아오면 주시려는 복이 무엇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19-26). 첫 번째 복은 은혜를 베푸시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 응답하시는 복입니다(19). “시온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아”, 이는 애굽에서 돌아와 예루살렘에서 살게 될 것이란 말씀입니다. “다시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라”, 애굽에서 통곡했지만 예루살렘에서는 더 이상 통곡할 일이 없는 것은 부르짖는 소리를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셔서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성도들이 교회에서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응답해 주시기 때문에 더 이상 통곡해야 할 만큼의 어려움이 없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은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을 만나는 복입니다(20,21).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은 육체적 고통을 의미합니다. 바른 길로 인도하는 스승이 없으므로 육체적 고통을 당했지만 그들이 돌아오면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른 길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 없어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오기를 여호와는 기다리십니다. 길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여호와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세 번째 복은 우상 섬기던 데서 ‘나가라’고 하는 복입니다(22). 죄악의 상징인 은과 금으로 입힌 우상을 버리고 다시는 그것들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죄를 범할 수 있는 도구를 버리고 떠나는 것입니다. 우상을 존귀하게 여기던 백성들이 우상을 증오하는 대상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네 번째 복은 물질적인 복입니다(23).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이 먹을 것을 내며 곡식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실 것이며”. 먹을 양식이 충분할 것입니다. 뿌리는 종자에 비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그가 하는 일마다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소득이 넘치는 복입니다.

다섯 번째 복은 가축들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수 있는 복입니다(23,24).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여호와께서 기다리는 자를 만나므로 인해 가축들까지도 복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먹을 것이 모자라므로 가축들까지도 쭉정이로 겨우 배를 채웠지만,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쇠스랑으로 까부른 알곡을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복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복을 받아 누리게 되는 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먹고 충분히 남을 정도로 풍성한 곡식을 수확하게 됨으로 가축들에게도 이전에 먹어 보지 못한 특별한 음식을 주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즘 애완견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개도 주인을 잘 만나면 사람보다 더 대접을 받습니다. 개를 위해 온갖 것을 다 해 줍니다. 특별히 미국 사람들은 개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주한미국 대사가 새로 부입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동생이라 할 정도로 가까이 잘 지내는 분이라서 많은 기대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올 때 개 때문에 하루 늦게 도착을 했다고 합니다.

개 유치원이 있고, 호텔도 있다고 합니다. 개에게 유기농 사료를 먹입니다. 하물며 개를 위한 방송을 틀어주면 혼자 방안에서 심심하지 않게 TV를 켜서 보게 해 준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사람들이 먹고 살기가 그만큼 풍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여섯 번째 복은 개울과 시냇물이 흐르는 복입니다(25). ‘개울물과 시냇물’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를 상징합니다. 가난한 나라일수록 개울물이 말랐고 아니면 썩은 물이 고여 썩은 냄새가 납니다. 그러나 맑은 물이 풍성하게 흐르는 것은 그만큼 은혜와 축복이 풍성하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일곱 번째는 회복하시는 복입니다(26).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사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일곱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크게 살륙하는 날’(25)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그날에 악인들을 살륙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택하신 백성들에게는 그날이 회복하시는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렇게 양면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에게는 살육하시고 심판하시지만 택한 백성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에 입은 상처를 치료하시며 회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의 빛이 더욱 찬란히 빛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복을 언제 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면 전부 미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응답하시리라’(19), ‘스승을 볼 것이요’(20),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21), ‘나가라 하리라’(22),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23),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24),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25),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26)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기다리시는 여호와와 만남이 성취되었을 때 주어지는 복이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나와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기다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만나셔야 합니다. 여호와를 만남으로 은혜와 긍휼히 여기심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돌아가지 않으면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는 복있는 자들입니다. 어서 여호와를 만나시므로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허창수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