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을 세우는 한 해 (롬15: 1,2)
덕을 세우는 한 해 (롬15: 1,2)
[롬] 15:1 |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
[롬] 15:2 |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
(서론) 1. 베드로 사도는 다른 지역에서 믿음 생활하는 성도들에게 보낸 그의 두 번째 편지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살라”는 충고를 한 바 있는데, 곧 베드로후서라고 불립니다.
벧후1: 4을 보면 이렇습니다. “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라 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 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를 닮아감, 곧 성화를 말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고 했는데, 사도 베드로는 그것을 8가지 덕목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벧후1: 5~7입니다.
[벧후] 1:5 |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
[벧후] 1:6 |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
[벧후] 1:7 |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
2. 물론 이 8가지 덕목은 다 소중한 것입니다. 무엇 하나 소홀히 여길 것이 못됩니다.
그런데 오늘 날 교회들이 기독교 신앙(믿음)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몰두하는 것이 ‘성경공부와 지식’입니다. 이는 곧 믿음에서 덕을 건너뛰고 지식을 ...’취하기에 급급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 일엔 부족함이 많았다는 지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풍기는 일……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부분에 있어서, 혹은 전도적 차원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긴다든지 하는 일이 수없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6절도 지식에 절제를.. 이라고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는데, 우리 중에 지식에 절제가 안 되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 가정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이런 것 모두를 말씀드릴 순 없기에, 오늘은 금년에 우리 교회가 중점을 두고 이루려 하는 “덕을 세움”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
가)그렇다면 ‘덕’이란 무엇인가?
1.‘덕’은 헬라어로 ‘아레테’라고 하는데, 바로 “착하고 선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4번 나옵니다(벧전2:9 , 벧후1:3 벧후1:5 빌4:8 ).
덕(아레테)은 헬라 철학자들이 많이 썼던 단어입니다.
KJV성경은 이 단어를 virtue(덕)으로 NASB성경은 이 단어를 excellence로 번역했는데, 곧‘도덕적 탁월함, 뛰어남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2. 신약성경의 4복음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말합니다. 4복음서에서 강조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믿음’이죠? 물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경의 지식을 가르치셨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믿음에 덕을 더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크게 뭉뚱그려 말하면,”사랑”, 곧 아가페입니다. 사랑은 율법보다 더 큰 것이요, 지식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 “사랑은 예언보다 방언 보다 어떤 은사보다 더 크다”고 했습니다.(고전 13:) 진리나 율법에 덕이 더해져야 온전한 사랑이 됩니다.
덕이 없는 믿음은 때로 난폭해 지거나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마치 칼집이 없는 칼이나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 같을 수 있습니다. 덕이 없는 믿음은 때때로 극단주의를 낳기도 합니다.
오늘날 이슬람의 가장 큰 문제가 그것입니다. 끔찍한 테러를 계속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특히 부족한 것이 지식이 모자람이 아니라, 덕이 모자라서.. 종종 개인과 공동체 신앙에 위기가 닥치는 것입니다. 또한, 덕이 부족하면 당 짓는 일이 자꾸 발생합니다. 한국의 어느 교단은 그 분파가 무려 200여 개가 넘습니다. 이런 것은 너무 믿음이 좋아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믿음! 믿음! 하다 보니 덕을 세우는 일에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3. 덕에서 떠나버렸던 중세교회
로마 카톨릭은 종교재판이 1834년에 마침내 중단될 때까지, 약 1500년 동안, 수많은 성도들이 투옥과 재산몰수로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수천만 명이 목숨을 살육당하였습니다.
또한 종교개혁의 선구자요, “오직 믿음”만 부르짖든 ‘칼빈’이 국가교회를 통치할 때도, 믿음이라는 미명하에 58명이나 사형을 시키도록 했습니다. 개혁교회 초기에는 개혁교회나 천주교에 의해, 재침례교도를 수없이 물에 빠뜨려 죽이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재침례교도 (Anabaptist) 란 “믿음 없는 아기에게 태어나자 마자 세례를 준 카톨릭의 세례는 무효이므로, 제대로 예수 믿고 난 후, 침례를 받아야 그것이 참 성경의 침례라고 믿는 사람들의 무리”였는데, 그들이 곧 우리 침례교도의 역사적 신앙의 조상입니다.
그래서 ‘윌 듀란트’는 말하길, "종교재판은 어떤 짐승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포학성을 드러낸, 인간이 기록한 가장 침울한 오점 가운데 하나이다"라고 비판했었습니다.
덕이 없으면 조그만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원수가 되고 적이 되고 마녀가 됩니다. 인종갈등은 무엇입니까? 검거나 누렇다는 것 하나로 차별을 받는 것이지요. 집에 키우는 강아지는 검던 희던 얼룩졌던 차별이 없건만 못난 인간들은 유난히 피부색 차이를 가지고 인종을 차별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곧 덕의 결핍에서 오는 비극인 것입니다.
나)덕을 세운 부자들
1. 한국의 경주 지역에 살던 최 부자 댁은 1600년 초반부터 지금까지 무려 400여 년 가까이 만석꾼(약1,4 40t의 쌀을 수확한 부자)의 전통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요? 그들의 가정의 가훈을 중심으로 그 비결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가훈은?
(1)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 (5급 공무원 정도)
(2) 재산은 1년에 1만석(1,440t)이상은 모으지 말라.
(3) 나그네의 귀천을 따지지 말고 후하게 대접하라.
(4)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사지 말라.
(5) 며느리가 들어오면 3년 동안 비단옷을 입히지 마라.
(6) 사방 100리(40km=25miles)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고 했습니다.
그럼 그 최 부자 댁이 어떻게 하여 이와 같은 가문을 이루었을까요? 첫 부자였던 최씨가 어떤 노(老)스님으로부터 받은 금언을 평생 잊지 못하고 실천했기 때문이랍니다. 그 말은 “재물은 분뇨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서 견딜 수 없지만 골고루 사방에 뿌리면 거름이 된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결국 프랑스 말로‘노블레스 오우블리쥐’라고 합니다.
프랑스말로 '귀족은 의무를 진다'는 뜻이죠? 귀족이나 특권층은 누리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그 책임도 많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주로 상류층이 그에 걸맞게 힘든 상황에서 더 앞장서는 모습이나 그런 행위를 칭찬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결국 그리스도인들도 믿음에서 한발 더 나아가 덕을 이루어야 합니다. 왜입니까? 우린 영적인 상류층이기 때문입니다.
목사가 되고 장로 권사 집사가 되었다는 것 자체로 인생의 목적을 이루었거나 완성되었다 함이 아니요, 아가페 사랑이 스며든 믿음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도록 완전한 신앙 인격과 성품을 이룰 때까지 부단히 힘써야만 할 것입니다.
논어에도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덕은 외롭지 아니하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는 뜻인데, 바꾸어 말하면 덕이 없는 사람은 이웃, 즉 친구나 돕는 사람이 없어 외롭게 된다는 말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사랑 받지 못함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지 아니하여서이며, 내가 용서받지 못함은 곧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동숭교회를 시무하시는 서정호 목사님이 사랑하는 시가 있다고 합니다 ‘말없이 사랑하여라’ 라는 시입니다.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말없이 사랑하여라>
아무 말 말고 자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잠자코 사랑하여라.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봉사하고 눈에 드러나지 않게 좋은 일을 하여라.
그리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라. 말없이 사랑하여라.
꾸지람을 듣더라도 변명하지 말고, 마음 상하는 이야기에도 말대꾸하지 말고,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사람이 너를 가까이 않고 오히려 멀리 떼어버려 따돌림을 받을 때도, 말없이 사랑하여라.
도움을 주고 싶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오해를 받을 때 말없이 사랑하여라. 사람이 무시당하는 것을 참으면서...
슬플 때 말없이 사랑하는 법을 배워라.
주위에 기쁨을 흩뿌리며 사람의 행복을 더해주도록 마음을 쓰라.
인간의 말이나 태도로 인해 초조해지거든 말없이 사랑하여라.
마음 저 밑바닥에 스며든 괴로움을 인내롭게 바쳐라.
네 침묵 속에 원한이나 인내롭지 못한 마음, 또는 심한 비판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하여라.
- S. 갈로의 사랑의 기도 중에서 –라는 시입니다.–
*오늘날 많은 외국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한국교회의 문제를 지적하며 한결같이 말하기를 “한국교회는 철저하지 못함이 가장 큰 문제이다”라고 했답니다. 한국 교인들은 예배도 건성이요 성경공부도 대충, 찬송에는 감격이 없고 기도도 20분도 못해서 쩔쩔매고, …등등의 지적을 합니다. 그러니 허구한 날, 세상에 나가 마귀에게 두들겨 맞고 질질 짜기 일수라는 것입니다. 물론 100% 동의하진 않지만 상당수가 그런 처지인 것임은 틀림없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고 최고가 되어야만 합니다.
*군대에서도 덕성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초급장교(위관급의 소대장 중대장)는 “용맹,용감”이 가장 중요합니다. 부하들이 적과 직접 부딪혀서 싸우게 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영관급’(소령, 중령 등)이 되면 용기보다는 지혜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 부하들이 덜 죽을까? 어떻게 하면 큰 승리를 거둘까? 하는 부분이지요. 그리고 장성급이 되면 지혜보다도 덕이 중요합니다. 부하들에게 덕을 베풀어 그들이 목숨 바쳐 충성할 수 있게 하는 부분이 곧 덕이라고 합니다.
(결론) 우리 믿는 자들은 사랑에서도 봉사에서도 선교에 있어서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덕의 선생 되시는 ‘예수’를 닮아가야 합니다. 한 간음한 여자가 붙잡혀 돌에 맞아 죽게 되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바닥에 글을 쓰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 죄 없는 자가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치라!” 그러자 돌을 든 자들이 슬금 슬금 그 자리를 떠났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덕은 곧 용서입니다. 찬스를 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변화되기를 끝까지, 오래 오래 기다리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덕을 세운다는 것! 곧 예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히12: 2,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히] 12:2 |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
[히] 12:3 |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여러분 모두, 믿음에 덕을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끊임없이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삶 속에서 예수께서 선명히 나타날 수 있게 하십시오. 아멘! |
*참조: 서정호, 황우, 백낙원/편집: 익선 01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