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롬 12:1-2)

호걸영웅 2015. 5. 11. 23:21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서론)

 

 오늘 읽은 본문 1절에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는 너희가 이렇게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가졌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살아라 라는 권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산 제사를 드리라”는 권면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제대로 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론)

)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1. , 그러면 사도 바울의 권면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 전체를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새 피조물, 새 것이 된 우리들은 그 다음에는 우리 몸을 제물로 태워 번제로 드리는 마음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산 제사라는 것은 바로 나의 삶 자체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가장 귀한 것 무엇을 드렸습니까? 아들 이삭을 드렸습니다. 사실 그 이삭은 아브라함 자신 보다 더 사랑했고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 자신 이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예전엔 토요일을 예배를 위한 예비일, 혹은 반주일(半主日)이라 했습니다. 예배를 위하여 일찍 잠을 잤습니다. 예배를 위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했습니다. 요즘 우리 청년부들도 토요일은 주일을 위해 어디 놀러 가지 말고 금요일 날에 모여서 교제하고 놀자? 라고 교제시간의 요일 패턴을 바꿨다고 합니다. 참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 패턴을 계속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2년 전 즈음엔 청년들이 꽤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말이 들리지 않습니다. 기분전환 삼아 한두 잔은이해합니다. 그러나 술이 여러분을 마시는 것은 죄 인줄 알고 계시지요?  필름이 끊기고 남에게 누를 끼치는 것, 그것은 절대 안됩니다. 잘 알고 계시지요?

 

3. 사실 산 제사가 힘듭니까? 아니면 구약의 희생제사가 힘듭니까? 산 제사가 더 힘듭니다. 몸으로 드리는 제사, 삶으로 드리는 제사가 더 힘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목표여야 합니다. 죽을 때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과거엔, 교회는 거룩하고 세상은 속되다는 잘못된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고로 교회 일은 거룩하고 하나님의 일이요, 세상 일은 속되고 사람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열심히 충성되게 하여야 하지만, 세상일은 적당히 하여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아주 일을 잘하는데 직장에서는 엉망이라는 평을 듣습니다. 교회에서는 신실하신 장로님이 회사에서는 악덕 기업주가 되는 것입니다. 그의 뇌리에는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확연히 구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믿음입니다.

 

 4. 청교도들은 그런 삶을 거부했습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하고, 나가서는 멋대로 사는 것은 성도의 삶이 아니라-고 선언했습니다. 삶 전체가 예배다. 설교하는 일도 거룩하지만, 목동이 양떼를 지키고 농부가 농사를 짓는 일도 거룩하다.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심지어 직업을 소명이라고까지 불렀습니다.

그들은 예배 드리는 마음으로 장사하고 예배 드리는 마음으로 자녀들을 가르쳤습니다. 예배 드리는 마음으로 모든 사회활동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회 전체가 변화되는 혁명적인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상공업이 발달했으며 가는 곳마다 경제가 부흥되고 정직한 전통과 도덕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5. 과거의 한국교회의 부흥의 이유도 여기에 있었습니다. 평신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발사들이 이발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년에 100명 이상을 결신시키는 이발사도 있었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콩나물을 팔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택시를 운전하면서도 전도했습니다. 치과의사는 치아를 뽑으면서도 전도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삶의 현장에서 삶의 제사, 산 제사, 몸으로 드리는 제사를 드리길 원합니다.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 이것이 영적 예배이다

1. 사도 바울은 이렇게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고는 이어서 곧 해석하여 말하기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 하셨습니다. 드리기는 몸으로, 곧 생활 자체를  드렸는데 그것이 영적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2. 예수 당시에도 사람들은 예배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실 때, 한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때 사마리아 여인은 뭐라고 했습니까?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디서 예배를 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 산도 아니요 예루살렘도 아니고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높이며 성령과 진심으로 경배하는 그곳이 바로 참된 예배처라는 것입니다.

3.  또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예배를 시간적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엿새 동안은 세상 속에  온 몸과 마음을 드리고, 주일만은 그래도? 마지못해 하나님께 드린다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주일 교인”, "Sunday Christian, Sunday Warrior"이지요? 사실 주일날 예배 마치고 교회를 떠나면서 “주님 안녕히 계십시오. 다음주에 뵙겠습니다”라고그렇게 인사하시는 교인은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이런 주일 교인이 아닙니다. 온전히 모든 날을 다 가능하면 하나님을 위해, 또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하고 은혜롭게 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그것이 곧 영적 예배가 된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사 지낼 때,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아니 받으셨다 했는데 왜 그럴까요? 어떤 분은 가인의 제물이 시원치 않았다고 하지만 그거 아닙니다. 평소에 가인은 제멋대로 적당히 죄를 즐기며 살았던 것이지요?

 

) 영적 예배의 모습

그런 예배를 드리려면 어떻게 하라 합니까? 그 해답은 바로 2절에 있습니다.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했습니다.

 

 3가지가 되어져야만 진정한 영적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3가지 내용이 무엇입니까?

1)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2)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

3)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입니다.

 

1) 첫 번째로 영적 예배를 드리기 위해선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세대를 본받지 말라’ 이 말은 원어로 “이 세대의 빵 틀에 찍지 말라”(쉬스케마티조) 는 뜻을 가집니다. 붕어빵 아시지요. 붕어빵 틀에 10개의 붕어빵이 나오면 다 똑같습니다. 이 말은 성도들은 세속적 사고 방식을 따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먼저 불신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자 주의입니다. 하나님은 고리타분하시고 구세대적이며, 인간의 삶을 방해하는 방해꾼이라는 것이지요? 간섭 받기 싫고 잔소리도 싫고 얽매이는 것도 싫은 거예요.

 

엔조이하며 살고 싶은데 귀찮게 하는 거에요. 애야! 그리 살면 안 된다. 이렇게 살아야 돼!라는 말이 싫은 것입니다.  자유를 달라 자유를! 이라고 외칩니다. 성적으로 더더욱 문란해집니다. 쾌락을 하나님으로 삼습니다. 동성연애가 판을 칩니다.

 

요즘엔 동성연애에 대해 동정론을 넘어서서 인정론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생리학적으로 호르몬의 이상이 있는 것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그런 이론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여겨지는 사람들도 실제 호르몬을 조사해 보면 특별히 별다른 호르몬을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이게 인본주의입니다. 인본주의를 따르는 것은 곧 이 세대를 본받는 것입니다. 정치가들도 한 표라도 더 얻어서 정권을 유지하려는 흉측한 술책이지요.

거기엔 예수께서 안 계신 것입니다. 성경을 대적하는 것이지요. 인본주의를 따라가면 반드시 망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됩니다.

 

2.)둘째로, 과학 숭배주의와 상업주의가 팽배한 세대를 본받지 말라.

사단이 흔히 쓰는 수법! 과학숭배주의, 자본주의 또는 상업주의라고 합니다.

과학이 발달되었다 해서 인간이 더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과학이 발달되는 것만큼 인간을 죽이는 무기가 더 발달되니 세상은 더 무서워졌습니다. 그러고 여전히 허무합니다. 빈부격차는 더 커졌습니다. 자살률도 더 늘었어요.

 

자동차가 발달되어 시간도 단축되고 편리하고 좋은 것 같은데 오히려 지각을 더 많이 합니다.

그리고 인명은 재천이 아니라 인명은 재차(在車)가 되었습니다. 차 사고로 일찍 죽는 사람들이 무지기 수입니다. 특히 과학은 성경을 거짓 책으로 만들거나 소설책으로 여겨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하면 그들은 천지는 처음부터 저절로 생긴거야!라고 말합니다.

학교에서도 그런 것만 가르칩니다. 그러니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대부분 점점 하나님을 못 믿는 거지요. 그래서 선교사나 목사들이 머리를 짜내어 만든 게 미션스쿨 아닙니까? 일주일에 한두 시간 필수적으로 성경에 대해 배우고 예배도 드립니다. 요즘은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선택과목으로 바뀌었지요?

 

만약에 어느 집 아이가 난 부모 없이 저절로 생겨났다. 그것도 5만년 전에!라고 말한다면 그 말 듣는 부모가 얼~마나 화가 나고 기막히겠습니까? 인간이 요즘 하는 짓이 그런 것과 다를게 뭐 있겠습니까?

 

어떤 알코올 중독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처음에는 내가 술을 마셨고 그 다음에는 술이 술을 마시고 그 다음에는 술이 나를 마셨다”무슨 뜻입니까? 술 마시는 것이 결코 자기 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사탄의 뜻이지요?

 

살인한 사람을 보십시오. 왜 죽였는가라고 물으면 그들은 하나같이 잘 모른다고 말합니다. 갑자기 살인할 때엔 내가 뭔가 귀신에게 씌워져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합니다. 사탄의 메시지를 듣고 사탄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 살인했다는 말입니다.

 

이 세대는 돈이 최고인 시대입니다. 돈만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고 돈만 있으면 인간답게 살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직장을 구해도 돈만 많이 주면 그리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직장을 구해도 거기 예수님께서 계셔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직장이어야 합니다.

 

사실 복권에 당첨되면 엄청 행복할 것 같죠?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당첨자들은 소리소문 없이 이사를 가거나 가족들과 인연을 끊고 잠적하기 일수라고 합니다. 쉽게 얻은 돈은 쉽게 사라지고 허무만이 남는다고 합니다. 예수 안에 참 행복이 있는 것이지 돈 안에 행복이 있지 않습니다. 돈을 벌어도 그 돈으로 하나님을 위해 어떻게 쓰겠다는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3) 셋째로, 이기주의와 안일주의를 본받지 말라

딤후 3장에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오는데,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보십시오. 지금의 말세의 말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합니다.

 

고로 롬 12 12절에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벧전 4 7절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위해 부지런히 수고하십니까? 그리고 열심을 품고 있습니까?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넷째, 그러므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말은 단순히 말을 바꾸고 습관 한두 가지를 고치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완전한 변화를 의미합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는 게 아닙니다. 여기에 쓰여진 변화는 마태복음 17 2절에 나오는 ‘변형’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전 한국의 초기 부흥기 때엔, 평양에서 부흥회 하면 성도들이 목포에서 짐 싸 들고 은혜 받겠다고 결심을 하고 갔답니다. 거기 가는데 이틀 사흘 걸렸겠지요? 그들이 은혜를 받았겠습니까? 못 받았겠습니까?  받았지요! 그 신앙이 바로 한국교회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요즘은 먹고 살만해지니까 기도 안 합니다. 그거 아닙니다. 변화 받으려고 몸부림 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하나님 때문에 몸부림 치며, 은혜 받아 살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이 세대라고 합니다. 성장하고 변화하려는 마음이 없다면 당신은 병든 것입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라.

마지막 사도 바울의 권면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여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분별합니까?

 내가 하는 이 일이, 내 생각이 과연 하나님 보기에 선한가 선하지 않는가? 이 일이 하나님이 기뻐할 일인가? 성경의 교훈과 일치하는가? 라며 항상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합니다.

 

내가 직장을 구할 때도, 공부할 때도, 결혼을 하거나 친구를 사귀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도 주님은 찾고 있습니다. 누가 과연 나의 영광과 나의 나라를 위해 불꽃처럼 한 목숨

아끼지 아니하고 충성할 자가 있을꼬? 누가 자기 몸을 산 제사로 드릴 만큼 날 사랑할꼬? 라고 하십니다.

 

마치 세상은 골리앗처럼 장대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웃더라도 여러분은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가노라”하면서 담대히 뛰어나가는 소년 다윗 같은 그런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대를 본받지 마십시오. 변형되십시오. 그러기 위해선 나의 과거의 사고의 틀을 깨트려야 합니다. 나의 인생의 목표와 방법이 다 바뀌고 친구가 바뀌어야 합니다. 생활의 패턴과 방식을 바꾸세요! 삶의 목표를 바꾸란 말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자는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이 변형 되야 합니다. 여전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거추장스러운 것은 다 버리세요. 세상을 본받지 않으려는 단호한 각오와 저항심을 가지십시오. 세상의 빵 틀에 찍혀 살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풍속을 좇는 자들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디모데후서 3:5절에 “너희는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합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마십시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의 마음이 되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거하실 만한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바라시는 온전한 삶인 줄 믿고 행하시는 한 주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참조:  김동춘 /익선04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