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 시126:1~6 )

호걸영웅 2015. 6. 16. 02:32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 ( 126:1~6 )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2.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3.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서론) 오늘 읽은 시편 126편은, 참 흥미로운 시편입니다. 이스라엘의 과거 현재 미래가 이 짧은 여섯 절 안에 다 들어 있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영적 진리도 담겨있는 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시편126편은,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 미래! 와도 매우 공통점이 많은 시편이라고도 합니다.

 

▶본문 1~3절은 과거 이스라엘의 포로시대를 이야기합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과거 일본이 한국 지배한 때가 35년간입니다. 지배 받는 35년 동안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당시, 일제는 놋숟가락 놋 밥그릇도 총알 만든다고 다 빼앗아갔습니다. 마구 잡이로

징병, 징용하고,위안부로 잡아가고 창씨개명하고, 기독교 역시 신사 참배하도록 해서, 교회를 영적으로 망가뜨리는 온갖 사악한 짓들을 다 행하였죠.  그런데 유대인들은 갑절인 70년을 바벨론에서 노예생활을 했으니,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 생활한 것은, 더더욱 갑절로 힘겹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점점 유대의 종교 문화 관습이 점점 사라져버리고 아무런 소망도 없어져 갈 무렵인 70년 포로생활을 하는 중, 갑자기 해방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뻤을까요?

 

126:1~2 에서 이스라엘의 해방과 기쁨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2.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다 본문과 같은, 이런 주님의 섭리와 인도로 인해

찬양이 넘치는, 그런 유사한 경험을 갖고 있을 겁니다. 우리가 구원받았을 때! 동일한 감격이지요?

 

정제순 선교사란 분이 1986년에 제가 파송 받아서 파푸아 뉴기니에 갔을 때 간증입니다.

 

어느 날, 정제순 선교사란 분이 현지인 2명과 함께 ‘언어 조사’갔다 오다가    차가 낭떠러지 아래로 미끄러져 3번이나 굴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바로 거기에 구덩이가 있어서, 3바퀴를 구른 차가, 그 구덩이에 푹 쳐박혀 버리는 바람에 겨우 살게 되었답니다.  하마터면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다 죽을 뻔 하였답니다.

 차가 구를 때에도, 정 선교사는 손등만 좀 다치고, 나머지는 정말 멀쩡했답니다.

 

  그리고 그날 사고 직전에, 차 타고 오는 도중에, 배가 고파서, 생 달걀을 4개를 샀답니다.

   그런데 그 사고가 난 뒤에 보니까, 달걀이 1개만 깨지고, 3개가 멀쩡했습니다.

 

  그래서 정선교사와 언어조력자, 가이드 1... 이렇게 총 3명이 함께 탔었는데, 배가 고파서, 우리는 그 생달걀 3개를 삶아 먹었답니다.   먹으면서 서로를 쳐다보니까, 온 얼굴과 머리는 먼지를 뒤집어써서 뿌옇고 엉망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배가 고파서, 입에 찐 달걀을 넣는데.. .

   눈물, 콧물 다 나와서 훌쩍거리면서도 배고프니까 달걀은 먹었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우리 일행이 세 명이라고, 달걀 4개 중에, 3개를 깨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살려 놓으신 겁니다.   그 차가 3번 구르는 사고 와중에도요! 얼마나 기뻤던지요! 그래서 그들은 그날 달걀을 먹으면서, 더 훌쩍거렸다고 합니다.

 

그런 고생과 수고 중에 그래도 절망치 않고 감사하며 선교하는 일들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습니까?

 

126:4,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풀어주소서) 라 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직 다 포로로 풀려난 게 아니고, 아직 바벨론에 많이 남아 있었어요.

그래서 먼저 풀려난 사람들이 하나님께 남은 자들을 풀어달라고 기도하는데, '남방시내처럼 풀어달라'는 뜻은 왕창, 단체로.. 홍수처럼 대량으로 포로귀환 하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유대나 바벨론의 남방 시내는 원래 건조한 데, 건기에 다 마르다가, 우기에 비가 오면 급류로 확 바뀝니다. 그리고 홍수처럼 물이 흘러갑니다. 그렇게 유대인들을 해방시키시고 복을 주십사 하는 기도입니다.

 

2014년 현재, 전 세계 언어를 보면 6,900개 언어가 있는데 그 중에 문서 선교사들에 의해 신구약이 모두 번역된 것은 5백개 언어도 안 됩니다. 구약까지 번역하려면 6천 개 언어를 또 번역해야 됩니다. 정말 힘들겠지요? 신약도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거나, 번역이 끝나지 않은 것이 1,900개가 넘어요. 선교하는 입장에서도 얼마나 답답합니까?

 

126:5~6  그런 답답함 가운데에도 낙심치 아니하고 계속 기도와 선교를 하는 일이 5,6절의 교훈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여러분, 한국에서도 농사를 지을 때, 가뭄이 와서 수확이 줄어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릿고개처럼 식량이 바닥날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다음 번 농사 때 씨를 뿌릴 ‘종자 씨앗’을 먹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아이는 배가 고파서 울며 보챕니다. 종자 씨앗이라도, 꺼내서 먹을 것을 만들어 달라고 조릅니다.  그렇지만 농부인 부모는, 그런 아이의 보챔을 물리치고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겁니다. 오늘날 식량이 부족한 아프리카에서도, 이런 일들은 지금까지 계속 일어납니다.

 

▶ 한국 선교의 역사를 봐도 그렇습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들어 온 1885년 전에는 , 조선이 쇄국정책을 써서, 선교사들이 아예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만주에서 중국인 상대로 선교하고 있던 존 로스 선교사는 심양에 와서 무역하던 조선인 들에게 관심이 매우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지금 선교사가 못 들어가니까 ‘한국말로 성경을 번역해서 보내자’ 그래서 만주 심양에서 소위 ‘로스역 성경’을 번역하게 됩니다.

 

그래서 1882, 조선선교가 시작되기 3년 전에 누가복음 3천부, 요한복음 3천부를 심양(선양)에서 출판했습니다.

 

그때 이 성경의 번역을 도왔던 한국어 조력자들이, 이 성경을 조선에 반입합니다. 그때 상황이 꽤 눈물겹습니다. 당시에 성경을 반입하다가, 국경검문소에 걸리면 감옥에 가든지 때로는 목숨까지 내 놓아야 했습니다.

 

당시 조선 국경에는, 오늘날처럼 검문소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곁에는 사람들의 목을 잘라서, 매달아놓았습니다. 범법자는 이렇게 처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성경을 반입했느냐 하면, 당시에 한지에 성경을 인쇄했거든요. 한지의 한 면에 성경을 인쇄하고, 그걸 절반으로 접으면 앞 뒷면이 됩니다. (당시는 아직 양면 인쇄술이 나오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 성경을 펴서, 반대로 접으면, 앞 뒷면이 백지가 됩니다. 그렇게 그냥 파지(못 쓰는 종이)처럼 속여서,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고는 다시 조선에서 종이를 뒤집어서, 성경으로 묶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책 낱장을 다 뜯어서 새끼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에 들어와서는, 새끼줄을 펴서, 다시 성경책을 묶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옛날 얘기만은 아닙니다.

   공산 소련이 무너지기 전까지 공산권에 선교했던 오픈 도어 선교사들도, 그 공산국가들에 성경을 반입할 때, 자기 몸에, 성경을 찢어서 스카치테이프로 붙여서, 그렇게 반입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그런 눈물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한 번은 많은 성경책을 중국 봉천(심양의 당시 이름)에서 가져다가 압록강 구륜성 여관방에 갖다 놨어요. 그러자 여관방 주인이 덜컥 겁이 나서, 빨리 성경을 치워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런데 당시 존 로스를 도왔던 언어조력자 이성하 형제는 아직 신앙이 순교할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성하는, 여관주인의 압박에 못 이겨서 애써 번역하고 출판된 성경책을

압록강에 하나씩 하나씩 찢어서 버렸습니다. 어떤 때는 성경책을 불태우고는, 그 재를 압록강에 뿌렸습니다.

 

그 얘기를 들은 존 로스 선교사는 이런 말을 합니다. 성경으로 깨끗하게 씻긴 물을 마시는 한국인에게 반드시 생명이 될 것이요. 성경 태운 재를 뿌린 한국인에게 반드시 비료가 되리니

한국교회의 발전은 가히 기약할 것이라’

   

그 말을 듣고 있던 중국인들은 콧방귀를 꼈습니다. ‘뭐라고, 한국교회가 그렇게 된다고? 웃기는 소리’

그런데 정확하게 10년 뒤, 한국에 그 성경책들이 전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말 그대로, 세계역사상 유례없는 부흥을 이루었으며 한국교회에 이런 별명이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성경 기독교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씨앗을 뿌린 결과 세계기독교역사상 전무후무한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한국기독교가, 선교사들이 정식으로 입국하기 전에, 스스로 성경을 번역해서 갖고 있었던 나라였던 것입니다. 만주에서 번역한 성경책을, 결국 우리 조상 할아버지들이 스스로 반입해서

조선 땅에 퍼뜨렸고, 그 일이, 1885년 선교사 정식 입국 후에, 더 가속화가 되었던 것이지요.

(안 그랬으면, 언더우드 때부터 번역 시작하고 했다면, 20~30년 포교가 늦어졌겠지요.)

 

이런 역사를 가진 한국교회가 어떻게 된 건지, 지금은 성경책을 멀리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을 볼 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데 성도들도 물질이 넉넉하면 쉽게 안일해지고 물질을 의지하는 버릇이 생깁니다.  

감격이 없고 감사가 사라집니다. 하나님 은혜가 귀한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물질로 전파되지 않습니다. 참된 문물의 기도와 사랑과 희생, 헌신, 순교로 전파되는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전략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결핍과 부족을 주십니다.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하기 위함입니다.

 

결론)

주의 일군들이 늘 이런 부족함 가운데서도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 만큼 귀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참다운 눈물을 흘려야 하는 선교적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허리띠를 졸라맬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내가 할 것 다 할 수 있고, 먹을 것 다 사 먹을 수 있지만, 자기를 절제하고, 그 자원을 주님을 위해서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이 말씀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울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그 기쁨의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

 

주를 섬기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부분도 많겠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마지막 때, 곧 주님을 만나 뵈올 날이 멀지 않은 이 때에, 장차 나라와 민족과 족속과 방언들이 다 모여서 예수님의 존전 앞으로 나아올 때, 눈물로 씨를 뿌린 그 두 손을 예수께 기꺼이 자랑스럽게 보여 드릴 수 여러분 모두가 되실 수 있으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참고: 정제순/ 편집:익선 052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