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기쁨의 조건 (시편 86:1-7)
참된 기쁨의 조건 (시편 8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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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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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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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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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
서론)
1. 남미의 밀림 지역에 살고 있는 하나님을 믿는 한 청년이 생활필수품을 사기 위해 먼 곳 장터까지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습니다. 잠시 피할 곳을 찾아 속으로 기도합니다. 어둡기 전에 집에 가야 하는데 소나기가 빨리 끝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소나기가 그치고 햇볕이 쨍하고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으로 향해 한참 가는 데 아침에 건넜던 외나무다리가 없어 진 것입니다. 물이 넘쳐 떠내려간 것입니다. 그래서 아래 위로 살펴보니까 좀 떨어져도 힘껏 뛰면 건널 수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자칫하면 물에 빠지면 물살에 떠내려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개울물을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세요. 그러면 한 평생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 멀리서 힘껏 달려 뛰어 건너 언덕까지 건널 수 있었습니다. 무사히 건넜을 때 ‘별것도 아닌 것을 괜히 걱정을 했구만. 기도하지 않아도 될 것을’ 하고 일어서는 순간 언덕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를 살려주세요. 농담도 못합니까?’라고 했다고 합니다.
남미의 정글 속에 사는 그 청년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저와 여러분 모두의 이야기가 아닐런지요.
눈앞이 캄캄할 때 ‘살려만 주시면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하고선 회복되면 그런 기도를 한 것도 잊어버리고 다시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뒷간에 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이 다르다’는 옛말과 같습니다.
본론)
가)위기 속에 처한 다윗
1. 본문에 보면, 다윗은 상당한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사울 왕이 보낸 자객들 때문에 아차 하면 죽을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2)라고 한 것을 보면 죽음의 위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2)라고 하였습니다.
2. 기도란 참 좋은 것입니다. 요즘 전화비가 얼마나 비싼지요. 스마트 폰이 아니라도 누군가에게 전화하고 받고 하려면 통신비가 보통 많이 나가지 않습니다. 저희 가정에서 4식구가 쓰는 스마트 폰 비용이 한 달에 평균 최하 250불입니다. 일반 폰이라도 180불 가까이 나갔습니다. 이번 달엔 본의 아니게 데이터가 좀 많이 오버되어 300불은 나가게 생겼습니다. 1년이면 인터넷은 관두고 3,000불 이상이 전화비로 나갑니다. 거의 보통 군인의 2달치 월급이죠.
그래서 4월 달엔 첫째 이들 쫓아내고 5월은 둘째를 쫓아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어떻습니까? 돈 한 푼 안 들어요. 와이파이가 없어도 좋고 인터넷 비용 없어도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그 잘 터진다는 버라이존 보다 잘 터지는 게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입니다. 좋죠?
3. 본문에서 다윗은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라고 하였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하다’고 한 것은 일반적으로 물질적인 가난을 의미하지만, 심령이 쇠약해진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다윗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숨어 다니는 어려움 속에서, 사실 자신의 지혜나 노력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때 하나님께 기도 드린 것입니다.
4. 더군다나 다윗이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나 죄로 인함이 아니었습니다. 고로 2절에서 “나는 경건하오니” 라고 한 것은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요 책망 받을 정도의 잘못이 없는 온전한 사람이었다는 고백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선행을 베풀었고 어려운 사람에게 도와주는 자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경건한 믿음의 사람에게도 죽음 같은 위기가 있는 것입니다. 고로 성도에게 어려움이나 고난이 오는 것이 꼭 개인의 잘못이나 죄로 인해서 오는 것만은 아닙니다. 온전한 성도에게도 어려움과 위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수 있게 되며 하나님의 손으로 어루만져주시는 신령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영혼의 기쁨을 구한 다윗
1. 그런데 다윗은 큰 위기를 앞에 두고 하나님께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4)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를 어떻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영혼을 기쁘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참 기쁨이 어디서 오는가를 알았습니다.
2. 현대인의 인간 가치 평가 기준의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시장성입니다. 인간을 시장의 상품으로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젊음, 학식, 기술, 노동력, 얼굴의 생김새 등으로 인간을 상품으로 가치를 평가합니다. 잘 팔리는 것은 비싸고 안 팔리는 것은 싸구려로 또는 재고처분이 되는 것입니다. 교통사고로 죽었다든지 중상을 입었을 때 보험사가 이러한 가치로 평가해서 보상을 합니다.
둘째로 적응성으로 가치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조화를 이루고 사느냐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것입니다. 비록 육신은 장애가 있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높이 평가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경제성으로 평가하는 것입니다. 이기면 값이 올라가고 지면 가치도 없습니다. 요즘 메이저리그 야구선수들 몸값이 엄청나게 올라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김 아무개 선수는 연봉이 700만 달러랍니다. 이 아무개 선수는 400만 불입니다. 뭐 광고 한번 나가면 1억, 2억 버는 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나 이러한 가치 기준은 세상적인 평가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인간 평가 기준을 무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특별히 속죄함을 받은 성도는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다 했습니다. 성도의 목숨은 천하보다 귀한 존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동물들보다 가치가 높은 것은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모릅니다. 죄로 인하여 죽은 영혼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됩니다.
참된 성도는 물질이나 명예와 건강 같은 때문에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늘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는 영혼의 기쁨을 원합니다. 참 행복은 영혼의 기쁨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기쁨은 하나님께서만이 주십니다. 하나님 외 다른 어느 것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다)기쁨의 조건들
1. 그러면 영혼의 기쁨은 어디에서 옵니까? 최고의 영혼의 기쁨은 죄 사유함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죄 중에 사는 동안에는 참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용서 받았을 때 참 기쁨이 오는 것입니다.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5)라고 했습니다. 하나님만이 인간의 죄를 없이 할 수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또 다윗은 자신을 긍휼히 여겨 주시기를 종일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6)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값으로 당하는 어려움이 아닐지라도 자신의 영혼을 기쁘게 해 주시기를 바라는 믿음으로 호소하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잘못으로 당하는 환난이라 할지라도 용서하시고 구해 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2. 둘째, 기적적인 체험이 있을 때 영혼의 기쁨이 있습니다. 기적이란 자연계의 일반적인 현상이나 우리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때 오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는 의사들이 죽으리라 굳게 믿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났을 때 느끼는 놀라움입니다. 그런 기적적인 체험이 큰 행복을 줍니다.
3. 세번째, 선물을 받았을 때입니다. ‘선물’은 공짜로 받는 것입니다. 유명한 가수나 배우들이 팬미팅이라도 하면 선물이 너무 너무 많아 트럭에다 실고 가야 할 정도라고 합니다. 카드니 인형이니 뭐니 뭐니…수백에서 수천 명이 모이니까, 어마 어마 하지요. 근데 뭐 대가 바라고 선물을 주나요? 좋으니까 주는 거 아닙니까? 너 때문에 내가 행복했다 기뻤다! 사랑한다! 뭐 그래서 주는 거지요.
생일날이 왜 좋습니까? 선물 때문이죠. 만약에 생일날 선물 받지 못하면 우울한 날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서글픈 날이 될 거예요.
‘선물’이란 율법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선물이란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고로 기쁩니다.
4. 끝으로 행복 중에 가장 큰 행복은 기도에 응답입니다.
다윗은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7)라고 했습니다. ‘환난’이란 마치 도리깨로 내리치는 고통을 의미합니다.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그 환난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최선의 방도는 무엇이었지요?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이 그런 환난에서 구해주셨던 분이셨음을 다윗은 이미 여러 번 체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도하는 행복을 느끼는 것이 참 성도에게 주어진 선물입니다. 돈이 안 들어요. 기도 할 때마다 분당 1달러! 뭐 이런 거 없쟎아요! 한 시간이면 60불? 아무도 기도 안 해요!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며 사는 것이 지극한 행복인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 때 영혼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가난하고 궁핍하지만 종일 부르짖었습니다.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라고 했습니다(3).
예수님은 아들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아도 되셨지만 그러나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는 동안은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도 기도는 기쁨이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결론)
오늘도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의 선배였던 다윗 성도가 받아 누렸던 그런 기쁨을, 저와 여러분 모두가 동일하게 받아 누리게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 우리가 구할 때, 무엇을 구하든지 꾸짖지 아니하시고 풍성히 주시는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참고: 허창수/편집: 익선 04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