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으로 악을 이기자 (롬12 : 14 – 21)
선으로 악을 이기자 (롬12 : 14 – 21)
14. |
15. |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
16. |
17. |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
18. |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
19. |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
20. |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
21.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
서론)1. 동물의 세계는 대개 강한 것이 살아남고 약한 것은 죽게 됩니다. 맹수들이 초식동물을 잡아먹을 때, 달리기가 늦거나 우왕좌왕하거나 병들었거나 어린 것들을 주로 잡아 먹는 것은 물론 비정하기도 하지만, 강한 것들을 통해 우수한 종족보전을 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2. 인간 세계에도 힘센 사람이 주로 이기고 약한 사람은 대개 집니다. 그런데 영화나 소설을 보면 한때는 약했던 자가 힘을 길러 왕녀에 강했던 자에게 몇 년이나 십여 년이 지나서 복수를 합니다. 절대강자는 없다고 할 수 도 있습니다.
중국영화의 법칙에 따르면, 자신이 복수를 못하면 자식에게 하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자식은 깊은 산속에 들어가 무술을 배워서, 때가 되면 아버지의 원수를 갚습니다. 그래서 악을 갚는 것을 보고 모두가 박수를 칩니다. 누군가가 손해를 보면 그 가해자에게 몇 갑절로 손해를 보여야 한을 풀었다고 생각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폭력엔 폭력, 권력엔 권력, 계략엔 계략, 악엔 악으로 갚는다는 거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21)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에게 져서도 안 됩니다. 악을 악으로 이기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셨습니다. ‘진다’는 말은 ‘외면한다’는 말입니다. 악한 것에 눈을 감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을 대항하지 않고 외면하고 무관심하면 악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악은 더욱 강해집니다. 악이 강해지기 때문에 악에게 져서는 안되고 악을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방식은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3.또‘진다’는 말의 의미는 악을 기피하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을 피하면 또 다른 악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웃이 나빠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합니다. 이사한 그곳에는 악한 사람이 전혀 없습니까? 더 악한 사람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우리나라에는 살 곳이 없어 외국으로 갑니다. 그러나 이민을 가 봐도 그곳에도 악한 외국사람은 또 존재합니다.
본론)
가)하나님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고 말씀하셨습니다.
1. 이 말씀에 기독교의 놀라운 진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박해하는 사람을 저주하지 말고 축복을 하라, 말이 됩니까? ‘박해’란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괴롭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는 것은 지는 것이고 축복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2. 상대방이 악하게 나온다고 해서 나도 악하게 대항하는 것은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나도 악에 빠져들어 나 자신도 다른 죄악을 짓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악하게 나올 때 저주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복수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도 역시 악에게 지는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가상 칠언 중 가장 먼저 “아버지여 저희들을 사하여주옵소서 자기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선으로 악을 이긴 것입니다.
그런데 가령 예수님이 자신에게 침 뱉고 채찍으로 때리는 자들에게 한번 째려만 보셨더라도 악에게 졌을 것입니다. 마음 속으로 ‘어디 두고 보자 가만 두나’라고 생각이라도 하셨더라도 그 동안 하셨던 모든 것은 공수표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군중들을 보시고 ‘이놈들아 내가 너희들을 가만 두는가 봐라’, 마음속으로라도 품으셨더라도 그 순간에 예수님은 악에게 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자신을 치는 자들을 향해 눈짓 한 번하지 않고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하시므로 선으로 악을 이기셨습니다.
4. 모세는 매우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는 40년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를 인도하는 동안 백성들로부터 온갖 핍박과 환난을 많이 겪었습니다. 하물며 원망하며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그럴 때 마다 모세는 참고 견디었습니다. 그런데 가데스 바네아에서 그만 큰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이 원망하고 돌을 들어 죽이겠다고 할 때 모세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고 분노하며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 쳤습니다. 모세는 백성을 저주하였습니다. 이를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즉시 모세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에서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20:12)고 징계하셨습니다.
인간적으로 우리는 모세를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얼마나 괴롭혔으면 ‘반역한 자’라고 외치며 분노했을까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해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악을 악으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고로 ‘박해하는 자를 축복한다’는 것은 아주 높고 고귀한 신앙입니다.
5. 사도 바울이 개종하기 전 사울이였을 때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는 것을 합당히 여겼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울이 스데반을 죽인 공범자란 말입니다.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스데반은 끝까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죽이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행7:59). 스데반은 자신을 죽이는 사울을 저주하지 않고 축복을 했습니다. 스데반의 축복으로 사울은 변해서 훗날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순교하여 하늘나라에 올라가서 스데반을 같은 순교자로 만나게 되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보고 거짓 사도, 이단자라고 하며 어지간히 마음을 상하게 했지만 바울은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향하여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후1:14)고 소원을 말했습니다. 이것이 선으로 선을 이긴 것입니다.
6.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우는 ‘손양원 목사님’은 6.25 사변 때, 자기의 두 아들을 죽게 한 공산당 앞잡이 안재선이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양자로 삼았습니다. 손양원 목사님께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신 분입니다. 나중에 사람들이 물었답니다. “목사님 그 안재선이가 밉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손목사는 “물론 어떨 땐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밥을 먹을 때, 미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용서했지요”라고 하였습니다. 만약 두 아들을 죽인 것을 용서하지 않았더라면 악을 악으로 이기려고 한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7. 어떤 영국 신자가 미국에서 가든파티를 열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즐기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곳에 아메리칸 인디언 추장이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몹시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래서 문간에 서서 주인을 불렀습니다. ‘배가 고프니 빵을 좀 주세요’. 그러나 주인은 ‘당신 같은 야만인에게 줄 빵은 없어’ 거절했습니다. ‘그러면 목이 마른 데 물이라도 좀 주세요’라고 하자, ‘너 같은 놈한테 줄 물이 어디 있느냐? 라고 하며 추장을 모독했습니다. 추장은 섭섭한 마음으로 돌아섰습니다. 그 뒤 어느 날, 그 영국 신사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목이 마르고 지친 채 산을 헤매다가 그만 기진 해버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인디언 추장이 지나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자기 집으로 데려다 물을 먹이고 음식을 주어 살렸습니다. 그리고 추장은 ‘당신, 나 어디서 본 것 갔지 않소?’라고 했을 때 영국 신사는 과거에 자기가 한 짓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곤 얼마나 부끄러웠는지요! 추장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물도 음식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을 죽을 지경에서 살렸습니다’라며 흐믓해 했답니다. 인디언 추장은 선으로 악을 이겼던 것입니다.
8. 다윗 왕을 보십시오. 자기를 죽이려 온갖 못된 수를 다 쓰던 사울 왕이 죽고 왕이 되자, 자신을 살해하려던 자의 손자인 므비보셋을 데려다가 한 밥상에서 먹고 마시게 했다고 했습니다. 선으로 악을 이긴 것입니다.
9. 요셉을 보십시오.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들을 다 용서하고 “하나님께서 나의 동족들을 큰 기근에서 구하시려고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하셨다”며 그들을 용서하였던 것입니다.
10. 예수께서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20)고 말씀하셨습니다. 숯불을 쌓는다는 것은 원수가 과거의 못된 행동을 너무도 부끄러워하여 온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미안해 하고 뉘우친다는 의미입니다. 원수에게 확실히 이기려면 원수를 사랑하고 축복해야 합니다. ‘원수를 저주하지 말고 복을 빌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론)결론적으로 예수께선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기도하는 것만으로 악을 선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는 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의 축복을 받은 성도는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멋진 성도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참고: 허창수/ 편집: 익선 042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