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는 신앙(고전10:6-11)
거울을 보는 신앙(고전10:6-11)
1. |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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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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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
6. |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7.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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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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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숭배 하는 일을 피하라.
서론)
1. 고객들의 불평으로 백화점에 느린 엘리베이터를 교체하려는데 예산 때문에 고민이었습니다. 백화점 여자 청소원이 큰 거울을 엘리베이터 안에 설치하면 불평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백화점은 곧바로 커다란 거울을 설치했습니다. 놀랍게도 고객들의 불평이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엘리베이터의 거울을 보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느리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 인간은 유일하게 거울을 사용합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바로잡고 고쳐야 하는 것이 너무나 절실합니다.
본론)
가)첫째, 성경말씀이 거울이 됩니다. (2~6절)
본문에서 구약의 인물들의 이야기는 말세를 만난 우리의 본보기, 곧 거울로 기록하였다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모세 시대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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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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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
6. |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
우리는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라멕과 에녹들을 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에서, 또는 사무엘이나 엘리야나 엘리사, 다윗과 예레미야나 다니엘, 욥과 같은 사람들도 봅니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서 본받아야 할 믿음의 태도부터 시작해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이나 결함이나 고쳐야 할 부분이나 부끄럽고 더러운 부분 등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야 합니다. 성경을 읽거나 들을 때, 이런 눈을 뜬 자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내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책입니다. 성경을 즐겨보는 것은 거울을 자주 자세히 보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 범 죄 한 자가 거울이 됩니다. (갈6:1~5)
1. |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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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
4. |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
5. |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했습니다.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누군가를 손가락질 할 때, 한 손가락은 그를 가리키지만 세손가락은 나를 가리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곁에 누군가 범죄 한 사실이 드러났을 때, 정죄하기에 앞서 먼저 우리는 그의 그릇됨을 바로잡아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곧바로 동시에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누군가를 열심히 정죄하는 사람치고 그는 완전 하여 동일한 실수나 죄에 빠지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누군가 범죄 한 사실이 드러나면 즉시로 나 자신을 살피는 거울로 삼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열왕기 상하와 역대상하에서 보면, 여러
왕들의 범죄가 심각한 만큼, 계속되는 무서운 심판의 예언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무서운 심판이 신속하게 찾아오기보다는 계속해서 심판을 유보하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는 진노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 고
했습니다. 마치 아버지가 아이들을 혼내며 하는 말 같습니다. “너, 셋 셀 때까지 안 하면 혼날 줄 알아!”
그리고 시작합니다. “하나, 둘, 둘 반, 둘 반의반. 셋
거의 다.”
그렇게 쉽게 셋을 셀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셋이 다 차기 전에 말을 듣기를 원하는 마음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죠. 그런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우리의 실수가 아니라 실수에서 돌이키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셋째, 재앙을 만날 때 거울이 됩니다. (눅13:1-5)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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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
3. |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
4. |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
5. |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
요즘은 말세의 끝이라 해서인지 숱한 재앙의 소식들이 하루도 쉴 새 없이 온 지구촌을 공포와 두려움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재앙들이 하도 많아서 오히려 무덤덤해 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만 재앙을 당하리라고 생각하고 안일한 태도로 있으면 안 됩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거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해일이나 지진이나 태풍, 굶주림이나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이 나보다 더 죄가 많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죄에 대해 늘 민감한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넷째, 주어진 환경이 거울이 됩니다.
때로는 우리 삶의 ‘마라와 같은 쓴 물’을 만나는 환경이 거울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 환경, 상황 들이 견디기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욥은 그런 가운데 하염없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다윗도 그러했습니다. 15년이란 도망자의 시대뿐 아니라. 왕이 되어서 겪는 숱한 배신과 도전, 비난 등에 대해 끊임없는 고통들이 따라 다녔습니다.
야곱도 그러했습니다. 얍복강 가에서 자신의 무력함과 한계, 그리고 죄인 된 모습을 보았습니다.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쳐올 때, 나만이 느끼는 참을 수 없는 공허한 환경에 직면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 반응하는 나를 보아야 합니다.
엘리야도 그랬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소원했던 절망하던 자신을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자세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럴 때에 어떤 모습으로든지 반응하며 행동하는 나를 보아야 합니다.
연약한 나, 절망하는 나 자신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 앞에서 드러나는 것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드러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씨름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환경의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보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환경이라는 거울을 통하여 종종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여! 믿음의 거울 앞에 드러난 내 모습을 보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잘못된 모습들은 오늘 고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믿음으로 살지 못했던 나 자신이 있었다면 통회자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한 점의 부끄러움 없이 항상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라고 기도 할 수 있길 바랍니다.
참조:진범석, 김병삼 / 편집:익선 062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