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가치, 세가지(사2:17~22)
인생의 가치, 세가지(사2:17~22)
1. 독일에 카이제르(Kaiser)라는 유명한 황제가 있었습니다. 이 황제는 수염으로 유명합니다. ‘카이제르 수염’하면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얼굴 양쪽으로 꼬부라져 올라간 수염을 말하는데, 그 사람이 아마 처음으로 그렇게 기른 듯합니다. 이 황제는 기독교 신앙이 돈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조금 심심했던지 신하들을 보고 물었습니다. “얘들아, 내 몸값이 도대체 얼마나 나가겠느냐?”라고요. 내가 황제인데 이 세상에서 나보다 더 가치가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한 번 내 값을 매겨 봐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하들이 감히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도대체 얼마를 매길 수 있었을까요? 공연히 말을 잘못했다가는 혼쭐이 날 테니 말도 못하고 쩔쩔 맨 겁니다. “왜 말을 못하느냐, 한 번 매겨 봐라”고 또 했더니, 한 젊은 신하가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황제님은 은 29냥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황제가 불쾌해하며 “아니 내가 금도 아니고 은 29냥이라고? 은 한 냥이 도대체 얼마냐?” 물었더니, 그 신하는“황제시여, 화내지 마시고 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예수님이 은 30냥에 팔렸으니, 황제님이라고 해서 예수님보다 더 나갈 수 있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그만 머리를 숙이고 더욱 겸손해졌다고 합니다. 2. 알버트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에서 일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는 철학박사, 신학박사, 의학박사, 음악박사였으니 박사학위만 네 개였습니다. 슈바이처 박사의 철학은 ‘생명철학’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에 큰 가치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슈바이처 박사는 철학의 기준에 의해, 먹지 못해 굶주리고 병들어서 고통 당하고 알지 못해 무시당하고, 복음도 듣지 못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찾아가서, “흑인인 너희는 배우지 못하고 먹지 못하고 가난해도 하나님께서 나와 똑같이 주신 생명이다. 너희 생명이나 내 생명이나 똑같다.”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들에게 유명한 연주곡들을 들려 주고, 병을 고쳐 주면서, 56년 간을 그 철학대로, 신학대로 그들 가운데서 살았습니다. “나는 살려고 하는 여러 생명 중 하나로 이 세상에 살고 있다. 생명에 관해 생각할 때 어떤 생명체도 나와 똑같이 살려고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생명도 나의 생명과 같으며 신비한 가치를 가졌고 따라서 존중할 의무를 느낀다. 선의 근본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보호하고 높이는 데 있으며 악은 이와 반대로 생명을 죽이고 해치고 올바른 성장을 막는 것을 뜻한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분은 신앙 때문에 생명에 대하여 깊이 깨달았고, 깨달은 대로 행한 것입니다. 3. 어떤 공사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누군가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나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돈을 벌려고 일합니다.”다른 사람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짐을 나르는 사람이오.”또 다른 사람에게 물으니 “나는 하나님과 가족을 위해 일을 합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마지막 사람은 다른 이들과 똑같은 일을 하지만, 자신의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4. 하나님은 한 사람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창조하셨지만, 그러나 오늘날도 이 세상에서는 천하보다 귀중한 무수한 생명들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습니까? 수많은 전쟁과 질병과 재앙과 사고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구원받게 하셨을까요? 이미 죄인으로서 지옥의 사형선고를 받았던 우리들을 왜 구원해 주시고 지금까지 생존하게 해주시고 계실까요?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 아직 하나님 보실 때에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 생명에는 세 종류의 가치가 있다 우리들의 생명에는 저마다 가치가 있는데, 그 가치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첫째는 아주 귀한 가치가 있는 생명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돈으로 환산 되지 않는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숭고한 사랑, 최선을 다하는 노력, 소망, 의지, 정의, 진실, 예술 등 입니다. 그러나 생명을 돈으로 그 가치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생명이 존재케 하는 환경, 곧 물이나 공기 햇볕 같은 것들도 돈으로 그 가치를 계산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생명’일 것입니다. 2. 두 번째로는 그저 그런대로 보아 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좀 어지 중간한 가치를 가진 것들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아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못하는 것도 아닌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운동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고, 물질도 그렇고, 성품도 그렇고, 항상 중간을 선호하고 유지하는 보통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너무 깊이 믿는 것은 오히려 많은 희생이 따르고 손해가 따르므로 적당히 믿고 적당히 신앙생활 하면 된다는 적당주의의 신앙인들이 상당 수 입니다. 그래도 이런 사람들은 그런대로 보아 줄만 합니다. 언젠가는 변화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3. 세 번째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거의 무가치해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부패를 가치로 따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부패한 생선, 부패한 음식, 부패한 사람, 부패한 정부나 집단, 이런 것들은 가치를 따질 필요성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는 것들입니다.
나) 셈할 가치가 아주 없는 생명도 있다. 1. 첫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지 않은 사람입니다. 분문12절에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자와 자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여기서 교만한자와 자만한 자와 자고한 자는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이 제일이라고 믿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며 또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들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렘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반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시10: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시14:1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고 자신만 있거나 다른 신을 섬기는 자들의 마음은 겉으로 보기에는 선하고 온유하고 사랑이 있는 것 같지만 실상 깊은 내면에는 교만과 어리석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하나님은 셈할 가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2.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만의 지식과 경험과 힘으로 쌓아놓은 세상 과학 문명은 셈할 가치가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바벨탑을 무너뜨리셨고 성들과 우상들과 신전들을 무너뜨리십니다. 본문20절에 “사람이 자기를 위하여 경배하려고 만들었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인간들이 만든 우상들이 무가치해지며 쓰레기처럼 던져져 버릴 것이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위하거나 경배 받고파서 만드는 조직이나 물건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중에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나 자신만을 위해 도모하는 일과 세워가는 계획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불길한 일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성공이나 결과물들은 하나님 앞에서는 셈할 가치가 없습니다.
다)하나님께서 셈할 가치가 있는 인생이란? 1. 모든 일에 하나님 제일주의로 행하는 사람이 셈할 가치가 있다 했습니다. 모든 세계관을 하나님 중심으로 세워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세계를 지어 간다는 말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만들어가는 세계입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사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위하여 지으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모든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사상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해 만들어가는 은우상과 금 우상 같은 것들이 혹 여러분에게 는 없으십니까? 그런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헐어버리시기 전에 우리가 빨리 헐어버리고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두려워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우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습니다.
어느 정도인가, 오늘 본문 19절은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심판하시는 그날에!!!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날엔 사람들이 너무 무서워 굴속으로 도망쳐 숨는다는 것입니다.
계9:6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임하면, 그 고통이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죽기를 소원해도 죽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래서 두번째 사망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먼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처음 죽습니다. 그리고 그 영혼은 후에 하나님의 백보좌 심판대라는 곳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 믿지 않아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집니다. 거기선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계20:11~15을 읽어 드리겠습니다.
-했습니다.
결론) 우리는 잠시 왔다가는 나그네와 같은 인생과 하나님 앞에 전혀 가져가지 못할 재물과 명예와 나의 자랑거리들을 의지하지 마십시다. 오직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처음이요 마지막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오메가와 알파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까닭에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결국엔 여러분의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케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참조: 정길영,임성재 /편집:익선 0815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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