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등과 기름은 준비되었는가? ( 마 25장 1- 13 )

호걸영웅 2016. 11. 18. 11:52

등과 기름은 준비되었는가? ( 25 1- 13 )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차 엔진이 힘이 없어지더니 차가 서버렸습니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차가 갑자기 섰으니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는 겨우 운전할 줄만 알았지 기계부분은 무엇이 무엇인지를 모르는지라 별 수 없이 지나가는 차를 세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지나가던 차 한대가 서더니 운전자가 내려 차 옆으로 왔습니다. 무엇을 도와줄까요 라는 말에 차가 서게 된 사정을 이야기하니 그 사람이 차 안을 살펴보더니 빙긋이 웃으며 물었습니다.
“운전을 하신지 얼마나 되십니까?” “얼마 안됩니다.
“그럼 이 차는 뽑은 지 얼마나 됩니까?” “예, 어제 차를 새로 뽑았습니다. 친구들이 차는 처음에 길을 잘 들여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고속도로로 와서 지금 달려보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새 차를 샀다는 말을 차를 뽑았다 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의 차는 왜 고속도로에서 섰을까요? 전날 뽑은 새 차인데…. , 여러분 혹시 짐작이 가는 것 없습니까?
그 남자는 자동차 앞의 계기판의 연료게이지를 가리키면서 “이게 뭔지 아시지요? 지금 이 표시는 이 차에 기름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동차는 기름이 있어야만 달릴 수 있습니다.
그는 차를 새로 뽑았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들떠서 그만 차에 기름이 얼마 있는지도 생각하지 않고 운전하다가 낭패를 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아는 것처럼 차에 기름이 없으면 차는 달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운전을 자주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데 가끔 하는 사람, 그리고 처음으로 운전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도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름이 없어서 낭패를 본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두 개의 이야기가 다른 점이 있는데, 기름이 떨어진 것은 같은데 성경에서는 자동차 기름이 아니라 등불을 켜는데 필요한 기름이 떨어져 결혼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열 처녀 가운데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가 바로 그런 일을 당했습니다. 마태복음 25 8절에,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름이 없어서 등불을 켜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는 결국 잔치자리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더 드리기 전에 오늘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혼풍습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에는 몇 가지 절차가 있습니다. 혼인은 대개 3 단계의 절차를 통해 이루어 집니다.
맨 먼저 정혼의 단계인데 신랑의 아버지와 신부의 아버지 사이에 합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 다음에는 약혼의 단계로서 약혼 당사자들이 신부 집에 모여 여러 증인들 앞에서 서약을 합니다. 이때 신랑은 신부에게 약혼선물을 전달하면서 집에 돌아가 신혼 집이 마련되는 대로 곧 와서 결혼식을 올리고 데려가겠다고 말합니다.
집에 돌아 온 신랑은 그 때부터 신혼집을 준비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결혼식에 있어서 특이한 점 하나는 결혼날자는 신랑이 정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신랑의 아버지가 정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신랑이 될 사람과 동네사람간에 이런 대화가 가능합니다. 동네사람들이 신랑을 만나면 묻습니다. 신부는 언제 데려오는가? 그러면 신랑은 이렇게 대답 합니다. 아시면서 왜 물으세요, 그건 우리 아버지가 결정하신다고요.
그래서 마태복음 24 36절에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러한 유대인의 결혼 관습이 배경에 깔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유대인들은 그 말이 100%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 맞다, 맞아 결혼식 날은 신랑 아버지가 결정하는 거지, 그러니 이세상 마지막 날도 오직 하나님만 아시는 거야, 하면서 무릎을 치면서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신부랑 같이 살 집이 다 지어지면 신랑은 신부를 데리러 신부 집으로 찾아 갑니다. 신랑은 신부 집으로 찾아가서 신부를 데리고 피로연이 베풀어지는 자기 집으로 가두 행렬을 하면서 옵니다.
이때 신부의 친구들은 신랑을 함께 기다리고 있다가 신부와 함께 신랑의 집으로 가서 잔치에 참여하여 잔치를 즐기는 것입니다. 신부는 친구 10명을 들러리로 세우는 게 관례입니다. 10명은 하나의 회당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의 인원이며, 종교 집회를 위해 필요한 인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열 명의 처녀는 신부의 들러리로서, 신부 집으로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신랑 일행을 맞아 신랑 집에서 벌어지는 혼인잔치에 들어가기 위해서 기다리던 중이었습니다. 신랑은 보통 저녁에 오지만, 늦을 때는 한밤중에 오기도 해서 신부의 들러리들은 저녁 무렵부터 등을 들고 나가서 신랑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신랑이 신부 집으로 신부를 데리러 올 때에 등을 기다란 막대 끝에 매달아 그것을 치켜들어 오는 신랑의 길을 밝혔다고 합니다. 이때 등불은 각자가 개별적으로 준비해야 했는데, 만일 등불을 들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불청객이나 강도로 취급 받았기에 등불 준비는 아주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열처녀들도 각기 등불을 준비하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등불이 없거나 그 등불을 밝히지 못하면 불청객 취급을 받아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이야기에 의하면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기로 된 날에 신부의 들러리 열명이 신랑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웬 영문인지 신랑이 늦게 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있던 열 처녀가 그만 졸다가 아주 잠에 빠진 것입니다. 그렇게 열 처녀가 잠을 자고 있는데 신랑이 온다는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일어나 등불을 챙겨보니 슬기로운 처녀들이 가지고 있는 등불은 기름이 충분하여 꺼지지 않았는데 비하여 미련한 처녀들이 가진 등불은 마악 꺼져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슬기로운 처녀에게 청합니다. 기름을 조금 나눠달라고. 그랬더니 슬기로운 처녀들이 답하기를 자기들이 쓰기에도 모자라니 기름을 사서 쓰라고 합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도착하여 잔치는 벌어지고 문은 닫혔습니다. 시장에 가서 기름을 사 온 미련한 다섯 처녀가 헐레벌떡 달려와 문을 열어달라고 하나 이미 때는 늦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대하여 즐겨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냥 천국은 이런 곳이다 하고 말씀하실 때도 있었고 또 말세와 연관시켜서 말씀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말세와 관련하여 천국을 설명하실 때에는 꼭 시간을 집어넣었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모른다” 는 식으로 천국과 시간을 연결시켜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마태복음 25장도 그렇습니다. 25장 처음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 때에”
여기서 그 때라는 말은 지금까지 말해 왔던 어느 시간을 말하는데, 예수님은 24장에서 이세상의 끝 날,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25장의 처음, 그 때에라는 말은 곧 그 때,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곧 이세상의 끝 날을 말합니다.

그 날은 어떤 모습입니까? 곧 신랑이 와서 잔치를 벌이는 때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즐거운 때입니다.
신랑 신부도 기쁘고 그 친구들도 기쁘고 가족도, 또한 이웃도 기쁜 날이 바로 결혼식입니다.
그렇게 이세상의 끝 날은 기쁜 날이라는 것이 이 비유가 말하고 있는 첫번째 교훈입니다. 그 날 곧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기쁜 날이다. 왜냐면 천국잔치가 마치 결혼잔치처럼 벌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날,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을 기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여기서 열 처녀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신부의 친구들인 신부의 들러리입니다.
그들은 저녁 무렵부터 등을 들고 나가 신부를 데려오는 신랑을 기다렸다가 그들 일행을 혼인 잔치에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열명의 처녀들은 아주 중요한 사람들인데 그것은 그들이 맡은 역할이 아주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자기들이 할 일을 알아서 해야 되는데 그만 문제가 생겼습니다.
온다는 신랑이 그만 늦게 오는 바람에 열명 모두가 기다리다가 지쳐서 졸기 시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다 잔다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도 잠이 들었고 미련한 처녀도 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그냥 단순하게 유대인의 결혼 풍습을 알려주시기 위해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속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신부의 들러리 열명은 누구인가 하면 바로 우리를 의미합니다. 교회에 속해있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신부는 누구입니까? 교회입니다. 이세상의 교회는 나중에 신랑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즐거운 천국잔치를 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속해있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맞아 잔치자리로 인도하는 아주 중요한 사명을 맡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슬기로운 처녀, 미련한 처녀 할 것 없이 다 졸며 잔다는 말은 말세가 되면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졸고 있다는 말입니다. 잔다는 것입니다. 깨어있지 못하고 다 잔다는 말입니다. 모두 다 누구나 할 것 없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더욱 더 각성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열명의 처녀들이 모두 자고 있는데도 불구하도 그 열명의 처녀들을 미련한 처녀 그리고 슬기로운 처녀로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3
절과 4절을 한번 다시 살펴보면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련한 자든지 슬기있는 자든지 모두 등불은 준비했으나 차이점은 등과는 별도로 기름을 가졌느냐, 안 가졌느냐 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기 나오는 열 처녀처럼 등을 준비하여 신랑 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여야 합니다.
또한 미련한 처녀들처럼 되지 말고 슬기로운 처녀들처럼 별도로 기름을 준비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의 행동을 본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등도 준비하고 기름도 준비하려고 하는데 과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바, 등불은 무엇을 말하며, 기름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그 것들이 말 그대로 등과 기름을 말한다면 가게에 가서 등잔과 기름을 사오면 될 터인데 그것이 그것인가요?
아닙니다. 당연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등과 기름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하여 학자들이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있는데 가장 좋은 해석은
등불은 교회 출석, 봉사, 전도 등의 외형적인 신앙생활, 즉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신앙생활을 말하고 있으며
기름은 하나님과 영적 교제하는 내면적 신앙, 보이지 않는 믿음을 의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이 등에 들어가서 불을 밝히듯이 우리의 내면적 믿음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만 밖으로 나타나는 신앙생활이 제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등불을 가지고 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미련한 처녀들이라 함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신앙생활을 잘 하지만 그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정작 등불을 켤 기름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그것을 채우려고 하지만 그때는 늦는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을 미련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예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하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확실하지 않으며 아무리 교회를 열심히 다닌다고 해도, 또 봉사를 열심히 한다고 해도 믿음은 텅 빈 껍질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름이 없으면 자동차가 달릴 수가 없듯이, 기름이 다하면 등불에 불이 꺼지듯이,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확실히 되어 있지 않으면 교회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미련한 사람들이 가지는 신앙생활의 모습은 결국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그저 그런 신앙생활을 꾸며가며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없는데 밖으로 거룩한 모습은 보여야 하겠고, 그러자니 얼마나 본인 스스로도 힘들어 하겠습니까?
하나님 말씀 배운 것은 없으니 자연이 교회 일을 하면서 사람의 방법을 자꾸만 끌여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니 본인도 힘들고 옆의 사람들도 괴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려는 사람을 자꾸만 걸고 넘어지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교회 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꾸민 신앙은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진짜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어느 사람의 믿음이 가짜이고 진짜인지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밖으로 번지르르하게 나타나는 어떤 모습보다도 사람에게 보이는 것에 구애 받지 않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실히 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기름만 있으면 등불 없이도 불을 켤 수 있나요?
아닙니다. 기름만 가지고 있으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기름만 있고 자동차가 없으면 단 1 미터도 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름과 등불 모두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밖으로 나타나는 신앙생활도 필요한 것이고 그 신앙생활을 바르게 해주는 진정한 믿음도 필요한 것입니다.
등불과 기름을 모두 가지고 있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 처럼 우리도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올바른 신앙생활이며 바로 깨어 기다리는 생활입니다.

그러면 그 미련한 다섯 처녀는 왜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를 알아야 우리가 그 미련한 처녀들의 전철을 밟지 않습니다.
여기서 그 처녀들이 받은 바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습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은 어딘가에서 그것을 배웠을 것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지요.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아니면 친구에게서 배웠든지 하여튼 결혼식에서 신랑을 맞으러 가는 신부 들러리로 갈 때에는 반드시 등불과 또 기름을 준비해 가야 한다는 것을 배워 알았을 것입니다.
알았기에 차질없이 등불과 기름을 준비해 무사히 자기들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저는 여기서 미련한 처녀 다섯이 등불은 준비하였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기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몰랐을 경우입니다. 그냥 등만 가지고 가면 되지 구태여 기름까지는 준비할 필요가 없다고 알고 있는 경우입니다.
두번째는 기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신랑이 일찍 오는 줄로 기대하고 그냥 기름이 없어도 되겠지 하면서 그냥 갔을 경우입니다.

첫번째, 기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면 그것은 그 처녀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부모나 친구 혹은 학교의 책임입니다. 따라서 그 부모나 친구들, 혹은 학교에서 그 점을 분명히 알려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주변사람들이 그 처녀 미련하게 만든 것입니다.
두 번째 그 미련한 처녀가 기름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알았는데 신랑이 일찍 오는 줄로 기대하고 기름이 없어도 되겠지, 하면서 그냥 갔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 책임입니다.
주변사람으로부터 신랑을 맞으러 갈 때에는 등불도 준비하고 기름도 확실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들었는데 그만 소홀히 생각해서 뭐, 신랑이 일찍 오겠지, 신랑이 일찍 오면 기름이 없어도 돼, 하면서 무심히 갔을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남의 말을 새겨듣지 못하는 성격이거나 아니면 주변 돌아가는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미련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것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어떻습니까?
아까 열 처녀들은 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이라 했는데 성도들이 미련한 성도들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누가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가르쳐주는 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분명히 그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신랑 되시는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우리는 등불과 기름을 동시에 준비할 필요가 있다.
등불은 밖으로 나타나는 신앙생활이요, 기름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영적인 면이다. 이런 것들을 분명하게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서 만일에 그런 것을 성도들이 모르는 채 살다가 주님이 오셔서 주님이 베푸시는 천국잔치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주님앞에 가서 목사가 책임추궁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부분을 담당하기에 여러분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또한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 우리나라의 교회 현실과 여기 미국에 있는 수많은 한인교회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사람들은 교회를 나오는 것일까? 과연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려고 나오는 것일까요?
그래서 그들이 등불을 준비하고 있을까? 등불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여기 미국의 한인교회를 살펴보면 등에도 관심이 없고 기름에도 관심이 없고 교회엘 그냥 겉치레로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교회는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한국사람들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해야 하니까, 또는 무언가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을 알아두는 것이 좋으니까, 등의 이유로 나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그들은 관심이 없습니다. 사람 얼굴만 익히면 되지 하나님은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 교회의 장로니, 집사니 하는 직분을 벼슬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장로 집사 직분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는 자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사업을 할 때 자기가 교회에서 이 정도의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 그 직분을 가지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어느 교회 장롭니다. 그 정도로 교회에서 대우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고 존경해 준다는 것을 과시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앞세웁니다.
그런 사람들이 비록 등불, 밖으로 보이는 교회생활은 잘 하는 듯이 보일지 모르나 등불을 켜는데 필요한 기름은 단 한 방울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을 배워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훈련 받는 훈련소요, 학교요, 실습장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올바른 가르침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들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깨우쳐 줘야 합니다.
여러분, 깨어 있으라는 말씀을 어렵게 생각하시거나 무슨 특별한 다른 방법이 있는가 생각하지 마십시요.
가장 기본적인 신앙생활에 충실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하며, 그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확실히 알고 말씀 따라 살아가는 것이 바로 등과 기름을 준비하는 생활입니다.
교회는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도록 성도들에게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8절과 9절을 보십시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너희 쓸 것을 사라, 이 말씀은 구원 문제는 하나님과 본인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대 일의 문제이지
누가 옆에서 그 것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구원문제는 언제나, 항상 확실하게 해 놓도록 하십시다.

그 다음 절을 보십시다.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그 날과 그 때가 되면 안타깝게도 더 이상 오늘 날과 같은 가르침은 없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배우면서 우리가 확실히 해두어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앙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배움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랑이 오고, 잔칫집 문이 닫혔습니다. 한번 닫히고 나면 문은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도 방주 문이 닫힌 후에 그 문은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오늘 말고 내일 언젠가 마음만 먹으며, 항상 신앙생활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합니다.
나이가 조금 더 들면 예수님을 잘 믿어 보겠다고도 생각하기도 합니다.
언제가 성경공부도 할 수 있고, 기도 생활도 하고, 교회 봉사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생각이 우리로 하여금 게으르게 만듭니다. 제대로 등불도 기름도 준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여러분, 그 날은,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내일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바로 지금, 말씀을 듣는 바로 이 시간에 우리의 신앙을 바로 가다듬고 주님께 나와야 합니다.

자동차에 기름이 떨어져 가다가 멈추면 그래도 어떻게 해 볼 방법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깨어 기다리고 있어야 할 우리들이,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할 우리들이 깨어 있지 못하고 등불과 기름도 준비하지 않고 자고 있다면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없습니다.

그때에는 울며 불며 매달려도 이미 늦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등불과 기름을 준비하여 깨어 있어 예수님을 맞이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방석형 목사 102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