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불가능을 넘는 비밀(막 9:17-24

호걸영웅 2017. 1. 20. 01:10

불가능을 넘는 비밀( 9:17-24)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서론)

본문 막9장에선 예수께서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우리 모두가 읽은 본문의 바로 다음 부분을 제가 더 읽어 드리겠습니다.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의 힘이나 지혜나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그런 상황, 환경,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은 두 가지로 반응합니다.

먼저는 그저 쉽게 포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악착같이 도전하는 것입니다. 개척 정신에 투철한 사람, 매우 적극적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은 문제 앞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도전을 합니다. 어떤 분은 평생을 도전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인생에서 정말 어떤 불가능도 존재하지 않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불가능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서 죽음의 문제는 아무리 과학이 발달되어도 해결하지 못합니다. 다만 약간의 연장을 할 뿐입니다. 또 죽음을 가져왔던 원인인 죄의 문제도 우리는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좀 더 죄를 덜 짓는 사회를 만들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해결 할 수는 없습니다.

한 심리학자가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해요. 어떤 심리학자가 여러 마리의 벼룩을 가지고 벼룩이 얼마나 높이 뛸 수 있나 실험을 해보았어요. 20 센티는 대부분 다 뛸 수가 있고, 어떤 벼룩들은 30 센티를 무려 뛸 수가 있는 것을 발견을 했어요. 벼룩들을 모아 놓고 그 벼룩 위에다 7~8센티미터 높이의 유리컵을 덮었습니다. 그러니까 벼룩들이 계속 뛰죠. 그러나 유리컵의 한계 때문에 이제 부딪칩니다. 10 센티미터도 이제 못 뛰죠. 7-8 센티. 유리컵이 딱 제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이상 벼룩들이 뛰지 못합니다. 한 두 시간 이 지난 후에 유리컵을 이렇게 벗겨나 보십시오. 그 이상 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벼룩들은 이제 나는 그 이상 뛸 수가 없다. 7-8 센티, 10 센티 유리컵의 한계가 내 한 계다라고 생각하고, 더 이상 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만 뛰고 있는 모습 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 벼룩 같은 자세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자기의 한계를 너무 낮게 낮추어 버리고 쉽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소위 불가능성의 한계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

 

 본론)

)첫째로 우리는 예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이 간질병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치유를 부탁했습니다. 제자들이 물론 열심히 노력을 했겠지요. 그러나 이 아이의 병이 도무지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때 바로 그때 예수님 이 나타나셨습니다. 산 위에 다른 세 제자들과 함께 계시다가 내려오신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 앞에 엎드려서 도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귀신에 붙잡혀 극심한 고난을 겪는 이 아이의 병을 예수께서 치유하시는 과정에 있어서 우리는 불가능을 넘어서는 그 비밀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19절엔 예수께서“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강조된 단어는 ‘내게로’라는 단어예요. 그 아이의 아버지는 먼저 자기의 아이를 이끌고 이 난치의 질병을 앓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누구를 찾아 왔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 왔습니다. 아마 예수님을 찾다가 예수님이 없으니까 제자들에게 왔을 거예요. 그 때 예수님께서는 산 위에 계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제자들 밖엔 없었기에 아마도 제자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못 고친 것입니다.

 

어떤 부모님 한 분이 자기 어린 자녀를 데리고 교회에 나올 때 “교회 가자” 이렇게 말씀을 안 하고 항상 이렇게 말씀을 했대요. ' , 우리 하나님 집에 가자.' 그래서 그날도 주일이 되어서 우리 하나님 집에 가자. 그랬더니 그날따라 그 집 꼬마 중에 하나가 이런 대답을 하더래요. “나 안가요.” 그래서 “왜 안가니?” 그랬더니 “밤낮 가 봐야 집에 하나님이 안 계시던데요”라고 하더랍니다. 이 꼬마는 당연히 하나님을 찾을 것을 기대하고 둘러보았지만 하나님이 안 보인단 말이지요. 아주 솔직한 말 이죠.

 

사실 교회의 책임은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왜 드립니까? 성경 공부의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험케 하는 것이죠. 우리가 말씀 공부의 중요한 목적이 어떤 단순한 지식을 취득함이 아닙니다. 성경 공부의 초점을 단순한 지식의 획득, 정보의 획득에 두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예요.  예수님을 만나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죠. 그러나 교회를 구성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예배드리는 그 곳에 두세 사람 이상이 내 이름으로 모인 그곳, 그리고 주의 이름을 높이는 그곳에 하나님이 임재하심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우리가 사이비 교주와 건강한 영적 지도자를 구분 할 수 있습니까? 그 구분이 뭐예요? 만약 어떤 지도자가 계속해서 초점을 자기에게 맞춘다면 내가 메시아 라고 말을 한다든지 혹은 그렇게 말하진 않아도 그런 암시를 한다든지 자기가 메시아라든지 자기가 참된 하나님의 아들이라거나 자기가 그리스도라 선포를 하든지 암시를 하든지 그리고 계속해서 촛점을 자기에게 모은다면 그것이 곧 이단이요 사단의 제자가 됩니다.

참된 하나님의 목자는 자기가 높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정한 목자되신 예수께서 높임을 받게 하는 자입니다. 참된 목자는 항상 어떤 상황에서도 성도들이 주 예수님 앞으로 달려가도록, 그 주님을 볼 수 있도록, 주님을 의존할 수 있도록 주님을 가르치고 방향을 제시해 줘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든 영적 지도자의 책임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주님을 바라보도록,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메시지로, 교육으로, 훈련으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는 아들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길이요, 그가 진리요, 그가 생명이십니다. 그분이 홀로 선한 목자 되십니다. 그분만이 진정한 상담자요 왕이십니다. 그 분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제시하는 교회 지도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로 사랑하는 여러분이, 이 능하신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가십시오. 그때에만 우리는 문제를 넘어서, 불가능을 넘는 은혜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인생이 순간을 경험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가시길 바랍니다.

 )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신뢰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문제를 가지고 나아온 후엔, 예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정말 예수님이 나를 고칠 수가 있다. 예수님을 신뢰하셔야 합니다. , 제자들이 축사에 실패한 이후에, 귀신 쫓아내 고 병 고치는 일에 실패한 이후에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본문의 28절 에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 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여기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 조용히 물었어요. 크게 묻기에 창피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우리는 어찌하여 실패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그 실패의 원인을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이 아이가 고쳐지지 않은 이유,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제자들의 기도가 실패한 이유, 도대체 그 원인이 어디에 있었을까요? , 우리가 다시 19 절을 읽어보시면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라고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원인을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간접적으로 지금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이, 이 세대가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곳에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당신의 임재를 계시 하시고, 당신의 손길을 나타내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믿음이 적은 자 여! 그대들이 실패한 이유, 기적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 그것은 믿음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들에 게 믿음이 적었다! 믿음을 충분히 나타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크리스챤 사이언스라는 기독교 이단이 있습니다. 한국에는 별로지만 얼마 전까지 톰 크루즈가 매우 헌신했던 이단 종교였고 외국에는 맹렬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단입니다. 이따금씩 여행을 하다 보면 국제공항 같은 데에 크리스챤 사이언스라는 리딩 룸이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기독교 같아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기독교가 아니예요. 이 사람들이 믿음을 강조하지만 '믿음'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 이예요. 자기 자신을 믿으라 이 말 이예요. 우리가 자신을 믿으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참으로 많은 성도들이 예수님을 신뢰한다고 말하면서도 은근히 나를 믿고 있는 경우들이 더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제자들이 왜 이 축사에 실패하고, 이 아이의 병을 고치는데 왜 실패를 했을까요? 한때는 예수님이 열 두 제자와 70명의 제자들에게 전도하러 내 보낼 때 권세를 주어서 사방으로 내보냅니다.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 귀신을 내어 쫓을 수 있는 능력과 권세를 주어서 그들을 내어 보냈습니다. , 돌아와서 보고할 때 어떤 보고를 했습니다. 선생님, 굉장하데요. 우리가 기도해 보니까 병자가 낫고 그리고 귀신들도 항복하더이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에 성공했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이번에도 또 성공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왜 실패했느냐? 나아있던 제자의 마음의 밑바탕에서는 예수가 없어도 자기들 만으로도 뭔가를 할 수 있다라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순간이 크리스챤들이 실패하는 순간입니다. 내가 가장 강하고 생각할 때 사실은 실패합니다. 신앙의 역설은 이것입니다.

 내가 약함을 느끼는 순간, 그래서 주님을 의지하는 순간 우리는 강하여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약할 때가 내가 가장 강하다”. 나의 무력을 느끼고 나의 좌절을 느끼고, 그래서 하나님, 정말 하나님 없이는 못 살구요, 주님 없이는 할 수가 없구요. 전적으로 주님을 신뢰하는 그 순간이 바로 하나님이 임하시고 우리를 사용하시는 순간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또 중요한 것은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한 후, 그 다음에 할 일이 뭐예요?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방법. 그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우리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신비하고 놀라운 방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수록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돼요. 기도 안 할수록 자기 생각, 자기 의지 그리고 자기의 계획, 자기의 잔꾀 그리고 자기만 의지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 기도할 때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첫 번째 말이 뭐예요. 하나님 아버지. 자비로우신 나의 주님이란 말 따위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왜 기도 안 합니까. 교만해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기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거예요. 그러나 자기 절망을 느낄 때, 자기의 한계를 느낄 때. 오 하나님. 아니 자기 절망을 느끼지 않을 때에라도 주님이 나보다 더 잘 아신다. 주님의 방법이 최선의 방법이다. 주님의 지혜만이 최선의 지혜다. 이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서 그리고 어떤 난제의 일이 내 앞에 버티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무릎을 꿇어 기도할 줄로 믿습니다. 교만하면 기도하지 못합니다

 

 왜 이 제자들은 쫓아 낼 수가 없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29절입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그랬습니다. 기도가 방법입니다.

 

마태복음 17 21절 엔 같은 상황의 설명을 이렇게 해 주고 있습니다. “기도와 금식이 아니 고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기도와 함께 뭘 강조했습니까? 금식까지 강조하셨어요. 금식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가장 강렬한 형태가 금식입니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 하루를 살면서 절대로 빼놓지 않는 것, 그것은 먹는 일이죠. 그러나 그 식사 시간까지 단절하고 하나님께 매달린다면 기도의 가장 강렬한 형태, 목숨을 건 형태가 됩니다. 기도에 목숨을 걸 때 불가능한 일들은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많은 불가능의 문제들이 있어요. 우리의 힘, 우리의 지혜, 우리의 생각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이런 난제들을 뚫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경험하기 위해서 주 앞에 엎드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초대교회의 능력. 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초대교회가 굉장히 이상적이 교회라 지금 현대 교회보다 굉장히 우수한 어떤 교회라는 상상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교인 숫자도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는 당대의 세계에 그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과 충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 어디에 있었느냐? 금식을 불사한 기도에 있었다고 합니다.

 

‘글랙 롤’이라는 미국에서 떠오르고 있는 젊은 전도자의 책 주에서, 사도 행전 강해에는. 사도행전 당시의 교회에 대한 설명을 하다가 이런 얘기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에 교회들은 회의 보다 기도를 더 많이 했다. 그들은 만약 한 시간 회의를 한다면 초대 교회는 틀림없이 두 시간 기도를 했을 것이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어떠한가? 오늘날의 대부분의 교회들은 아마 두 시간 회의를 했다면 한 시간 정도 밖에는 기도하지 않을 것이다. 그 다음에 아니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는 두 시 간 회의를 했다면 한 시간이 아니라 단10분도 기도하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의 형편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설교의 prince, 왕자라고 일컬어지는 이 스펄젼 목사님이 사역하던 당시에는 대개 6,000명 이상의 회중들이 꽉꽉 자리를 채우던 교회였고 많이 모일 때는 10,000명 이상씩, 어떤 때는 20,000명까지 모여서 성령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영광으로 불타오르던 교회였다고 합니다. 스펄젼의 전기에 보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스펼전 교회와 목사님을 방문하면 목사님은 항상 이 방문객을 데리고 교회 본당이 아니라 교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대요. 그 아래층에는 뜨겁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수백 여명의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곤 자랑스럽게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목회의 비밀은 바로 여기 기도하는 이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존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라고 했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스펄젼 목사의 탁월한 설교 때문에 부흥을 주신 것이 아니라, 그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영국을 부흥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결론)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들을 만나셨습니까? 예수께 나가십시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목숨을 건 기도를 하십시오. 오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시여! 하나님이 이 한해를 정말 주님 신뢰하고 걸어가게 도와주세요. 많은 문제가 우리 앞에, 우리 가정 앞에, 교회와 나라 앞에 놓여 있아오니 하나님만을 의지하나이다! 우리가 정말 엎드려 기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시고 우리 앞에 주어진 모든 문제들을 정말 주님을 붙들고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때로 인생의 절박한 순간에 진정 목숨을 걸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라고 하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여 주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할 때 먼저 내가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주변이 변화될 것이며 나의  민족이 바뀌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우리 가운데 기도를 가르치시고 성령의 놀라운 능력을 부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축복합니다.할렐루야!

  참고:이동원 / 편집:익선 01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