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함이 있는 믿음(약1:22-25)
행함이 있는 믿음(약1:22-25)
22.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서론)
1. 야고보서의 주제는 “믿음이 있는 자는 말씀대로 실천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강조하면서 믿음과 병행하여 행위가 있는 실천적 신앙생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에스겔서 33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스겔의 예언의 말씀과 경계의 말씀을 마치 노래하는 가수를 보듯 귓등으로 흘려 들으며 무시하다가 결국 멸망함을 보고 탄식하며 후회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노래나 연주를 듣듯 그저 듣고 끝나서는 아니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야고보는 들고 깨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실천에 옮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론)
가)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 했습니다.
1. 누가복음 1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를 낫게 하신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이르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 11:27-28)고 했습니다. 누가 복이 있다구요? 기적을 행하는 믿음보다도 말씀을 듣고 지켜 순종하는 자의 축복이 더더욱 크다고 교훈하셨습니다.
2. 지난 화요일 64세의 탤런트 김성환씨가 건강프로그램에 나온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무려 30년 정도를 합병증 없이 ‘당뇨병’을 잘 관리한 분입니다. 그분은 먼저 의사의 말을 잘 들었습니다. 만보기를 사서 하루 만보 걷기를 늘 실천하고 체중관리를 잘 하고 주위에서 여러 충고하는 분들의 말을 잘 새겨듣고 또 의사에게 물어 실천하였습니다. 당 조절을 위해서는 메밀(buck wheat)로 된 음식과 잡곡을 열심히 먹었습니다. 그래서 건강을 잘 지켜왔다고 합니다.
3.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배, 전도, 기도, 헌금, 구제... 등 중요한 여러 일들을 열심히 지켜 행하는데 이런 모든 것이 우리 신앙에 큰 유익이 됩니다. 특히 범사에 감사하는 일은 별거 아닌 것 같지만 경건에 큰 유익이 됩니다.
그런데 간혹 설교를 아무리 듣고 성경을 읽어도 경건한 삶이 드러나지 못하고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는 분도 더러 있습니다. 참 안타깝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분들을 위해 얼마나 인내하고 계신가를 알아야 합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4. 칼빈 같은 신학자는 “말씀이 가라는데 까지 가고 말씀이 서라는 데에서 서라”고 가르쳤다 합니다. 실로 우리도 이 같은 정신으로 살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바로 모시고 정신을 차리고 서로 격려하며 살면 능히 말씀대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약 1: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했습 니다. 온전한 율법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을 늘 바라보면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세상사람이나 자기 유익만 바라보면 시험에 듭니다.
나) 듣기만 하는 자는 헛됩니다.
1. 한편 약 1:22엔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자를 ‘자신을 속이는 자’라 했습니다.
22절은“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했어요. 이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 출석하고 거기서 읽는 것과 듣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자라는 것입니다.
약 2:14=“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라고 했어요, 고로 약 2:26도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2. 대개 성도들은 교회에 출석하여서 설교자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크게 움직여 주길 원합니다. 설교자가 성도들을 감동시킬 때 흔히 성도들은 그를 훌륭한 설교자라고 합니다. 또 많은 성도들이 모두가 감동을 받고 이구동성으로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그 설교가 가르치는 것을 전혀 행하지 않는다면 무슨 유익이 있을까요?
3. 그래서 예수의 제자인 마태는 이사야서를 인용하면서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마 13:14-15)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경을 알아도 잘못 알고 있어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음에 도 오히려 정치적이고 권력적인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들의 나라는 천국이 아니라 이 세상이 정치와 복지에만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약 1:23=“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겁니다. 그냥 지나가면 끝인 거예요. 실물이 아닙니다.
4. 여러분, 구약의 바로 왕이나 신약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의 바로 왕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권능을 너무도 뼈저리게 알았습니다. 그래도 결국엔 회개치 아니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잡아오고 모세를 죽이려고 마차부대를 이끌고 홍해로 쳐들어 갔다가 그만 몰살하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또 어떻습니까? 그는 초대교회에 성령이 충만함과 성령의 역사들을 체험하며 너무도 큰 은혜를 받은 지라, 전 재산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고 제자의 삶을 살겠다고 굳게 다짐한 성도들입니다. 그런데 집에 가서 재산을 처분하는 과정에서 “에이, 뭐 재산을 다 바칠 필요가 있나? 좀 떼어 두었다가 우리도 써야지” 라고 하며 서원한 것을 어기고 일부만 교회에 바쳤을 뿐 아니라, 사도 베드로가 그것이 그대들의 재산 전부인가? 라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하다가 성령이 그들을 치시매 둘 다 하루에 숨을 거두는 불상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약속한 것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아니면 약속할 때 신중하시길 바랍니다.
5. 하나님의 말씀의 참 가치는 그것을 실행하여 경험한 자만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옥토에 떨어진 씨와 같아서 30배 혹 60배 혹 100배의 결실을 한다” 했습니다.
6. 마 7:24-25에서도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라고 했어요.
7. 서양 우화에 개구리 두 마리가 우유 통에 빠져서 허우적거린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좌절하고 낙망 한 끝에 그만 우유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는 좌절치 않고 끝까지 허우적거렸는데 나중엔 우유의 윗부분이 버터가 되고 디딤판이 되었습니다. 결국 그 개구리는 굳어진 버터 위로 올라 와서 우유 통에서 껑충 뛰어 나오게 되었답니다. 우린 하나님 말씀이 어렵다고 금새 행하기를 포기하여서 는 아니 됩니다.
8. 어느 날 매우 존경 받던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 (대통령은 아님)을 찾아온 농부가 그를 만난 후 돌아갈 때에 그의 기념친필을 요청하였답니다. 그러자 벤쟈민 프랭클린은 “오늘 일은 오늘 하라”는 글을 그에게 기념으로 주었답니다.
그는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서, 그날 마침 추수를 하기로 했기에 좀 피곤해도 추수를 그날 다해 버렸는데, 다음날 많은 비가 엄청나게 오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그 지역에 있는 추수 안된 농작물의 절반이 떠내려가거나 젖어서 못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실천한 농부는 피해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해 겨울, 벤쟈민 프랭클린은 그 농부로부터 통나무 장작 20마차를 선물로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9.여러분! 사사기 6:25~32절에는 기드온이 온 동네가 섬기던 바알의 제단을 헐고 아세라 라는 우상신상 때려부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5. |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
26. |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
27. |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
28. |
그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제단이 파괴되었으며 그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제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
29. |
서로 물어 이르되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가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이르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
30. |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하니 |
31. |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
32. |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고 했습니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나의 목숨을 걸고라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수에 대한 믿음은 안일하고 무사 태평하고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예수를 못 믿겠으며 누가 천국에 못 가겠습니까? 기드온도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다행이 기드온의 아버지가 지혜를 내어 바알신이 참 신이면 기드온을 내일 아침까지 죽일 것이니 기드온을 그냥 두어도 괜찮을 것이라 했기에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래서 기드온의 별명이 ‘여룹바알’입니다. 이 말은 바알과 다툰 사람이란 뜻이예요. |
10. 또한 왕비 에스더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왕궁의 규례를 어기고 삼 일을 금식하되 물도 마시지 아니한 후, 감히 부르지도 않은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 앞에 목숨을 걸고 나아가 유대인의 원통함을 아뢰어, 온 유대 백성들을 학살의 위기에서 살려내었습니다.
결론)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믿음과 행위가 있는 실천적 신앙생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보다 그 무엇도 더 사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것을 실천하시길 바랍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참된 영광을 하나님께 드릴 수 도 없으며 여러분이 쌓은 모든 것이 모래 위 성과 같이 무너지게 될 것이요. 하늘나라에 가긴 할지라도 별 상급이 없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것에 익숙하지 말고 들었던 말씀을 온 힘을 다해 행하는 데에 더 익숙해져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분명히 전에 들은 그 말씀 중에 옳다 여겨 아멘하고, 행하긴 행하여야 하는데도 이 핑계 저 핑계로 행치 못한 부분은 없습니까? 비록 가족들과 전쟁을 치루더라도, 내게 많은 재정적 손해가 있을지라도, 때로는 맞아 죽을지 모를 상황이 닥친다 해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실행하시는 믿음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그래야 참된 하나님의 예비된 복을 합당이 받게 될 것입니다. 항상 예수를 먼저 선택하십시오.
끝으로 마 19:29에 있는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을 들려드리면서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29. |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아멘! |
참조:코람데오/편집:익선 012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