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하신 하나님(겔18:26-31)
공평하신 하나님(겔18:26-31)
서론) 1. 우리가 살면서 누구나 가끔씩은 정말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간에게 공평하신가? 하나님의 구원이 공평하신가? 하나님께서는 심판에 공평하신가? 라고 말이지요. 하물며 성경의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어 왔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만 보더라도 자기 눈앞에 펼쳐진 사회적인 불법과 불의를 보면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왜 침묵하시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시했고,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은 왜 자기 백성들을 괴롭혔던 철천지 원수나라 앗수르를 구원하시려고 하시는지에 대해 불평을 토해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도 왜 자신처럼 하나님에 대한 특별한 열심을 가진 자를 아합과 이세벨이 죽이려고 하는데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은 방치하고 게시냐고 따지듯 물었습니다. 고난 당한 욥도 의인이 왜 고난을 받아야 하는지, 고난에 대한 형평성의 문제를 하나님께 항변하기도 했습니다.
2. 그러나 이사야 선지자는 (사5:16)에서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 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무엇이 공평하시다는 말입니까? 함께 말씀을 나눠보도록 합니다.)
본론) 가) 먼저 주의 뜻이 공평하십니다(시17:2) 주의 뜻은 하나님의 의지와 섭리, 계획이나 작정, 생각을 의미합니다. 태초 이후로 하나님의 뜻이 변한 적이 있으신가요? 하나님의 뜻은 영원무궁하십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아니하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십니다(민23:19).
세상에 아무리 의인이라 할지라도 공평하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좌우로 치우칩니다. 그때 그때 감정에 따라 다릅니다.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환경에 따라 다릅니다. 사람들은 “손은 안으로 굽는다”고 말합니다. 자기편이 있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감정도 완전히 공평하지 못합니다. 과거엔 남존여비 사상이 심했습니다.
또 변심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서부 영화 따위에서 보면, 처음에는 몇 사람이 서로 뜻이 맞고 의기투합하여 보물을 찾아 나섭니다. 보물을 찾으면 똑같이 나누기로 맹세합니다. 처음에는 어떤 위험이나 어려움이라도 서로 도우며 극복해 나갑니다. 그러다가 원하는 보물을 손에 쥐는 순간 생각이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처음의 생각이 무너집니다. 그래서 교활한 사람이 먼저 고생했던 동료를 쏴 죽이고 보물을 가지고 달아납니다. 보안관이 추적을 합니다. 인간은 잘 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민족을 공평하게 판단하십니다. (시 67:3, 4)을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나) 주의 길이 공평하십니다(신32:4) 두번째로는 본문 겔 38장에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탄식이 바로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는 것이었습니다(29절). 여기서 말하는 길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과 결정을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 주실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십니다(출33:19).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에게 구원을 주시고 축복받을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우리가 공평에 대해 오해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공평은 모든 사람이 기계에서 찍어내는 통조림이나 나사못들 처럼 똑 같은 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발 사이즈가 8인 사람에게는 8에 맞는 크기의 신발을 주어야 하고, 9인 사람에게는 9에 맞는 크기의 신발을 주어야 합니다. 그냥 모든 사람에게 8이나 9만을 준다면 너무나도 난처한 일이 벌어집니다. 공평이라함은 모든 규격과 그릇이 똑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의지를 가지고 당신의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세상에는 여러 가지 구원의 길이 있다고 말하지만 하나님께 가는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구원의 길은 공평하십니다. 돈이나 지위나 신분, 또는 인물이나 학력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보다 더 공평할 수가 있습니까?
또 성경에도 축복에 있어서도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이 있고, 1, 2, 5달란트 받는 자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너무나도 불공평해 보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가질 자에게 한 달란트를 주는 것이 공평입니다. 한 달란트 받을 그릇밖에 안 되는데 두 달란트를 주는 것은 실수입니다. 진정한 공평이란 하나님이 알고 계신 그 정도에 따른 수준으로 합당하게 분배해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원의 축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기대치에 미치는 사람은 구원하시고,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은 버리시는 것이 불공평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다)하나님의 일이 공평하십니다(렘9:24) 세번째,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일과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공평하시 나 사람의 일이 공평치 못합니다. 그분의 모든 일은 정확하시고 절대 공평하십니다. 빈틈이 없으시고 실수도 없으시며 오류도 없으십니다.
우주를 운행하시고 사계절이 오고 가며 해가 뜨고 지는 것은 물론, 역사를 움직이시고 사람들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는 일, 사명을 주시는 일, 고난을 주시는 일까지, 모든 일이 공평하십니다. 꼭 필요한 자에게 꼭 필요하다고 여기실 때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장 많이 하나님의 공평성에 대해 시비하는 문제가 축복과 고난의 문제입니다. 왜 나는 복을 더 주지 않느냐고 항변하고,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합니다. 결국 이것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있다는 피해의식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공평성을 의심하는 이유 중에 첫 번째가 비교의식입니다. 가장 실감나는 예를 보십시오. 마태복음 20장의 품군의 비유입니다. 포도원 주인과 일군들이 하루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기로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일군들의 노동시간은 다양했습니다. 어떤 이는 제 삼시, 제 육시, 제 구시, 제 십 일시에 말입니다. 드디어 하루 해가 저물고 일군들은 삯을 받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됩니다. 일군들이 가만히 지켜보니까 이른 아침부터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나 금방 들어와서 한두 시간밖에 일하지 않는 사람이나 다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씩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와서 일한 사람들이 포도원 주인에게 따집니다. 불공평하다고! 자기들이 주인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옆 사람과 비교함으로 시비가 붙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자기들이 계약한대로 한 데나리온만 받아 가면 그만인데 옆 사람과 비교하면서 불만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이 공평치 못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습니다. 자꾸 비교하면서 피해를 당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번은 고속도로에서 어떤 분이 과속을 하다가 경찰에 붙잡히자 이렇게 항변합니다. “나만 그랬나요? 저저 앞에 차도 그렇고, 내 뒤에 바짝 좇아온 차도 그랬고, 또 저 앞에 차도 그랬는데...왜 나만 잡습니까?”라고 하는, 이른바 물귀신 작전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항변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벌금을 내야 합니다. 사실 형평성은 하나님과 나와의 문제이지 다른 사람과 비교할 문제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십니다.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는 목자의 뒤를 좇아가면 푸른 풀을 맘껏 먹을 것이요, 게으른 목자의 뒤를 좇는 양은 굶주릴 것입니다. 하나님을 공평치 못한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눈으로 보니까 공평하지 못한 것처럼 여겨질 뿐입니다.
한편 겔18:21~23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겔 18:32도 말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어떤 악인도 돌이키면 반드시 산다 하셨습니다. 오늘날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시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아오면 반드시 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과거, 지옥 가야 마땅한 죄인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자 2,000년 전에, 우리 대신 십자가에 그 아들 예수를 달아 죽게 하시고, 이 예수가 날 위해 죽이신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요 구원의 표적임을 믿기만 하면, 아무 공로 없는 자라할지라도 천국의 문을 열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하나님 사랑에, 찬양과 감사를 끊임없이 드리는 일이 마땅한 일인 줄 믿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불행을 만날 때, 고난을 만날 때, 절대 하나님의 공평성에 대해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의심하지도 마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과 성품에 대한 불신이요, 도전이요 오해이며 유혹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절대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행복하고 자유롭고 의로우며 참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천국에 드어가길 원하십니다. 그분의 뜻은 공평하시고, 그분의 길ㄷ도 공평하시며,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이 공평하십니다. 이런 공평하신 하나님께 늘 감사 드리십시다. 또 이런 하나님께 보다 충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할렐루야!!!
030717익선/ 참고: 최규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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