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시 110:1~7)

호걸영웅 2017. 6. 15. 03:02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 ( 110:1~7)


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2.

여호와께서 시온에서부터 주의 권능의 규를 내보내시리니 주는 원수들 중에서 다스리소서

 

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4.

여호와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5.

주의 오른쪽에 계신 주께서 그의 노하시는 날에 왕들을 쳐서 깨뜨리실 것이라

 

6.

뭇 나라를 심판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깨뜨리시며

 

7.

길 가의 시냇물을 마시므로 그의 머리를 드시리로다

서론)
1.
교회에는 청년이 많이 있어야 희망이 있는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유럽교회 들뿐만 아니라 미국 교회들에 노인들만 있고 청년들이나 젊은 성도의 가정들이 거의 없다보니, 더는 교회를 유지할 수 없어, 보다 큰 교회로 합병들을 하거나 교회 건물을 팔아 치우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우리 동네에서도 그런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2. 영국의 어떤 교회들은 예배 때에 잠시 난방할 돈도 없어서 쩔쩔 맬만큼 재정이 어려운 교회들도 수없이 많고, 결국은 이슬람 사람들에게 교회를 팔아 알라신을 예배하는 모스크가 되도록 허용하거나 카바레나 술집이 되도록 하는 곳도 제법 많다고 합니다.

3. 고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많은 교회는 소망이 있는 교회요 힘이 있는 교회가 됩니다. 청년들은 교회의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4. 한국도 과거에는 동네마다 청년들이 많았어요. 청년들이 힘을 합하여 동네마다  야학을 가르치거나 4H운동을 하거나 새마을 운동 등을 한다며 동네를 얼마나 활기차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화와 도시화가 발달하면서 현재 한국이나 미국이나 농촌의 현실은 청년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청년이 있다 해도 요즘 청년들의 형편이 말이 아닙니다. ‘이태백’이란 현대어를 아십니까? 이태백은 불행하게도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줄임말이랍니다.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을 나와도 취직이 잘 안되어 몸고생 맘고생이 이루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몸은 비록 청년이지만 현실은 피곤하고 힘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마음은 점점 노인이 되어 가는 것이지요.

5.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세상의 어려움 때문에 굴복하지 않는 멋진 청년이기를 원하십니다. 정확히 어떤 청년이길 원하실까요? 본문 3절에 그 답이 나타납니다. 무엇입니까?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입니다. 새벽이슬, 이름만 들어도 뭔가 참신하고 생명력이 치솟지 않습니까? 그러면 정확히 새벽이슬 같은 청년은 어떤 청년일까요? 이 말씀을 잘 이해할려면......이스라엘의 기후를 또한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달리 건기와 우기로 나뉘는데요.

 우기는 11~4, 건기는 5~10월 입니다. 우기는 말그대로 비가 풍성히 내리므로 식물들이 잘 자라나는 때인 반면, 건기 곧 가뭄이 드는 시기에는 그 기간 동안 빗물이 거의 내리지않기 때문에 극심한 농사의 어려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힘들고 어려운 건기를 농작물이나 동식물들이 잘 견딜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이슬을 통해 수분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건기때는 홍해나 지중해로부터 새벽에 생기는 이슬이 식물과 땅을 그나마 촉촉히 적셔주므로 건기를 잘 견뎌 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슬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엇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 성경은 그런  새벽이슬을 하나님을 잘 맏는 청년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고로 시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라고 노래 한 것이지요. 

아울러 새벽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14:5에 “내가 이스라엘에 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했어요.

 이처럼 새벽이슬 같은 청년은 온 세상을 꽃피우고 열매 맺어 복되게 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을 가리키기도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가르키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찌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풍족히 받아 누리는 영롱한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로 나눠 말씀드립니다.)

본문)
)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이 되려면 예수 믿고 성령을 좇는 자여야 합니다.

시편 110편은 여호와 하나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왕중의 왕이 되며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미래가 온다는 매우 함축적이고 예언적인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능의 규=왕의 지팡이, 곧 왕권을 의미함)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1-2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승천후, 하나님 오른 편에 앉아 계시다가, 종말의 때에 만왕의 왕으로서의 통치를 하실것을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사도신경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3절의 “주의 권능의 날”이란 교회시대부터 재림 때 까지를 일컫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 재림하심과 천년 왕국 시대 까지를 통 털어 말씀하신 시기입니다. 이런 시대에 돋보이는 인물들이 바로 청년들입니다. 그들은 믿음 안에서 거룩한 삶을 좇는 청년들이니, 새벽이슬 같은 청년이라 했습니다. 이런 청년들은 세상의 풍습이나 유행이나 세상적 쾌락과 성공보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좇는 청년들이니, 곧 다니엘이나 요셉 같은 청년이요, 여호수아나 갈렙, 혹은 다윗 같은 청년들을 말합니다. 바로 주의 권능의 날에 이런 주의 청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온다 했어요. 이런 청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세상의 주인공들이 됩니다. 이런 청년들은 성령 충만을 사모하며 헌신하기를 즐거워 하는 청년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중 나이가 제법 드신 분들도 계십니다. 나이 먹으면 먹을수록 마음도 늙으니 그게 문제가 됩니다. 우리는 비록 몸은 늙어도 마음만은 늙지 않아합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쓸모가 없거나 무능한 노인은 없습니다. 오직 청년만 있습니다.

바울은 말씀하기를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은 날로 새롭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비록 나이가 들어도 청년의 믿음을 갖게 됩니다. 고로 하나님 섬기는 일에는 남녀노소가 없으며, 빈부귀천이 없으며 장유유서가 없고, 젊고 늙음이 없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다 갈렙같이 될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예수 안에는 영적으로 청년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을 늘 사모해야 합니다. 성령을 늘 갈망하며 도움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2:28에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 했습니 다. 성령충만을 간구하는 심령 위에 하나님은 꿈과 비전과 청년의 새힘을 주십니다!

. 1:8에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셨습니다. 예수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모두가 칭찬하고 부러워하는 하나님의 일군과 증인이 됩니다. 성령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연약한 여성들도 대장부 같은 믿음의 일군이 되고, 형제는 더욱 힘있는 성도로서 변화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신약교회에서 나오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고, 바울과 바나바와 같고, 스데반과 빌립 같은 일군들이 될 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도우시면 힘을 얻고 담대하여져서 젊은이든 노인이든 모두 새벽이슬 같은 일군이 됩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새벽이슬 처럼 아름답고 순수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은 제사장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합니다.

3절에 무엇이라 말씀했나요?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라고 했습니다. 거룩한 옷을 입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아무 옷이나 거룩한 옷이라 칭하지 않습니다.

먼저 구약에서 거룩한 옷은 제사장의 의복입니다. 28:2에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라 했으니, 거룩한 옷은 제사장만이 입는 옷입니다.  성경에 제사장에 관한 기록이 매우 많습니다. 그만큼 제사장은 귀한 존재요 직분입니다. 29장을 보면 제사장복장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29:5-9에 “의복을 가져다가 아론에게 속옷과 에봇 받침 겉옷과 에봇을 입히고, 흉패를 달고 에봇에 공교히 짠 띠를 띠우고, 그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성패(mitre)를 더하고 관유를 가져다가 그 머리에 부어 바르고,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속옷을 입히고, 아론과 그 아들들 에게 띠를 띠우며 관을 씌워서 제사장의 직분을 그들에게 맡겨 영원한 규례가 되게 하라. 너는 이같이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위임하여 거룩하게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신약시대인데 어떻게 제사장 옷을 우리 모두가 날마다 입겠습니까? 오늘날의, 교회시대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믿음의 행실을 의미합니다.

벧전2:9에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했습니다. 비록 복장은 구약의 제사장의 옷이 아니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믿음을 가지고 행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의 제사장복을 입고 섬기는 것입니다. 신약에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사장이 됩니다. 제사장이 하는 일은 백성을 용서하고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서 이 일을 잘해야 합니다. 예배하고 기도하는 일을 잘해야 합니다. 기도하되 죄인들을 사랑으로 덮으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 죄인입니다. 교회는 모든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사람의 옳고 그름 따져 기도해 주려면 기도해 줄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요즘 시대엔 선지자는 꽤 많이 있지만 제사장은 부족하다고 합니다. 추한 것을 보더라도 사랑으로 덮고 기도해 주면, 그들이 나중엔 성령의 은혜로 변화를 받아 귀한 일군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룩한 옷을 입고 헌신하는 일 중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헌신하되 왜 즐거이 헌신한다 했을까요? 사실 누군가를 위해 제사장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누굴 사랑하고 용서하고 돕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미운 사람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비난하고 비판하는 대열에 끌려가고 맙니다. 죄인을 사랑으로 아우르지 못하면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제사장 기도의 제사장 직분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즐거이 잘 감당할 때, 누구나 새벽이슬 같은 청년의 믿음이 될 줄 믿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도 열심히 일하는 청년이셨습니다. 우리 모두 예수 닮아 열심히 섬기며 도우며 기도하며 말씀 가운데 늘 성장하는 청년이 되야 합니다.

 

성령이 함께하시면 누구에게나 은혜를 끼치는 새벽이슬 같은 청년이 됩니다.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예배와 기도와 사랑 안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며 헌신에 힘쓸 때, 우리 모두가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될 줄 믿습니다. 청년주일에 즈음하여 잠시 몇 말씀드렸습니다.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052117 익선/참고: 한국강해설교연구원( agas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