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롬 8:5~8)

호걸영웅 2017. 7. 10. 10:14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8:5~8)

 

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서론)

1. 영국의 저술가“새뮤얼 스마일즈”라는 사람은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낳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낳고, 습관을 심으면 성격을 낳고,

성격을 심으면 운명을 낳는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새뮤얼 스마일즈”의 말은 어떤 사람의 생각이 그 사람의 운명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신의 생각에 의해 행동하는 존재이므로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적극적인 행동을 할 것이며, 반대로 매사에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소극적인 행동 할 것입니다.

 

2. 80:20이라는 법칙에 의하면 20%의 생각이 80%의 삶을 좌우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손과 발은 사람의 생각에 의해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3.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24시간 화투 생각만 난다고 하였습니다. 잠을 자려고 눈을 감으면 화투 48장이 눈에 어른어른거리고,밥그릇과 국그릇에도 화투가 비치고, 세숫물에도 화투가 비쳤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그는 돈만 쥐면 도박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결과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탕진 했으며 그리고 아내와 자식도 곁을 떠났습니다. 그런 자신이 싫어 도박을 끊기로 결심하여 도끼로 10손가락을 잘랐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저곳에 거짓말하며 돈을 빌려 도박장을 찾았습니다.

그는 생각하기를 눈으로 화투를 보지 않으면 화투가 생각나지 않을 것 같아서 자기 스스로 독약을 먹어 두 눈을 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투 생각이 났다고 했습니다. 결국 이 사람은 자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 하였다는 이야깁니다.

이 사람은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육신의 일만을 했던 것입니다.

 

본론)

)육체의 일을 생각하는 것

1.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라고

했습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만을 생각하며 삽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즐길까?라는 생각만 하게 됩니다.

문제는 본능보다 탐욕입니다. 얼마나 더 가질까? 얼마나 더 쌓을까? 얼마나 더 높이 오를까? 라는 생각뿐입니다.

 

예수님은 눅 12:16절 이하에서 한 부자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라고 하십니다.

육신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 밖에는 모르는 이기주의자, 개인주의자, 영적 맹인이요, 성공 제일주의자들입니다.

 

2. 바울 사도는 이런 사람들을 롬 1:19절 이하에서 이렇게 정의 하고 있습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이런 육신적인 생각들만을 하는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 때문인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은 영에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신 선악과를 먹으므로 육에 사람으로 변질되었습니다.

3: 7절에서“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라는 의미는 육신의 눈, 정욕의 눈, 죄와 탐욕의 눈이 사람에게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인해 육신의 눈이 뜨인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육신의 생각을 하는 죄인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후손인 것입니다. 그냥 두면 지옥블 속에 던져질 수 밖엔 없는 비참한 운명에 놓여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시 51:5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 하였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선포 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7절은“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라고 했어요.

육신의 생각을 하며,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사탄에게 사로 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육신의 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게 됩니다.

 

바울은 갈 5:17절에서도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우상숭배, 점치는 것, 분쟁, 분열, 당 짓는 것, 탐욕, 시기, 술 취함, 방탕함”등을 저지르게 될 뿐이다- 라고 했습니다.

 

본문 8절에서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선포를 합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기 전엔 우리 모두가 육신의 생각과 육체의 욕망만을 따라 살았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엡 2:3=“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라고

했어요. 이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2000년전에 예수의 피 값으로 사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 받은 우리들은 이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유업을 물려받을 상속자들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럼 왜 믿음이 그리 중요하냐?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실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한국 고아원에 이름도 성도 없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미국 사람 부부가 와서 그 아이를 자식으로 삼았습니다. 그 부부는 로버트 가문의 사람이라 합시다. 만약 그 고아 아이가 로버트 씨 부부를 따라가서 부모라 부르고 살게 되면 그 아이는 로버트 가문 사람이 됩니다. 그렇죠? ,그렇습니다. 믿음이란 곧 받아들임, 혹은 시인하는 것입니다. 어떤 변화된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건을 받아들여 수긍하면 그것이믿음입니다.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전에 전혀 몰랐던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이루신 십자가 사건이 2000년 전에 있었고, 그 사건이 내 죄 사해 주심임을 내가 믿으면? 하나님 자녀되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또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어느 평범한 사람이 공화당 당원을 만나 공화당이 좋은 것으로 여기고, 거기 자기 이름과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싸인하고 가입하기를 선서하면 공화당원이 됩니다. 곧 말과 서명으로 시인하는 과정을 거쳐 공화당이 됩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도 마찬가지 이런 과정을 거칩니다. 내가 예수를- 내 죄 위해 2,000여년 전에,성경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고 살다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그 교훈을 진실로 따르기로 선언하면 예수믿는 사람이 되는 것이죠.

 

과거 한국에서 6.25 전쟁 때, 북한 공산당이 패전하고 수많은 공산군 포로가 붙잡혔었습니다. 당시 휴전이 되면서 포로를 북한으로 넘겨 줘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나는 북한 공산당이 싫다, 남한에 남겠다는 사람은 북한으로 안 가겠다는 서류에 서명하고 남한에 남을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고, 북한으로 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냥 북한으로 넘어가면 되었습니다. 그 순간의 선택이 지금도 유효한 것이 되었지요? 지금까지 남북이 분단되어 60여 년이 지났습니 다. 지금 북한은 얼마나 어렵습니까? 먹을 것이 제대로 없어 굶어 죽는 것은 둘째요, 참된 자유가 없습니다. 이사도 맘대로 못 갑니다. 말도 맘대로 못합니다. 신앙도 맘대로 가질 수 없습니다. 인터넷도 맘대로 못합니다. 인권이 철저히 밀살되어 있는 광신도 집단이 되어 있습니다. 지난 달에만 3명이나 북한 군인이 남한으로 탈출을 했다고 하지요?

 

반면 남한은 얼마나 잘 살게 되었습니까?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 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 육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이 도무지 누릴 수 없는 자유와 행복과 채워주심과 인도하심과 화평을 누리고 살게 됩니다. 그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은혜와 축복입니다. 하늘나라의 소망이 있고 죄 사함 받은 기쁨이 넘칩니다.  할렐루야!

 

 물론 예수를 믿었어도 우리가 전에는 세상 것을 쫓아 살았던 육의 사람의 습관은 얼마간 남아있다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7:22~24절에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이 말한 죄는 하나님께 책망받을 죄였지만 지옥갈 죄는 아니었습니다. 우린 예수 믿어도 금방 천사처럼되고 예수처럼 되진 않습니다. 연약한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점 천사처럼 예수처럼 됩니다. 그걸 성화라고 합니다. 파란 사과가 빨간 사과가 되려면 몇 달이 걸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으로 충만 했던 바울, 성령의 지배를 받았던 바울도 육신의 본성과 싸웠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유혹 많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라고 멀쩡할 수 없습니다. 사단의 유혹이 계속 해서 우리에게도 다가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믿음 안에서 형제 자매들과 교제하고 열심히 봉사하며 예배하고 살면 능히 육신의 생각을 떠나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되는 삶을 살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의 저자인 사도 바울은 성령 충만을 늘 기도했습니다. 고로 성령이 충만해진 바울은 육신의 생각에 지지 아니하고 죽기까지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수십만 개도 더 될 만큼 많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 까지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결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충만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이기려면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 11:6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라고 했어요.

 

그럼 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할까요?

믿음이 없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부터 시작해서 그 아들 예수가 없다는 말이며, 예수의 보내신 성령님이 없다는 말입니다.

곧 믿음의 대상이 없거나 잘못된 것입니다. 믿음의 대상이 잘못되면 우상을 섬기거나 귀신을 섬기거나 인간을 신격화 합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을 믿어야 정답이 됩니다.

 

오늘날 성도들도 종종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내 멋대로 살기도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매질을 하십니다. 사랑의 매입니다. 매우 아픕니다. 그럴 때 속히 돌아 오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시길 바랍니다.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복음을 힘써 전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생명과 성령의 생각이 됩니다. 할렐루야!

 

한때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울에게 이렇게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했어요. (삼상15:22,23)

오늘 혹 하나님께 순종 못한 것들이 생각나십니까?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이 시간도 하나님은 기다리십니다. 할렐루야!

062017 안익선 목사/참고: 惟爺 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