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1-5)

호걸영웅 2017. 9. 2. 01:59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6:1-5)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A.
소망에 대하여
1.
한국에서 2001년 경에, 인터넷에는 '자살 사이트'라는 것이 생겨나 그 수가 50여 개나 되고, 회원 수도 무려 5천에서 6천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그 자살 사이트에서 만난 20대 남자 2명이 여관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까지 일어났습니다. 경찰의 보고에 의하면, 그 중 한 명은 카드 연체로 고민하다가 자살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혼자 죽기 힘드니 도와달라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여 자살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갑에 있는 100만 원을 주기로 하고 준비된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돈을 주고 칼에 찔려 죽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대개 10, 20대의 젊은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2.
미국에서는 1861년에서 1865년까지, 4년 동안 남북전쟁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휩쓸고 간 뒤, 버지니아도 폐허가 되었습니다. 학교들도 모두 폐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윌리엄 대학(College of William and Mary)이라는 학교도 폐교가 되었습니다. 학생도 떠나고 교수도 떠나고, 학교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전 9시만 되면 이 학교에서는 "뎅그렁 뎅그렁" 하는 종소리가 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학교의 교장이었던 이웰(Ewell)이라는 사람이 학교에 남아서 공부하는 시간을 알리는 종을 쳤던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를 비웃었습니다. 학생도 선생도 없는, 폐교된 학교에서 마치 학교가 운영되고 있는 것처럼 왜 종을 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웰은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교육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끝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텅 비어 있던 학교에 학생이 한 명, 두 명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어느덧 학생들로 가득 차고 좋은 선생들도 오게 되었습니다. 전후 7년 동안이나 종만 울리던 학교가, 나중에는 좋은 대학이 되었습니다. 한 교장의 믿음과 희망이 결국 좋은 결과를 1가져오게 한 것입니다.


3.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박사는 말하기를, '성공의 비결은 전 생애를 통해서 소망을 잃지 않는 데에 있다'고 했습니다. 절망하지 않고 반드시 소망이 이루어질 것을 믿고 끝까지 소망을 붙든 사람은 성공하지만, 도중에 소망을 놓친 사람은 실패하는 것입니다.

4.
다윗 왕은 시편 39 7절에서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보면, 언젠가는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망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5.
본문 시편 146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약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쓴
찬양시라고 합니다.
포로에서 해방된 그들은 미래에 대한 꿈과 소망으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고, 나라를 다시 세워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고 하나님 앞에 버림받아서 전쟁에 패하고 포로로 잡혀가 고생했지만, 이제는 돌아가 온전한 신앙을 지키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사람은 잃어버린 뒤에 깨닫습니다. 병들고 나서, 고생하고 나서 비로소 하나님 앞에 돌아옵니다.

그러나 막상 예루살렘에 도착해 보니 그 땅은 이미 북쪽 사마리아 지역에 살던 이방인들이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건축을 방해하고 모함하며 공격해 왔습니다.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고위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며 성전 건축을 방해하는가 하면, 만일 성벽을 재건하면 이스라엘이 반역하고 조세를 거부할 것이라고 바사 제국의 왕, 아닥사스다 1세에게 고소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를 중지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예루살렘 성과 성문을 훼파하고 불을 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절망하고 낙심했습니다. '이 나라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며 불안과 두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때 시인은 본문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 도울 사람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라.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도와주셔서 환난에서 구원해 주시고 축복을 주신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더니, 하나님께서 B.C. 444, 페르시아의 고위 관리였던 유대인 느헤미야를 통해서 기적적으로 성벽을 완공하게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소망이 반드시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B.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
1.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146:34= "방백(方伯)들을 의지(依支)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人生)도 의지(依支)하지 말지니 그 호흡(呼吸)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圖謨)가 소멸(消滅)하리로다"라고 하십니다.

 
방백들은 정치가와 권세자들을 대표하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정권이, 바뀌면 언제든지 숙청을 당하거나 좌천되거나 몰락해 버리는 부류들입니다..
또한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은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갑니다. 인간의 모든 환경은 변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 118 89절에서 "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유한하고 허망한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고 했습니다.

또한 예레미야 17 5, 7절에는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에 사람이나 권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17
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Blaise Pascal)은 성경 요한복음 16장을 읽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팡세』라는 책을 써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가운데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 그러나 과학의 하나님은 아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과학을 하나님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과학도 결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20세기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Karl Theodor Jaspers)는 인간은 이성만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한평생 인간의 능력과 힘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 인간이 어떻게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불안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인간이 어떻게 전쟁의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그리고 그는 마침내 인간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즉 한계상황에 빠져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야만 비로소 인생의 문제는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저런 경험을 다 하고 나이를 먹은 후에,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믿으면서 인생을 마쳤습니다.
인간은 늘 한계상황에 부닥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애틀랜타 올림픽 때 성화 점화를 위해 단상에 올라섰던 사람, 한때 세계를 주름잡았던 권투 왕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는 현재 파킨슨병(Parkinson)에 걸려서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자기 자신의 나약함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 무하마드 알리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전성기 시절, 그는 "내가 가장 힘이 세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강하다. 나에게 도전할 사람은 나와서 싸워라." 하고 큰소리 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세월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나와서 점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에서 "사람보다 하나님이 더 강하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제가 이 병에 걸렸습니다."라고 의미 있는 말을 했습니다.

 

3.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라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146:5a)

 

본문은 왜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의 도움을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줍니다. 야곱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야곱이라는 이름은 '발꿈치를 잡다, 속이는 자, 사기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형을 속였습니다.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향을 떠나 도망칠 때 벧엘 벌판에서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지키고 보호하옵소서.' 또한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얍복 나루에서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저를 축복하옵소서.' 그러자 죄 많고, 허물 많고 불의 했던 이 '야곱'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셔서 '이스라엘'로 새롭게 변화시키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본문에서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 이유를 아실 것입니다. 야곱 같은 사람도 구원하신다면, 야곱과 같은 죄도 용서하신다면 하나님께서 야곱과 다를 바 없는 우리에게도 구원과 용서를 허락하여 주실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실 것을 믿습니다. 야곱을 도우셨다면 여러분도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야곱의 하나님이 여러분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 146:5b=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所望)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시편 37 9절에서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企待)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레미야 29 11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將來)에 소망(所望)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결론)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이 행복을 찾는다는 것은, 쌓여 있는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건초더미에는 본래부터 바늘이 없다는 것입니다. 바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고 있을 뿐이지 건초더미에는 바늘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는 참되고 영원한 행복이 없습니다. 비슷한 것만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더욱 하나님께 소망을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서 오늘도 살아계시고 기도에 응답하시는 참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090117 안익선 목사/ 참고: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