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첫 번째 ‘종의 노래’ (사 42: 1-9)

호걸영웅 2018. 4. 13. 00:58

                   첫 번째 종의 노래 ( 42: 1-9)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5.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내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영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8.

나는 여호와이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서론)

1. 오늘 읽은 본문, 42장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의 글입니다. 글로 된 문서나 편지나 서류 등이 왜 중요합니까? 이는 말처럼 공중에 사라지지 않는 증거성 때문입니다. 법정에서도 계약서나 메모, 각서 등은 매우 중요한 유무죄 판단의 근거가 되듯,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진실성, 살아계심, 일하심, 신빙성 등에 대한 너무나 확실한 증거자료들 입니다.

원래는 왕족의 후손인 이사야는 B.C750년경, 웃시야 왕의 통치 직후에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리고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의 통치 기간에 걸쳐( 1:1) 60년간 활동한 분입니다. 그리고 므낫세 왕 때에 잘못된 정치를 비난한 대역죄로 학살 당하였는데...탈무드는 톱에 키워 살해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궁중 전도자로서 그 나라의 정치적, 종교적 고문이었습니다..

2.  이사야의 앞 부분은 유다에 대한 앗수르의 침략과 관련된 것이고, 뒷 부분은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는 그의 책 후반부인 40-66장에서 장차 이 땅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의 참된 종의 4가지 노래가 예언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의 빛”으로 오실 것과 그의 구원의 기별이 마침내 “땅 끝까지 이르게”( 49:6)될 것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회복되며 부흥할 것과( 52:1), 열방을 얻고 땅의 황폐한 성읍들로 사람 살 곳이 되게 할 영광스러운 때가 온다 했습니다( 54:2, 3). 또 이사야서는 메시야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자세하고 가장 열정적으로 묘사한 구약의 복음서이자 예언서입니다.

3. 독일의 성서학자 Bernhard Duhm(1847-1928) 1892년에 쓴 이사야서 주석에서 4개의 '종의 노래'가 이사야서에 있음을 증거했습니다.  그 내용은 하나님이 한 종을 불

러 세계를 이끌게 하시지만, 심하게 핍박을 받고, 다른 사람들의 죄로 인한 형벌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희생하지만, 그러나 큰 보상을 받는다는 내용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첫번째 종의 노래인 ‘사명’ 부분을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본론)

) 예수께서 선언하신 말씀의 성취

 1. 4 16-22절에서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시고, 이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시는 장엄한 장면이 나오는데, 마치 일상에서 지나가는 일처럼 이루어져, 매우 단순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사야의 에언이 750년이 지난 후, 이 말씀이 막 이루어졌음을 예수께서 선포하신 것입니다. (읽어 드리면...)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22.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경 말씀은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사이에 이루어졌느니라!.”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하고 말했습니다. (누가복음 4: 16-22) 겉으로 보이는 것만 믿고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일은 아직 보지 못한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종의 노래’가 나온 배경
42
1-9절은 네 번의 여호와의 종의 노래 중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여호와의 종을 소개합니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하십니다.

이 말씀의 배경은 사 40~41장을 배경으로 해서 나온 것입니다. 이사야 40장에서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키시면 바벨론 군대들과 우상들이 우리를 그대로 놔둘까요?” 하나님은 그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대답하십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명칭으로 산들을, 간칭(저울)으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겠느냐?라고요.

하나님을 가르치거나 바닷물을 손바닥으로 잴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며, 그는 그들 우상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시느니라”(17)하십니다. 그리고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18),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25)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 이사야 40장의 말씀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며,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41장도 말합니다.“너희들이 우상을 가지고 있지? 그 우상이 미래사를 말할 수 있느냐? 너희의 우상이 과거사에 대해서 논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느냐? 너희 우상이 복과 화를 내릴 수 있느냐?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고 우상을 택한 자도 가증한 자니라.”고 하십니다. 결국 우상숭배는 온 인류의 근본적이며 우주적인 범죄입니다. 이것은 가장 사악한 범죄요, 어리석은 범죄입니다. 당시 유대사회에 있어서도 우상숭배는 근본적인 범죄였고 인간의 모든 죄악은 결국 우상숭배에서 비롯됩니다.

1: 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하셨으니”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우상숭배는 근본적인 범죄이고, 이것이 이사야 40-41장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죄에 대한 회개를 생각할 때 흔히 간음, 살인, 절도, 탐심, 불효와 같은 인간관계의 죄를 먼저 생각합니다. 물론 그것도 작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주신 율법의 두 돌비 가운데, 첫 번째 돌비, 즉 하나님께 범한 죄를 더 크고 가증하며 악독한 죄로 여기십니다.

  1계명, 너는 나 이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2계명,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어떤 우상이든지 만들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라. 3계명,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4계명,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셨죠? 하나님께서는 우상 신들을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인간들은 여전히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신으로 삼는 가장 어리석은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하면 “나는 예수님 안 믿어도 착하게 살고 있고, 당신보다 훌륭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는 다는데 잘 하는 것이 뭐요?”라고 따집니다. 그런데 아무리 착하고 윤리적이어도 우상을 숭배하면 그 사람은 가장 사악한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0-41장은 이렇게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께 돌리지 않고 다른 존재에게 돌린다면 그것이 우상이며, 죄악 중에 가장 큰 죄임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 여호와의 종의 사명
이사야 42 1-9절에 등장하는 ‘첫 번째 여호와의 종의 노래’는 여호와의 종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본문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공의(justice)입니다. 여호와의 종의 사명은 이 땅에 공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1),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3),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4).  고로 하나님께서는 자비와 사랑 가운데 공의를 세우십니다.

그렇다면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공의란 무엇일까요? 공의는 법정용어로 거짓을 거짓으로 드러내고, 진실을 진실로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먼저 영적으로 공의란 우상은 거짓이요, 악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진실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창조주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요, 우리에게 생명과 보존을 주시고, 우리를 죄악 가운데 건져내시는 구원자이심을 드러내는 것이 공의입니다. 그러므로 공의를 세우는 것은 열방에 사는 모든 인간들이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러한 공의를 이루시도록 인류를 인도하는 여호와의 종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도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는 선교여행이었습니다. 한 번은 바울이 헬라 지역의 유명한 도시인 아덴(아테네)으로 들어갔습니다. 바울이 아덴을 돌아보니까 온통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분노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 17:16)라고 했지요.

당시 아덴에는 많은 철학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철학자들을 상대로 우상으로부터 돌이켜서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성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이와 같이 우리가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17:22-25, 29-30)라고 했습니다.

공의를 세운다는 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우상을 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입니다. 거기에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두고 살라는 것이 오늘 여호와의 종의 노래의 메시지입니다.

)마지막 세번째, 여호와의 종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4). 예수님께서는 낙심할만한 많은 환경을 겪으신 분입니다. 로마는 정치권력을 가지고, 종교 지도자들은 교권을 가지고 예수님을 핍박을 했습니다. 환호하던 군중들은 돌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님은 의연하고 품위가 있으셨으며, 인내심이 많았고, 어떤 역경에도 낙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왜냐하면 종국의 승리가 확실했기 때문입니다.

결론)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님은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시기 위해 보내졌습니다. 우리 역시 예수를 모시고 그 공의를 이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탐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가장 탐내고 아끼고 사랑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 인생에서 공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지난 월요일 저는 너무나도 쇼킹한 뉴스를 들었습니다. 대통령 출마자였고 충남 도지사였던 안희정 지사의 성폭력 사건입니다. 그의 학식과 지혜와 권력과 명성이 그의 삶에 공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순식간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배우와 교수였던 김민기=자살함 3/9)

우리 인생의 참된 가치는 하나님의 공의가 되신 예수를 모시고 살 때, 그분의 성령을 모시고 살 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공의를 세우고 전하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030918 안익선 목사/ 참고:altazor, 피영민, http://www.egw.org/zboard/32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