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이가봇 (삼상 4:1~22)

호걸영웅 2019. 1. 7. 04:39

이가봇 (삼상 4:1~22)

 

서론)

1. 저는 다이아몬드 하면 그저 크기만 하면 좋고 비싼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다이아몬드를 감정하는 기준을 소위 '4C'라고 하는데, 그것은 carat(캐럿, 무게), clarity(투명도), color() 그리고 cut(연마가공)를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4C'에 따라 여러 등급이 나뉘어져 있었고, 실제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비싼 것은 정말 약간 푸르스름하고 영롱한 빛이 나는 데에 비하여, 싼 것은 좀 누런 빛을 내는 것도 있고 속에 균열이 생긴 것들도 있답니다.

  , 다이아몬드라고 해서 다 같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그것이 얼마만큼 순수하고 오묘한 빛을 발하며 가공이 잘 되어 있는가에 따라 천차만별로 품질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2. 성도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비추어 주는 개개의 보석과 같습니다.

이 지상의 각 성도와 교회는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얼마만큼 깨끗하고 아름다운 빛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 빛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에는 두말할 필요 없이 가장 무가치한 존재가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보석 같은 성도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라는 점을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이가봇

1.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그 거룩한 영광의 빛을 완전히 상실한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불행한 일들이 여기 저기에서 통곡소리와 탄식이 들려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19절부터 22절은 기록하기를 "19그의 며느리 비느하스의 아내가 잉태하여 산기가 가까왔더니 하나님의 궤 빼앗긴 것과 그 시부와 남편의 죽은 소문을 듣고 갑자기 아파서 몸을 구푸려 해산하고 20죽어갈 때에 곁에 섰던 여인들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아들을 낳았다 하되 그가 대답지도 아니하며 관념치도 아니하고 21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부와 남편이 죽었음을 인함이며 22또 이르기를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으므로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2. 여기서 보면 "이가봇"이라는 이름이 새로 난 아이에게 주어집니다.  

이 이름은 '영광이 없어졌다'는 뜻의 단어이며,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음'을 상징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소중히 여겼던 언약궤를 적군 블레셋(팔레스타인)에게 빼앗기고 이스라엘의 영적 리더였던 자기 시부(시아버지) 제사장 엘리와 그의 아들이자 남편인 비느하스를 하루아침에 잃고, 줄초상을 당한 충격과 아울러 그녀도 난산으로 인해 죽어가며...... 자기 갖난 아들에게 그런 이름을 붙이게 만들었던 것이었습니다.

  정말 그 이름 뜻 그대로, 당시의 이스라엘의 형편은 실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찾아보려 해야 찾을 수 없는 엄청난 암흑기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불행의 원인

1. 어쩌다 그렇게 되었습니까? 이런 사건이 닥쳐온 불행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출애굽과 가나안 정착을 통하여 주변 이방 민족들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었던 이스라엘이, 이 사사 시대 말에 와서는 어떻게 그처럼 어처구니없게도 하나님의 영광을 아예 상실한 백성으로서 전락되고 말았습니까?

 

2. 먼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려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사용하려 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은 떠나게 된 것입니다.

본문 1절 하반절부터 4절의 말씀에 "1b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치고 블레셋 사람은 아벡에 진쳤더니 2이스라엘을 대하여 항오를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이에 백성이 실로에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 있었더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때가 이스라엘 서쪽 끝의 지중해 연안에 자리 잡은 호전적인 민족이었던 으로서 블레셋이 또 다시 쳐들어왔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사사시대 초기부터 이스라엘을 괴롭혀 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과 대항해서 싸우러 나갔던 이스라엘은 초전에서 "사천 명"의 전사자를 내고 패배했습니다.

 

전장에 함께 나와 있던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그 패전의 요인이 군사력의 열세라기 보다는 "여호와께서... 패하게 하신" 것이라며, 일단 문제의 진단을 정확하게 내렸습니다.

  하지만 그 대책에 가서는 어처구니없는 유치한 발상을 해내었는데, 그것이 곧 "여호와 의 언약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그것으로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왜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패전하도록 버려 두실 만큼 진노하셨는지?

이유를 되새겨 보고 회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그저 언약궤만 갖다 놓으면 문제가 다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3. 물론 언약궤는 그런 목적으로 쓰일 물건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언약궤는 성소에서도 가장 깊은 곳인 지성소(Most Holy Place)에만 안치해 두어야 할, 예배를 위한 성물이었습니다. 함부로 넣었다가 뺏다가 할 망치나 도끼 같은 것도 아니요 대포나 마차 같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에 예배하러 오는 자들에게 당신의 임재를 상기시켜 주시기 위하여 언약궤를 거기에 두도록 명하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를 하나님 임재의 상징으로 보지 않고 마치 하나님께서 그 속에 살고 계신 것처럼 여겼습니다.

즉 그 언약궤를 옮김으로써 하나님을 자기네들 필요한 곳으로 마음대로 모셔올 수 있는 손쉬운 이용도구인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먼저 기도하며 여쭈어 보아야 했는데... 자기들 생각으로 결정해 버리고 맙니다. 우리도 종종 하나님을 나의 기도 속에 꾸겨 넣으며 이렇게 해 주옵소서, 내 맘에 들게 저렇게 해 주옵소서 ! 라고 기도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언약궤는 "실로"라는 곳의 성소로부터 그 전장으로 옮겨져 왔으며, 엘리의 두 아들로서 제사장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 언약궤 운반과 관리의 책임자로서 전쟁터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2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이들은 바로 거기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4. 이어지는 5절부터 11절까지에 기록하기를 "5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가로되 히브리 진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찜이뇨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가로되 신이 진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가로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일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어라 하고 10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으며 11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원래 우상 종교 사상에 익숙했습니다. 그들은 늘 휴대용 수호신상을 품에 넣고 다니면 어디를 가도 안전하며, 또 자기 밭 어귀에 나무 우상을 하나 세워 놓으면 바로 그 밭에 농사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던 백성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궤를 자기들이 섬기던 우상과 동일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음을 봅니다. 훨씬 두려워하고 훨씬 두렵게 생각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그다지 엄청나게 무서워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굳게 먹고 신중하게 전쟁에 임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마음을 "대장부같이" 단단히 먹고 공격해 왔을 때,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초전박살을 당하고 삼만이 죽고 나머지는 다들 도망치고 마는 참패를 당하게 됩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을 지켜 줄 줄 알았던 언약궤는 오히려 빼앗김을 당했으며, 이것이 언약궤가 이방 민족의 손에 넘어간 최초의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언약궤 자체가 당신의 임재나 도움을 보장해 주는 '휴대용품 도구'가 결코 아닌 것을 명백히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은 그 이스라엘 백성들 원대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끌려 다니고 하실 분이 절대로 아니심을 천하에 드러내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란 분을 자기 필요한 일에만 불러 써 먹으려고 하는 자들이었습 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자기 사업 잘되도록 도와주는 협력자쯤으로, 자기 육신 건강 지키는 보디가드 정도로, 혹은 자기 자녀 취직과 결혼이나 알선해 주는 브로커처럼 착각하며 사는 현대의 신앙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그처럼 값싸게 취급하는 백성에게 그 영광을 두실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꾸준한 섬김의 대상이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 보아야 교훈은 무엇입니까? 먼저 하나님을 이용해 세상적 이득을 보려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평소에 잘 하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잘 섬겨야 합니다. 평소에 아름다운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이나 요셉이 왜 축복을 받았습니까?

어려서부터 평소에 하나님과 사귐이 있었어요. 다니엘도 그렇고 사무엘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윗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평소에 잘해야 돼요! 그렇죠?

오늘날 사람들은 조급합니다. 당장 뭐가 돼지 않으면 금새 실망하고 원망을 합니다. 이거 안돼는거예요. 교회생활도 그래요. 들쑥날쑥... 헌금생활도 들쑥날쑥... 헌신도 들쑥날쑥... 참 곤란합니다. 큰 복 절대 못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보십니까? 아니잖아요. 다 아세요! 꾸준해야 합니다. 인내해야 합니다.

 

 기도가 잘 응답 받고 큰 복 받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보세요. 꾸준합니다. 범사에

감사합니다. 늘 예배생활에 힘씁니다. 늘 형제 사랑하기 힘씁니다. 늘 모이기 힘씁니다. 늘 섬기기에 힘씁니다. 늘 꾸준해요. ? 하나님과의 관계가 꾸준하거든요.

 

결론)

 온 우주의 창조자시오 절대주권자이시며 유일한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이 제멋대로 써 먹을 수 있는 도구나 파출부나 공사업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직 두려워 떨며 섬기는 대상입니다. 그분께서는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의 심장과 폐부를 살피세요. 머리카락도 세신다 했어요. 누가 옳고 그른지를 면도날처럼 구분해 내십니다. 두려워 떨며 그 앞에 나가야 하는 분이에요.

 

하나님을 가벼이 생각하다 죽은 사람이 오늘 말씀에만 몇 명이었어요? 엘리 제사장의 가족을 포함해서 삼만 하고도 세 명 더 있었지요? 이 세 명에는 엘리 제사장과 둘째 며느리와 구 손주까지 포함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가 그 가문에 임했습니다. 그가문에는 노인이 없으리라!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요! 하나님께 잘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얼마나 최선을 다해 섬기십니까?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존중하고 있습니까? 되돌아 보시길 바랍니다.   

 

이런 사실들을 잊지 말고, 우리 모두가 그 거룩하고도 지존한 영광의 하나님을 바로 알고 경외함으로 섬김으로써 복을 온전히 누리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120418 안익선 목사/ 참고:석기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