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하지 말라 (마 6:25~34)
근심하지 말라 (마 6:25~34)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6)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요
서론)
1. 한국의 한 생명보험회사에서 수도권 성인 남녀 9백 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62%의 가입자가 불안과 염려를 항상 느끼고 살고 있다는 보고를 했습니다. 염려하는 문제는 자신과 가족의 건강문제가 48%로 가장 컸으며, 일상의 경제 생활 부분은 36%, 불의의 사고가 27%, 노후문제는 18%를 차지했습니다. 물론 사람들은 일평생 크고 작은 염려하며 삽니다.
그런데 약간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미래에 대한 준비가 되어 좋지만, 지나치면 나쁘게 작용하여 정신과 육체 및 영적인 건강을 망가지게 합니다.
2. 물론 사람들은 여러 어려운 환경에 시달리며 살아가며 끝없는 근심거리를을 만나지만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그 어려운 현실을 믿음으로
극복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고로 예수께서는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왜 무슨 이유로 근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까?)
본론)
가)근심은 결코 유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연 근심과 걱정이 우리에게 무엇을 줍니까? 사람들은
열심히 근심하고 고민하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별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한번은 미국의 정신과 의사들이
합동으로 모여 인간의 근심에 대하여 조사해 보았더니, 대부분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가지고 근심하더라는
발표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걱정 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며,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이었으며, 22%는 아주 사소한 일들에
대한 걱정이었습니다. 그리고 4%는 결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고, 오직 나머지 4%만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거나 우리가 고민하여 해결할 수 있는 사건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아무 쓸데없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고로 이런 걱정 근심에 대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염려하므로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더냐” (마6:27)라고 말입니다
*‘아더 랭크’ 라는 영국의 실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항상 불안했습니다.
'자금 사정이 안 좋은데 이러다가 부도가 나면 어떻게 하나?' '매출액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해야 늘릴 수 있을까?' 이렇듯 많은 염려 가운데 살던 그는 '염려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이 뭐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그는 매주 수요일을 염려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리고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걱정거리가 생긴
날짜와 내용들을 적어 상자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매주 수요일, 그
쪽지들을 꺼내 보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수요일에 그가 상자 속의 메모지를 살펴보다가 문득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자에 넣을 당시만 해도 큰 문젯거리였던 그것이 훗날 다시 읽을
즈음에는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살면서 크게 고민하며
염려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여인이 자신은 암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40년 동안이나 걱정을 했습니다. 그녀는 70세에 마침내 사망하게 되었는데, 그 병명은 폐렴이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33년을 쓸데 없는 걱정을 하느라고 낭비했습니다. 우리가 걱정할 때
대부분이 이런 것들입니다.
나)우리에겐 믿는 바가 있기 때문에 근심치 말아야 합니다.
근심하지 말라 하신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입니다.
*유명한 전도자 죠지 뮬러는 말하기를 “신앙이 시작되는 곳에서 염려는 끝나고 염려가 시작되는 곳에서 신앙은 끝난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믿는 바는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고민이 무엇인지, 근심이 무엇인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추위와 굶주림과 질병들의 문제들을 몸소 당하시고 체험하셨습니다. 고로 히4:15에 예수님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시는 분”이시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체휼 [體恤]=처지를 이해하여 불쌍히 여김)
여기서 연약함이란 고난을 의미하고, 체휼한다는
말은 헬라어 “쉼파데오” 라는 말로 마음이 친절한 사람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구원해 주고 싶은 강렬한 바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인간은 죄로 망가진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기에 더 고민하고 근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친히 인간의 연약함을 맛보셨기 때문에 우리가 왜 우는지, 왜 슬퍼하며 고민하고 잠 못 이루는지를 아시고 도와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또 우리에게는 아버지의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 (벧전5:7).
*일찍이 이런 일을
체험했던 시편 42편의 기록자는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 42:5) 우리의 고통을 체휼하신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다) 성도는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근심치
말아야 합니다.
걱정이 생길 때,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참 좋은 일입니다. 마음의 걱정을 쌓아두면 마음의 병이 되고 육체의 병이 됩니다. 그런데 주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걱정 근심이 생길 때마다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릅니다.
빌립보서 4:6-7절에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기도할 수 있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근심을 그치고자 기도하면 다음과 같은 일들이 생깁니다.
1. 심령이 열립니다.
즉 하나님께 닫힌 마음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열린 마음에는 언젠가 문제가 사라집니다. 무엇이든 막히고 닫혔을 때 문제가 더 생깁니다. 기도하면 자신의
닫힌 마음이 열리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기도할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만 하면 심령이 열리고 하나님이 도움을 주시고 주님과 함께하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 열립니다.
2. 심령의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에 응어리 졌던 것들이 쌓이지 않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생긴 상채기와
가라앉은 감정의 찌꺼기, 그리고 돌덩이처럼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온갖 스트레스들이, 기도할 때 치유되고 씻어지고 응어리들은 풀어집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너무 힘든 문제가 있을 때, 울고 통곡하며 부르짖고 나면 마음이 시원해집니다. 이것을 기도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기도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입니다. 기도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 몇 년 전 어느 목사님이
중국 여행 중에, 한국 기업에 근무하는 ‘장춘애’라고 하는 조선족 아가씨와 나눈 대화입니다. 그녀는
흑룡강성에서 한의대를 졸업한 사람이었습니다. 조선족 노인 연합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2시간 동안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27년 동안 공산당의 유물주의 교육을 받은 그녀가 ‘인간이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은
갈급함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2 시간 동안 그녀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에게 인간은 육신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에 하늘의 영원한 아버지가 계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 자신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예수를 주인으로 섬기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영접하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녀가 예수를 영접하고
나서 첫째 질문이 바로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됐기 때문에 그분에게 기도하면 병도 안 나고 어려운 일도 다 없게 되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하나님을 믿어도 병들 수 있고 고난을 당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가
좀 의아해 했습니다. 목사님은 “그러나 예수 믿은 후에는 다른 점”을 그녀에게 설명했습니다.
병이 들었어도 누구와 함께 있게 되느냐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 병들고 어려운 일 당해도 나를 도와주고 위로해주시고 치료해 주실 수 있는 예수 님이 함께 계신 것과 그렇지 않은 점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도 병들 수 있고 어려움 당할 수 있지만, 이제 부터는
홀로가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고,그리고 죽기까지
십자가 달려 나를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녀와 함께할 것이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녀가 너무나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하면서 근심을 주님께 맡길 수 있습니다.
출14:10-20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는 홍해 바다가 막혀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병들이 그들을 잡으려고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근심하며 두려워했으나 기도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출 14:16) 했습니다. 기도할 때 근심하던 문제들이 풀려지고 바다도 갈라지게 하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고로 빌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회, 기도하는 국가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기도하는 입에서는 복된 말씀이 나오지만, 기도하지
않는 입에서는 저주와 멸시와 비판과 시기질투, 그리고 근심하고 걱정하는 한숨 소리가 나올 것입니다.
결론)
미국의 한 유명한 목사가 후두염에 걸려서, 친한 친구 의사를 찾아갔답니다. 친구는 그 친구 목사를 가만히 진찰하더니 이렇게 물었습니다. “자네, 무슨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는가”라고요. 그러자 그는 솔직하게 답변했답니다. “목사가 무슨 다른 걱정이 있겠는가. 그저 늘 설교 준비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지. 다음 주일이면 내가 무슨 말을 성도들에게 전해야 할까, 또 심방
가서는 무슨 말씀을 전해야 될까, 이런 걱정이 늘 나를 괴롭힌다네” 그러자 친구 의사는 뜻밖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께 집착 하게나. 그것이 우리의 신앙이 아닌가”ㅎㅎ. 그것은
목사보다 더 믿음이 훌륭한 의사 선생님의 처방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선 우리에게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하셨고 공중에 나는 참새를 보라 하셨어요.
우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고 하나님께 깊은 기도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내가
문제에 집착하지 않고 하나님의 들으심과 그 능력에 집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걱정과 근심을 다 풀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021919 안익선 목사/ 참조: Godpeopl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