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고난을 이겨야 할 이유(벧전 4: 12-16)

호걸영웅 2019. 4. 14. 08:47

고난을 이겨야 할 이유(벧전 4: 12-16)

서론)
1. 1993
부터 3년 동안 임병철 선교사란 분이 태평양의 괌섬 아래의 축(Chuuk)이란 섬에서 선교사로 계셨답니다. 찌는 듯한 무더위와 습도가 높은 곳에서 냉장고도 없이 3년 동안 살며 선교사님의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근육무력증까지 생겼습니다. 의사 선생은 몸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1년을 채 살지 못한다고 진단 했습니다.

임 선교사는 결국 원래 살던 뉴욕으로 철수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뉴욕은 미국에서 제일 소득도 높고 물가가 비싼 곳이죠? 당시엔 원 베드 룸을 얻으려면 한 달 월세가 1000불 이상이 들었답니다. 그때 선교사님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월세를 살기보다 차라리 장기 모기지(mortgage, 주택저당융자)로 집을 사겠습니다. 그런데 모기지로 매달 1000불 이상 낼 능력이 없습니다. 1000불 이하가 되는 살만한 집을 주옵소서.” 라고 기도했답니다.

사실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원 베드룸 월세가 1000불이 넘는 지역에서 1000불도 안 내고 집을 살 수 있다면 누가 월세를 삽니까? 다 집을 살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뉴욕 퀸즈의 베이사이드 지역에서 30만 불이 넘는 쓰리 베드 룸 2층집이 27만 불에 나왔답니다. 그렇게 싸게 나온 이유는 동네 사람들에게 귀신 나오는 폐가로 소문났기 때문입니다.
임 선교사님이 그 집에 가보니 정말 귀신 나오는 집이라는 소문이 날 정도로 완전히 쓰레기 더미였고, 마약을 하던 동네 폭력배들의 아지트였습니다. 선교사니까 귀신이 나온다고 해도 전혀 무섭지 않았고, 곧 흥정에 들어갔습니다. 그 집을 유산으로 거저 받은 아들은 빨리 그 집을 팔고 라스베가스로 도망치려고 상당히 큰 액수를 깎아 주었습니다.

결국 30만 불짜리 집을 19만 불까지 깎아줘서 계약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마지막으로 임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집값은 싸지만 수리비가 많이 들 것 같다. 다시 생각해보겠다.” 그 말을 듣자 집 주인은 급히 그 자리에서 만 불을 또 깎아주었습니다. 결국 18만 불에 그 집을 샀습니다. 그리고 은행에 장기 모기지를 얻어 매달 돈을 내는데 매달 내는 모기지 비용이 998불이었답니다. 하나님이 선교사님의 기도를 정확하게 들어주셨답니다.
그 집을 산 후, 선교사님은 건강 회복을 위해 틈틈이 직접 집수리를 하며 망치질을 하고 잔디를 깎았습니다. 집수리에만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집은 깔끔하게 수리되었고 동시에 집을 수리하는 동안, 임 선교사의 건강도 거의 회복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흉가라고 하는 집이 선교사에게는 목숨을 되살려준 생가(생명의 집)가 되었고, 귀신이 나오는 집이 말씀과 기도로 충만한 성령 충만한 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0년 후 즈음엔 그 집이 82만 불까지 되었다고 했습니다.


2.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비결이 하나 있습니다. 남의 회피하는 일들에서 승부를 내면 됩니다. 남의 회피하는 곳이 장기적으로는 기회의 땅입니다. 고난이 와도 고난을 이기는 믿음이 있으면 고난은 축복의 산실이 됩니다.


3.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6일간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매일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몇 째 날이니라.” 하루의 시작을 밤부터 말하는 것을 보면 밤의 중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밤은 무익한 시간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고난의 밤은 결코 무익한 시간이 아니고 오히려 꼭 있어야 하는 시간인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성도는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본문은 고난을 대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서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본론)
)고난을 자연스럽게 보십시오.
1.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했습니다.

 베드로전서를 쓸 때 베드로는 곧 다가올 네로 황제의 대 박해를 예견하고, 이제 곧 불 시험이 와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는 편지를 썼습니다. 불 시험은 순금과 찌꺼기를 분리하는 시험이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시험입니다. 그 시험을 감사와 기쁨과 믿음을 잃지 않고 잘 통과하는 사람이 진짜 성도란 이야기입니다.

2.
욥기 23 10=“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성도의 삶을 정화시킵니다. 그러므로 고난의 시험이 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자연스럽게 여겨야 합니다.
고난은 우리의 한계를 겸손히 자각하게 하고, 새롭게 도약하게 하는 디딤돌이 됩니다. 성도는 고난을 통해 기도를 배우고, 하나님을 만납니다.


)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1.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하십니다.  이 구절을 보면, 베드로는 성도의 고난을 ‘그리스도의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고난은 고통스럽지만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고생을 함께 하면 더 가까워집니다. 잘 나갈 때 함께 한 사람들은 쉽게 잊을 수 있어도 고난의 시간에 함께 한 사람들은 쉽게 잊지 못합니다. 교회도 작고 연약할 때 함께 한 사람은 더 깊은 관계가 됩니다. 군대에서 전쟁을 함께 겪은 전우는 영원히 잊지 못할 친구가 됩니다. 인간관계는 고난 중에 함께 할 때 더 깊어지듯이 주님과의 관계도 주님의 고난에 참여할 때 더 깊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면  성령이 임재를 생생하게 느끼며 살게 됩니다.

2.
빌립보서 1 2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 이 구절을 보면 예수님이 주신 두 가지 은혜가 믿음과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그냥 생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믿으려고 해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고난도 선물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의 고난 중에 주님은 더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도에게 고난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동참해야 할 사건입니다.

 

주님을 위해 더욱 헌신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무엇이든 헌신해야 작품이 나오고, 좋은 일이 이루어집니다. 교회생활에서도 열심히 헌신해야 교회생활의 보람과 기쁨을 얻습니다.
권투 선수들이 탐색전을 할 때 손으로 툭툭 치면 아나운서가 말합니다. “저런 주먹은 아무리 날려도 소용없습니다.” 왜 소용없습니까? 그 주먹에 몸 전체 체중을 싣지 않고 툭툭 겁만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체중을 실은 펀치에 맞으면 상대가 케이오가 됩니다. 그처럼 교회생활에서도 몸 전체를 실어 참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교회생활의 기쁨을 알게 되고, 결국 그런 삶에서 사단 마귀와 문제를 넘어뜨리는 힘이 나오게 됩니다. 할렐루야!

) 고난의 결과를 인식하십시오.
1.
본문 13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이유는 결국 복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 고난의 결과를 분명히 인식해서 고난 앞에서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한국의 IMF 직후에 이런 공익광고문이 있었습니다. “한민족에게는 어려움을 이기는 유전자가 있습니다.”라고요. 또한 성도들에게는 고난을 이기는 영적 유전자가 있습니다.

2.
어느 날, 지방에서 목회하는 한 목사가 귀가하는데 옆집에 사는 몸집이 큰 사나운 수탉이 암탉을 몇 마리 데리고 놀다가 목사가 가까이 다가가자 갑자기 목사에게 사납게 덤벼들었습니다. 아마 암탉들에게 과시하려고 그런 것 같았습니다. 수탉이 눈을 부릅뜨고 덤비는데.....그 목사는 수탉이 그렇게 무서운지 처음 알았답니다.

목사가 수탉이 무서워서 급히 집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그 수탉이 너무 괘씸하고 얄미웠습니다. 수탉에게 당한 수모를 생각하니 너무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옆집에 있는 조그만 잡종 개를 데리고 수탉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자 여러 마리 암탉을 데리고 놀던 그 수탉은 개를 보자마자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을 쳤다고 합니다. 개가 비록 작아도 그 개에게는 닭을 이기는 유전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에게는 고난을 이기는 유전자가 있습니다. 고난 중에도 도망치지 않으면 이깁니다. 요한복음 16 33=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고난을 이기는 영적 유전자를 주신 것입니다. 성도가 믿음으로 담대하게 서면 고난은 결코 성도를 이기지 못합니다.

3.
계속해서 본문 14절 말씀입니다.“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성도를 망하게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고난과 영광은 쌍둥이입니다. 고난 속에 영광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을 원한다면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영광을 원하면서 고난을 피하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고난을 피하려고만 하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4.
로마서 8 17절도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햇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광을 받으려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자세를 가졌기에 고난 중에도 낙심치 않고 계속 전진해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 고난을 기도로 극복하십시오.
1.
본문 14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고 언급합니다. 성령님은 고난 받는 사람에게 가장 가까이 하십니다. 순교자를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의 힘으로는 순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순교의 순간을 극적으로 벗어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그때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2.
코리 텐 붐 여사의 고백입니다. 2차 대전 때 코리 가정은 유대인들을 숨겨주었습니다. 그 일로 점차 코리 가정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지자 어린 코리가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죽는 게 두려워요! 어떻게 죽을 수 있어요?” 코리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코리야! 우리가 기차를 타려면 뭐가 필요하니?” “기차표요.” “언제 표를 사지?” “기차 타기 전에요.” “그래! 그처럼 우리가 죽을 때가 되면 주님이 담대히 죽도록 기차표를 주실 거야.”라고 했답니다.
주님은 고난에 순간에 우리를 결코 그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3 5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주님이 고난과 고독의 순간에 결코 우리를 홀로 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3.
이스라엘에서는 양을 키울 때 일부러 염소와 함께 키우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양이 배부르고 안전하면 눕기를 좋아하니까 운동 부족으로 위에 이상이 생기는데 목자가 일일이 양을 일으켜 운동시킬 수 없기에 염소에게 그 사명을 준 것입니다. 염소는 누워 있는 양만 보면 본능적으로 찌릅니다. 너 그러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양이 도망가는 과정에서 몸이 건강해집니다. 그처럼 고난은 성도에게 양을 찌르는 염소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고난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나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은 건강을 지켜주는 밑거름이 되고, 나중에 주어질 영광의 초석일 수도 있습니다.

4.
어느 날, 미국의 한 농장주 아들이 아버지가 죽자 농장을 팔아 사업 구상을 하는데 바로 그때 한 친구로부터 광산을 하면 떼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광산 사업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나 돈을 다 투자할 때까지 금광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광산을 다른 사람에게 헐값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 광산을 새롭게 산 사람이 그때까지 팠던 곳에서 바로 한 치를 더 파니까 노다지가 나왔다고 합니다.

 

결론)
현실이 어려우면 그 현실 때문에 낙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지만 그때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더욱 놀라운 축복의 장으로 우리를 이끄실 것입니다.
 
어떤 고난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더욱 믿음으로 일어서십시오. 그리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축복의 문을 놀랍게도 열어주실 것입니다.

        040119 안익선 목사/ 참고: 이한규 & 주 향기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