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본받으라 (빌립보서 3:17-21)
나를 본받으라 (빌립보서 3:17-21)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서론)
1. 미국에는 유명 인사 닮은꼴 대회가 있습니다. 미국인들의 모방 대상 1호가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합니다. 사교클럽에서 엘비스 흉내로 벌어먹는 사람이 수백 명이요, 아마추어로 즐기는 사람은 수천 명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론 마릴린 먼로나 마이클 잭슨 흉내도 꽤 유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존재가 되고 싶은 심리가 모방 풍조를 낳는다고도 하지만, 모방은 원하는 존재가
되는 최선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2. 물론 대가가 되기를 원한다면...먼저 대가를 모방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첫 걸음입니다. 바울은
이 원리를 잘 알았기 때문에 빌립보 성도들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권했습니다(빌 3:17). 고로 (고전 11;1)에선,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9)고도 했습니다.
(그러면 바울에게서 본받을 것이 무엇입니까? 4가지로 나눠 생각해 봅니다.)
본론)
가)먼저
그의 성결한 삶을 본 받아야 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했습니다(빌 2:5).
바울의 선교와 목회의 성공 척도는 대형건물이나 재정, 교인수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 앞에서 거룩하고 순결하고
흠 없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로 바울은 평생토록 이 일에 온 마음을 다 기울이고 쏟았습니다. 고후 7:1~4 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2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서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3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
4 나는 너희를 향하여 담대한 것도 많고 너희를 위하여 자랑하는 것도 많으니 내가 우리의
모든 환난 가운데서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치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도 이런 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성결하기를 애써야 합니다. 성결을 자랑해야 합니다. 불신자랑
똑 같이 죄짓는 삶을 살면서 예수를 모실 순 없습니다.
나)또 바울은 삶의 목적이 확실했습니다.
요즘 참으로 슬픈 것은, 더더욱 본받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소위 지도자라고 불리우는 분들이 문제입니다. 높이 존경하고 우러러볼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에 우리는 너무나 큰 실망을 합니다.
「논어」에 보면, 동양의 성현이라고 하는 공자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윗사람의 몸가짐이 바르면 명령하지 않아도 백성들은 따른다. 그러나 윗사람의 몸가짐이 부정하면 아무리 호령을 해도 백성은 따르지 아니한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법을 만든다고 될 일이 아니요, 감옥을 많이 짓는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윗사람이 아무리 큰소리로 호령하고 협박한다 해도... 그 윗사람이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않으면 백성은 따를 수 없습니다. 작게는 여러분의 가정을 보십시오. 부모가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살면, 구태여 이래라 저래라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아이들이 잘 따릅니다. 그러나 부모가 몸가짐을 바로 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자녀교육은 잘 교육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올바른 소리를 해도 먹혀 들지 않습니다.
본받을만한 사람, 나에게 본을 보여주는 사람-이 '중요한 스승’이 나에게는 누구입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 생애와 운명은 달라질 것입니다. 아무리 그럴 듯 해 보이는 이론과 교훈에도, 목적이 잘못되고 이상이 빗나갔을 때에, 그 미래는 보나마나 불행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당하는 슬픔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슬픔이 그리스도인들에겐 없어야 합니다. 왜? 우리에겐 참으로 좋은 스승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는 그리스도시요, 다음은 바울이기 때문입니다. 고로 바울은 “이 세상엔 일만 스승이 있지만 아비는 아니니라” 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스승은 많되 바울처럼 참된 스승은 없음을 알라 했습니다.
(빌1;21)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했어요.
바울의 삶의 숭고한 목적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를 섬기고 그를 위해 살고 죽는 것이었습니다. 빌립보서는 감옥에서 쓴 편지입니다. 언제 처형당해 죽을지 몰랐습니다. 그는 사는 것과 죽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은가를 저울질 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은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좋지만, 교회를 위해서는 살아서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사는 목적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인데, 아직 그 일을 다 못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빌 1:25). 아직은 살아야 한다는 거예요.
또 바울은 =(빌 3:10-1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2)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목적이
분명했어요.
다)바울의
복음을 위한 신념과 정열이 확고했습니다.
바울의 특성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행 14) 돌에 맞아 거의 죽은 채로 성 밖에 버려졌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깨어난 그는 벌떡 일어나 다시 복음을 전하러 성으로 되돌아갔습니다.
(행14:21-22)=“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빌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예수 복음에 대한 바울의 불굴의 신념을 꺾지 못했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여기서 바울의 실천적 삶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이미 몸을 바쳐 행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뿐입니까? (빌 2:17)="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라고 말합니다. ‘관제’라는 말은 피나 포도주를
쏟아 붓는 제사입니다(pouring offering).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드린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고 있다. 내가 달려가는 길은 확실하다. 나는 이만큼 행복하다. 마지막 피 한 방울을 쏟아 부어도 나는 기뻐할 것이다. 그러니 나를 본받으라!” 했어요. 얼마나 권위 있는 말씀입니까?
뿐만 아니라 바울은 그 족보라든지 지식이라든지 학문이라든지 전통이라든지, 옛날에는 그토록 좋아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던 모든 것을 다 내던져 버리고 , 다 해(害)로 여길 뿐더러, 다 먼지나 배설물과 같이 여긴다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얻었기 때문이요,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요, 그 안에서 발견되려 했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는 정열의 사람이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라는 말이 17번이나 나옵니다. 바울은
복음 전도만이 기쁨의 원천이었습니다. 왜? 그가 실제로 자기가
피박하던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이였습니다. 그이 음성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확고한 믿음의 사람일 수 밖엔 없었습니다. 그 믿음은 그의 평생의 체험에서 나 온
것입니다. 그래서 감히 말합니다.“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구요!
라)그는
사랑과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성도를 위해 기도했습니다(빌
1:3~6).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했습니다.
또 불신자를 위해 기도하라 했습니다(롬 10:1). 지도자를 위해 기도하라 했습니다(딤전 2:1-2).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습니다(골 4:2). 그리고 자신도 그것을 실천하였습니다.
빌립보 감옥에 갇혀서도 찬송과 기도를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낫습니다.
행 16: 22~33절에 보니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고발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31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32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33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침례를 받은
후
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결론)
바울에게서 본받을 것 네 가지가 있었습니다. 1)성결한 삶을 살았습니다. 2)삶의 목적과 신념이 확고했습니다. 3)복음 전도에 적극적인 정열의 사람이었습니다. 4)열심히 영혼들을 사랑하고 기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바울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그리스도를 더욱 닮아가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0521119 안익선 목사/ 참고: 허영진, 곽선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