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 좁은 길로 가자 (마태복음 7: 13 – 18)
좁은 문 좁은 길로 가자 (마태복음 7: 13 – 18)
13.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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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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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사람들은 대개 넓고 평탄한 곳을 좋아 합니다. 길도 문도 집도 교회도 넓직해야 좋아 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좁고 불편한 곳에 머물러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한번은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는 비행기에 시골 할머니 한 분이 타셨습니다. 그런데 제일 좁은 이코노미 좌석을 끊으셨기에 좁은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보니까 앞에 넓은 자리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옳다구나 하고 얼른 그 넓은 자리로 좌석을 옮겼습니다. 그러자 승무원이 깜짝 놀라며 ‘할머니! 할머니 자리는 뒤에 있으니 뒤로 가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승무원의 말을 듣지 않고 넓은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습니다. 넓은 자리는 비싼 자리이므로 승무원이 계속해서 ‘할머니 자리는 뒤에 있으니 어서 그리로 가세요’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조금 후에 고참 승무원이 할머니에게 와서 뭐라고 한 마리 했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근방 일어나 자기 자리로 돌아갔답니다. 무슨 말을 했기에 그렇게도 고집하던 할머니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을까요? ‘할머니, 이 자리는 광주 가는 자리고, 뒤에 자리는 부산 가는 자리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시골 할머니가 깜짝 놀라서 얼른 자기 자리로 돌아갔답니다. 좁은 자리보다 넓은 자리가 편하고 좋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꼼짝도 하지 않던 할머니가 가는 방향이 틀린다니까 얼른 좁은 자리로 돌아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우리도 넓고 편한 자리가 좋아합니다. 좁으면 불편하고 넓으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넓고 편하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만한 돈을 내야 합니다. 또 그만한 돈을 벌려면 더 많이 수고하고 고생해야 합니다. 그러나….)
본론)
가)좁고 불편해도 가야 할 길이 있다.
그러나 좁고 불편하다고 피해 가선 안 될 것이 또 많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공부가 어렵다 고 공부를 하지 않으면 장래에 성공하기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잠도 잘 못 자고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또 군인들도 훈련을 어렵게 해야 강한 군대가 되어 침략하는 적으로부터 나라를 잘 지켜낼 수 있습니다. 힘들다고 훈련을 하지 않으면 자신도 죽고 국민들까지도 죽게 됩니다.
건강을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음식 조절도 잘해야겠지만 운동도 해야 합니다. 일부러 운동하는 것이 얼마나 귀찮고 땀나고 힘듭니까? 그러나 운동을 하지 않으면 건강이
점점 더 나빠져 더 고생을 하게 됩니다. 물론 무리하게 운동하면 몸이 더 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쉬고 놀기만 할 때, 뻘뻘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은 더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운동의 효과를 잘 모르던 조선시대의 고종황제가 선교사들이 테니스 치는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저리 힘든 것은 종놈들에게 시키지 어찌 선교사님들이 저리 힘든 것을 한단 말이요?’라고요.
나)편의주의적 신앙은 배격해야 한다.
편한 것을 욕망하는 현대인들의 그 욕망이 신앙 생활에까지도 그 영향을 미칩니다. 오늘의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하려고 합니다. 대개가 일주일에 한 시간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일이 있으면 한두 주일은 빠져도 조금도 신앙생활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아예 낙지 아니하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예배를 본다고 합니다. 물론 코로나시대엔 그래도 어쩔수 없이 용인할 만한 상황이긴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습관이 되어 ‘가나안 교회 신앙’이 됩니다. 여기서 가나안을 거꾸로 읽으면 ‘안 나가”가 됩니다. 그러나 사실 신앙생활은 그 좀 어렵게 해야 합니다.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신앙생활 하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점점 쇠약해 지고 결국은 심령의 중병이 들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렵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넓은 문과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지만, 좁은 문과 좁은 길은 생명으로 인도한다고 하셨습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신앙생활을 아예 안 하거나 편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이나 후나, 별 다름이 없어짐을 의미합니다. 교회 다니기 전에 하던 버릇을 점점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것에 집착합니다. 돈, 명예, 지식, 사치, 유행, 도박, 향락, 술취함, 게으름 따위를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하면서 신앙생활도 하는 것입니다. 넓은 문은 세상적 인 모든 것을 즐기며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저의 큰어머니께서 제가 학생 때 예수 믿으시라고 전도하니까 하시는 말씀이 “너가 혹시 목사가 되면 내가 교회 다니마” 라고 하셨습니다. 훗날 제가 목사가 되어 또 전도하니까 하시는 말씀이 “너가 목사가 되었으니 내가 교회는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천주교를 믿기로 했다”라고 하셨습니다. 왜냐고요? 제사도 지내고 술도 마셔야 했기 때문이었습 니다.
우리 어른들이 천주교를 개신교보다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천주교가 기독교보다 훨씬 믿기가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불명확하고 마리아나 성인 등을 숭배하는 그런 천주교는 참 진리와 복음에 혼탁해져 있습니다. 특히 한국의 천주교 는 요즘 불교인들과 교제하고 그들은 인정하고 포옹하며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짓거리도 서슴치 않고 하고 있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 보기엔 좋을지 모르나 거짓 것과 어울려 진리를 흐리게 하는 짓은 매우 큰 하나님의 징계가 있을 줄 믿습니다. 그래서 계시록에선 장차 타락할 천주교를 계시록17장에서 ‘음녀’라고 불렀습니다. 순결과 정조를 못 지키는 정치적 협력자가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는 세상적인 것을 멀리하라고 합니다. 술 취함을 절대 금지합니다. 특히 조상 섬기는 제사 역시 천주교와 달리 절대
피하도록 가르칩니다. 대신 추모예배를 드리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어른들 시대엔 개신교는 꽤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은 후, 세상 욕심과 쾌락을 멀리하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당연한 삶의 변화입니다. 예수 안에서는 좁은 문과 좁은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좁은 문은 처음 시작하는 입문이라면 좁은 길은 계속 가야 하는 신앙의 여정, 혹은 길입니다.
좁은 길은 협착하다고 했습니다. ‘협착하다’란 말은 비좁고 불편하고 험하다는 의미입 니 . 조금이라도 한 눈을 팔거나 정신을 다른데 두면 넘어지거나 다칠 수도 있는 험한 길입 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예수 잘 믿으려면 불편한 것이 많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는 것도 예수 믿는 어려움 중에 하나입니다. 예수 믿기 전에는 주일이면 늦잠도 자고 놀러도 맘대로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 믿게 되니 주일이 더 바쁩니다. 주일은 여행도 맘대로 해서는 안 되며 일도 될 수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좀 엄격한 교회에선 물건을 사지도 팔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국도 칙필에이 (Chic-fil-a)같은 회사는 주일에 아예 점포문들을 대부분 닫고 있습니다.
요즘은 주일에 결혼식을 많이 하는데 예수 믿기 전에는 주일에 잔치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예수 믿고 나서부터는 주일에 잔치집에 가는 것도 어려워졌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불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또 헌금생활도 잘하려 하니 생활비가 쪼들릴 때도 있습니 다. 좁은 길입니다. 옛날 친구들과는 점점 만남이 멀어집니다. 그래서 가끔은 넓은 길을 가고 싶은 욕망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한 교회에서 같이 시작하였어도, 좁은 길, 또는 넓은 길 을 가는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가지 못하게 됩니다. 어렵고 힘들게 믿는 사람과 마음대로 세상을 즐기며 자유롭 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믿는 사람과 방향이 달라집니다. 김일성이도 어려선 교회에 다녔 다고 합니다. 그러나 넓고 편안 길로 가다가 공산주의자가 되었습니다. 6.25 전쟁을 일으키 고 훗날 지옥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아돌프 히틀러도 원래 천주교에 잘 다니는 소년이었습니다. 성가대원이기도 했고 훗날 천주교 신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민족주의와 독재주의에 심취해서 독일과 유럽을 파멸로 인도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유럽의 교회들이 텅텅 비어 있다고 합니다. 2차대전을 전후한 유럽교회는 성도들이 가득 차고 넘쳤습니다. 그러다 경제적 형편이 좋아지고 삶이 부유해지니까, 교인들이 넓은 길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주 5일제를 하면서 가족들이 여행을 즐기기에 골몰합니다. 가나안 교회의 교인들이 늘어납니다. 진화론과 과학에 심취합니다. 차츰 교인이 줄어 이제는 교회당이 다 비어 선술집으로, 카바레로, 나이트 클럽, 이슬람 사원 등으로 변하여 방탕과 쾌락, 이단의 범람으로 죄의 소굴이 되어버렸습니다. 요즘 영국은 경제가 매우 나빠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영국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 교회 건물들이 처음 지어질 때는 숱한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와 땀으로 지어졌습니다. 참으로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교회당이었지만 기도가 끊어지고, 찬송 소리가 사라지니 까 결국에는 사단의 손에 넘어가 죄악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어진 원인이 무엇입니까? 성도들이 넓은 길을 갔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19장에서는 한 젊은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묻기를, "착한 선생님이시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가 영생을 얻으려면 먼저 계명을 잘 지켜야 한다." 하십니다. 이어 청년이 말하기를, "어느 계명이오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십니다. 그러자 청년이 말하기를, "이 모든 것을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사오나 아직도 제 가 부족한 것이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 하시기를,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이 있으니 가서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나를 따라오라. 그리하면 하늘에 보화가 있으리라." 이 말씀을 들은 청년은 재물이 많은 자로 얼굴을 붉히고 근심하 여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재물이 구원의 좁은 길을 갈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15세기에, 이탈리아의 플로랜스의 폭군 ‘로렌조’가 임종시에 너무 마음 이 번민이 되어 이탈리아의 성자라 불린 당시의 ‘사보나롤라’를 청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말하였답니다. "내 마음에 지금 세 가지 죄가 있어 나를 괴롭게 합니다. 볼레라 성을 억지로 빼앗은 것, 은행을 강탈하여 재물을 많이 빼앗은 것, 나를 반대하는 정치적 음모자를 많이 학살한 것, 이 많은 죄가 나를 눌러 견딜 수가 없으니 어떻 게 하여야 이를 면할 수 있습니까?"라고요. 그러자 사보나롤라가 대답하기를"하나님 은 선하시고 자비하심을 분명히 믿고 의지하셔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로렌조가 대답하기를"분명히 믿습니다, 사보나롤라여."라고 했습니다. 또 사보나롤라가 "둘째로 당신이 불의하게 빼앗은 모든 재물은 도로 돌려주시오."라고 하자, 로렌 조는 처음에는 얼굴을 찡그렸으나 “좋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사보나롤 라가 "셋째로, 볼레라 성의 자유를 회복하여 모든 주민들에게 자유를 주시오."라고 하자, 폭군 로렌조 는 아주 노하여 아무 대답도 없이 돌아눕더니 그만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그에게는 좁은 문이었습니다. 재물까지는 내놓을 수 있었으나 권세는 내놓을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처음에는 잘 믿는 것 같았으나 결국은 예수를 은전 30냥에 팔고 호의호식이라도 하며 넓고 평안한 길로 가려다가, 결국 양심에 가책으로 스스로 목을 매고 창자가 터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야심이 만만하고 출세 길이 확 트여 장래가 촉망되는 청년이었으나, 예수를 알게 된 순간부터 민족적 편견과 지식 같은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안에서 신앙의 좁은 길로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갖 죽음의 고난과 순교의 역경을 겪었야 했습니다. 그러나 마침내 복음의 세계적 선교 사명을 성취하고 이방 교회의 기초석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결론)
여러분, 넓은 길, 넓은 문은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누구나 다니기 쉬운 길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멸망의 길입니다. 오늘의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그런 길을 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주 5일제를 실시하므로 향락 문화를 모두가 즐기기 바쁩니다. 학교도 주 5일제 수업을 합니다. 요즘은 주4일제를 하자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들이 점점 약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넓은 길을 간다면 유럽 교회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 이런 때 일수록 좁은 길을 가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어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그리스도의 군사와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012125 안익선 목사/참조: 허창수 & 한경직 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