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요한복음10장 강해(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호걸영웅 2025. 5. 4. 04:13

요한복음10장 강해(예수님은 선한 목자이시다)

 

 서론)

요한복음 10장을 “목자 설교”라고 불리웁니다. 이 본문은 예레미야 23장 이하, 에스겔 34장 이하, 미가 2장이하, 스가랴 11장 이하가 참조된 말씀입니다. (마이어, 444).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백성의 인도자,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구의 인도(지도)를 따르는 가를 보면 그 정체성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론)

) 나는 양의 문과 선한 목자이다 ( 10: 1-21)

[ 10: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the sheep pen by the gate)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gate keeper)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 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οκ γνωσαν)-고 했습니다.

양우리에 들어오는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다른 방법으로 들어오는 도둑이나 강도와 문으로 들어오는 양의 목자죠. 양문를 지키는 사람은 양의 목자에게 문을 열고,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습니다. 양의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불러 내며, 양은 그의 음성만을 듣고 따른다).  타인의 음성(the voice of strangers)은 바울이 외친 다른 복음(other Gospel)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에서 세 가지 요점을 말씀하셨습니다. 

1)첫째, 양의 목자는 문으로 들어간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이다. 2)둘째,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고 앞서간다. 3)셋째,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를 따라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음성은 알지 못하므로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도망간다. 예수께서 그 비유의 뜻을 설명하시면서 자신이 바로 양의 문이며 또 자신이 선한 목자임을 증거하십니다. 

 

 [ 10:7-10]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竊盜)요 강도(强盜)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盜賊)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ζω)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하셨죠.

예수께서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규정하셨죠(the gate for the sheep). 예수께서 자기보다 앞선 사람을 도둑이나 강도로 규정하셨어요. 예수보다 “먼저”는 시간적 의미가 아니라, 예수보다 자기 자신을 더 높이는 행태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이어 박사는 주후 130년경에 랍비 아키바(Aqiba)가 거짓 메시아인 바 코흐바(Bar-Kokhba, 별의 아들)를 진짜 메시아로 추앙하면서 로마에 대항하여 유대인을 전멸위기로 몰아넣었다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마이어, 444-445). 양무리로 들어갈 문은 예수님이십니다. 양문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왕래하면서 꼴을 얻을 것입니다. 도적의 목적은 도적과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고, 목자는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10).

예수께서 절도(훔치고)요 강도(깨부수는)라고 말씀하신 자들은 거짓 교사들을 가리킵니다. 1세기 유대에서 대표적인 거짓 선생은 바리새인과 서기관(書記官, Scribes) 부류였죠. 

 

[ 10:11-12]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고 했어요.

예수께서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직접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외모를 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지 못하는 자들도 많았습니다.

예수의 선하심은 자신이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0:28에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선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해서 목숨을 기꺼이 버립니다.  선한 목자와 삯군 목자(The hired hand)를 비교하면 삯꾼은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며 이리는 양을 늑탈하고 헤칩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점을 미리 아시고 예수님을 목자로 보내셨다 했습니다.

 

[ 10:17-18]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아버지께서 예수님,  아들을 사랑하십니다(17). 그런데 그 아들께서 목숨을 버리기로 자청했기에 더욱 사랑하십니다. 예수께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스스로 버리시는 것이며,  이 권위(권세)는 아버지께 받은 것이라 했습니다(18). 물론 예수께선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럴지라도 죽는 것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였음을 알아야 하죠. 

 

[ 10:19-21] 이 말씀을 인하여 유대인 중에 다시 분쟁이 일어나니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혹은 말하되 이 말은 귀신 들린 자의 말이 아니라. 귀신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느냐 하더라.=

예수의 말씀으로 인해서 유대인들은 분쟁합니다(19).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귀신들려 미친 사람이라는 주장과 소경의 눈을 뜨게 한 하늘에서 온 선지자로 나뉜 것입니다. 

) 수전절 솔로몬 행각을 떠나 요한의 세례터까지 사건들 ( 10:22-42) 

[ 10:22-26] 예루살렘에 수전절(修殿節, the Festival of Dedication)이 이르니 때는 겨울이라. 예수께서 성전 안 솔로몬 행각에서 다니시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내가 너희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내 양에게 속하지 않으므로](원문) 믿지 아니하는도다. =

수전절(修殿節)은 구약성경에 있는 절기가 아니죠. 수전절(Hanukkah)는 주전 165년 유대 지도자 마카비우스가 수리아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를 대항해 반란을 일으켜 승리한 후에 성전을 정결케 하고 다시 봉헌한 것을 기념한 날입니다. 

예수께서 솔로몬 행각을 거니실 때에 유대인들이 에워싸며 항의하였고(24). 예수의 가르침에서 자기들의 마음이 동요된 상태를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지는 않았습니다. 

[ 10:27~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양무리 안에 있는 양에게 영생을 주십니다(28). 예수께서 주시는 영생은 영원하고 빼앗아 갈 자도 없습니다.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께서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이라( 1:2)했어요. 또 사도 요한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 썼습니다(요일 5:13).

 

[ 10:30-33]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 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僭濫)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 네 자신을 하나님으로 만듦이로다)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의 신성(神性)에 대해 다시 한번 명확하게 증거하신 것입니다.  만일 그가 단지 한 인간으로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면, 그는 신성모독의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예수를 돌로 치려했어요(31). 

 

[ 10:34-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율법에 기록한 바 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예수께서는“내가 너희를 신이라 하였노라는 시편 82:6(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의 인용이며 ‘율법에 기록한 바’라고 표현하셨는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게로 나온 사람은 신()이라고 하신 바 있는 말씀이라고 명확하게 밝혀주셨습니다(35). 마이어 박사는 여호와 앞에 선 모세를 한 예로 제시하였는데, 이스라엘은 모세를 하나님처럼 대하였다고 했어요(마이어, 471). 고로 예수께서는 하물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셔서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것이 어찌 참람한 일이냐고 반문하시게 됩니다. 

 

[ 10:36-42]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치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신대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다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으로 침례 주던 곳에 가사 거기 거하시니 많은 사람이 왔다가 말하되 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치 아니하였으나 요한이 이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은 다 참이라 하더라. 그리하여 거기서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밝히셨고(36).  유대인을 향해서 예수는 자기를 믿지 못하겠거든 자기가 행한 일이라도 믿으라고 권면하십니다(38). 이렇게 증거하는 예수를 유대인들은 잡으려 하였고, 예수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셔서 요단강 저편 요한이 처음에 침례 주던 곳에 거하셨습니다(40). 많은 사람이 예수 앞에 나와서 요한에게는 표적이 없었지만 이 사람은 표적을 행하기 때문에 참이라며 모여 들었고(41). 많은 사람이 예수를 메시야와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습니다.

 

결론)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처음부터 밝히 말씀하셨고 그의 행하신 일들이 그를 증거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 곧 아버지와 한 실체, 한 하나님이시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였지만, 예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고 믿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둘째, 양의 특징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의 음성을 듣고 그를 따른다는 것은 그를 믿고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유대인들이 그를 믿지 않은 것은 그의 양에게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속한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선택을 뜻해요. 

셋째, 목자를 믿고 따르는 양이 받는 복은 영생입니다. 

예수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양을 아시고 양들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또 그가 주신 영생을 받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치 않으며 그들에게서 그 영생을 빼앗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고로 세상에서 혹시 성도들에게 닥칠 환난,곤고, 핍박, 기근, 헐벗음, 전쟁, 그 무엇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입니다( 8:35).()             - 042925 안익선 목사/ 참조: 본헤럴드(https://www.bonh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