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실례들과 의미들 (마태복음 28:5-10)
부활의 실례들과 의미들 (마태복음 28:5-10)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무서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
6.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 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7.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8.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빨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달음질할새 9.예수께서 그들을 만나 이르시되 평안하냐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
서론)
오늘날 세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생명을 부여 받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하여 걸어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미국 사람들은 나이가 얼마냐고 물을 때 “How old are you?”라고 묻는 것 같습니다.
살아있는 존재들은 죽음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죽음은 창조주 하나님이 생명체에 부여한 하나의 운명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죽지 않을 수 있는 생명을 받았다고 창세기 2장 16절은 알려 줍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동산에 있는 나무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그러나 선악과 나무열매 만은 따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으리라.”
또 창세기 3장 2, 3절에서는, 하와가 그녀를 유혹하는 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되, 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열매만은 따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말씀하셨다.”라고요.
이 말씀에 의하면, 만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만 따 먹지 않았더라면 인간은 영생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초의 두 인간은 죄로 인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를 향하여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인간은 몸을 죽을 존재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사람은 영원한 삶을 동경해 왔으나 그것은 꿈과 환상이나 희망으로만 가능하였습니다. 동양에서는 신선 같은 허구적 존재를 등장시켜 영생을 꿈꾸었고, 서양에서는 희랍신화 같은 것을 창작하여 영생을 그리는 인간의 희망을 보여주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오직 의롭고 죄가 없었던 오직 두 사람, 에녹과 엘리야만이 살아있는 채로 하늘로 들리어 올라간 인물이 되었습니다.
2) 본래 영생이란 죽음을 겪지 아니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죄사하시는 능력을 힘입어 인생들은 부활을 통하여 영생으로 들어 갈 새롭고도 놀라운 근거가 생겨 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부활은 정말 가능한 것인가? 부활한 그 몸은 어떤 몸일것인가? 그리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함께 살펴보도록 합니다. )
본론)
가) 부활에 관한 환상과 증언들
1. 구약에서는 몇 군데 부활에 대한 환상을 예시한 성경 말씀들이 있습니다.
에스겔서 37:1~10을 보면,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던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신비한 환상 중에 끔찍하면서도 한편으로 소망에 찬 광경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들판 한 가운데로 간 에스겔은 거기에 엄청나게 많은 마른 해골들이 겹겹이 널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하심을 따라 그 마른 뼈들에게 말합니다. “마른 뼈들아, 이 야훼의 말을 들어라. 뼈들에게 주 야훼가 말한다. 내가 너희 속에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리라. 너희에게 힘줄을 이어놓고 살을 붙이고 가죽을 씌우고 숨을 불어넣어 너희를 살리면 그제야 너희가 내가 야훼임을 알게 되리라” 이 말이 끝나자마자, 마른 해골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두 살아나 굉장히 큰 무리를 이루었습니다.무론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은 죽은 것도 부활시키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2. 또 다니엘서 12:1~3을 보면, 다니엘도 하나님의 묵시를 받는 중에, “티끌로 돌아갔던 대중이 잠에서 깨어나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라고 했습니다.
3. 그러나 신약성경에는 그저 환상이나 미래의 일이 아닌,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럿 등장합니다.
즉, 예수께서 살리신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마리아와 마르다의 오빠 나사로 등의 부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님 자신의 부활도 수많은 성도들과 제자와 핍박자였던 사도 바울의 기록들이 너무나 생생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언들
1) 오늘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부활을 매우 힘찬 어조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된 예수님은 그의 옆구리에 로마 병정이 찌른 창에 찔리고, 두 손과 두 발은 못박힘을 당해 피가 다 쏟아지고, 결국 더 나올 피가 없어 물 같은 체액이 흘러 나올 정도로 완전히 죽으셨습니다. 로마의 형법에 의하면 십자가에 죽은 죄수들은 완전한 죽음을 확인하고자 최후로 다리 관절을 꺾어 버림으로 죽음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경우는 창으로 심장까지 관통하도록 찔러 보았기에 완전사망으로 판정되어 다리꺾기는 생략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아리마대 요셉이란 사람의 무덤에 안치되었으나 혹 시신을 도난당할까봐 큰 돌로 무덤 입구를 봉한 채, 여러 군인들이 그 무덤 앞을 단단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3일만에 죽으셨던 예수가 부활하셨습니다.
지진과 천사들로 인해 군병들은 다 달아났고 예수께선 유유히 무덤에서 걸어 나오셨습니다.
마태복음의 본문에는 무덤을 찾은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께서 살아나셨으며, 갈릴리로 가서 제자들을 만나실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받게 됩니다.
그 여인들은 예수 부활의 뉴스만 들은 것이 아니라, 무덤 현장에서 다시 사신 예수를 직접 만나 뵙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어 그 무덤은 빈 무덤이 되어 버렸고, 부활의 예수께선 그 여인들뿐 아니라, 나중에 베드로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그리고 열한 제자 모두에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에서는 제자들이 잡아온 물고기를 구어 함께 잡수시기까지 했습니다(요한복음 참조).
한편 로마서는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부활로 함께 부활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보증이란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이 메시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증거하는 것일까요?
2) 예수님의 부활은 의식만 없는 가사상태에서의 소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집단 최면에 걸려, 환상 중에 예수가 다시 사신 것으로 착각한 것도 아니죠. 그것은 희랍신화와 같은 허구도 아니요, 제자들의 마음 속에 오직 신앙으로만 존재하는 사건도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정말 죽으셨으나 완벽하게 다시 살아나셨음을 선포합니다. 이 증언은 3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생사고락을 같이 한 그의 12제자들과 수백명의 제자들과 그를 시중들면서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었던 여러 여인들의 생생한 경험담의 기록이었습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의 몸은, 썩어질 몸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담은 변화된 몸이었습니다. 그 몸은 영원히 사는 몸이요 승천할 수 있는 몸이요, 하나님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새로운 몸이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의 부활은 역사상에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단 하나의 경의로운 사건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한 생명은 예수께서 다시 살리신 나사로나 회당장의 딸의 생명과도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시 살아났다 하더라도, 몇 년 혹은 몇 십년 후엔 다시 죽어 썩을 몸으로 돌아온 것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영원히 사는 몸으로 부활하셨기 때문이죠.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직 마지막 날 모든 사람이 새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날 사건의 근거가 됩니다. 첫 아담의 죄로 죽음이 온 인류에게 왔듯이 첫 예수의 부활은 모든 인생이 그로 인해 영생의 부활할 것에 대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믿음은 산을 옮긴다 했으나 믿음은 예수 안에서 영생을 얻게 합니다. 이것을 믿으십시오.
다)부활의 의미들
의미;1) 기독교는 죄 없는 고난을 당하여 처형된 한 의인을 추모하는 무리들이, 자의로 모여 만든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의 삶과 교훈들을 기억하고 엮어서, 다른 사람들과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교육적 목적에서 발생된 종교도 아닙니다.
기독교가 성립된 근본적 동기 두 가지는 부활의 체험과 오순절의 성령 강림입니다. 부활사건에서 십자가 고난의 의미가 드러났고, 성령의 강림에서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 깊이 개입해 들어오셨음이 드러났습니다. 기독교는 이 하나님의 두가지 행하신 사건에 기초를 두었던 것임을 알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의미;2) 부활은 하나님이 사람들의 선악을 심판하시려는 사건이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드러나는 사건이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부활은 생명의 회복임과 동시에, 죄인들의 모든 죄와 악, 거짓을 폭로하고 척결하는 두려운 심판의 예비 단계가 됩니다. 집권자의 권력도, 성직자의 권위도, 민중의 무분별한 신념과 행동도 모두 심판 받고 오직 하나님의 의로우심만이 드러나는 예비적 사건이 됩니다.
의미3;) 부활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알리시는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나, 결코 사랑 때문에 정의까지 희생시키시지 않으신다는 표식이 곧 부활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악한 행위를 참아 주긴 하시지만, 악을 아예 눈감아 주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부활은 드러내고 있습니다. 곧 의인은 영생의 부활로 악인은 심판의 부활로 부활함을 말씀 하십니다. 고로 ……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악의 횡포와 지배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결의의 징표입니다. 그리고 진실과 사랑과 의로움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진리의 들어냄이 됩니다.
의미;4)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 중 첫 열매로서 죽음의 결박을 푸시고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여셨습니다. 고로 그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니 이미 믿음 안에서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새 생명은 지금 바로 이 땅 위에서도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의 매일의 삶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부활의 능력 속에서 세상의 온갖 어두움과 거짓과 저주와 두려움을 이기며 승리하는 삶을 능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041625 안익선 목사 / 참조: 교회와 신앙(https://www.ame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