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하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누가복음 3: 3~10)
재림하실 주의 길을 예비하라 (누가복음 3: 3~10)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
6.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
서론)
우리는 지난 주일, 부활절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시다시피, 부활 승천하신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교회 위에 성령을 부어 주셨고 아울러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여러 차례 남겨 주셨습니다. 재림 사건의 성경적 예고는 처음 오신 예수님에 대한 초림의 약속에 못지 않게 수없이 구약시대부터 예고된 사건들이었습니다. 성경의 마지막 책은 계시록 마지막 절도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마라나다!” 라며 끝을 맺을 정도입니다.
(오늘은 눅 3장을 통하여 처음 오신 예수를 맞이한 침례 요한의 말씀을 통해 다시 오실 예수님을 과연 우리가 어찌 맞이하고 모셔야 하는지에 대한 잠깐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본론)
가)먼저 온 인류는 '참되고 겸손한 회개'으로써 예수님을 구세주로 맞이해야 합니다.
침례 요한은 본문 3절에서 "3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요한의 침례는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라고 했는데, 이런 침례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지만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침례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원래 침례를 이방인들에게만 주었습니다. 즉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을 믿겠다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 개종의 표시로써 침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원래 이스라엘인으로 태어나고 할례까지 받았던 유대인들 자신은 그 어떤 개심의 의식이나 새 사람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침례 같은 것은 전혀 필요하다고 여기지도 않았고 따라서 행하지도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침례 요한은 바로 그처럼 방심하고 있던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들 역시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가 꼭 필요한 사람이다."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침례 요한의 이런 메시지는 나중에 8절의 말씀에서도 재차 거듭됩니다.
거기서 그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신분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마치 무슨 '구원의 보증서'처럼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면 침례를 주고 개심의 선서를 하게 하면서도, 자기 자신들은 이미 저절로 구원 보장의 딱지를 완전히 끊어 높은 사람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침례 요한은 바로 이와 같은 유대인들의 방심을 흔들고 그 교만을 깨뜨리기 위하여 그처럼 또렷한 회개를 촉구하는 크나큰 음성으로써 외치기 시작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4~ 6절= "4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5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했던 것입니다.
고로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에 이런 침례 요한의 외침이 울리자마자 구속사의 주인공 되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들에겐 회개하는 일에 큰 장애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곧 방심과 교만이라는 장애물들입니다.
"나는 굳이 예수 안 믿어도 평소에 늘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양심적으로 살고 있으니까 회개할 것도 없고, 무슨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야 할 필요도 없다."라고 자만해 하는 심정들이 바로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실로 구원으로 가는 길에 놓여진 '크나큰 장벽'이 됩니다.
혹자는 "종교란 것은 결국 사람을 착하게 살도록 하자는 것이니 불교를 믿든지 기독교를 믿든지 아니면 무종교라 할지라도 그저 선하게만 살면 다 같은 정신을 따르는 것이고 다 같은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이 오늘날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저 몸만 교회에 출석하면서 "나는 교인이니까 천당이 만일 있다고 하면 어떻게 구원받게 되겠지."하고 영적으로 방심 상태에 있는 것 역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라고 했던 유대인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는 일이 됩니다.
모든 사람들은 오직 '겸손함'과 '회개'로써 하나님께 나아가야만 구원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자격을 얻게 됩니다.
나) 우리는 나날의 삶 속에서 ‘선한 열매'를 맺음으로써 재림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본문 7~ 9절= "7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 중에는 심각하게 외식하는 죄인들로 분류되었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외치고 거룩한 척하며 가르치는 자들이 많이 있었으나 그들에게는 결정적인 것 하나가 모자랐습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였습니다. 침례 요한에게 있어서의 ‘회개’란 마음으로만 부끄러움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통회자복 (broken contrite hearts)만 해서 끝나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정말 마음속에서 그런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면 거기에는 당연히 행실의 열매가 그 증거로서 따라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열매가 없으면 이미 그 뿌리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으며 그런 나무는 결국 "도끼"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자 일반 대중들은 이런 침례 요한의 외침에 더 귀를 기울이며 질문을 하게 됩니다.
10~ 14절= "10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14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즉 힘으로 타인의 것을 빼앗거나 무고히 고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1) 그 중에서 제일 첫째로, 침례 요한은 '무언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했습니다. 옷은 한 벌만 있어도 살 수 있으니 두 벌 있으면 나누어 주고 음식도 마찬가지로 하라고 했던 것입니다. 즉 많이 가진 자가 없는 자와 나눠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항상 자기 것만 끝까지 움켜쥐고 살면 그 좁고 답답한 '골짜기 인생'에서 결코 벗어 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나누어 주고 베풀 줄 아는 것' -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그 마음에 변화를 일으킨 사람이라면 꼭 나타내게 되어 있는 대표적인 행동입니다.
우리가 먼저 누군가를 대접하고 구제와 선교에 힘쓰게 되면 진실로 회개한 성도의 삶에 선한 열매를 맺는 일이 될 것입니다.
2)침례 요한은 두 번째로 세리들을 향하여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고 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 산하에서는 각 지역에 세리(세금을 걷는 공무원)들을 임명할 때 독특한 방법을 썼습니다. 즉 세리가 되고 싶은 사람을 공개 모집을 하고 그 중에서 자기 배당 지역을 통하여 가장 많은 세금을 로마 정부에 바치겠다고 입찰하는 사람을 ‘’세리로 임명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리로 임명되면 그 지역의 세금은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거둔 것 중에 로마 정부에 약속한 액수를 내고 나면 나머지는 세리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한번 세리가 되면 문자 팔자를 고칠만큼? 자기 멋대로 세금을 긁어 모을 수가 있었고, 자연히 고액의 세금 징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백성들에게 경제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가져다 주는 중범죄였습니다. 고로 침례 요한은 법이 정한 합당한 세금만을 걷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참된 성도는 '외인(타인, 혹은 불신자)에게서도 칭찬을 받는 자'가 되야 합니다.
이전에는 속이는 저울을 사용했더라도 성도가 되고 나면 정직한 저울을 사용해야 합니다. 정당한 사업을 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이전에는 상사 앞에서 눈가림만 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면 직장에서도 그 어떤 불신동료들보다도 더욱 성실하게 일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참된 기독신자는 세상 사회의 도덕과 법 역시 불신자들보다 훨씬 더 잘 지켜야만 진정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3) 셋째로 침례 요한은 군병들에게는 "받는 요(料)를 족한 줄로 알라"고 했습니다.
대충 아시다시피, 군인들이란 대체적으로 육체적으로 상당히 고되고 위험한 직종이면서도 월급은 적은 직종의 직업입니다. 고로 당시의 군인들은 자연히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을 협박하거나 강요하거나 속임수를 써가며 부당한 과외수입을 얻으려 할 때가 많았습니다. 고로 침례 요한은 바로 그런 군인들을 향하여 '비록 너희들의 받는 보수에 비하여 하는 일은 어려울지라도 거기에 만족하면서 살아야 한다.'라며, 그들이 맺어야 할 회개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삶 역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임을 깨닫게 되면, 그것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자세 역시 당연히 따라오게 됩니다. 이전에는 매일 불만과 불평만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이 일단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면, 갑자기 그 삶 속에서 기쁨이 넘치고 찬송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전혀 감사의 조건이라고는 생각도 되지 않던 것들, 일용할 양식, 집, 가족, 직장, 이런 것들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가 나오게 되는 것은 오직 진짜로 중생 받은 신자들에게서만 나오게 되는 놀라운 '열매'들이 됩니다.
침례 요한은 사람이 진심으로 회개하면 그 삶 속에서도 바로 이런 '열매'들이 나타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 열매란 그 이전까지의 생활 전체를 통째로 뒤바꾸어 버리거나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물질이 주어졌을 때 베풀 줄 알고, 가진 것이 없을 때에도 불평하지 않는 것 - 이런 간단한 것이 바로 회개한 자가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그런데요 그런 간단한 것이 잘 안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힘으로나 권위적으로 남들 위에 서게 되었을 때에도 그것을 내 욕심 위해 부당하게 오용하지 않는 것 - 그저 기초 상식에 불과한 이런 것들이 바로 중생 받은 자가 맺게 되는 현실적인 열매임 부정합니다.
결론)
2천 년 전에 이 땅에 처음 오셨던 예수님은 반드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곧 다시 오실 주인 앞에 보여 드릴 달란트가 없는 종은 '악하고 게으른 종' 곧 그 '마음이 악하고 그 삶에서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오시고 속히 오실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들과 종들을 심판하시려 반드시 다시 오실 우리 주님의 길을 '진정한 심령의 회개'의 열매들인 '선하고 합당한 생활의 열매'를 맺어 보여 드림으로써, 우리 주님 예수를 기쁘게 영접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축원드립니다.
042225 안익선 목사/ 참조: 석기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