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을 위한 정보들

[스크랩] 수수께끼의 슈메르 문명 이야기

호걸영웅 2011. 12. 9. 12:29

수수께끼의 슈메르(Sumer)문명 이야기

-그 기원과 번영의 수수께끼-

 

 

 

슈메르(Sumer, Shumer, Sumeria, Shinar)는、메소포타미아(현재의 이라크) 남부를 차지한 바빌로니아의 남반부의 지역, 혹은 거기에서 일어난 최고의 도시문명. 초기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는 티크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번영했다. 슈메르란 이름은 슈메르인이 문명을 구축하여 아캇트나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받아 슈메르인이 모습이 사라지고, 새롭게 바빌로니아 제국에 병합되기까지 계속되었다. 슈메르의 설형문자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500년경이라 하고. 적힌 것이라고는 가장 초기의 것이라고 생각된다.(위키페디아 사전)

 

 

1. 메소포타미아문명이란

 

기원전 5천년 경, 후에 메소포타미아라고 불린 유프라테스강 연안 지대에 어떤 민족이 정착했다. 그들이 정착한 땅은 경작이나 방목하기에 적합하고 습지에서는 물고기나 새가 항상 넉넉히 얻을 수 있어 생활하기에 이상적인 환경이었다.

이 농경민족은 우바이드(Ubaid)인이라 불리는 사람들로서 그 후 천년이나 이 땅에 살며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도시와 신전을 짓고 그 후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초를 만든 민족이다. 그들은 유능하여 진취성이 뛰어난 기질로 얼마 없어 이 땅을 중근동에서 가장 번영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단지 그들은 문자를 가지지 않아서 상세한 기록을 남기지는 아니하였다.

 

그런데 기원전 3,800년 경 어디서인지 슈메르인이라고 불리는 민족이 와서 믿을 수 없는 대변화가 일어났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얼마 아니한 기간에 전례가 없는 번영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공전의 정치권력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미술, 건축, 종교는 말할 것이 없고 사회기구, 일상의 세세한 관습에서 설형문자의 발명까지 그것들은 그들 슈메르인이 일으킨 획기적인 위업이었다. 세계 최초라 일컬어지는 선박이나 바퀴가 달린 전차 등도 이 무렵 슈메르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 후에도 그들은 에리두(Eridu/Eridug), 우르(Ur/Urim), 우루크(Uruk), 라가슈(Lagash)라는 고도의 도시국가를 차례차례로 만들었다. 그것들은 도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것으로 오늘 우리는 이 문명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 부른다.

 

 

2. 슈메르인의 유적 발굴

 

이때까지 슈메르인에 관한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가 되어서 슈메르인의 도시국가가 발굴됨에 따라 그들의 사회나 풍습이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고고학자 레오나드 우리(Sir Charles. Leonard Woolley 1880-1960)는 당시 그들의 수도였던 우르(Ur)을 발굴했는데 대량의 금은, 많은 보석류, 매우 정교한 장신구가 출토되어 화제가 되었다. 또 그와 함께 여러 분야에 걸쳐서 슈메르인의 뛰어난 업적이 밝혀졌는데 그것은 놀라운 내용들이었다.

 

그에 따르면 그들은 기원전 3,800년 전후해서 뛰어난 문화를 가지고 돌연 등장한 것을 알게 되었다.

고도의 의학, 법체계, 관습 등이 있고 그들은 주석과 구리를 미묘한 배분 비율로 배합해서 청동을 만드는 합금 기술을 알고 있었다. 의학에서는 백내장에서 수정체의 혼속부분을 제거하면 낫는다는 것이나 그 수술 방법도 알고 있었다. 또 그들의 법체계는 획기적인 것으로 노동자, 실업자를 보호하는 법률 등이 있고, 재판에서는 이미 배심원 제도가 취해졌었다. 의회의 이원제도도 행해졌었다. 이것들은 현대의 법체계에 살려지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슈메르인의 도시는 신성국가라 해야 할 사회였다. 그 중심에는 직구라트(Ziggurat)라 불리는 거대한 건조물이 건조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직구라트라는 것은 계단식 피라미드라고도 하는데 그 규모는 세로가 60미터 가로가 45미터 정도의 기저부를 3층으로 축조한 거대한 성탑을 말한다. 그 지상 20미터 정상에는 사당이 세워졌었다.

직구라트가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피라미드가 왕릉이었는데 대하여 직구라트는 신을 모시기 위한 신전이었다.

 

 

3. 순장의 흔적

 

다시 우르의 왕릉을 발굴해보니 순장이 행해졌던 것이 판명되었다. 그 모습은 실로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왕릉에서는 무장한 병사나 가신단이 대열을 짓고 전차를 따르게 한 모습이었다. 정연히 정렬하여 죽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왕비의 능에서는 많은 시녀가 정장을 하고 악기를 다루는 악사들이 흐트러짐 없이 정연하게 줄을 이루어 죽어 있었다. 마치 그들은 대열을 짜고 의식용의 의상을 하고 머리 장식이나 금은 장신구를 달고서 지금 막 행렬이라도 할 것 같은 화려함으로 그대로 땅에 묻혀 있는 것이었다. 거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괴로운 모습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고대 중국의 은(殷)왕조에서도 순장이 행해진 것이 알려지고 있는데, 그것은 몸서리치는 잔혹한 의식이었다. 수백 명의 노예가 무참히 참수당해서 한 곳에 던져져있다.

아마도 한 줄로 묶이어서 달아날 수도 없게 하고 남김없이 참수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르의 왕릉에서는 스스로 자진하여 독배를 마시고 죽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시녀, 가신단, 많은 병사가 정열하고 일제히 독을 마신 것이 틀림이 없다. 미래의 신앙이 없었다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왜 이런 형식의 순장이 행해졌는지 지금도 알 수 없는 수수께끼이다.

 

 

4. 홍수의 흔적

 

다시 우리는 일찍이 이 유적에서 큰 홍수가 있었다는 흔적을 발견하고 있다. 그것은 두께 3미터에 이르는 점토층이 넓은 범위에 걸쳐 덥혀 있는 것이다.

연대는 기원전3,500년경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서 유프라테스강 일대에서 큰 홍수가 일어나 주변 도시가 수몰되어버려서 오랜 기간 물이 빠지지 않았던 것이 밝혀졌다.

이 무렵에 만들어진 길가메슈(Gilgamesh)의 서사시에서도 대홍수의 야기가 등장하는데 이들 이야기는 만들어진 허구가 아니고 실제로 일어났던 과거의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음이 증명된 것이다.

 

아마도 그 이야기가 각색되어서 3천년 후의 구약성서에 영향을 주어 노아의 방주설이 된 것일 것이다. 이 대홍수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고고학자 우리 자신 충격적인 발견으로 보여서 흥분한 나머지 런던으로 긴급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고 한다.

 

 

5. 수수께끼의 슈메르인

 

슈메르인이란 어떤 민족이었는가. 그것도 수수께끼이다. 슈메르인은 어떤 민족이며, 어떤 말을 쓰고, 어디서 왔는지 아무 것도 모른다.

슈메르어만 해도 주변 민족의 말과 어느 정도 유사점이 보인다. 발굴된 슈메르인을 그린 것으로 보이는 상은 어느 것이든지 눈이 크고 턱 수염을 기르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또 한 가지 그들이 나온 곳이 복잡기괴한 이유는 슈메르 문명의 바탕이 되는 문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리 발굴을 계속하여도 그 이전의 유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문명이 그에 영향을 끼쳐서 그 문명을 낳게 한 문명이 존재한다. 그런데 슈메르 문명에 관해서는 그것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가해인 것은 슈메르인이 쓰던 달력이다. 그것은 달이 차고 기우는 것으로 연월을 재는 태음력이라 부르는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랜 달력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쓰던 달력은 놀랍게 정확한 달력으로서 일식, 월식의 시기를 비롯하여 여러 혹성의 세세한 움직임까지 상세히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믿을 수 없는 것은 2만 5920년 걸려서 지구의 지축이 원을 그린다는 세차운동(歲差運動)의 주기까지 알고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땅에 등장하여 겨우 2천년 정도로 어찌하여 그런 데이터를 알 수 있었을까?

기록에 의하면 슈메르인은 당시 이미 몇 백 개의 천문용어를 쓰고 있었다는 것도 판명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하여 그런 고도의 천문학지식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다고 하는 60진법을 기본으로 하는 숫자를 확립하고. 그에 바탕을 두고 고도의 달력을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이 천문 지식에 더해서 놀라우리만큼 고도의 슈메르인의 문명은 무엇을 견본으로 하고 무엇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단지 말할 수 있는 것은 슈메르문명은 기원전 3,800년 전쯤 전에 기적이라 할 만한 달력, 고도의 수학, 복잡한 사화구조나 합금 기술을 가진 상태로 갑자기 역사에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슈메르문명이 고대사 최대의 수수께끼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6. 슈메르문명의 계승

 

우르는 그 후 기원전 2000년경 셈족(현대의 아랍인의 직계에 해당한다.)인 아무르인에게 정복당하여 이후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아무르인에 의하여 계승된다. 이처럼 슈메르인의 수도 우르는 선사시대인 5천 년 전에 농경민족이 정착한 후 여러 가지 민족의 변천을 거쳐서 5천년 사이에 도시로서 계속하여온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예는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유례가 없이 드문 존재이다.

슈메르의 위대한 문화를 계승한 아무르인은 얼마 없어 바빌론 제1왕조를 만든다. 그리하여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이라 하여 유명한 함무라비 법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것이 아니라 두 번째의 것이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도 그 실체는 높이 100미터나 되었을 거대한 직구라트라고 말하고 있다. 곧 이것도 슈메르인의 문화를 계승한 것이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만 해도 슈메르의 신화 <길가메슈>에서 인용한 것일 것이다. 이처럼 슈메르문명은 그 후의 세계 문명의 존재 방식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되었다.

지금 우리들이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있는 하루는 24시간이고 1시간은 60분, 1분은 60초라는 법칙은 60진법을 기본으로 한 슈메르의 고도한 수학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1 타스가 12개 1피트는 12인치라는 단위도 그러하고, 점성술에 나오는 황도 12궁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12주(기둥) 신들의 이야기도 그 뿌리를 찾으면 모두 슈메르 문명에 닿는다.

슈메르의 고문서에는 이들 경이적인 천문학의 지식, 고도한 의학, 합금술을 <신들이 준 선물>이라고 하는 불가사의한 표현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곧 그들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신들에게서 주어진 기성의 지식이라고 하는 것이 될까?

 

 

7, 슈메르문명은 신의 선물인가

 

실제 그들이 등장해서 쇠퇴하고 역사에서 모습이 사라진 2천년 정도 사이는 기술이 그 이상 발전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자신들이 독자적인 힘으로 산출한 지식이 아니고 무엇인가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기 때문일까? 다시 <혼합된 것>이라고 말하는 표현으로 인간을 나타내는 말이 나오는데 외계인과 원시인 같은 토착 생물과의 사이에서 유전자조작이 행해진 것 같다고도 생각된다. 그렇다면 인간이란 외계인과 미개인과의 사이에서 인공수정으로 만들어진 혼혈종이라는 것이 된다.

 

 

   

 

 

슈메르의 각지에서는 설형문자가 적힌 몇 만 매의 점토판 고문서가 발견되고 있다.

슈메르인은 <문명은 신으로부터의 선물>이라고 했다고 하는데 슈메르의 점토판 고문서에도 <우리들의 지식은 니비르에 사는 신에 의하여 주어졌다.>고 적혀 있다.

 

신은 슈메르어로서는 AN UNNA KI 곧 아눈나키라는 말로 표현된다.

AN은 천(天), NA는 <에서 내려오다>, KI는 땅을 의미한다. <아눈나키>는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 <아눈나키>는 누구였는가?

 

 

1970년대에 유태인 제카리아 시친((Zecharia Sitchin 1922-)은 슈메르 점토문자를 장기간 연구하여 해독하고 성과를 발표하였다.

점토판에는 니비르라는 혹성에서 찾아온 외계인 아눈나키가 아눈나키와 원숭이의 유전자를 써서 지구인을 과학적으로 창조하여 지구인과 함께 문명을 만들어 대홍수를 거쳐 다시 아눈나키가 인류의 문명을 가르쳤다는 말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아눈나키가 최초의 인류를 창조하는 대목을 제카리아 시친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슈메르의 고문서에 따르면, 먼저 아눈나키의 신체에서 <데에마>와 <시루>라는 <두 개의 성스러운 물질>이 채취되었다고 한다. <데에마>란 <기억을 보존하는 것>라는 의미로 현대로 말하지면 <유전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시루>란 <남자의 아눈나키로부터만 채취할 수 있는 것>이라 하고 있어서 <정자>를 의미하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아눈나키의 (데에마>와 <시루>를 청결한 용기 안에서 원인(猿人)의 난자와 섞는다. 곧 원인의 난자와 아눈나키의 정자를 수정시키는 것이다. 그 수정란은 <청결한 용기 안>에서 <주형(鑄型)>에 옮겨 일정기간 발육시켜 그런 후에 <탄생의 여신(女神)>의 자궁 곧 모체가 되는 여성인 아눈나키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이다. 여기까지의 수순을 되풀이하면 현대의 시험관 아기의 수순과 거의 같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슈메르문명은 실로 외계인이 가져온 문명으로 인간 자신도 외계인의 유전자 조작에 의하여 만들어진 존재가 아닌가 하는 가설을 낳게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가설이 단순히 상상력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야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세계에 대홍수의 전설이 남아 있는 것은 어떤 일인가? 또 슈메르 신화만이 아니라, 이집트, 인도, 티베트, 에스키모 등의 신화에 두루 갖추어진 불을 내뿜는 배 이야기나 하늘을 나는 신들의 이야기,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는 처절한 전쟁의 묘사가 나오는 것은 전적으로 우연일까?

신화 중에는 사실에 근거한 열쇠가 숨겨있는 경우가 있다. 곧 그것들은 고대에 지구적 규모로 일어난 하나의 사실의 증거가 아닐까 하고도 생각 된다.

슈메르문명이 과연 신들의 선물인가? 잃어버린 모자이크에 결정적인 증거라 할 수 있는 단편이 발견되었을 때에라야 이 복잡 난해한 퍼즐은 완성될 것이다.

 


출처 : 암흑의 역사
글쓴이 : 에녹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