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 (사 66:1-4)

호걸영웅 2016. 11. 18. 11:51

하나님이 돌보시는 사람 ( 66:1-4)

 

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서론)

1. 오늘의 핵심구절은 2절입니다.

2.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입니다.

 

2.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부모님의 돌보심(眷顧)을 통해 성장을 합니다. 돌본다는 말은 잠시 잠깐이라도 눈을 떼지 않고 살펴본다는 말입니다. 만약 어린 아이에게서 한 순간이라도 눈을 떼면 어린아이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인 것입니다.

어린 아이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죽인데도 모르고 갖다 버린대도 방긋 방긋 웃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은 호기심이 많이 있습니다.

이렇듯 어린 아이는 눈에 보이는 데로 손으로 잡아 그것을 자기 입으로 가져갑니다.

우리 인생들도 하나님께서 잠시 잠깐이라도 돌봐 주시지 않으면 결코 무사할 수 없을 것입니다.

 

3. 시편 기자는 시편 121 4절에서 하나님을 이렇게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라고 말입니다. 이 찬송 시는 우리를 돌보는 하나님께서는 아버지로서 또는 어머니로서 잠도 주무시지 않으시고, 또한 졸지도 않으시므로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우리를 권고(眷顧) 하신다는 것입니다.

 

4. 시편 2:7절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낳으신 하나님의 자녀들 입니다.

 

또 부모는 자식이 바르게 되라고 교육하고 훈계하고 그리고 책망을 합니다.

사람답게 살라고 훈계하고 회초리를 들어 매를 치는 것입니다.

고로 종종 하나님의 징계가 있더라도 이상히 여기지 말아야 할 줄 믿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참으로 돌봐 주시는지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 먼저 마음이 가난한 자입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돈, 권력, 명예 등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정의에 대하여, 나의 부족함에 대하여, 세상의 평화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궁핍, 굶주림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 욕심에 따른 삶에 대해, 나는 죄인이라고 자백하고 인정하는 마음, 죄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갈망, 겸허한 기도를 의미합니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밑으로 나오는 마음, 더러운 욕심으로 가득 차 있던 마음을 비우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마음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셔서 돌보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은 지극히 높은 분으로서 천지간 우주 간에 존재 하십니다.

이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하여 낮아지고 겸손한 사람들 안에 거하십니다.

본문 1,2절 초반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생겼느니라” 라고 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그 어떤 곳에도 모실 수 없을 만큼 크신 분이십니다.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한 예배당을 지어도 그 곳에 하나님은 거하시기엔 부족합니다.

왕상 8:27절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라고 했죠.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하여 자기의 말을 경청하시는 사람들의 마음을 성전 삼아 그곳에 거하시겠다는 것입니다.

57:15절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 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니라”라고

그렇습니다. 이것이 신비입니다.

하나님을 내 맘에 모실 수 있는 비결은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뿐입니다.

선지자 미가는 미 6:8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라고요.

 

성경 주석 학자인 카일 델리취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늘들의 하늘도 하나님에게 높은 곳이 아니고, 사람의 마음도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너무 좁은 곳도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비어 있는 겸손한 사람이야말로 높으신 하나님을 모실 수 있는 사람이요, 이 사람의 마음이 넓고, 높은 하늘이며, 이 사람이 천국을 소유한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5장에서 천국을 말씀하실 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에 들어가려면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고백과 함께 욕심으로 가득 차있던 마음, 욕심을 버리므로 마음이 가난해야 비로소 천국을 소유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통회하는 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신의 죄로 인하여 심한 영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자를 돌봐주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만이 죄를 미워 할 수 있으며, 이러한 사람만이 죄를 끊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예레미야가 사역하던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숭배를 하고 음행 죄를 지으면서도 자신들이 지은 죄에 대해 통회하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재난을 내리셔서 고통을 받게 하셨습니다.

3:3절에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네가 창녀의 낯을 가졌으므로 수치를 알지 못하느니라”라고 했고, 6:15절에서는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지는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니라.  내가 그들을 벌하리니 그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본문에서“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 5: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애통하다는 말의 뜻은 자기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보니 자기 자신의 죄가 너무 커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므로 아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에 대해 애통하는 사람은 죄를 끊고 돌아서는 사람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때리시는 회초리도 달게 받는 사람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 51:1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라고 했어요. 진정 죄 때문에 통회하며 괴로워하고 아파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못 본체 않으시고 돌봐 주신 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입니다.

끝으로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려워 떠는 사람이라 했습니다.

참된 효자는 돈 많이 벌어서 부모에게 좋은 집, 유명 메이커 옷 사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말씀을 경홀히 여기지 아니 하고, 부모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처럼 알아

그 말씀을 두렵게 생각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효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그 마음 안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오신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 됩니다.

다시 말씀 드려 하나님이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줄 모르고 불순종하는 자들은 결국 내어버리십니다. 불 붙이는 불쏘시개처럼 태워버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잠 13:13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라고

 했어요.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만천하를 벌벌 떨게 하는 왕이 되었을 때, 하루는 힘없는 선지자 나단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의 간통 및 살인방조의 죄를 정죄하며 책망을 하였습니다.

보통 왕 같았으면 여봐라 저 놈을 당장 쫓아 내 죽여라! 라고 하였을 텐데, 다윗은 그러지 아니하고, 그 말씀으로 인하여   눈물로 베개를 적시고, 침상을 띄웠다고 했을 만큼 회개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사고, 돌보는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사무엘과 같은 위대한 대선지자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고, 

변명하고, 핑계만 대다가 결국은 심판을 초래하여 자기 아들은 전쟁에서 전사를 하고,

그리고 자기는 칼로 자살하므로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말았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여러분! 먼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죄를 통회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떠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할 때 그래야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이며,

그리고 이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너는 내 아들 딸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사람들이며,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며,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오늘, 지금 천국을 소유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참고: 金 鐵 鎬/ 편집:익선 10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