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증거들 (고전15:3-9)
3. |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4. |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
5. |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
6. |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
7. |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
8. |
9. |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
서론)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은...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신 후, 삼일 만에 부활했음과
그리고 40일 후에 승천하심과, 그로부터 약 10일 후 제자들이 한 곳에 모였을 때, 강력한 성령의 강림의 역사를
그들이 체험했음을 믿습니다.
이런 일련의 초대교회에서 있었던 사건들은 세계의 역사와
인류의 가치를 완전히 뒤바 꿔 놓았습니다. 먼저는 유대사회에, 그리고
인근 중동지역에 그리고 로마제국과 유럽입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로마는 서기 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국교화 하였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과 성령강림이라는 큰 세 과정을 통한 거대한 인류역사의 변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활의 내외적인 여러 증거들에 대해서 6가지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가)부활의 역사성
먼저 부활은 기독교의
매우 중요한 교리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지붕 없는 집과 같습니다. 제대로 된 집이 아닌 거죠.
예수 부활 사건 직후 약 25년 정도 지난 후에, 고린도교회에서는 부활에 대한 신빙성에 대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떤 고린도 교회의 성도는 부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12절) 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했죠. 다시 말하면, 곧 앞으로 더는 부활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며 성도들의 부활 가능성을 부정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딤후2:18) 여기서 부활의 역사성 및 교리 논쟁이 벌어진 것이지요.
고로 사도 바울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의심이나 문제를 해결코자 본문 성경 말씀을 기록하게 됩니다. ,
본문 1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알게 한다’는 말은 ‘기억나게 한다’ 혹은 ‘일깨워 준다’는 뜻입니다. 이미 전한 부활의 복음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대한 말씀을 전체적으로 다시 정리하여 교훈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선 부활과 구약의 역사성에 대해 말씀했고, 본문
12-18절은 ‘만약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도 불가능하고, 기독교
자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씀합니다.
먼저 우리는 성경
자체를 통한 역사적 부활의 증거를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3-4절입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에는 구약성경을 의미하는 ‘성경대로’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이거 매우 중요한 이야기예요. 예수님의
부활은 구약 성경에 이미 기록된 예언들의 성취라고 말씀합니다. 즉 부활사건은 어느 날 갑자기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구약에서 300회
이상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 예언하고 있다고 증거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
부활을 위해 오래 오래 전부터 준비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목격자들의 증거보다 먼저 성경의
증거를 제시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오랜 준비하심으로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고로 우리는 부활의 증거를 찾기 전에 먼저 그 부활을 가능하게 하신 하나님을 구약성경 안에서 만나야만
합니다.
. 일례로 시22:14~22을 보면 놀라운 십자가 사건의 예언이 나와 있습니다. 잠시 소개해 드립니다.
14. |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
15. |
16. |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
17. |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
18. |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
19. |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
20. |
21. |
22. |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
이 시 22편은 예수가 십자가 달려 죽으시기 약 1,100여 년 전에 다윗이 지은 예언적 시편인데요. 당시에 이미 마치 무슨 유투브 동영상이라도 보았듯이 십자가 사건의 전말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21절은 정말 놀라운 예수부활을 이미하는 부분입니다. (재독하면...) 그러므로 이러한 구약의 예언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확실한 부활의 증거가 됩니다.
나)부활의 두 번째 근거는 목격자들입니다.
본문 5-8절 말씀입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목격자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수를 대충 제가 헤아려보니 514명이에요. 514명의 증인이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겠지요?
바울이 이러한 목격자들을
언급할 때는 구약적인 배경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본래 구약 시대에는 재판을 할 때,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동일한 증거를 제시하면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서 판결하도록 했습니다. 한 사람이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증거로 채택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
면에서 바울이 제시하는 증인 채택은 어머어마한 증거인단의 숫자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볼 수는 없었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주장입니다.
오늘날 역사는 예수님의 출생을 중심으로 B.C와 A.D로
나눕니다. 주전과 주후로 나누이죠. 즉 주님 오시기 전과
오신 후로 나누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서구적 세계관에서 이루어진 일이고, 지금까지 서구 문화가 세계를 한동안 지배한 결과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서구문화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모두 역사적 사건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주일은 롤즈데이 곧 주님의 날(Lord’s Day)이라 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부활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서양달력이 말하는 역사적 증언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증거라고 하겠습니다.
다)부활의 세 번째
근거는 바울의 개인적인 증거입니다.
물론 이것은 부활의 주관적 증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관적이라는 말은 보는 이마다 틀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관적인 증거도 다른 사람들의 동일한 다수의 증언과 같을 땐, 매우 신빙성을 갖게 됩니다. 9-11절 말씀입니다. //
9. |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
10. |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11. |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고 했습니다. |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적적으로 만났습니다. 그는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라 유대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젊은 시절 그는 기독교인들 핍박하는 무리들의 선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다메섹으로 숨어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러 가던 도중, 부활하신 예수를 만납니다. 그의 음성을 보고 거대한 빛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시력을 잃었고 갑자기 맹인이 됩니다. 이런 갑작스런 사건으로 금식하며 기도할 때, 예언자 아나니아의 방문과 기도를 통해 치료함을 받은 후, 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방인의 사도가 됩니다.
그래서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이토록 획기적인, 근본적인 변화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무엇이 그의 삶의
변화를 가져왔겠습니까? 부활하신 그리스도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평생 예수의 복음을 증거하다 순교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라)부활의 외적인 증거
사마리아에서 태어난 역사가 탈루스(Thallus)가 주후 52년에 기록한 그의 저서
사본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의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유명하다 합니다. 거기엔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해 목격자들의 자세한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오전 9시 경에 십자가에 달리셨다(막 15:25). 오후 12-3시에는 온 땅에 이상한 어두움이 가득하였다(마 27:45-46). 동쪽 사막으로부터 불어오는 모래 바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두움이 당시 유대 지역을 덮었다.}라고 했습니다.
또 탈루스의 글은 복음서의 예수님께서 운명하실 때의 마 27:51의 설명과 매우 흡사한 내용임을 보여줍니다: “이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막 15:38, 눅 23:45).”는 내용입니다.
2. 비슷한 사건이 매우 유명한 로마시대의 요세푸스의 기록에도 나타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예수 처형 당시, 성전 동쪽에 구리로 만든 육중한 니카노르 문(Nicanor gate)이 한밤중에 스스로 열렸으며, 성전지기들이 합심하여 겨우 문을 닫을 수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예수 십자가 처형 당시 지진과 희한한 일들이 예루살렘 성 여기저기서 일어났다는 증언을 신뢰할 만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마) 사회통념을 벗어난 기록의 증거
또 만약 예수님의 부활이 제자들의 거짓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제자들은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난 여인들의 이야기를 결코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법률은 여인들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이런 유대 관습을 이해하고 있었어요. 고로 “사도들은 저희 말이 허탄한 듯이 뵈어 믿지 아니하나…(눅 24:11)”라고 했어요. 여기서 ‘저희’는 여인들을 말합니다.
마가도 비슷한 내용을 기록하였죠:”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 전에 일곱 귀신을 쫓아내어 주신 막달라 마리아에게 먼저 보이시니,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 그들은 예수의 다시 사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고 했어요. 여성들의 증거를 무시했던 당시 사회적 통념을 뛰어넘는 부활사건 기록의 증거는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당시 예수 부활 사건은 너무나도 분명한 실존사건이라는 것이지요.
(여인들의 말조차 믿을 만하다는...?)
바)오늘의 마지막 증거; 수없이 많은 순교자들
처음에는 예수의 죽음이 무서워 도망쳤던 대부분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부활사건을 목격한 후,너무나도 힘있게 예수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순교했습니다. 죽여도 죽여도 변치 않는 그들의 일관된 주장은 “부활은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거짓사건을 위해 자기의 목숨까지 걸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어떤 핍박이나 죽음 조차도 바꿔 놓을 수 없는 사건은 바로 “예수의 부활”입니다. 초대교회로부터 로마시대에 순교 당한 사람들의 수는 무려 1천만 명이 넘는다고 교회 역사가들은 추정합니다.
결론) 순교는 지금까지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사건! 믿을수 밖엔 없는 사건! 그것은 바로 예수의 부활의 사건입니다. 할렐루야! (끝)
*041117안익선 목사/참고: 주병열, 이주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