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레몬서

빌레몬서 강해(화해와 용서의 권면)

호걸영웅 2022. 12. 18. 00:15

빌레몬서 강해(화해와 용서의 권면)

서론)

1.    저자=바울, 2. 기록 장소와 연대; 본문에 의하면 본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기록하였다고 하는데 (1: 9,10), 이때는 바울의 1차 옥중 생활에 해당되는 때로 비교적 자유로운 연금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이때 오네시모를 만나 그를 회심시켰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를 위해 본 서신을 써 두기고를 통해 빌레몬에게 보냈던 것이죠.
그런데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는 그가 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있을 때인 주후 58년이었다(19-21 ; 21:17). 그리고 가이샤로 호송되어 약 2년을 보냈다(24:27). 이때에 바울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하여 가이사의 재판을 호소하였고 따라서 다시 로마로 호송되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이때가 주후 61년경이었다. 그러므로 본서를 위시한 옥중 서신들은 주후 62년 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3. 기록 목적=주인인 빌레몬의 재산을 훔쳤거나 손해를 입힌 후 달아난 것?으로 추정되는 노예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나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새로운 일꾼이자 바울의 조력자로서 바울의 총 애를 받았죠(1:11-13).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보내기로 결심하고, 그를 더 이상 노예로서가 아닌 사랑하는 형제로서 받아들이도록 권고하는 편지를 빌레몬에게 보내게 됩니다. 또한 바울은 서신에서 자신이 풀려날 것을 소망하고 있으며 빌레몬이 자신의 처소를 마련할 것을 기대한다 했습니다(1:22).
따라서 본 서의 기록 목적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죠. 첫째, 오네시모에 대한 용서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요. 둘째, 그리스도의 정신에 따라 노예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보여 주도록 지혜롭게 요구함으로써 노예 제도를 정죄하지는 않지만 그 근본 정신을 뒤집어 노예들도 형제들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했습니다. 셋째, 바울 자신이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에 자신을 위한 처소를 빌레몬이 예비하였으면 하는 소망을 전하기 위함이다-라 할 수 있겠습니다.

4. 내용 전개= 본 서신은 세 부분으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①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에 대한 칭찬(1:1-7): 특히 본문은 본서가 단순히 빌레몬과 그 가족들만 이 아니라 그의 집에 모이는 모든 회중들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② 오네시모를 위한 사도 바울의 간청(1:8-16):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따뜻한 한 형제로 받아 줄 것을 간청하고 있음.
③ 바울의 개인적인 문제(1:17-25): 바울은 자신의 소망의 헛되지 않을 것을 확신하면서 동료에 대한 안부와 축복으로 본 서를 끝맺습니다.

본론)
)빌레몬에 대한 칭찬(1:1-7)
바울의 서신서 가운데 가장 간략하며 사신서(私信書; 개인에게 보내는 서신)의 성격을 띠고 있는 본 서는 회심한 일개 노예의 안전을 위하는 사도 바울의 애틋한 심정을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 중 본문은 일개 노예에 불과한 한 영혼의 안전을 도모하고자 먼저 빌레몬의 아름다운 헌신을 확신시켜 자신과 신뢰를 쌓는 것에 대하 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명령과 강압이 아니라 겸손한 권면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바울의 사려 깊은 행동을 잘 나타내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진실한 인사(1:1-3)
빌레몬에 대한 바울의 칭찬=바울은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는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는 '사도'라 는 말로 서신의 서두를 시작하고 있으나, 본 서는 '갇힌 자'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죠. 이는 복음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끼지 않고 헌신 한 사실을 빌레몬에게 주지시킴으로 뒤이어 언급할 노예 오네시모에 대한 관대한 조처를 호소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수신자들에 대한 이름을 세세하게 밝힘으로 상대방에 대한 그의 예의를 나타내 보여 주고 있죠. 이는 결국 미천한 한 영혼을 위해 철저하게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사려 깊은 바울의 모습을 나타내 주고 있는데, 오늘날 모든 신앙인들의 귀감이 되는 행동이라 하겠습니다.

) 빌레몬의 사랑과 믿음(1:4,5)
1) 빌레몬의 선한 삶
빌레몬에 대한 소식은 골로새서에서 로마 옥중에 있는 바울을 찾아온 그의 수종을 든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 에바브라에 의해 전해졌을 것입니다.
한편 빌레몬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도들을 사랑함으로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있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에 대한 사랑은 반드시 이웃과 형제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소유한 자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음을 바울은 더불어 증거하 고 있죠. 결국 참 믿음은 참사랑으로 구체화되고 참 사랑은 참된 간증으로 유익을 모두에게 끼칩니다. (고전13:13). 따라서 바울이 빌레몬에게 기도할 때마다 그를 기억하고 간구를 잊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죠.

2) 빌레몬에 대한 바울의 칭찬(1:6,7)
1)빌레몬에 대한 칭찬의 근거=본문에서 '믿음의 교제'란 구체적으로 두 가지를 생각 할 수 있죠. 먼저 믿음을 통한 모든 그리스도인들과의 교제를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믿음 안에서 물질적인 도움을 다른 성도들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레몬은 영적이든지, 물질적이든지 항상 성도들과 교제함으로 바울 일행 가운데 있는 선(, 선행),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 발견되어져야 할 모든 선행을 알 수 있게 하였던 것이죠. 이는 결국 로마의 성도들에게는 안정된 쉼과 새로운 용기를 얻게 하는 평안함을 주었고 (11:28), 바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영적인 기쁨이 되었습니다.

)
오네시모를 위한 간구(1:8-16)=바울은 그의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빌레몬에게 할 일을 지시할 수도 있었으나 겸손과 사랑의 마음으로 이제는 오네시모가 자신과 빌레몬 모두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내면서 빌레몬에게 그를 종으로서가 아니라 한 형제로 맞아 달라고 부탁하고 있어요. 오네시모에 대한 바울의 이 같은 사랑은 결국 그의 성숙한 신앙과 아울러 사망에 처한 인간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대하시고 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 사랑으로 간구한 바울(1:8-12)
1) 사랑의 간청=당시 사회에서 주인으로부터 도망친 노예의 생사 쟁탈권은 주인의 권한에 달려 있으므로 로마의 황제조차도 이런 주인의 권한을 침해할 수 없었죠. 따라서 빌레몬의 집으로부터 도망친 오네시모를 관대하게 용서하는 일은 주인 빌레몬의 마땅한 권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요청을 바울이 하기까지는 오네시모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관계로 바울이 그를 '유익한 자, 아들, 심복'이라고 부르게 된 것에는 더 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는 바울이 죄는 철저히 분쇄하되 죄인은 용납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죠(5:43 ; 8:7). 결국 바울은 이 간청을 통하여 한 불쌍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사랑과, 겸손 그리고 죄를 용납하기보다는 그 죄문제를 해결해 주는 깊은 애정을 지닌 그리스도의 사람임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고로 이런 점에서도 사랑과 겸손을 실천하는 바울의 인격(1:13,14)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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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네시모에 대한 특별한 부탁(1:15,16)
1) 오네시모에 대한 영접을 권면=바울은 빌레몬으로부터 재물을 훔치거나 손해를 많이 끼치고 도망친 오네시모의 행위 자체를 하나님의 깊고 오묘하신 섭리와 구속 역사의 한 단면으로 보고 있죠. 사실 오네시모가 노예의 신분으로 주인에게서 도망쳤기에 복음을 듣고 구원받을 줄은 오네시모 자신도 몰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정에 대하여는 예언되어진 것 외에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죠(24:36). 따라서 오네시모의 도피 행각 은 넓은 의미에서 빌레몬과 오네시모를 더욱 가깝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원대한 섭리에 따른 것임을 바울은 지금 빌레몬에게 일깨워 주고 있습니. 더구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노예가 아닌 사랑하는 한 형제로서 맞이할 것을 빌레몬에게 부탁하였죠. 이는 그리스도안에서 같이 구원 얻은 자에게 어찌 주인과 완전히 예속된 노예의 관계를 성립해야 하는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부탁과 축복(1:17-25)
노예 출신인 성도, 오네시모를 위한 여러 가지 변호와 권면을 그 주인 빌레몬에게 하였던 바울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네시모가 진 빚을 바울 자신이 변제해 줄 것을 약속하면서 빌레몬의 기쁜 소식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본 서신을 마감하면서 자신과 더불어 복음 사역에 힘쓰던 자들의 문안 인사를 함께 전하고 빌레몬과 그 가족에 축도함으로써 끝을 맺고 있습니다.

1. 손해배상을 약속한 바울(1:17-20)
1) 빚을 대신 지고자 한 바울=바울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불의를 행하고 금전적인 손해를 입힌 사실을 오네시모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모를 보내면서 그가 빌레몬에게 사죄할 때에 그 어떤 과거의 부담도 지지 않고 진심으로 사죄할 수 있도록, 빚진 것이 있으면 자신이 대신 갚아 주겠다고 하였죠. 이는 결국 바울과 빌레몬이 서로 떨어져 잘 알지 못하긴 하지만 영적으로는 서로 긴밀함을 느낀다는 의미입니다.
한편 빌레몬이 바울에게 빚을 졌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가 예수로부터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선교사역과 복음에 빚을 졌다는 것이죠(1:12). 실로 이 빚은 청산할 수 없지만 빚진 자가 마땅히 취해야 할 부분으로 응당 복음을 전하고 선한 행실을 드러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13:2-4). 따라서 이를 놓고 볼 때 빌레몬은 바울의 요구에 아무런 조건없이 응답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바울은 그에 대하여 억지로 그것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빌레몬이 정녕 진정한 은혜의식 속에 살아가는 자라면 자연스럽게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을 바울은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빌레몬에 대한 바울의 확신(1:21,22)
1) 바울의 마지막 간청= 사실 바울의 마지막 부탁은 오네시모가 노예의 신분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인이 되게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실 노예를 해방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주인의 고유 권한이었으므로 바울은 강요할 수 없습니 다. 하지만 빌레몬의 신앙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간구를 언급하지 않아도 그의 소망대로 이루어지지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빌레몬의 신앙과 인격을 이미 듣고 알았으며 이제 복음의 리더격이 된 오네시모에게 친절을 베풀면 그가 더 크게 복음을 위해 자유롭게 복음 사역을 위해 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넌지시 드러낸 제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한 간구 다음에 자신의 처소를 예비하라고 부탁하고 있는데, 이 말은 문자적인 의미의 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편안히 잠시 거할 수 있는 방이나 숙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는 골로새를 방문하고자 하는 바울의 확실한 소망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다.

3. 마지막 인사와 축도(1:23-25)
1) 바울의 동역자=바울이 문안 인사를 하는 가운데 제일 먼저 언급한 에바브라는 당시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로(1:7), 바울에게 찾아와 골로새 교회의 사랑과 당시의 상황을 전한 자입니다. 또한 그는 라오디게아 교회와 히에라볼리 교회도 담당하던 폭넓은 사역자로 복음에 매우 열심히 섬겼던 자였죠 (4:13). 그리고 바울의 동역자로 언급되고 있는 마가는 바울과 약간 불편한 관계였기도 하지만 바울 의 1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으며(11:25), 아리스다고는 바울의 최후 여행길까지 동행할 정도로 절친한 동역자였 죠(20:4 ; 27:2). 그리고 데마는 바울과 사역을 같이 하였으나 끝내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복음 사역을 포기한 자였습니다(딤후4:11). 그리고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 행전을 서술할 만큼 바울의 복음 사역에 동참했던 겸손하고 매우 신실한 주의 일꾼이었습니다(16: 10 ).

결론)

빌레몬서의 주제는 결국 화해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화목하셨고 오네시모는 바울을 통해 빌레몬과 화해토록 하였습니다. 깨어지는 인간관계는 항상 있을 수 있습니다. 단 그리스도 와 성령께서는 화해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우리가 화해해야 할 어떤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은 없으십니 까? 먼저 하나님 앞에서 기도 가운데 그를 용서하시고 기회를 타 화해하는 지혜와 믿음이 있으시길 축원드립니다. 할렐루야!
                                              

 112322 안익선 목사/ 참조:아펙트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