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장 강해(율법주의자들과의 문답과 이적들)
서론)
마15장은 게네사렛(갈릴리 바다의 북서쪽 평야지대)과 두로와 시돈에서 사역하신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단락은 1) 15:1-20 사람을 진정으로 더럽히는 것에 대하여,2) 15:21-28 두로와 시돈에서 가나안 여인을 만난 이야기, 3) 15:29-39칠병이어의 기적 등입니다.
본론)
가)마태복음 15:1-20, 사람을 진정으로 더럽히는 것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바리새인들의 구전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과 교훈입니다.
1. 구전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이견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중앙(예루살렘)에서 조사단이 파견되었습니다. “그 때에 바리새 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마태복음 15:1,) 그들은 예수 님과 제자들의 행동을 잘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흠을 하나 잡았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 나이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그것을 가지고 따지고 물었습니 다.
여기에서 그들이 기준으로 삼은 '구전 율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기록 된 율법을 주셨고, 또한 말로 전해지는 율법을 주셨는데, 그것이 이어져 랍비들을 통해 계속 기록된 율법에 대한 해석으로 구전 율법을 주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이 주후 200년 경에 집대성되어 기록된 것이 '미쉬나'입니다. 그리고 '구전율법'을 가르치기 좋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해석한 것이 ‘탈무드’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고 먹으라는 것은 미쉬나에 없습니다. 아마 예수님 당시에 잠시 가르침으로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제사장이 제사 드리기 전 손 씻는 것이 출30:17 ~21절에나오는데, 그것을 모든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매우 지나친 요구입니다. 물론 그것이 위생상에는 좋지만 말이죠.
음식을 먹기 전 손을 씻는지 씻지 않는지의 겉모습을 가지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 들을 판단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과 그 일행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습 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그 법은 전통적인 구전 율법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긴 어렵습니다.
우리는 좋은 교회와 나쁜 교회를 판단하는데, 드럼이 있는지 없는지로 판단하기도 하고 교회에 십자가가 있느냐 없느냐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 느냐”(마태복음 15:3)시며, 그들의 판단 기준의 부족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마태복음 15:5–6)라고 하시며, '고르반'이라는 것은 '하나 님께 드림'이라는 의미인데, 부모를 공양해야 하는 재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리겠노라'고 맹세하면, 그는 맹세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그 재산으로 부모를 공양하는 의무가 면제되었 습니다.
실제로는 그 재산을 여전히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의무만 면제되는 얄미운 '거룩한 맹세'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겉으로는 경건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효도는 등한시하며 자기 이익만 챙기는 사람들 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러한 일은 하나님 뵈기에 악한 길입니다.
2.진정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먹는 것에 대해 말이 나온 차에…… 예수님께서는 음식을 가지고 마음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 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마15:11)= 사람을 잘 판단하려면 그 사람이 무엇을 먹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무엇을 말하는지를 보아야 함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외부의 음식은 혹 그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의 영혼 을 더럽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잘 대변 하며 그 사람을 상하게 하고 망하게 하기도 합니다. 고로“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15:18)고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살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누군가를 판단할 때도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통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지금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보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예수님 의 말씀을 보고 따르기 때문에 그들은 옳은 길로 인도되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해석하는 미쉬나가 있습니다. 미쉬나는 많은 것을 덧붙 여서 율법을 더 설명합니다. 그런데 그 설명은 시대를 반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쉬나는 시대마다 랍비가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 견해에 따라 차이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 그 해석은 오류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참된 의미를 놓치고 구전율법의 조항에 집중하다가 보니, 율법의 핵심이 되시는 예수님을 놓쳤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알기 위해서는 말씀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오늘날 모든 말씀의 중심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 다.
나)가나안 여인의 믿음(마태복음 15:21-28)
1.가나안 여인
예수님은 높아진 유대 당국과 헤롯의 관심과 압박에서 벗어나 두로와 시돈이라는 다소 먼 이방지역(북서쪽 해안)으로 이동하여 사역하셨습니다. 그곳에서 한 가나안 여인을 만나십 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 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22절) 라고 외쳤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딸의 치료를 간구하였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24절)
하십니다. 예수님은 구약 시대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연결하는 분으로 오셨습 니다. 그러기에 구약시대부터 하나님의 백성으로 이어온 사람들에게 이제 시작된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더 급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역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먼저 집중되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전도 사역에 있어 일차적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고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26절)하셨습니다. 즉 이방인은 일차적 사역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예수님은 두로와 시돈이라는 이방지역에 계셨습니다.
이전의 초기 사역이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지역이었다면, 그 이후의 사역은 마지막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시기 전까지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이방지역을 순회하시는 사역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이방지역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을 잠깐 엿볼 수 있겠습니다.
2.부스러기의 축복도 축복이다.
예수님께서 그 여인에게 자신의 사역의 중심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여인이 답변하였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 다"(27절)=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주지 않는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여인은 그것을 이해한다며 말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떡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먹다가 땅에 떨어져 버린 부스러기라도 주십사 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여인의 참된 간절함과 겸손 함, 그리고 지혜로움에 김동하셔서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이 크도다"(28절)라구요. 분명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의 사역의 중심 대상이 아니 었습니다. 아직 순서가 안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간절함은 예수님의 은혜의 부스러기라도 축복임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덧입게 됩니다.
부스러기 축복도 축복입니다. 예수님 보시기엔 작지만 죄인 된 우리에겐 결코 작지 않은 축복입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간절함으로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 마태복음 15:29-39,칠병이어의 기적
29절 부터는 예수님께서 이방인 지역인 갈릴리 호숫가 남동쪽(데가볼리 지역)에서 사역 하신 이야기입니다.
1.멈추지 않는 사랑
예수님은 시돈에서 데가볼리 지역으로 좀 더 이동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사 갈릴리 호숫가에 이르러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시니"(29절) 시돈에서 갈릴리 호숫가 쪽 (데가볼리 지역)까지 직선 거리로 최소100km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셨기 때문에 매우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그렇게 힘드셨음에도 불구하고 데가볼리에서도 여전히 사람들에게 천국 을 전파하셨습니다. 30절= "큰 무리가 다리 저는 사람과 장애인과 맹인과 말 못하는 사람 과 기타 여럿을 데리고 와서 예수의 발 앞에 앉히매 고쳐 주시니"라 했습니다. 이 지역도 이방인 위주의 주거 지역입니다. 이곳에 나온 사람들도 대부분 이방인들입니다.
그들은 천국 복음에 대해 유대인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잘 알아듣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 앞에 나온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연약하고 병든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들이 비록 이방인이어도,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여도 사랑하셨습니다. 피곤하고 힘드셨어도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에 모든 힘을 쏟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엿볼수 있습니다.
2.칠병이어의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위하여 베푸신 것이라면? 칠병이어의 기적은 이방인들을 위하여 베푸신 기적입니다. 데가볼리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을 위해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일곱 개의 빵과 두 마리의 생선을 가지고 남자만 사천명(여인과 어린이를 빼고)을 먹이셨습니다.
왜 칠병이어 기적을 행하셨습니까? 그 권능을 보이기 위해서 일수도 있지만, 그들의 배고픔을 달래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내가 무리를 긍휼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매 먹을 것이 없도다. 길에서 기진할까 하여 굶겨 보내지 못하겠노라 (32절)”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사람의 한 끼 식사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으시고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의 배를 채워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작은 필요에 대해서도 무심치 않으십니다. 그분의 백성의 작은 필요, 더 나아가서는 그 백성이 아닌 이방인의 작은 필요까지도 마음을 써 주시며 긍휼을 베푸십니다. 언젠가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를 주기 원하십니다.
결론)
마 15장은 율법의 참된 의미와 그 정신이 무엇인가?하는 점과 사역에 순서가 아니라 할지 라도 규칙이나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아니하시고 참된 믿음엔 반드시 반응하여 주시고 사랑을 베푸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개에게 비유되었던 이방인에게 조차도 그 사랑의 마음은 극진하신 예수님의 사역, 곧 칠병이어의 기적을 보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는 일에도 예수께선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
012026 안익선 목사/ 참조: 장석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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