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기를 힘쓰자 (히10장19-25 )
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교회 성장학에서는 사회학적이고, 통계적인 연구를 토대로 이렇게 말합니다.
한 주일 교회에 안 나가면 불안해집니다. 두 주일 교회에 안 나가면 안 나올 이유가 생겨납니다. 세 주일 안 나가면 걱정거리가 생기고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움이 옵니다. 네 주일 안 나가면 심상해집니다. 사 개월을 안 나오면 벌써 그는 술집에 앉아있게 된다고 합니다. 전혀 딴사람이 되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사 개월 안 나오면 교인에서 벗어난다고 합니다.
여러분, 성도가 주일 예배에 나올 때마다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죄송한 이야기이지만 목사의 설교가 시원찮아서 공치는 날도 있겠지요. 그래도 나와야 됩니다. 나온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나오면서 우리의 신앙이 유지되고 이 속에서 우리의 영이 힘을 얻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와서 삶의 힘을 얻어야 하는데, 어찌하다 보면 발길이 뜸해져서 그만 딴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인간관계 분야의 권위자인 위컴 박사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건을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교환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관계가 물질적 관계나 비즈니스를 위한 관계로 바뀌면 비인간화되는 것입니다. 만남은 어디까지나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요 자신을 교환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시골 출신 청년으로서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마케팅 세일즈 컨설팅 회사의 CEO 키이스 페라지(Keith Ferrazzi)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관계와 관련해서 「혼자 밥 먹지 마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썼습니다. 혼자서 밥 먹지 말라고 하는데, 혼자서 밥 먹는 것 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삶의 목적과 방향과 내용을 잘 지적하고 제시해줍니다. 인생의 모든 만남은 중요하며 인생은 그 자체가 만남이며 아무도 혼자서 성장하지 않습니다. 혼자서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혼자서 크는 사람은 없습니다.
또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하겠지만, 내 자신이 도와야 할 사람과 만나라고 합니다. 그래야 만남의 영역이 건강해집니다. 또한 사람을 만날 때에는 사람은 모두가 다 인정받고 싶어 한다는 요구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만나라고 합니다. 내게도 요구가 있듯이 저에게도 요구가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인정받고 받고 싶듯이 남의 삶과 그 의미를 인정해주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만나라는 것입니다. 더 소중한 것은 함께하는 지혜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모든 만남을 통해서 계속 배우는 것입니다. 끝없이 배워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에 "모이기를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이기를 힘쓰라. 특별히 "그날이 가까올 수록 모이기를 힘쓰라." 교회는 모임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내가 거기에 있겠노라."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의미입니다. 물리적으로 모였다고 모인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모이고 마음이 열려서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하나가 되는 그런 체험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서울의 어느 큰 교회에서, 여성으로서 65세를 넘은 분들이 모인 샬롬부를 조직했는데 그분들은 아주 재미있게 잘 모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남자 분들을 위해서는 갈렙부를 조직했습니다. 그런데 잘 안 모였었다고 합니다. 왜 그런지 자세히 분석해 보니까, 참 재미있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교수에서 은퇴하고 의사에서 은퇴하고 사장님이 은퇴해서 그 은퇴한 분들이 모이는 모임인데, 남자 분들이 처음에 한 5년 동안은 절대로 안 나왔다고 합니다. '내가 누군데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이런 말까지 합니다. "아, 그거 너절한 사람들하고 내가 왜 만납니까?" 너절한지 아닌지는 두고 보자 하는 마음으로 몇 년을 끌고 가니까 한 오년 지나면서 코가 쑥 빠져서 참여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이가 한 칠십이 넘어서부터 제대로 모입니다. 그때가 되어야 사람이 되는 거죠. 그래, 칠십을 넘고 보니까 장관도 국회의원도 그것 아무 것도 아니게 됩니다. 아! 이게 한 칠십 되어야 사람이 되어지는 구나하는 것을 담임목사로서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은 뭐라고 합니까? 첫째,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그날이 가까올 수록 모이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모여야 하겠습니까? 큰 제사장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여기에 새롭고 산길이 있고, 생명의 길이 있고, 생명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생명의 말씀을 찾아서, 이 샘을 찾아서 우리는 모여야 합니다. 여기에서 구원을 받고, 여기에서 말씀을 받고, 여기에서 진액을 받고, 여기서 소생함을 얻기 때문에 모여야 하는 것입니다.
둘 째는 "양심의 악을 깨닫고!"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교회에 나와서 성도 간에 사귀면서 양심이 새로워집니다. 세상에서 더러워진 양심, 변질된 양심이 교회에 와서 깨끗한 양심으로 바꾸어지더란 말씀입니다. 마치 아무리 고급차라도 차는 주유소에 들리고 정비소에 들려야 하듯이, 차가 제구실할 수가 있는 것처럼 우리는 말씀의 주유소에 들려서 생명력을 공급받고 정비소에서 고장난 것을 고치고 해야 비로소 계속적으로 달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오늘 성경에 보니까 '믿음 소망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만히 두면 자꾸 세상으로 기울어 절망하게 되지만, 하늘나라를 지향하면서 소망을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을 새롭게 하여, 믿을 것이 무엇인지, 믿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교회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소망을 두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부지런히 나와 모이면서 소망이 새로워지며, 선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넷째, 본문에 보면 "서로 선행을 격려하며!"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서로 만나면서 선한 마음이 합칠 때 더 선해집니다. 선한 마음이 합쳐지면 강한 힘을 얻게 됩니다. 이것과 관련한 재미있는 실험결과가 있습니다. 닭을 치는 사람이 닭장에 있는 닭에게 모이를 한껏 줍니다. 닭들이 실컷 먹고 이젠 더 먹을 수가 없어서 숨을 몰아쉽니다. 푸우 소리 내면서 누워 헉헉 숨을 몰아쉽니다. 이러고 있을 때 굶겨놓은 닭을 그 닭장 안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러면 굶겨놓은 닭이 들어가서 허겁지겁 모이를 먹으면 배가 불러서 누워있던 닭이 벌떡 일어나서 또 먹어요. 죽는 줄도 모르고 먹어요. 이게 뭘 말하는 것입니까? 공동체에서 서로의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견물생심이랄까요? 군중심리랄까요?
선한 사람 속에 들어가면 어느새 선한 일에 점점 격려가 되고 힘을 얻게 되지 않습니까? 착한 사람들 무리 속에 들어가면 나도 착한 사람으로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선행을 격려하며" 이 얼마나 중요한 얘깁니까? 간혹 그런 경우가 있는데, 의료선교회 같은 모임을 따라가서 큰 은혜를 받는 분들이 있습니다. 의료선교회 모임에는 의사선생님들은 몇 분 없어요. 나머지는 다 심부름꾼이죠. 그걸 따라갔다가 큰 은혜 받는 분들 있어요. 왜요? 아, 그 불쌍한 사람, 악취가 나는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는 의사를 보니까 천사같이 보이는 거예요. 참 대단한 분들인데 나는 무엇을 했는가? 선행을 격려하며 - 고독한 가운데서도 선행을 할 수 있겠지만 교회라고 하는 큰 공동체 속에서 선행을 격려하고 격려 받아서 나 또한 큰 선을 이루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옛날 초대교회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천년 그 당시는 계급사회입니다. 철저한 계급사회입니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글 가운데도 나옵니다. 그는 말합니다. "노예는 사람이 아니다. 노예와 당나귀의 차이는 당나귀는 말을 못 알아듣고 노예는 말을 알아듣는다는 것뿐이다." 노예들이 서로 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노예들은 말을 못합니다. 꼭 동물처럼 웅얼거리며 말을 못합니다. 그렇게 해놓고 듣기만 하도록 한 것입니다. 이것이 수십 년이 지나니까 "노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 것입니다. 자, 그런데 교회에서는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교회에서는 함께 만나서 형제와 자매가 됩니다. 빌레몬서에도 보면 노예를 형제라고 부릅니다. 교회에서만 노예와 주인이 함께 만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만납니다.
발견된 로마 황실의 고문서 가운데 이런 말이 다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부도덕하다"는 것입니다. 왜 부도덕한가 하면, "노예와 주인이 함께 먹더라"는 것입니다. 부도덕한 무리들이라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이게 바로 초대교회입니다.
요즈음 21세기의 어려운 병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울증, 자폐증, 치매증입니다. 그 중 치매에 걸리면 정말 큰일입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이것이 기도제목이 되었습니다. 치매 안 걸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 기도가 바뀌었답니다. "치매 전에 죽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정말로 치매에 걸리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변의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줍니까? 마지막에 인격이고 재산이고 아무 것도 아니게 됩니다. 다 망가지고 마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에게 치매를 예방하는 길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치 매의 첫 단계는 혼자 있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뭐라고 하든지 누구누구를 만나기 싫어하면 그때가 치매로 가는 첫 길입니다. 만나기 싫어하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됩니다. 사람 만나는 게 반갑고 즐거워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무슨 소리 듣기 싫어지면 치매로 가게 됩니다. 아무 말이라도 다 들어줄 수 있는데, 들으면 약이라도 될 수 있는데, 그저 듣고 또 듣고 싶어 하는 마음이어야 하는데 듣기 싫어진단 말입니다. "입 다물어. 조용히 해." 이게 치매로 통하는 겁니다. 마음 문을 열어야 되겠습니다. 마음 문을 열어서 듣고 싶어 하고 만나고 싶어야 하는데……. 좀 얘긴 그렇습니다마는 수다쟁이가 치매 안 걸린답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떠들고 열심히 듣고 그래야 되요. 부부싸움이 괜찮대요. 그게……. 열심히 싸우고 정신 쓰니깐……. 어쨌든 중요한 것은 멍청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홀로 있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치매로 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식이란 말이 무엇입니까? 진정한 정신적 휴식은 시간과 공간과 인간관계라는 세가지의 변형된 조건 아래에서 이루어집니다.
시간적으로는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일상적인 시간이 아니라 비일상적인 경건한 시간입니다.
장소로는 기업하는 장소도 아니고 가정도 아닙니다. 장소를 옮겨서 교회 또는 예배드릴 수 있는 곳으로 모입니다. 바로 장소가 또 비일상적이어야 합니다.
다음엔 인간관계가 비일상적이라야 합니다. 일반적인 만남은 사업상 이익이나 세속적 즐거움 따위가 이루어집니다. 비즈니스 적으로 만납니다. 그런데 그것과 관계없는 만남 바로 그것이 안식이 됩니다.
그러니까 교회라는 곳에서 만나는 것은 비즈니스가 아닙니다.. 교회는 돈 벌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명예를 얻기 위한 곳도 아닙니다. 이곳은 자기의 영혼을 위하는 곳이 아닙니다. 온전하고도 경건한 만남이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날이 가까올 수록, 하나님 뵈올 날이 가까워 올 수록, 한 살이라도 더 먹을 수록, 더 열심히 모이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마음을 열고, 깨끗한 마음으로 모이고, 예배하러 모이고, 찬송하러 모이고, 선행을 격려하고 그래서 믿음과 소망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임 속에서 나라고 하는 존재가 더욱 다듬어지고, 더욱 빛이 나고, 더욱 단단해 져 가고,,더욱 거룩해지고, 더욱 더 상처받은 영혼이 회복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참 된 믿음의 성숙된 성도의 삶이 빚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모이기에 힘쓰고 격려하는 복된 여러분들이 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참조: 2006년 02월 12일 곽선희 목사
편집; 2012.3.15.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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