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고난 받음의 의미 (시 119:67-72)

호걸영웅 2012. 5. 18. 22:18

                고난 받음의 의미 ( 119:67-72)

        
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가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를 지키리이다

70 저희 마음은 살쪄 지방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승하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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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인생은 고난 백화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백화점에 다양한 물건들이 있는 것처럼 인생 길에는 다양하고 많은 고난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세상을 들여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행복보다는 불행이, 형통 보다는 고난이 예상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인생은 기쁨과 슬픔을 오가는 시계추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5:7절에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과 같으니라'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인생이 고난을 받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야기이고, 불꽃이 위로 올라가는 것처럼 정신을 못차릴 만큼 당황스럽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겐 이 고난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절대 필요합니다. 고난에 대한 이해가 잘 되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본론)

 

 []고난의 교과서,

성경에는도 고난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난의 대명사는 욥이 당한 고난입니다.

1>고난의 대명사로 불리는 욥의 고난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욥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의 인물들을 평가할 때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하나님께서 사단 앞에서 두 번씩이나 칭찬한 사람은 욥 밖에 없습니다.

1:8절에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또 욥2:3절에도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⑵그렇다면 이런 욥이 왜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욥이 당한 고난은 특별한 경우의 고난이었습니다. 자식 열 명이 하루아침에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그 많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건강한 욥이 갑자기 발바닥으로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생겨나, 너무나 괴롭고 슬퍼서 그 몸에 재를 뿌리고 기와 조각으로 온 몸을 북북 굵고 있을 때, 남편을 격려하고 위로해야 할 아내가 욥을 저주하며 떠나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⑶우리가 욥의 고난을 통해 배울 교훈은 그의 위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1: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쉽게 표현하면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간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욥의 이 신앙 고백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이 땅에 가진 것 모두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언젠가는 다 놓고 갈 것입 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주셔도 감사하고 안주셔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비참하고 가난할 때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가난할 때도 범죄하지 않습니다.
자기 본래의 모습은 빈손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욥은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이야말로 알몸 인생 고백보다 더 위대한 고백이 아닙니까? 보통 사람들은 부유할 때,타락하고 방탕하고 죄를 짓습니다. 또 빼앗기면 원망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앙심을 품고 죄를 짓습니다. 반면,욥은 가졌어도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청지기의 마음으 로 겸손했습니다. 또한 빼앗겨도 하나님이 당신것을 당신께서 가져간 것으로 믿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고, 탄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전5:15절에서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 다.

㈂이어서 욥은'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하면서,하나님은 우리의 경배의 대상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욥은 고난과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욥의 찬송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재산이 불타고 자식들이 참변을 당하고, 자신은 병들고, 아내는 곁을 떠나는 처절한 고난에 시달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욥의 정신입니다.얼마나 귀한 신앙입니까?


⑷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설명키 어려운 고난이 찾아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착하고 선한 사람일수록 이유를 모르는 고난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흔하게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유가 있는 고난인것 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워도 하나님만을 사랑할 수 있는가?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이 욥도 그런 차원에서 시험하신 것입니 다. 고난을 이긴 욥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많은 복을 받습니다.

 

42:12-13절에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 약대 육천, 소 일천 겨리, 암나귀 일 천을 두었고, 아들 딸 십 남매를 하나님께서 욥에게 주셨는데 그 자녀는 전국에서 제일 아리따 운 여자였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는 종교입니다.
일단 시험에 통과하면 대박이 터지는 것입니다.

1: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고 했습니다.

'로저스'란 분은 '하나님은 우리가 견디어 내는가를 시험하시고, 마귀는 우리가 고꾸라지는지를 시험한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욥이 고꾸라지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이고 하나님은 욥이 견디어낼 것을 보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영국의 대설교가 '스펄존' '하나님이 그 자녀를 풀무에 던지실 때는 하나님도 그 안에 같이 들어가신다.'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에 던졌는데 느부갓네살이 본 것은 네 사람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신의 아들같은 모양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만 두고 도망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그리고 71절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 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난의 참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42:5절에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욥을 포함하여, 요셉도, 다니엘도, 다윗 도 고난 중에 하나님 이 찾아와 주셨습니다.  교회의 고난도, 개인 적인 삶의 고난도, 우리 모두 참고, 이기며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고난이 우리에게 신앙의 성숙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오는 고난의 이유는 어떤 것들일까요?

 
⑴먼저 죄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혹은 가까운 조상의 여러 모양의 죄로 얻은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2)연단을 목적으로 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옛날 대장간에서는 단단한 칼을 만들기 위해서는 철을 연단 했습니다. 불에 넣어서 달구고 꺼내서 망치로 두들깁니다. 그리고 물에 넣어서 식히고 다시 불에 넣었다가 꺼내서 또 두들깁니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서 단단한 칼이나 연장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연단 하시는 방법도 동일합니다. 23:10절에 욥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고 했습니다.
고난의 과정을 잘 통과하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믿음을 가지고 고난을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⑶가족이나 민족을 보호 및 인도하시려는 의미의 고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서 종으로 팔려 종살이도 하게 하시고 ,또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해서 억울하게 감옥살이도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 고난의 삶은 훗날 애급의 총리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에 앉게 하시므로 7년 대 흉년을 예비케 하고 그로 말미암아 히브리인들을 보호하도록 인도해 주신 것을 봅니다.

 

(4)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받는 고난도 있습니다.  요셉의 경우,요셉은 형들의 질투심 때문에 고난을 당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 때문에도 감옥에 갔습니다. 상상하지 못할 일입니다. 그러나,살다보면 이런 고난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⑸사명을 버림으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요나는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를 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명을 버리고 욥바에서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배 밑창에서 잠을 자다가 풍랑을 만났 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을 죽은 자 처럼 되어 고난을 받았습니다.

사명을 귀히 여기시길 바랍니다.


⑹공동체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내가 어떤 공동체에 속해 있는데 그 공동체가 어려움을 당하면 나도 그 어려움을 함께 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연대책임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에 유대는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을 당합니다. 유대의 멸망은 유대인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심판으로 인한 고난은 불의한 자들만 당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경건한 사람이었 습니다. 하나님은 어린 그를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선지자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는 유다의 멸망을 가슴 아파하며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중보 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예레미야는 그렇게 경건했던 사람이지만 유다가 당하는 고난을 함께 당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경건한 예레미야도 그 당시 불의 했던 유대인들과 같은 나라 백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남이 잘못했는데 내가 고난을 당하는 일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빠가 사업을 하다가 부도가 났으면 아빠만 물질적인 고난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도, 아이들도 함께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 공동체의 일원이기 때문입니다.


⑺이유를 모르고 겪는 고난도 있습니다. 벧전2:19절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매한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당하는 고난을 말하는 것입니다.

 

⑻자업자득으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은 '자기가 저지른 일에 스스로 그 결과를 받는 결과'입니다. 다시 말하면 심은 대로 거둔 결과입니다. 6: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은 많은 경우 자업자득입니다. 그렇다할지라도,철저하게 하나님께 회개하는 삶을 살때 회복될 수 있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분명한 처방, 몇 가지를 주십니다.

(1)고난 중에도 인내하고 기쁘게 여기라고 하십니다. 5:11절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고 했습니다. 욥은 끈질기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원망 없이 인내하는 중에 결국 하나님께 크나 큰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고난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일찌라도, 온갖 시험을 인내로 참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2-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온갖 시련을 신앙으로 담대히 맞이하는 그 자세 앞에 승리의 생활이 분명히 있습니다. 할렐루야!

(2)고난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시겠다고 성경에는 여러 번 약속해 주셨습니다.
43:2절에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라'  물을 건너고, 강을 건너고, 불을 건너는 것은 우리가 당하는 시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큰 시련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121:3절과 7절에도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라고 하신  이 약속을 절대 의심치 않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3)아울러,하나님은 고난 중에서도 감당할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고전10:13절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또 고난 중에서도 능히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일곱번 넘어질찌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라고 시편은 말합니다!
⑷시30:11절에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고난에 참예하는 자는 주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시절에 신하의 아내가 유산을 한 후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죽음만 생각한다는 소식을 여왕이 듣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왕이 그녀를 방문한 이후 여인이 놀랍게 회복되어 삶의 안정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때 어느 신문기자가 그 여인을 찾아와,'도대체 여왕이 찾아와 무슨 말을 해주었냐?'고 묻자, 그 여인은 '여왕은 제 손을 잡고 꼭 한마디 말만 하셨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어떤지 내가 알아요'
그런데 그 한마디의 말은 과거에 여왕도 유산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말이었습니다. 여왕도 과거에 유산의 아픔과 상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인은 고난이 혼자만의 고난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고난의 아픔이 물러가고 소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결론)

 

기독교는 고난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고난으로 시작된 종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거기서 도망가는 일은 없습니다. 'No Cross, No Crown' 입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부활의 영광도 없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다면 상급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이 찾아오면 상급이 있음을 알고 그 고난을 잘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고난은 더 큰 고난을 이기게 할 것입니다.

 

벧전4:13절에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기도로 이기십시오. 말씀으로 이기십시오. 형제 자매들과 연합하여 이기십시오. 여러분이 예수님을 다시 만나실 때,이긴 자들에게는 큰 상을 받을 것입니다.성령 충만으로 이기십시오. 예수 이름으로 이기십시오. 능히 이길 힘 주시는 예수 안에서 능치 못함을 발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


2012.5.15.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