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리고를 점령하라! (수 6:8-21)
8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치매 제사장 일곱이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 앞에서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그 뒤를 따르며
9 무장한 자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들 앞에서 진행하며 후군은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더라
10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레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11 여호와의 궤로 성을 한 번 돌게 하니라 무리가 진에 돌아와서 진에서 자니라
12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니라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궤를 메고
13 일곱 제사장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여호와의 궤 앞에서 계속 진행하며 나팔을 불고 무장한 자들은 그 앞에 행하며 후군은 여호와의 궤 뒤에 행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며 행하니라
14 그 제 이 일에도 성을 한 번 돌고 진에 돌아오니라 엿새 동안을 이같이 행하니라
15 제 칠 일 새벽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서 여전한 방식으로 성을 일곱 번 도니 성을 일곱 번 돌기는 그 날뿐이었더라
16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17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기생 라합과 무릇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살리라 이는 그가 우리의 보낸 사자를 숨겼음이니라
18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20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21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서론)
오늘 말씀에는,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이 불쌍히 보시고,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430년의 종살이를 마감하게 하고,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홍해를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향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만 건너면 완전히 애굽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줄로 생각했고 모든 것이 끝난 줄로 생각했습니다. 이젠 완전 자유! 완전한 독립! 완전한 해방을 누리며 행복하게 살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출애굽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한 전반전에 불과했습니다.
이제부터 정신을 차려야 하고, 용기를 내어야 하고, 더욱 담대해야 했습니다. 후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40년 동안 광야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광야를 지나는 동안, 많은 배고픔을 당해야 했고, 추위에 떨기도 했으며, 때때로 죽음의 위기를 수도 없이 넘기는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고 고달플 때는 애굽을 생각하기도 했고, 자기들을 인도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나안을 향해 계속 나아갔습니다.
결국 많은 고생과 방황 끝에 가나안 땅 입구까지 왔습니다. 백성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터졌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하나님께서 느보산에 남게 하신 후,천국으로 데려 가 버렸습니다. 백성들은 실망하고 낙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과 좌절 가운데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셨습니다. 그가 바로 본문의 주인공 여호수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너서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목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에 들어가는 입구에 장엄한 철갑성인 여리고 성이 딱 가로막고 서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길을 가로막는 최대의 장애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어떻게 무너뜨렸으며 ,우리 삶 속에 여리고 성은 무엇이며, 어떻게 무너뜨릴 것인가에 대해, 같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가)여리고 성은 어떤 성인가?
신약에서는 소경 바디매오와 삭개오가 살던 곳이 여리고였습니다. 여리고는 그 당시 작은 도시였습니다. 요단강 대평원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서, 군사시설의 요충 지대이며, 따라서 교통의 중심지입니다. 선교여행을 가보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 지역으로 갈 때에 이곳에서 점심을 드셔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도시락에 김치를 함께 드셔야 하므로, 휴게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반드시 잔디밭 저~ 가장자리 끝에서 드셔야 합니다. 좀 불쌍해 보이기도 하겠지요?
여리고는 '향기 나는 곳'이란 뜻으로 종려나무와 삼나무가 우거진 곳으로서, 사람들은 '종려나무의 성읍, 향기 나는 성읍'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런데 그 여리고 성은 얼마나 견고한지, 어떤 공격으로도 무너뜨리기 어려운 난공불락의 요새였다는 것입니다.
즉 여리고 성은 가파른 경사지 정상에 쌓았으며, 적들의 침입에 대비하여 성밖으로 3-4미터의 높이의 장애물들을 설치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밑은 깊은 낭떠러지가 있으므로 절대로 공격 불가능한 그런 요세(Fortress)입니다.
성서고고학자 '브라이언트 우드' 박사는, 특히 이 여리고 지역에 관한 고고학 연구의 최고 전문가로 손꼽히는 분입니다. 이 분의 논문을 보면, 당시 여리고 성의 자세한 상태를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여리고 성은 이중 벽으로 되어있습니다. 먼저 외벽은 5m 정도 높이의 기초성벽 위에 두께 2m, 높이 7m의 진흙벽돌 벽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5m 사이를 두고 그 안에 내벽이 또 세워져있습니다. 그 내벽은 두께가 4m, 높이는 10-14m나 되었습니다.
이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리고 성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무서워 하였다고 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요!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
굳게 닫힌 성문을 부수고 공격하는 것도 어렵지만,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적을 물리친다는 것은 더 더욱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그 여리고가 여호수아의 군대에게 포위 된지 일주일만에 그 기초마저 깡그리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 성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점령해 버렸던 것입니다.
나)여리고 성이 어떻게 무너졌는가?
⑴ '믿음' 때문에 무너졌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굳게 믿었습니다.
2절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또 16절 '일곱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여리고 성이 아무리 견고하고 굳게 닫쳤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붙이셨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보다 크심을 믿었습니다.
여리고의 천배 만배도 더 되는 천지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여리고는 별 것 아니라는 것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백성이 싸운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나팔만을 불었을 뿐이요, 그 성을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돌았을 뿐입니다. 그 때 싸운 것은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었고, 여호와의 군대가 싸웠습니다.
수5:13절에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섰는지라!' 했는데, 이는 곧 여호와 군대 장관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전투 준비를 갖추셨다는 것이지요.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싸운 것입니다. 칼과 창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자들, 여리고 성에 들어간 사람들은 다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믿음이 없던 사람들은 하나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 가지 것을 믿기를 기뻐하십니다.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첫째는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하나님은 찾는 자들에게 상(상급)주시는 하나님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좋은 것으로 상주십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믿음은 어디에서 생길까요?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곧 성경의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롬10: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쉽지않습니까? 듣기에 힘쓰시길 바랍니다. 말씀을 열심히 듣는 성도가 복있는 성도요 상받는 성도입니다. 몸은 여기있는데 마음은 식당에 가 있어선 아니되겠습니다.
⑵ '순종'때문에 무너졌다.
하나님은 여리고 성의 주위를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람의 논리적으로 생각할 때는 어처구니없는 일이요 웃기는 일입니다. 3절에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장 일곱 명이 일곱 양각 나팔을 손에 들고 제일 앞서 가고, 그 뒤에 언약궤가 따르고, 그 뒤에 백성들이 따르면서,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바퀴 씩 육일 동안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제 칠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여리고 성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볼 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제들 돌았나? 계속 돌고 있네? 칠일째도 돌고 있는데 완전히 일곱번이나 돌았어!”라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6일 동안은 하루에 한바퀴씩 돌고, 제 칠일에는 일곱 바퀴를 돈 것은 절대적인 순종의 모습입니다. 총 13바퀴나 돌았습니다.
그들은 '왜 오늘은 한 바퀴만 돌아요? 왜 마지막엔 일곱 바퀴를 돌아야 해요? 힘들어 죽겠네, 그냥 칠일에도 한바퀴만 돌면 안되나요?'하고 묻지도 않았고, 불평하지도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돌라니요? 뭐 군가라도 불러가면서 돌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 일들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했습니다. '이해가 되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도 마찬가지이입니다. 이해가 잘 안되도 믿으시면 나중에 이해가 되고 복이 되는 것입니다. 기적은 순종하는 자에게 나타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할렐루야!
⑶'언약궤'와 함께 함으로써 무너졌다.
4절에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법궤(Holy Ark)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임재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법궤를 바라볼 때마다 능력의 하나님을 생각했습니다. 앞서 가는 법궤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고 생각했고, 또 내 뒤에 있는 법궤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내 뒤에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가 앞서갈 때에는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라고 고백했고, 법궤가 한가운데 위치할 때는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언약 궤’ 속에는 돌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 곧 십계명 담겨 있었고, 만나와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공급하심과 하나님을 섬겼던 역사가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공 비결은 확실한 약속의 말씀과 체험에 바탕을 둡니다.
여러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지나 간 신앙생활 가운데 어떻게 나를 인도하셨는가를 늘 돌아볼 때 승리의 비결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⑷마음과 힘을 합함으로써 무너졌다.
나팔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처음 만나는 시내산 장면에 보면, 큰 나팔 소리와 함께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강림하시고, 임재 하신다는 표징으로 나팔소리가 울려나곤 하였습니다.
첫째 날도 제사장 일곱이 나팔을 불었습니다. 둘째 날도, 셋째 날도, 넷째 날도, 다섯째 날도, 여섯째 날도 그리고 일곱째 날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일곱 바퀴를 돌며 나팔을 불었습니다.
그리고 일곱 번째 나팔을 불 때 여호수아의 구령에 맞춰 모든 백성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팔 소리와 백성의 고함 소리가 한데 어우러지면서, 그 순간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렸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다)우리의 삶 속에 여리고 성은 무엇인가?
여리고 성이 물론 난공불락임에는 틀림없었지만,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아무리 커도, 아무리 난공불락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아는 믿음과 인내를 갖으시길 바랍니다! 그리하면 길이 보이고 여러분의 여리고성은 무너집니다. /아멘!/
⑴우리 안에 가장 큰 여리고는 '불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실존과 능력을 의심하거나 과소평가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합왕이 왜 망했는지 아십니까? 우상을 섬긴 불 신앙 때문에 망했습니다. 아담이 왜 무너졌습니까? 선악과를 먹지 말라셨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 신앙 때문입니 다.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지금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불 신앙을 찍어 버리고, 믿음으로 굳게 서시기를 바랍니다.
(2)우리 안에 여리고는 우리 속에 있는 '정욕과 탐욕'입니다.
심리학자 프로이드는 '모든 인간은 정욕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의 생활 속에 주님의 능력이 들어오기 전에 우리는 정욕에 의해 지배당하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갈5:17절에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골3:5절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약1: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사사 삼손도 한때 이 정욕으로 넘어져 머리를 깎기 우고, 힘을 잃어, 적군의 포로가 되어 눈이 뽑히고 연자맷돌을 가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탐욕은 우상숭배와 같이 큰 죄가 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대로 범사에 감사치 아니하면 성령을 근심케하는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탐욕과 정욕을 다스리시길 바랍니다.
(3)우리 안의 여리고는 교만입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살아가는 일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이 무슨 상관이냐는 불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는 삶의 방 식입니다. 한때 사울왕은 성령에 충만했던 에언자요, 하나님께 열심을 가진 참으 로 훌륭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왕이된 후 부터 교만하여져서 하나님 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고, 자기 생각대로, 편리한 대로, 정치를 하게 되었습 니다. 전쟁 때엔 모두 진멸해야할 적군의 가족과 육축을 살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사무 엘이 온 후 제사를 드려야 했건만, 자신이 스스로 선지자 노릇 하며 제사를 드렸 습니다. 후엔 전세가 불리해 지자, 점치는 무당을 불러 사무엘의 영혼을 부르기 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그와 그의 아들의 최후는 비참한 죽음을 당합니다. 교만은 멀리 있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 말씀 청종하 는 것이 그 어떤 제사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디까지 순종하고 계십니까? 스스로 묻고 답해 보시길 바랍니다.
결론)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맡길 때,하나님께서 해결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했더니 와르르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이 여리고라 하는 큰 장벽을 만났던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도 우리를 당황케하는 이런 여리고 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럴 때 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능력을 믿고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그 성을 무너뜨리게 될 것입니다.
잠언의 말씀 한 구절을 읽으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잠언 16:3)의 말씀입니다.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2012년 5원 13일/ 대예배 설교)
2012.5.4. 편집/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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