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빌라도의 선택 (요 19장 1-12)

호걸영웅 2015. 4. 10. 23:32

빌라도의 선택 ( 19 1-12)

 

 [] 19:1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 19: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 19:3

앞에 와서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바닥으로 때리더라

 

[] 19:4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다 하더라

 

[] 19:5

이에 예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저희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

 

[] 19:6

대제사장들과 하속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

 

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

 

[] 19:7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저가 당연히 죽을 것은 저가 자기를

 

 하나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 19:8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하여

 

[] 19:9

다시 관정에 들어가서 예수께 말하되 너는 어디로서냐 하되 예수께서 대답하여 주지 아니하시

 

는지라

 

[] 19:10

빌라도가 가로되 내게 말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를 놓을 권세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세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 19:11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

 

[] 19: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서론) 

 

1. 물론 교회마다 다르긴 하지만 상당수의 교회에서는 사도신경을 암송합니다. 이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기도문을 암송하게 됩니다.  

빌라도라는 사람은 그가 누구인가?

   빌라도는 로마 행정관으로 유대 나라에 파견이 되어 일을 했는데 예수님 시대에 있었기 때문에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잘했으면 영원한 의인이 될 뻔한 기회였지만, 잘못된 선택을 했기 때문에 영원한 죄인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2. 우리가 만나는 모든 역사와 시간은 항상 우리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선택을 잘하는 사람이 훌륭하게 되고 잘못하면 불행하게 됩니다.

3. 우선 예수님 시대의 정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헤롯 왕의 정부가 있었는데, 이 정부는 로마가 인정하는 정부입니다. 이 헤롯 가문은 로마의 인정을 받은 인물로 100년 동안 대대로 왕가를 유지했었습니다.

  그리고 총독부라고 하는 빌라도 정부가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나라에 와서 총독으로 제일 큰 사명이 무엇이냐 하면 유대인들의 로마에 대한 반란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면,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처형해서 죽였습니다. , 사마리아에서 똑같은 일이 터졌을 때 빌라도가 군대를 동원해서 사마리아 대학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사람들이 데모를 하니까 그런 것을 억제하는 것이 자기 책임이므로 죽여 버리면서 진압한 것입니다. 로마 정부와 헤롯 정부가 손을 잡고 물리적인 힘으로 그런 일을 하니까 민중은 꼼짝도 못하고 숨도 크게 못 쉬고 살았습니다.

빌라도가 유대 나라의 총독으로 있던 기간이 AD 26년에서 36년으로 되어 있으니까 10년 동안 총독으로 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과 좋은 관계에 있었던 로마 군인들도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데 어떤 사람이 길에 와서 예수님께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애원했잖아요? 그 사람은 백부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최고 칭찬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모든 백성 가운데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의 소원을 현장에서 들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고넬료라는 사람 역시 로마 현역 군인 장교 백부장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를 만나서 설교를 듣고 온 집안이 침례를 받아 로마인으로 최초의 침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로마 치하에서는 특별히 유대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었습니다.

그래서 회당 건설을 마음대로 하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에 로마의 방해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이 자치권 부여하면서도 절대로 양보하지 아니하는 법률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사람을 죽이는 문제였습니다. 사형법에 있어서는 로마의 권한으로 유대 나라에 사형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유대 나라에는 국민 평의회라는 기관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국회 같은 것이었습니다. 71명 혹은 7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름은 산 헤드린 공의회였습니다. 예수님의 문제는 이 산 헤드린 공의회에서 취급을 했습니다. 자치 기관에서 얼마든지 결정할 수 있는 종교적 범주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면 왜 자치 기관에서 예수님의 문제를 끝낼 것이지 오늘 성경에 사람들이 예수님을 끌고 빌라도 총독 앞에 왔느냐? 바로 로마가 가지고 있는 법률적 권한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리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를 사형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이 사람이 자신을 왕이라 했나이다. 고로 역적입니다. 라고……(참조;18:33-38)

 원래 로마에서 굉장히 철저히 중범으로 취급하는 문제가 내란죄입니다.  유대인들이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예수를 끌고 가서 내란죄를 적용시킨 것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저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백성을 소동케 하고 있나이다. 내란죄입니다. 당신은 이미 갈릴리에서, 사마리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을 학살하지 않았습니까? 이 사람을 그만두면 더 큰 문제가 생기는데 왜 가만히 계십니까?” 이러는 겁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때 왕이라고 대답하면 죄가 됩니다. “너는 이 민중을 선동해서 왕 되려고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빌라도는 또 양심선언을 합니다. 마태복음 27 24절에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며  종교적 행위 같은 것을 했습니다. 사람 앞에서 물 떠나놓고 손 씻으면서 “난 죄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그것을 보는 유대인들이 또 대답을 했습니다.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유대인들은 자신만만한 겁니다. “괜찮습니다. 그 예수를 죽이는 것은 죄도 아니요 피 흘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죄가 된다면 그 죗값을 우리에게 주십시오. 우리 자손들에게 주어도 괜찮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것은 조심스러운 해석인데 과격한 부흥사들은 이 대목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 피가 그들 말대로 그 자손에게 돌아간 것이 히틀러에게 600만 학살당한 것이다.

 그 다음에 빌라도에게 이상한 일이 하나 벌어집니다. 자기 아내가 빌라도에게 영적인 충고를 했습니다. 마태복음 27 19절 “총독이 재판석에 앉았을 때에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으로 인하여 애를 많이 태웠나이다 하더라.” 이것은 하나의 하나님의 계시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아내는 자기 남편에게 “당신이 왜 미련스럽게 그 일에 관계를 해서 어렵게 하느냐? 그것은 유대인들의 종교적인 문제요 헤롯 정부가 알아서 할 일이지 아무 상관하지 말고 당신은 지혜롭게 손을 떼라. 왜 그것을 붙잡고 결단을 내지 못하고 그렇게 끙끙 앓고 있느냐?” 라고 충고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결국 이 빌라도는 매우 그릇된 선택을 합니다. 왜 그랬는가? 이유가 나옵니다. 1)민란이 나려는 움직임을 보고 결정한 것입니다. 지금 빌라도의 최고 책임은 유대 나라에서 로마에 대한 민초들의 민란이 못 일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2)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빌라도는 원로원에 소환이 되어 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야 되고 평생 쌓아온 자신의 공적이 물거품과 같이 되는 자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옳은 소리를 무시하고 그릇된 소리에 굴복 당하고 말아 죄 없으신 예수를 사형하라고 최종 허락의 판결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빌라도는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민중의 반란을 억제했고 총독의 자리를 몇 년

더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과연 잘한 걸까요? 지금 상당수의 크리스찬들은 예배드릴 때마다 신앙고백을 합니다. 신앙고백이 빌라도를 저주하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로마에 갔을 때 안내자가 빌라도 후손들에 대해 해 준 말이 하나 있었는데 빌라도 후손들은 족보를 없애버렸답니다.

지금 자기들은 이태리 국민들 가운데 빌라도 후손인 것이 분명하지만 예수 잘 믿는 후손이 되었는데, 그런데 조상으로 올라가 보면 제일 우두머리 빌라도가 예수님을 그렇게 했다는 것이 얼마나 예수 잘 믿는 신앙인으로서 수치스럽고 안 된 일입니까? 그래서 창피해서 못살겠다고 족보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그리고 메시야를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하여 구원의 기회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을 보세요.

아브라함은 아들이 없어서 형님 아들 롯을 데리고 양자 삼아서 가나안으로 데리고 갔잖아요? 가나안 땅에서 부유하게 되었을 때, 축복하며 분가를 해 줍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선택의 우선권을 네게 주겠다. 네가 선택하는 땅에서 나는 떠나겠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가져라.” 그러면 롯이 어떻게 선택해야 합니까? “작은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작은 아버지가 나를 아들 삼아서 키워주셨습니다. 이제는 이만큼 성장한 것이 작은 아버지 덕분입니다. 이 좋은 땅과 물 차지하시고 여기서 행복하게 사십시오. 제가 양떼를 몰고 가족을 이끌어 덜 좋은 땅으로 나가겠습니다. 저는 젊으니까 넉넉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되는 것 아닙니까?

인륜보다는 좋은 땅을 택함으로써  늙은 작은 아버지는 후진 땅으로 보내드립니다. 그러나 그 결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 열국의 아비가 되는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났고 롯이 살던 곳은 소돔과 고모라 땅이라는 영원한 하나님의 심판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저주의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내는 소금 기둥이 되었고 롯의 두 딸은 “우리가 성장한 처녀들인데 남자가 없으니 어떻게 하냐? 아버지라도 유혹해서라도 우리 족속을 남겨야 하지  않느냐?”하며 아버지에게 술을 퍼 먹이고 동침하여 자식들을 낳은 것이, (큰 딸 족속이) 모압 족속이요 (작은 딸 족속이) 암몬 족속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엄청난 방해꾼이 되어서 결국 또다시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이 하나님의 거의 멸족하는 심판을  우리는 성경에서 보게 됩니다.

  미국의 제일 고액권환인 1,000불에는 클리블랜드 대통령 얼굴이 있습니다. 그에 관한 일화가 있습니다. 클리블랜드는 20대 시절에 패거리 깡패여서 날마다 토요일, 일요일만 되면 패거리들과 나쁜 짓을 하러 돌아다녔습니다. 술과 마약, 방탕함, 도박에 골몰 했습니다. 어느 주일 아침인 그날도 못된 친구와 둘이서 약속한 장소로 가려고 자기 동네 교회 앞을 지나가는데, 교회 큰 간판에 쓰여 있는 글자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날 그 교회 예배 설교 제목이었습니다.『죄의 값은 사망이다.』 “어? 가만 있어봐! 이게 무슨 소리냐? 죄의 값은 사망이라니?” 다른 친구가 “아니, 뭐 하는 거야? 빨리 가자!” ‘죄의 값은 사망?’ 이 문구 하나가 클리블랜드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이라니? 이게 뭐지?” “야! 너 무슨 소리 하는 거냐? 얘들이 기다리는데 교회 앞에서 우물대는 거야? 빨리 가자!” “가만 있어봐! 이게 무슨 소리인지 우리 들어가 보자. 죄의 값이 사망이라는 게 무슨 소리냐?” “난 안가, 왜이래? 하며 옥신각신하다가 둘이 교회 앞에서 다투다가 헤어지고 맙니다.

  클리블랜드는 그날 거기 들어가서 그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자기 인생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났습니다. 클리블랜드가 대통령이 됩니다.

그런데 한 감옥에서 늙은 죄수가 그 내용을 신문으로 보면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바로 그때 교회 앞에서 싸운 친구입니다.

 결론)

오늘도 우리는 매일마다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삽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선을 택하고 하나님을 택하고 믿음을 택하며 경건을 택하고 말씀을 택하고 교회와 성령을 택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의 손은 여러분의 인생 위에 영원히 머물게 될 것입니다. 

참조: 일맥/ 편 집: 익선 031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