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강해

아모스 5장 강해(선을 구해야 산다)

호걸영웅 2017. 12. 8. 05:41

아모스 5장 강해(선을 구해야 산다)

 

서론) 오늘은 계속해서 아모스 5장을 상고하겠습니다. 4장에서는 아모스의 두 번째 설교가 나오는데 배도자 이스라엘의 죄 된 행위가 열거되고 있습니다. 5장은 이스라엘에게 혹독한 재앙이 내려 망하게 될 때에 살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본 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15절로 이스라엘의 살 길이 무엇인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아모스의 애가와 탄식 어린 경고 그리고 간절한 권면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다시 찾고, 그 말씀을 중심으로 하는 공의로운 사회를 이룰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회는 부패와 파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아모스의 애타는 외침은 현대 사회의 성도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점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16-27절로 불가피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한 필연적 심판을 드러낸 본문은 미래의 심판이 어떠할지를 실감나게 표현합니다. 특히 여호와의 날에 대한 당시의 낙관론적 통념과 형식적인 제사를 규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공의의 실행만이, 이스라엘이 살 수 있는 길임을 간절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본론)
1
: 이스라엘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자 아모스는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애가’란 사람이 죽거나 민족이 멸망했을 때 애도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라 했습니다. 본 절의 애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애국심으로 지어진 노래입니다.

2
: 이스라엘은 정결한 신부로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처녀라 했습니다. 이 이스라엘이 이제 망합니다. 다시 스스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다른 누구도 일으킬 자가 없어 영원히 멸망 당할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정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신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3
: 계속해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철저한 파괴가 분명하다고 말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10분의 1만 남게 되고 그 나머지는 멸망 당할 것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앞으로 ‘남은 자’(15)를 긍휼히 여겨 그들을 통한 구원의 성취를 암시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죄를 범하는 무리들은 물리치고 그 중에 불의에서 떠난 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남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이루어진 사실에 의해 최종적으로 성취됩니다.

4
: 아무리 하나님의 진노가 내린다 하여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찾는 자는 살게 됩니다. 여호와께 돌아오면 새 생명을 얻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5
: 살 길을 찾는 자가 되는 데는 아무 것도 돌아보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나아가야 합니다(5-8). 하나님을 찾되 우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하나님만 구하라는 것입니다. ‘브엘세바’도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았던 곳이며 여호와께서 이삭과 야곱에게 나타나신 곳이고, 사무엘과도 관계가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유서 깊은 브엘세바도 타락한 이스라엘에 의하여 우상을 섬기는 장소로 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과 좋은 관계에 있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항상 재점검되어야 합니다.

6
: 다시 여호와를 찾으라는 말씀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여기서 ‘찾는다’란 간절히 찾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찮은 물건 하나 잃어 버려도 열심히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얼마나 전심으로 찾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찾는 자는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찾아야 할 것입니다( 14:26).

 

베드로는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리니 너무 많이 잡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잡았고 그 때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도 깨닫게 됩니다( 5).

 

한편 북왕국 중에서 가장 강력한 지파는 요셉의 자손인 에브라임 지파였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요셉의 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7
: ‘공법’이란 심판, 재판 등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인진’이란 호세아서에서 나오는 바와 같이 먹을 수 없는 쓴 독초의 한 종류인데, 히브리어 원어는 ‘저주의 식물’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죠. 공법을 인진으로 변하게 했다는 것은 사회에 유익을 주어야 할 법과 권력을 통하여 오히려 백성들에게 해를 끼쳤던 당시 위정자들의 비리를 꼬집는 풍자적인 표현입니다.

8
: 묘성과 삼성은 하늘의 별들을 가리키는데 묘성은 황소 좌의 세 별이고 삼성은 오리온자리의 세 별이라고 합니다. 본 절은 여호와의 위엄과 진노의 위용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별들을 창조하셨고, 낮과 밤의 변화를 일으키시며 바닷물이 비가 되게 하는 섭리의 하나님이시니 곧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시고 세상의 강한 자를 주관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9
: 재앙이라는 것은 홀연히 올 것이니, 이것은 자기 홀로 땅에서 영원히 살아 보려는 욕망을 가진 자는 망하게 됩니다(9-11).

10
: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는 성문에 앉아서 회의 또는 재판하던 장로들을 가리킵니다. 의인의 말을 악인이 듣기 싫어하고 멀리하면서 학대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병폐였습니다. 아모스는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옳은 지도자들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악을 조장하는 사회풍토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11
: 그 당시 부자들이 빈민들을 착취한 죄와 의인을 억울하게 한 죄를 꾸짖는 말씀입니다.

12-13
: ‘악한 때’는 진실한 자들로 하여금 바른 말을 못하게 하며 정의로운 자의 자유를 빼앗는 폭력과 압제가 난무하는 시대를 말합니다. 즉 의인들이 곤욕을 당하며 괴로움을 겪어야 하는 때입니다.


14
: 악을 미워하고 선을 구하되 하나님의 긍휼을 받는 자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14-15).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라’고 외칩니다. ‘선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찾으며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선을 구할 때에만 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15
: 그 시대에 재판정으로 이용되었던 성문에서 공의를 미워하고, 불의를 좋아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르는 말씀으로 공의를 세우라는 여호와의 명령입니다. 이렇게 재판관이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하게 되면 그 사회는 더 이상 공의롭지 못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의 남은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겠다고 합니다. 특별히 진노 중에 있는 백성들이 회개하고 바로 설 때, 하나님께서는 더욱 긍휼을 베푸십니다. 여리고 성이 멸망 당할 때 구원받았던 라합 가정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16
: 여기서‘울음꾼’이란 직업적으로 울어 주는 자를 말하는데 보통 여자들이었습니다( 9:17).

18
: ‘여호와의 날’이란 물론 먼저는 축복의 날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자들은 오히려 심판을 당하게 될 저주의 날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여호와의 날’을 하나님께서 이방 열강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로 정치적 맹주의 위치에 오르도록 하시는 날로 오해하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아모스는 당시의 여호와의 날이란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며 그 날에는 의인과 악인이 구별되고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이 드러날 것이라 했습니다.

21-23
: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절기를 지키며 성회를 열며 제사를 드린다 하여도 공법과 정의를 떠난 자는 용서받지 못하고 원수에게 사로잡힘을 당하게 할 것이라 합니다(21-27). 물론 그들이 바친 제물은 값진 것이었지만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었습니다.

23
: 또한 하나님의 전에서 정교한 음악 소리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고 자신의 신앙 고백을 하는 일체의 행위들을 금하십니다. 그들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것에 소홀하였으며,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멀리하였습니다.


24
: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공법이 공법답게, 정의가 올바로 실현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물 같이, 하수 같이 흘리게 하라는 것은 아무런 방해가 없이 자연스럽게 실현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위에서 지적된 예배 행위들, 즉 장엄한 모임(21), 제사(22), 음악(23) 등은 그것에 합당한 삶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은 예배 행위에 더하여 의로운 참 행동을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합니다.


25-26
: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지낼 때에는 제대로 제물을 가져올 수가 없어서 번제를 드리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돌보아 주셨던 역사적인 사실을 나타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풍요로운 시절을 만났어도 26절에 기록된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기서 ‘식굿’이란 이스라엘이 숭배했던 우상으로서, 앗수르 비문에서는 식굿이 ‘토성신’으로 묘사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너희 왕’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보아 이 시대의 이스라엘 민족이 여호와보다도 일월성신을 더 존귀히 여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윤’은 목성과 관련된 앗시리아의 별신 우상이었습니다. 이러한 별의 숭배는 고대 근동 지방에서는 보편적인 일이었으며 그 영향을 받은 이스라엘에서도 많이 유행되곤 했습니다.

27
: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이 앗수르의 포로로 사로잡혀 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결론)
여러분, 아모스가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을 외치는 것은 마치 요나처럼 그들이 망하게 되는 것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끼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게 되기를 원하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힘써 여호와를 찾는 믿음, 알기 원하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살피십니다. 그리고 사랑과 공의를 열심히 실천함으로써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10717 안익선 목사/ 참고:브루쉘 한인교회 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