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강해

아모스 4장 강해 (이스라엘의 배역함)

호걸영웅 2017. 11. 2. 05:19

아모스 4장 강해 (이스라엘의 배역함)

 

오늘은 계속해서 아모스 4장 말씀입니다.  1장에서는 아모스가 다메섹, 블레셋, 두로, 에돔, 암몬에 대해 심판을 선포하였고, 2장에서는 열방에 대한 심판의 결론으로 유다와 이스라엘의 심판을 다루었고, 3장은 아모스의 첫 번째 설교로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사자처럼 행하는 심판을 말씀했습니다. 4장은 아모스의 두 번째 설교인데, 배역한 이스라엘의 범죄 행위와 하나님의 경고적 심판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시면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1-3절 까지로서 이스라엘의 사치한 부유층의 쾌락적인 삶에 대한 심판을 말씀합니다.

두 번째로는 4-5절로 더욱 깊어지는 우상 숭배의 범죄상에 대해 지적합니다.

세 번째로 6-11절까지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도 돌아오지 않음에 대한 탄식이 나오고,  마지막 12-13절에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경고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귀부인들의 죄)

1절을 보십시오. “사마리아의 산에 있는 바산의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힘 없는 자를 학대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 이스라엘의 죄악 뒤에는 이스라엘의 상류층 귀부인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1).

 

아모스는 그의 두 번째 설교에서 가난한 자들을 착취한 것으로 사치를 일삼은 지배 계층에 대한 심판을 선언합니다. 아모스는 그들을 바산의 암소라고 했죠.

 

‘바산’은 목초가 많고 기름진 곳으로 요단강 동쪽 산지의 북쪽에 있습니다. 특별히 여기서 ‘암소들’이라고 하는 것은 부유층 부인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치스러운 여인들이 가난한 이웃을 돌아보기는커녕, 오히려 학대하고 압제하면서 쾌락을 추구합니다. 남편의 권력과 사회적인 지위를 이용해서 가난한 자를 압제하여 재물을 축적하고, 남편들이 부패를 행하도록 조종했습니다. 그리고 저들은 게을러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편들을 통해 사치를 누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탐욕과 쾌락으로 가득한 비만해지기 까지 한 귀부인들이 이스라엘을 망치는 데 일조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타락한 모습입니까! 여성들이 이렇게 타락하여 암소처럼 동물적인 본능만 충족시키는 생활을 하면 남편들도 자연히 병들 수밖에 없고, 결국 그 사회는 병들고 맙니다.

 

여성들의 부패는 필연적으로 남성과 사회의 부패를 낳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을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여성들이 사치품이나 명품에 온갖 재물을 쏟아 붓는 일은 매우 안타까운 사회 타락성과 부조리를 대표하는 일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귀부인들에 대한 심판)

고로 2,3= “주 여호와께서 자기의 거룩함을 두고 맹세하시되 때가 너희에게 이를지라 사람이 갈고리로 너희를 끌어 가며 낚시로 너희의 남은 자들도 그리하리라 너희가 성 무너진 데를 통하여 각기 앞으로 바로 나가서 하르몬에 던져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했죠.

하나님은 때가 이르면 귀부인들을 도살당하는 짐승(암소)처럼 갈고리로 꿰어 끌고 갑니다. ‘갈고리’와 ‘낚시’라는 이중적인 용어를 쓴 것은 그들이 심판을 피할 길이 전혀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옛 비석에 보면 포로들의 입을 갈고리로 꿰어 끌고 가는 광경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은 참으로 눈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입니다. 그들을 끌고 가서 하르몬에 던져 버리실 것입니다. 하르몬은 거름더미 혹은 침략자의 땅, 곧 앗수르 땅을 의미한다고 봅니다.

 

 (형식주의 우상숭배자들)

4,5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벧엘에 가서 범죄하며 길갈에 가서 죄를 더하며 아침마다 너희 희생을, 삼 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 누룩 넣은 것을 불살라 수은제로 드리며 낙헌제를 소리내어 선포하려무나. 이스라엘 자손들아 이것이 너희가 기뻐하는 바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은 아침마다 희생제물을 바치고 삼 일마다 십일조를 드렸고, 수은제(감사예 물)와 낙헌제(자원제물)를 드렸습니다. 겉으로 보면 매우 헌신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4-5절은 하나님께서 반어법을 통하여 여호와의 언약을 어긴 이스라엘의 위선적 신앙을 꾸짖으십니다. 영성(spirituality)이 전혀 없는 종교(religion) 를 의미합니다. 당시에 많은 백성들이 형식상으로는 하나님께 열심인 듯이 보였으나 실제로는 가나안 종교의 우상 숭배의 개념을 혼합시킴으로써, 여호와 신앙을 근본적으로 더럽히고 있었습니다.

 

벧엘과 길갈은 원래 이스라엘의 옛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성지였지만 후에는 우상숭배의 처소가 되었다 했습니다( 4:15; 9:15).

가령 ‘벧엘’은 야곱이 돌기둥을 세운 곳이며( 28:18-19),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65 키로미터 지점인 에발산과 그리심 산 사이의 동네인 세겜을 떠나 단을 쌓고 회개한 곳이기도 합니다( 35:1-7). 그 후에 그곳은 거룩한 예배 장소로 여겨졌었습 니다(삼상 10:3). 그리고 길갈은 여호수아의 지휘로 요단강을 동에서 서로 건너 가나안에 입성한 첫 지역으로( 4:19-20), 온 백성이 할례를 행한 곳이며( 5:2-9), 유월절을 지킨 곳이었습니다( 5:10-12).

 

그러나 아모스 당시의 벧엘과 길갈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바뀌고 맙니다. 단을 더 많이 세우면 세울수록 그들의 형식주의적 신앙도 더욱 비대해져 갔습니다.

 

여기서 ‘삼일’마다 내는 십일조란, 원래 ‘삼년’마다 한번씩 내는 십일조를 의미하는데, 이것은 당시 선지자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섬기는 의식을 조롱하는 것이니, “삼년 만에 드리는 십일조를 삼일 만에 계속 드려 보라! 그래도 너희의 죄는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대단히 헌신적으로 섬기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떠나 우상의 탐욕을 좇고 있었으니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감사제물(수은제)’란 예기치 못했던 은혜나 축복을 받았을 때에 드려진 화목제의 일종으로 반드시 누룩이 없는 예물을 사용하라 했습니다( 7:12-14).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누룩을 섞어 드렸으니 곧 우상숭배입니다. ‘낙헌제 (자원 예물)’란 순수한 경건심에서 축복을 기대하지 않고 드리는 감사예물( 22:18; 15:3)로서 가끔 자원하는 예물로 언급됩니다( 7:16). ‘큰소리로’ 하라는 것은 사적인 제사를 다른 사람에게 선전하듯이 제사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풍자입니다. 그런 것은 아무리 힘껏 해 보아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형식적인 제사에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하나님)

6. “또 내가 너희 모든 성읍에서 너희 이를 깨끗하게 하며 너희의 각 처소에서 양식이 떨어지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6-13절에서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 속에서 일련의 다섯 가지 사건들을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그 징계들이 결국 그 백성들로 하여금 ‘돌아오게 하기 위한’ 긍휼이었음을 밝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패역한 길로 치닫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은 결국 이스라엘이 심판에 이를 수밖에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들의 신앙생활에는 참회가 없었습니다. 회개가 없는 신앙은 참된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철저하게 부패한 죄성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 극적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를 깨닫고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본문에는 돌아오지 않았느니라-는 말씀을 5번이나 반복하십니다.

 

(기근의 재앙)

고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양식이 떨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재앙은 이를 한가하게 함, 즉 흉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왕상 18:2; 왕하 4:3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물부족의 재앙)

7,8절을 보십시오. “또 추수하기 석 달 전에 내가 너희에게 비를 멈추게 하여 어떤 성읍에는 내리고 어떤 성읍에는 내리지 않게 하였더니, 땅 한 부분은 비를 얻고 한 부분은 비를 얻지 못하여 말랐으매, 두 세 성읍 사람이 어떤 성읍으로 비틀거리며 물을 마시러 가서 만족하게 마시지 못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추수하기 석달 전에 비를 멈추게 하십니다. 기갈로 비틀거리며 성읍에서 성읍으로 물을 찾아 힘들게 다니게 하십니다. 추수 전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열매가 제대로 여물거나 실하지 못해 수확에 큰 장애가 따를 것이며 식수도 부족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

9= “내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팥중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셋째는 하나님은 곡식을 마르게 하는 재앙과 깜부기 재앙과 팥중이 재앙을 내리십니다. 잎마름병(풍재), 깜부기 병, 메뚜기(팟종이)의 재앙이 동시에 임하게 하십니다. 풍재란 보리 같은 곡식의 이삭이 까맣게 되는 흑수병(smut)을 말한다고 합니다.

 

(전염병과 전쟁의 재앙)

10= “내가 너희 중에 전염병 보내기를 애굽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며, 칼로 너희 청년들을 죽였으며, 너희 말들을 노략하게 하며, 너희 진영의 악취로 코를 찌르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전염병과 전쟁의 칼로 이스라엘을 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치 애굽의 재앙처럼 염병과 전쟁의 재앙이 임하였으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지진의 재앙)

11=“내가 너희 중의 성읍 무너뜨리기를 하나님인 내가 소돔과 고모라를 무너뜨림 같이 하였으므로 너희가 불붙는 가운데서 빼낸 나무 조각 같이 되었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읍들이 무너졌어도 끝끝내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강퍅하게 해서 돌아오지 않는 이스라엘은 더 이상 소망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돌이키기 위해서 오래 참으며 온갖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매와 재앙의 채찍을 들고 쳤지만 이스라엘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는 삶)

12=“그러므로 이스라엘아 내가 이와 같이 네게 행하리라. 내가 이것을 네게 행하리니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만나기를 준비하라”

그들 모두가 거룩하신 하나님의 종말적인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들이 만날 하나님에 대한 묘사)

13= “보라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 자기 뜻을 사람에게 보이며, 아침을 어둡게 하며, 땅의 높은 데를 밟는 이는 그의 이름이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니라”

 

첫째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만군(모든 왕들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산과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 창조하셨습니다.

 

둘째로 자신의 뜻을 사람들에게 밝히시는 계시의 하나님이시고, 셋째로는 빛과 어두움, 낮과 밤을 주관하시는 섭리의 하나님이시며, 넷째로 땅의 높은 곳도 밟으시는 심판주 하나님, , 교만한 자를 낮추실 하나님이십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스라엘의 원수를 물리치고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10:31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징벌하시는 손에 떨어지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 했습니다.

 

(회개로 준비하는 삶)

고로 이런 하나님을 만나기 뵙기 위해서는 사치와 타락과 불순종을 버려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굶주림과 가뭄과 질병과 전쟁 등, 여러 가지 재앙을 내리심으로써 그들을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모든 재앙을 우연으로 돌리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을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순간마다 죄를 멀리함으로써 거룩하신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는 삶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110117 안익선 목사/ 참조: 오요한 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