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 강해

나훔 2,3장 강해 (니느웨에 대한 정죄와 심판)

호걸영웅 2018. 3. 4. 09:15

나훔 2,3장 강해 (니느웨에 대한 정죄와 심판)

 

서론)

1. 오늘 저녁에는 나훔서 2,3장을 상고하겠습니다. 1장에서 나훔 선지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심판하시고 유다는 구원하실 것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2,3장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니느웨가 어떻게 공격과 약탈을 당할 것인가에 대해 매우 생생하고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2:6절까지는 니느웨가 포위되어 공격을 받는 모습을 묘사하고 7-8절은 멸망당하며, 9-13절은 약탈을 당할 것을 예언합니다. 3장의 경우, 내용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겠는데요. 먼저 7절까지는 니느웨의 폭력과 속임수가 수치를 가져올 것이라 말씀합니다. 8-11절까지는 테베(노아몬)에 대한 니느웨의 태도가 자기 자신의 패망을 불러 올 것이라 합니다. 마지막으로 12-19절까지는 니느웨의 방어 노력이 전부 무용지물이 될 것을 선포합니다. 이제 좀더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2:1= 나훔 선지자는 이제 공격을 받아 곧 멸망할 니느웨에게 스스로 방어할 테면 해보라고 조롱하는 말을 합니다. 여기서 이름은 밝히지 않고 있지만 니느웨를 치러 파괴하는 자가 올라온다는 사실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완료 시제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올라왔다’는 동사는 군사 용어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파괴하는 자는 역사적으로 볼 때 메대의 시아크세레스(Cyaxares)와 함께 니느웨를 정복한 바벨론 왕 나보폴라살(Nabopolassar)을 말한다고 합니다.

 

이어서 나훔은 말합니다. ‘성을 지켜보려무나. 길을 지켜보려무나. 허리를 질끈 동 이고 있는 힘을 다하여 막아 보려무나.’ 이 말은 사실 매우 신랄한 조롱입니다. 다시 말해 너희들이 아무리 방어를 위해 발버둥을 쳐도 결과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2:2
= 니느웨의 멸망은 하나님의 백성이 그 낮아지고 겸비해진 자리에서 다시금 영광의 자리로 회복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이것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은 메시야가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될 때 가능할 것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란 하나님의 기업인 유다를 가리킵니다.

3
: 이제 나훔은 그 ‘파괴하는 자’들이 어떠한 장비를 가지고 공격해 오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메대와 바벨론의 방패들은 붉은 색이고 무사들의 군복도 붉은 ( 23:14) 옷이라 했습니다. 또한 무사들의 구브로(키프러스:이탈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 있는 지중해의 매우 큰 섬)에서 난 노송나무로 만든 강하고 좋은 창의 거친 공격 때문에 흔들렸고, 병거는 차축에 직각으로 낫을 부착시켰기 때문에 쇠가 햇빛에 반사되어 번쩍거린다고 합니다.

4
: 포위군의 달리는 병거는 격분하여 미친 듯이 달리는 것 같았습니다( 46:9). 그들의 움직임의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마치 번개와 같다고 말합니다.

5
: 여기서 주어는 앗수르 왕을 가리킵니다. 그가 정예 부대를 앞세워 성벽을 방어하고 막을 것을 예비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을 지키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6
: ‘수문’에 대해서는 적군들이 니느웨를 포위하면서 수문을 다 닫아 저수지에 물이 찬 후, 일제히 수문을 다시 열어 물이 넘침으로 왕궁이 소멸되었다고 봅니다. 많은 나라들의 왕궁을 소멸시켰던 앗수르의 마지막 왕 앗수르바니팔은 이제 자기 왕궁이 파멸되는 운명을 맛보게 됩니다.

2:7
: 이제 니느웨의 운명은 하나님에 의해 이미 결정되었습니다. 즉 니느웨는 함락되고 그 사람들은 이제 포로로 끌려갈 것입니다. 여기서 왕후의 의미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실제 여왕을 가리킬 수도 있고 이스달 여신상을 가리킬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시녀들이 비둘기같이 슬피 울고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고 말씀합니다.

8
: 도시가 홍수에 잠기게 되자, 니느웨 사람들은 모든 소유를 뒤에 버려둔 채 도망가기에 급급했습니다.

9
: 이제 나훔은 승전한 침략자들에게 전리품을 수확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 동안 여러 나라를 침략하여 약탈한 엄청난 전리품이 니느웨에 있었습니다. 은과 금의 보유량이 엄청났고 기타 공물과 무역을 통해 축적한 부도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그렇게도 많은 나라를 침략하고 약탈했던 니느웨가 이제는 오히려 약탈을 당하게 됩니다.

10
: 이렇게 되자 니느웨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낙담하고 맙니다. 그리하여 무릎이 후들거리며 허리가 아프고 얼굴이 하얗게 질립니다.

11-12
: 이제 나훔은 파멸된 니느웨를 바라보면서 조롱 섞인 물음을 던집니다. ‘이제 사자들의 굴이 어디에 있느냐?’ 이것은 다시 말해 니느웨는 더 이상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3
: 이제 니느웨를 향한 여호와 하나님의 적의가 아주 강력한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내가 너를 치겠다, 즉 하나님 자신이 니느웨를 치실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3
)

나훔서 3장은 한때 번창했던 이 오만한 도시의 영적인 부패 상황을 잘 드러내 보여줍니다.

3:1
= 니느웨는 문자 그대로 ‘피 성’이었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욕망과 살인으로 그 성은 피에 물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Maier라고 하는 신학자는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니느웨는 포로들에게 온갖 잔학 행위를 떡 먹듯이 일삼았다. 손발을 자르고, 귀와 코를 도려내고, 눈을 뽑아내고, 목을 쳐 떨구는가 하면, 나무에 매달아두거나, 성문 앞에 쌓아두었고, 심지어 산 사람에게 말뚝을 박고, 아주 천천히 최후의 한 조각까지 온 몸의 껍질을 벗겨내는 따위의 마성(魔性)을 드러내었다. (The Book of Nahum: A Commentary, p. 292). 고 했습니다. 또 니느웨는 또한 궤휼, 즉 속임수와 거짓말의 도시였다고 합니다.

3:2-4
=나훔 선지자는 1절에서 니느웨의 죄를 개괄적으로 지적한 다음, 이어 몇 가지 신랄하고 생생한 묘사로 이 도시에 대한 마지막 죄목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그는 점층법을 사용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즉 ‘말채찍’에서 ‘병거 바퀴’로, 다시 ‘말’로, ‘병거’로, ‘기병’과 ‘칼’과 ‘창’으로, 그리고 살육 당한 떼와 큰 무더기 주검(무수한 시체)으로 강도가 더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는 바로 니느웨가 당한 공격을 의미하는데, 놀랍게도 이것은 다 니느웨가 자기들의 전술로 써먹던 방법들이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나라에 쳐들어가서 많은 숱한 여성들을 무참히 강간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시체 무더기를 쌓았던 앗수르 군대의 수도인 니느웨는 이제 자기 시체들이 무더기로 쌓일 차례가 된 것입니다.

3:3
=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 3세는 적들 앞에서 사람의 머리를 잘라 피라미드처럼 쌓아 올려놓고 자랑을 했다고 합니다. 다른 왕들은 정복한 도성의 입구에 시체를 마치 장작처럼 쌓아놓았다고 합니다.

4
: ‘마술’이란 자신들의 잔인함을 미화시키는 니느웨의 외교정책을 조롱하는 표현입니다. 여기서는 니느웨를 음녀로 묘사하면서 하나님을 떠난 것 자체가 영적인 간음으로 규정되고 있습니다. 참된 신앙을 떠난 것 자체가 바로 우상숭배이며, 이 세상의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는 행동입니다.


3:5-7
= 니느웨가 다른 나라들을 대적하여 저질렀던 잔인하고 염치없는 행위들은 이제 그 부끄러움과 수치가 백일하에 노출됨으로써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니느웨의 대적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2:13)

 

어떤 나라든 그 나라가 아무리 부하고 강하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고 인간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는다면 하나님은 그 나라의 대적이 되실 것입니다. 니느웨는 다른 나라들을 침략하여 그들에게 불명예와 수치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수치를 당할 차례가 된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니느웨는 ‘더러운 것’ 즉 인간의 배설물과 ‘능욕’으로 불명예와 망신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7
: 니느웨 성읍이 요나 시대에는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았지만 이제 100년이 지난 후에는 전혀 동정을 받지도 못한 채 완전히 멸망할 것을 수사적인 질문으로 강조합니다.

8
: 이제 니느웨의 힘은 앗수르가 주전 663년에 정복했던 애굽의 도시 테베 또는 노아몬보다도 도덕적으로 나을 것이 전혀 없는 도시이므로 마땅히 테베처럼 패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히브리인들이 이 도시를 노아몬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아몬 神의 도시’라는 의미입니다. 호머의 일리아드(IX. 383)에 의하면 이 테베라고 하는 도시는 문이 백 개나 있었던 이집트 남쪽에서 가장 오래되고 신전들, 스핑크스 그리고 오벨리스크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도성이었다고 합니다.


9
: 테베의 또 한 가지 강점은 정치적으로 유력한 동맹국들의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니느웨에게는 아무런 동맹국도 없었습니다. 테베는 당시 구스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이 구스는 나일 강 상류 지역을 일컫는 지명으로 오늘날의 이집트 남부, 수단, 그리고 에티오피아 북부에 해당되는 지역입니다. ‘붓’과 ‘리비아’는 때로 같은 이름으로 혼용되기도 하지만 여기처럼 함께 언급될 때에는 ‘붓’이 홍해와 맞닿은 해안을 가리키고 그 남방 끝은 오늘날의 소말리아에까지 이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10
: 이러한 강점에도 불구하고 테베는 앗수르의 앗수르바니팔 왕에게 함락되고 맙니다. 테베의 백성 대부분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갑니다. 테베의 어린아이들은 무자비하게 학살됩니다. 앗수르 군인들은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길모퉁이마다 이 일을 자행합니다. 이런 극악무도한 잔학 행위들이 니느웨의 죄를 더하게 됩니다..

11
: 니느웨가 테베에게 한 일이 이제 니느웨에게 그대로 되돌아 올 것을 예언합니다.


12
: 적들이 공격을 감행해올 때, 니느웨는 자기의 모든 산성이 허약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봄에 맺히는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는( 13:20) 나무를 살짝 흔들기만 해도 우수수 땅에 다 떨어집니다. 그와 같이 니느웨도 침략자의 발 앞에 이렇게 쉽고 빠르게 무릎을 꿇게 되고 말 것입니다. 과연 이 일은 주전 612년에 문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13
: 침략자들을 보는 순간, 성 방비를 힘쓰고 있던 장정들이 일시에 용기를 잃고 ‘여자’같이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14
: 니느웨가 아무리 수비책을 찾아 애를 쓴다 하더라도 여호와의 심판을 막을 도리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이제 파멸의 장면은 산성과 성문에서(12-13) 성 내부로 옮겨집니다(14-17).

15
: 모든 방비의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고 이윽고 ‘불’과 ‘칼’을 동반한 재난이 니느웨를 강타하게 됩니다. 시내로 들어온 적군은 많은 사람들을 칼로 살육합니다. 그 군대는 마치 온 사면의 농작물을 완전히 다 먹어 치우는 ‘느치’와도 같을 것입니다.

16
: 여기서 나훔 선지자는 다시 ‘느치’이야기를 합니다. 니느웨는 수많은 ‘상고(商賈)’ 즉 상인들과의 무역을 통하여 부를 엄청나게 모았으나, 이제 그 상고들은 채소밭을 죄다 갉아먹는 많은 느치 떼와 같이 되어 니느웨의 금은보화를 빼 돌릴 것입니다.


17
: 또 다른 성격의 ‘메뚜기’가 등장합니다. 니느웨가 공격을 당하게 되는 날, 방백들과 대장들은 너무나 두려워 야반도주를 할 것입니다. 메뚜기는 저녁에 추울 때는 울타리에 달라붙어 있지만 아침에 해가 뜨면 곧바로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이와 같이 성벽(울타리)을 지키던 장수들도 공포에 질려 순식간에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8
: 18-19절에는 마치 장송곡 가사와도 같은 마지막 예언이 나옵니다. 여기 나오는 ‘왕’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하나는 멸망 당시인 주전 612년에 앗수르를 통치했던 왕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고 또 하나는 니느웨가 함락된 지 3년 뒤인 주전 609년에 앗수르 제국을 다시 일으켜 보려고 노력했던 앗수르우발릿 왕이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대개 후자 쪽이 더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앗수르우발릿 왕은 황무하게 되어버린 제국을 둘러보면서, 그의 지도자들(목자와 귀족)은 다 죽었고, 포로로 잡혀가지 않은 백성들은 다 흩어져서, 그들을 다시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19
: 불살라지고 약탈당한 도성 니느웨의 참상은 마치 ‘치명적인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그 함락된 정도가 너무도 고칠 수 없고 중하여, 이제 니느웨의 재건은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는 누구보다도 특히 유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여호와께서는 니느웨에게는 진노하시고 주를 의뢰하는 백성들은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확증해 보이실 것입니다.

결론)

우리는 다시금 여호와 하나님의 공의와 거룩하심이 지금도 유효하므로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에게는 결국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니느웨가 요나의 경고를 받아 잠시 회개했지만 결국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바로 그들의 잔혹한 죄악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의 산성과 피난처가 되신다는 진리를 새롭게 확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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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다음 주엔 하박국을 공부합니다.)

  2.  

021318안익선 목사/참고: 브뤼셀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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