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후서

데살로니가후서 서론과 1장 강해(공의의 하나님)

호걸영웅 2022. 8. 18. 02:39

데살로니가후서 서론과 1장 강해(공의의 하나님)

1. 데살로니가후서 서론(序論)

■  데살로니가후서의 명칭
서신이 보내진 데살로니가의 지명을 따라 붙여진 것입니다. 내용의 흐름으로 보면 주님의 재림과 그 때까지 지상에 사는 성도의 삶에 관한 서신입니다. 본문의 구성은 3장(47절)입니다.

■  데살로니가후서의 저자와 기록연대
데살로니가후서 저자는 사도 바울이며 기록연대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중(50-52년)인 51년경으로 추정합니다.

■  데살로니가후서의 기록 목적
데살로니가전서를 써 보낸 직후 얼마 안되어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교회의 상태를 자세히 기록한 편지를 받습니다. 바울은 그의 편지(데살로니가전서)를 오해한 성도들이 재림 신앙에 있어서 불건전한 것이 생겨나, 그 결과로 이 세상의 일은 뜻 없는 것으로 생각하여 매일 흥분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주의 재림만을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3: 11). 이에 바울은 그들을 훈계 하고,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나날을 보냄이 결코 없도록, 차분하고 성실히 일하며 건전하게 매일 할 일을 힘쓰라 권고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위해서는 일정한 순서를 거치지 않으면 안됨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도적같이 임할 것이지만) 주님의 재림 전에 일정한 징조가 나타나기 전에는 재림이 있지 아니할 것이므로 정신을 차리고 광신적(狂信) 무질서에 지경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쓰고 있습니다.

■  데살로니가후서의 주제와 중심사상
데살로니가후서의 주제는 ① 그리스도의 재림, ② 재림 전의 징조, ③ 성도의 근면한 삶의 요청입니다. 중심사상은 그리스도의 재림사상과 이를 대비한 성도의 근면함입니다.

2. 데살로니가후서의 장별 구성
데살로니가후서를 세 부분으로 나누면, 첫째는 하나님의 심판과 성도들의 인내(1:1-12), 둘째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가르침(2:1-17), 셋째는 바울의 기도 부탁과 게으름에 대한 경고(3:1-18)입니다.

제 1장 강해
서론) 살후의 전반적인 배경 설명
데살로니가후서는 전서와 기록의 배경 등이 그렇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좀 더 종말론 적이고, 좀 더 영적인 비밀에 대해 설명합니다. 3장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모든 절을 합해도 47절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분량의 서신입니다. 바울은 그런 작은 서신 분량 안에 주님의 재림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본문1장은 아래와 같이 세분하여 구분할 수 있습니다. 
1)1-2절 인사,  2) 3-10절 공의 하나님,  3) 11-12절 간구

본론)
가)  1-2절 인사
바울과 실루아노, 디모데가 전서부분과 동일하게 문안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안에 있다’는 말은 ‘속해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라는 사실을 애써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친밀하게 부르도록 하셨습니다.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안에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역시 부활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 에 계십니다. 역시 하늘에 계신 것 입니다. 그리곤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그리스도 ‘안에’ 데살로니 가 교회가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한편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빌립보서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라 했습니다. 
즉 성도는 이 땅위에서 살아가지만 하늘에 시민권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와 이방인으로 살아가지만 영원한 본향을 향해 날마다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나) 3-10절 공의 하나님
바울은 3-10절에서 이 땅을 살아갈 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혜를 한 가지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금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습니다. 데살로니가2:14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자신들의 동족들에게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들이 섬기는 제우스를 섬기지 않고, 유대인들도 싫어하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경배한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을 것입니 다. 초대교회 많은 문헌 속에서 드러난 것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핍박을 자주 받았음을 봅니다. 터툴리안이란 교부는 순교는 교회의 씨앗이다 할 만큼 많은 성도들이 죽음과 테러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핍박 속에서도 그들은 예수를 부인하지 않았고 나아가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 중 하나였습니다. 

ㄱ. 믿은 만큼 사랑하고
먼저 3-4절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거듭 칭찬합니다. 첫 번째 칭찬은 그들의 믿음이 자랐다는 것입니다.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3절 상)라고 말합니다. 3주라는 참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시간이 갈수록 믿음의 진보를 보였습니다. 두 번째, ‘너희가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했기(3절 하) 때문입니다. 여기를 보면 믿음과 사랑이 다르지 않음을 발견합 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은 만큼 서로 온전히 사랑했습니다. 

ㄴ. 환난 중에 인내하고
두 번째는 데살로니가 교회는 박해와 환난 중에서도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아갔습니다. 환난 중에 인내는 소망을 전제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이 이 땅에서의 환난과 박해를 견디게 합니다. 5절을 보십시오. 바울은 환난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지금 데살로니가교회가 겪고 있는 환난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달리 생각하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고난 가운데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고난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복음 때문에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인내를 요구하고, 인내를 소망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가지를 뒤흔드는 바람들과 가뭄을 통해 나무가 땅 속으로 더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고난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소망 중에 튼튼한 뿌리를 내리게 했습니다.

ㄷ. 공의 하나님
바울은 이제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기를 비록 성도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고난을 받지만 하나님은 그 고난을 그대로 두지 아니하시고 되갚아 주신다 했어요. 6절=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7절에 의하면 환난 받은 이들에게 ‘안식으로 갚으신다’했죠. (7절) 그리고 7절후반부부터 9절에서 바울은 역사적 종말에 일어날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과 형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은 불합리와 부당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거룩하고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고통이 따르고, 악하고 간사한 자들은 득세하기 쉽죠.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고통이 따를 때 누구나 아파할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시각을 돌려 이 땅이 아니라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라 권면합니다. 마지막 날에 예수님은 ‘자기 능력의 천사들과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실 것이다’(7절) 말하고 있습니다. 그 불꽃은 심판의 불꽃입니다.

그렇다면 주의 재림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먼저는 하늘로부터 나타나십니다. 7절 후반부를 보십시오 1)‘하늘로부터’입니다. 즉 지금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귀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이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을 회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재림의 땐 , 이전처럼 낮고 천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위엄과 능력으로 나타나십니다. 
2)두 번째는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불꽃 가운데 임합니다. ‘불꽃’은 주님의 거룩성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모든 죄를 소멸하시고 모든 악을 태우시는 심판을 의미합니다. 주님 앞에 그 어떤 존재도 주님의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3)세 번째는 재림을 통해 그동안 유보된 모든 심판이 일시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 땅에서 부조리하고 모순이 가득 차 있는 듯하지만 잠시 그럴 뿐입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주님께서 임하실 것이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다. 11-12절/ 간구
바울은 이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3가지 정도를 기도합니다. 
1)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도록
바울은 끊임없이 ‘부르심에 합당한 자’가 되라고 권면했습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예수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생명을 얻었다면, 성도는 마땅히 거룩한 성도답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이 그렇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2) 선과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도록
그렇다면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뭘까요? 그것은 11절 후반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선을 기뻐 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선을 기뻐함은 우리 안에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하나 님의 말씀이 살아 움직인다는 말입니다. 영혼이 새롭게 창조되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 때 우리 안에서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성도는 성도가 아닌 성도 안에 있는 그리스 도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다움은 다른 데 있지 않고, 그리스도를 닮음에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목적이고, 삶의 방식이고, 삶의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그리스도를 닮고 또 닮는 것입니다.

3)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도록 간구하다
마지막은 예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 살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은 종말이 아니라 ‘너희 가운데서’라고 말합니다.(12절) 즉 성도들 안에서 주님의 이름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결론)
우린 1장 강해 말씀을 통해, 3가지 정도의 기도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우리로 때의 징조를 헤아려 알고 행하게 하옵소서!
2.  우리로 하여금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말고 늘 깨어 선을 행하고 인내와 소망 가운데 살게 하옵소서!
3. 또 우리는 종말론적 삶을 살되 주님을 위하여 나태하지 않고 부지런하게 하시고 주의 영광을 위해 도무지 살게 하옵소서!  

         

    

072622 안익선 목사/참조: [Pensées:티스토리] & 최건수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