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구별된 도피성 (수 20:1-9)

호걸영웅 2008. 3. 8. 10:11
 


                 은혜의 땅, 구별된 도피성 (수 20:1-9)



  시대와 사회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는 이상적인 사회와 행복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플라톤은 이상국가를 , 조선시대의 허균은 홍길동 전에서 율도국이라는 이상의 나라를 꿈꿉니다. 자유민주국가들은 자유, 평등, 박애가 실현되면 이상적인 나라가 될 줄로 생각했습니다. 기술문명과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면 이상적인 나라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또한 오늘 읽은 성경에는 가나안 복지가 나오는데 이곳은 과연 참된 이상국이며 유토피아였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거기에도 문제가 있고 죄악이 있고 눈물과 원한이 있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제 정복(1-12)과 기업 분배를 끝냅니다(13-19).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땅 분배의 최종 부분입니다(13-21).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는 약속이(창12:7) 690년 만에 성취되었습니다(창15:13). 모든 사람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경제적 평등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의식주의 안정을 취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진정 젓과 꿀이 흐르는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이제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제도를 통해 진정 가나안의 또 하나의 감춰진 축복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 분배가 끝나자 마자 여호수아에게 모세에게 주셨던 도피성 설정(민35:9-34; 신19:1-3) 명령을 다시 해 주고 계십니다.


  이 도피성 제도는 가나안 땅에서 펼쳐질 여호와의 새로운 사회를 위한 계획의 중요한 청사진 중 하나입니다. 여호수아에서는 이것만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왜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만들라고 하십니까?(1-3)


3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부지 중에 오살한 자를 피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지중에'('비쉬가가')라는 말은 '과실로', '실수로', '알지 못한 채'라는 뜻입니다. 부지중 오살한 자는 원한이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거나, 기회를 엿보지 않고 무엇을 잘못 던져 사람을 죽인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민 35:22-23). 참으로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공의, 정의가 시행되어야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이 사람을 죽이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피의 보수법을 만들었습니다. 동종보복법(同種報復法)입니다. 탈리오 법칙입니다.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를 통해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창 9:6)”라고 말씀해 주었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 갚을지니라 (출 21:23-25)”


그런데 가나안 땅을 다 주시고 이제 그곳에 참으로 젓과 꿀이 흐르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주신 제도는 이것보다 도피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외 규정을 통하여 공의의 하나님이시지만 사랑의 하나님, 은혜의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참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해결해야 할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지 중에 오살한 자의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피성을 건립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피의 보수자(고엘)는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친족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살해자를 죽일 의무와 권리가 있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복수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적의 없이 실수로 죽인 사람은 복수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죄를 용서받고 생명을 보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하시는 도피성(미클라트)이라는 제도입니다.


  단순하게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 보장제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이 죄를 용서받고 가나안 복지에서 살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제도입니다. 이것은 무엇으로 가능합니까? 도피성을 만드시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는 것입니다. 피할 길을 주신 하나님, 덮으시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외적 결과만 보시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죄를 용서하기 위해, 오늘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성취한 것입니다.


  이 도피성은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신구약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와 그 구속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구약에 여러 가지 의식들, 특별히 제사의식들, 그것도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이나 염소, 소와 같은 짐승을 잡아서 그 동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사람의 죄를 전가시키고, 그리고 사람의 죄를 짊어진 짐승이 대신 죽음으로 인해서 사람의 죄가 용서함을 받게 됩니다. 그 짐승은 바로 우리를 위해 십사가에서 죽으실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은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6절입니다. 도피성에 피한 사람이 자기 집에 돌아 갈 수 있는 때는 대제사장이 죽은 후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도피성에 피해 있던 자들에게 사면이 내려진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어 사면령이 내려지면 보수자가 살인자를 만나도 보수의 원칙에 따라 피를 흘리게 할 수 없습니다.(민35:27,28)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대신 은총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 도피성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상징인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 예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히9:11-15).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히 7:27)”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 3:1)”


대제사장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히브리서 4:14에서 증거 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만인의 죄를 대신 속하기 위해 우리 인간들의 대제사장이 되신 분입니다.


 죄의 문제 해결 없이는 아무리 좋은 땅, 아무리 자유로운 땅, 아무리 평등한 땅에 살도 진정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행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요14:6)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엡1:7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요일1:7에서는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 이이요"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을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고 내 모든 죄가 동에서 서가 먼 것 같이 깨끗이 씻김을 받습니다.


예수께서는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고쳐 주실 때 단지 질병에 관심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그의 죄의 문제입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마 9:2)”


그 사실을 안 베드로는 예수님을 전할 때 예수 믿고 복받으라고 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2:38)”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는 참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참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1:18 "너희 죄가 주홍같을 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공로로 말미암아 완전한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2. 어떻게 도피성을 운영하라고 했습니까?(4-6)


도피성은 그저 아무 절차 없이 운영된 것이 아닙니다. 도피성에 받아 주는 것은 몇 가지 절차가 있었습니다.


4절을 보십시오.

첫째 오살자는 도피성의 장로들에게 사고의 원인을 보고해야 합니다.

둘째 장로들은 사건을 심사 후 성에 살도록 합니다.

셋째 보수자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합니다.

넷째 보수자가 재판을 청구하면 회중 앞에서 재판을 받게 하였습니다. 도피성에 피신한 자는 두 번의 재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한 번은 성에 들어갈 때(4절)이고, 또 한 번은 고의적인 것인가 아니면 실수인가를 분별하기 위해 회중이 모인 곳에서 재판을 받아야 했습니다(6).

다섯째 대제사장이 죽으면 오살자는 자유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여섯째, 만일 도피성으로 피신한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 전에 도피성 밖으로 나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민수기 35:26-27에 "그러나 그 살인자가 어느 때든지 그 피하였던 도피성 지경 밖에 나갔다 하자. 피를 보수하는 자가 도피성 밖에서 그 살인자를 만나 죽일지라도 위하여 피 흘린 죄가 없나니"


  부지중에 살인하여 도피성으로 피신한 살인자는 도피성 안에 있을 때만 그의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삶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된 안식과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5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요한복음 15:6에서는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맺고 참된 평안을 누리는 삶이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가능한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죄사함 받은 우리는 우리 주 예수의 말씀 안에 살아야하겠습니다. 주님의 사랑안에 살아야 합니다. 성령의 법안에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잘 살다가도 방종하고 불의하고 불순종해서 징계받는 사람이 되지말아야 하겠습니다.  경성해야합니다. 겸손하게 주님을 더 잘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2008/03/01 Sat 08:56:33    +080302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