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 (요 12:44~50)

호걸영웅 2009. 3. 27. 19:38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 (요 12:44~50)


#개회찬송+헌금: 512


"엽기 고사성어"라는 것이 있습니다.  

동문 서답-동쪽 문을 닫으니 서쪽이 답답하다.

군계 일학-군대에서는 계급이 일단 학력보다 우선한다.

박학다식-아는 것은 없고 먹는 것만 탐한다.

희노 애락-희한하게 놀다보면 애가 태어난다.


이런 유머의 특징은  예로부터 전래하는 같은 단어를 본래의 의미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유머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시는데 우리의 잘못으로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혀 다른 뜻으로 해석되고 전달되는 경우도 제법 많습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다." 예수님이 또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다."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을 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강조하신 것이 무엇일까요?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자기 색깔을 감추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철저하게 당신을 보내신 하나님을 계시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보여주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신 사명에 초점을 맞추시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33년 동안 철저하게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때로는 자기의 감정도 접으셨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도 피하셨습니다. 또한 당신께서 행하신 놀라운 능력도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강조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이처럼 힘써 자신을 절제하셨을까요? 하나님을 계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로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회복시키기 위해서 힘쓰셨습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씻기 위해서 하나님을 최대한 열어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인인 사람들이 하나님을 직접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중요한 사명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하나님을 계시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자 빌립이 예수님께 요청했습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님 대답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어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삶을 통해 성부 하나님을 열어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셨습니다.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병든 자, 장애인, 귀신들린 자들을 만나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셨습니다. 종교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잇속만을 챙기고 힘없는 백성들을 짓누르는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을 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 등을 통하여 종말에 있게 될 일들을 상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을 나타내는데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삶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여주시고자 애쓰신 생애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 깊은 사랑의 관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받아 누리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그리스도인도 예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많이 보여주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성품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인지, 그리고 예수님이 정말 오래 참으시며 한없이 자비로운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일을 하신 분인지 알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웃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신 것을 이해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며 묵묵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예수가 바로 저런 분이었나 보다 하며 예수님을 향한 비난을 멈추고 예수님께 고개를 숙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의롭게 살아가는가를 보면서 예수님이 정말 의로우신 분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말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많이 말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말을 들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할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말로 설명해서가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어려운 것 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숨기고 싶어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예수님을 보여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삶을 통해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맛없는 세상에 소금이 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쉽지 않지만 날마다 예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태양은 강렬한 빛을 발하는 발광체입니다. 빛만 발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체 뜨겁게 불타며 엄청난 열을 뿜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접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달은 스스로 뜨겁게 불타는 발광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주선을 타고 착륙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태양의 빛을 받아 반사하기도 합니다. 태양만큼 밝지는 않아도 보름 때는 제법 밝게 빛나기도 합니다. 태양빛을 많이 받아 반사하면 환한 달빛에 사람의 얼굴을 알아 볼 뿐 아니라 옛날에는 책을 읽는 사람도 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달빛은 늘 밝게 빛나지 않습니다.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지면 반달도 되었다가 초승달이 되기도 하고 아주 가려져서 전혀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지구가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의를 행할 능력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모두는 완벽한 성품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의롭게 살 수 있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의지도 약하고 사랑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불이 전혀 없는 저 달도 환하게 세상을 비추지 않습니까?  해의 빛을 받아 반사하면 저렇게 밝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능력이 적으나,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 것은 분명합니다.


 빛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삶을 살기만 해도 얼마든지 아름답게 빛날 수 있습니다.


경기도 성남에 아주 가난한 여집사님이 계셨읍니다.  그 여집사님은 혼자서 아이들을 데리고 어렵게 살아가는 분인데 직업은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는 분이었답니다.  이렇게 어려운 환경인데도 매일 얼마나 기쁨과 은혜로 살아가는지 그 분을 보면 곧 감동이 될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년에 수십명씩 그 집사님에게 감동되어 교회로 오는 분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같은 환경에서 그렇게 기쁨과 감사로 살 수 있느냐고 감동하여 교회로 인도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모든 환경은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것이 질병이든, 가난이든, 실패든, 고난이든 무엇이든지 우리는 그 가운데서 예수님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건강하고 성공하며 부유할 때는 누구든지 행복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어려워지면 실망하고 낙심합니다. 좌절하고 포기합니다. 너그럽던 사람들도 짜증이 많아지고 화를 잘 냅니다. 불행하게 생각하고 어쩔 줄 몰라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때에도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질병과 싸웁니다. 예수님과 함께 가난을 견딥니다. 실패 속에서도 예수님의 위로와 격려를 받습니다. 고난가운데 있을 때에도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새 힘을 예수님으로부터 계속 공급받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전히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삽니다. 활기차게 살아갑니다. 환경과 상관없이 솟아나는 기쁨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은 이상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속으로 부러워해야 합니다. 그 비결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꽃이 향기를 발하면 벌과 나비가 몰려오듯이 우리가 모든 환경 속에서 변함없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드러내며 살면 사람들은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끌리게 될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께 끌리게 될 것입니다.

 

결론: 여러분!!! 예수님께서 짧은 생애동안 철저하게 하나님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전 생애동안 예수님을 드러내는 복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시는 모두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편집: 2009.03.27. 익선


폐회찬송:505, 주기도문

(군위문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