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행복한 가정의 조건( 시 128 : 1 - 6)

호걸영웅 2009. 5. 16. 20:16

                  행복한 가정의 조건( 시 128 : 1 - 6)

 


  1852년 4월 10일에, 미국의 한 시민이 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사망을 했다.

그런데 이로부터 31년이 지난 후, 미국 정부는 군함을 보내어 그 유해를 미국으로 가져오기로 결정했다.  그의 유해가 뉴욕 항에 도착하는 날, 항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곳에 뉴욕 시장만 나와 있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도 나와 있었고, 수많은 국무위원들이, 그 유해를 맞이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이기에, 이처럼 큰 환영을 받았던 것일까?  이 사람은 위대한 정치가도, 외교가도, 또 군인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한 시민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런 평범한 시민이었던 그가, 이와 같이 큰 환영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그가 생전에 작사했던,  한 곡의 노랫말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 노래는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라는 노래이다.  “홈 스위트 홈” 이란 노래인데, 미국의 기자 겸 극작가인, 존 하워드 페인이란 사람이 지은 노래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를 지은 페인은, 평생에 가정을 가져 보지 못한 채, 독신으로 타국에서 쓸쓸히 생을 마쳤다고 한다. 


어쨌든 이 노래는, 그 당시 미국인들로 하여금, 가정에 대한 소중함과, 또 가정에 대한 위대한 가치를 일깨우는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로버트 죠지 웰즈는,  “가정이야말로 고달픈 인생의 안식처요, 모든 싸움이 자취를 감추고 사랑이 싹트는 곳이요, 큰 사람이 작아지고, 작은 사람이 커지는 곳이다.  가정은 안심하고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으며,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사랑받는 곳이다.”  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속한 이 시대를 바라보라.  높아지는 이혼율은, 이미 세계 1위를 자랑하고 있고, 또 가족 간의 갈등이나, 유아학대, 가정폭력 등, 각종 범죄로 인해 행복해야 할 가정이, 점점 더 위협을 받고 있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위기적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을 안전하게 지키며, 행복한 가정을 이뤄갈 수 있을까? 


하나님은 태초에 가정을 창조하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만드셨지 않았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이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세상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이 기록한 말씀인 이 성경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할 줄로 믿는다.


  성경에 가정의 행복에 대한 여러 가지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그 가운데서 오늘 본문의 말씀인, 이 시 128편의 말씀은, 가정해복을 이룰 수 있는 첩경을 소개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가?

첫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슨 말인가?  행복한 가정의 출발은, 가정이라는 기관을 처음 만드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섬긴다는 뜻이다.   왜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가? 

하나님이 그 가정의 창조주시오, 또 가정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른이 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아멘!!   마치 권세 있고, 권위 있는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가정과 같다. 


부모님은 가정에서 어른이지 않는가?  그래서 정말 부모님을 공경할 줄 아는 자식들은,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한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질 줄 안다.  


창세기에 나타난 이삭을 보라.  그가 아버지 아브라함과 같이 길을 떠난다.  그 길이 무슨 길인가?   자기가 희생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지기 위한 죽음의 길이었다.  그런데 아들 이삭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는다.   “아버지, 번제에 쓸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어찌 제물은 보이지 않습니까?”  


그때 아브라함이 말하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고만 한다. 


그래서 삼일 길 간 뒤에 모리아 산으로 올라갔는데,   아버지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갑자기 결박하더니, 돌로 만든 제단 위에  그 아들을 제물로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죽이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무엇인가?   아들 이삭이, 아버지의 그런 행동에 일언반구 대꾸나 대항 없이, 그대로 순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자기 목숨이 달린 일 아닌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죽게 되는 것이다.  그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빠져 나오려면, 아버지 아브라함을 밀치고 일어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삭은, 아버지가 결박을 할 때도  가만히 있었고, 또 칼을 들어 자신을 찌르려 할 때도 가만히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인가?   아버지를 경외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했기 때문에... 믿습니까?


이삭이 어떤 축복을 받았는가?  아버지를 경외하는 그 신앙이, 하나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기에, 하나님이 그의 생애를 크게 축복해 주셨는데, 물질의 축복을 백배나 얻게 해 주셨다.    창 26 : 12절, 13절 말씀을 보라.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가?

둘째로는, 수고의 떡을 먹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을 보라.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다시 말해, 땀 흘려 수고한 대가를 누리며 사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경제 원리에 대단히 민감하다.  재태크란 말을 많이 쓰지 않는가?   어떻게든 적게 투자해서 많이 벌고자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방법으로 얻은 물질을, 축복이라고 말하지 않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은, 땀 흘려 수고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축복  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이삭이 누린 백배의 축복은 뭐냐?  그 축복은, 이삭이 땀 흘려 수고한 것에 대한 정당한 대가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나 분명 다르다. 이삭은 백배의 축복을 목적으로 농사를 지은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에게 주어진 땅에, 최선을 다해서 농사를 지은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백배의 결실을 거두게 하신 것이지, 이삭 자신이 이런 소득을 기대하며 농사를 짓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분들 인생에,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나질 않는다.  착각인 것이다.    성경에 대한 무지인 것이다.   이런 속담이 있잖은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아멘!!!  이것이 성경의 진리인 것이다.  자기 스스로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 이상, 하나님은 절대 축복의 손길을 펼치시지를 않는다. 


시 16 : 6절에 보면,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이, 귀천에 상관없이 아름답다는 것이다.  왜인가? 

그 직업, 그 직장, 그 사업,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기 때문이다.  믿습니까?  그래서 성도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에 감사하며,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때, 그 기업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줄로 믿는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가?

셋째로는, 사랑의 관계가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라.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다시 말해, 부부와의 관계가 포도 열매가 풍성함과 같이 아름답고, 부모와 자식들과의 관계도, 감람나무와 같이 자녀들이 잘 자랄 것을 기대하고, 또 자녀들도 그 기대에 부응하여 이렇게 귀하게 자라가는, 아름다운 관계가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이다.  결실한 포도나무와 같다.  비단 아내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서로가 기쁨이 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결실한 포도열매로, 무엇을 만들게 되는가?  포도주를 만들게 된다. 

이 포도주는 고대 근동사회에 있어, 중요한 음료수였다.  술로서의 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료수로서의 기능도 있었다.  그래서 잔치 집에서는 이 포도주가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포도주를 매일 같이 마실 수 있다면, 그 집은 그야말로 매일 같이 잔치집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와 자식들 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무슨 뜻인가?   단순히 음식을 먹고 마시는 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를 말한다.  오늘날 올리브기름이 얼마나 유용하게 쓰이는가?   인체에 해가 없고, 유익한 성분만 있으며, 수입도 짭짤한? 광야에서도 잘 죽지아니하고 아주 적은 비만와도 잘 자라는 강인한 나무가 올리브나무이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열매라고 일컫는 열매가, 바로 올리브이다.  그런데 이런 열매가 열리는 감람나무와 같은 인생이 자녀들의 인생이 되어진다면,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행복한 가정이란, 어떤 가정을 말하는가?

네 번째로는, 교회를 통해 신령한 은혜를 공급받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라고 말씀하고 있다.  또 6절에도 보면,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지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다. 

  곧,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공급되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풍성히 누리는 것을 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복받을만한 가정은 교회 중심으로 살아가고, 교회에서 예배하고, 기도하고, 교회에서 봉사하고, 헌신하는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감당해 나가는 성도, 이런 성도들의 가정은 하나님이 친히 복을 주시는데, 어찌 그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신앙의 가정은, 하나님이 낮에 해와, 밤의 달이 상치 못하고, 해치 못하도록, 친히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는 줄로 믿는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교회를 사랑하시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  드리는 이 예배를 소중히 여기시길 바란다.  또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봉사나 헌신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시길 바란다.  이런 성도들을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여러분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시는 줄 믿는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방법이,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이 성경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전승빈 목사)

                                                   편집:090518.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