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두루마리와 에바 (슥 5:1~11)

호걸영웅 2009. 8. 29. 12:09

              두루마리와 에바 (슥 5:1~11)



미국에는 도로 표지판들이 참 잘 설치되어 있습니다.

 길을 찾아 가는 표지판은 말할 것도 없고 여러 가지 '주의'나 '경고'의 표지판들이 참 잘 되어 있습니다. 학교가 있으니 천천히 가라는 표지판, 사슴이 잘 건너다니는 길목이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을 비롯하여, 이 동네에는 귀먹은 어린이가 살고 있으니 각별히 조심하라는 표지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운전자의 특별한 주의가 필요한 곳마다 정말 자세하게도 세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주한미군들에게 '대한민국에서 살면서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물으면 이구동성으로 '도로 표지판들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그 첫 번째로 꼽는다고 합니다.

또 그런 경고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바로 그 경고 내용에 해당되는 사고를 일으켰을 때에는 그 벌도 과중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경고가 확실하면 할수록 그 경고를 어겼을 때에 받는 벌은 더 중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미국 사회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중에도 그와 똑같은 원칙이 적용됩니다.


오늘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누구나 볼 수 있게 세워진 하나님의 경고 표지판, 그리고 그것을 보고도 위반하면 필연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중벌이 과연 무엇인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상고하고자 합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의 경고를 인생들에게 명백히 보여 주는 '두루마리의 표지판'입니다.


본문 1절로 4절에 기록하기를 "1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2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3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4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제1차 바벨론 포로 귀환 유대인들을 향하여 스가랴는 '다섯 번째의 환상'을 보게 됩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날아가는 두루마리" 하나를 보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두루마리'란 바로 구약 성경을 기록했던 책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스가랴가 환상 중에 본 두루마리는 상당히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선 그 크기가 엄청나게 컸습니다. "광이 십 규빗"이요 "장이 이십 규빗", 즉 폭이 거의 5미터이고 길이가 10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두루마리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큰 두루마리가 말려져 있지 않고 펴져 있었으니, 실상 이것은 무슨 두루마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엄청나게 큰 플래카드와 같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게다가 그 두루마리는 "날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모든 사람의 눈에 '분명하게 보이고 정확하게 읽혀질' 수 있게 나타났음을 뜻합니다. 즉 그 두루마리에 기록된 사실은 무슨 숨겨진 비밀이거나 스가랴 한 사람에게만 몰래 알려진 사실이 아니라, 그 어느 누구든지 다 알 수 있는, 공개된 진리임을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온 세상 사람에게 다 적용되는 저주'가 바로 그 두루마리에 적혀 있다는 뜻입니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그 저주는 두 가지가 있었는데 각각 그 두루마리의 "이편"과 "저편" 즉 양쪽 면에 하나씩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것들은 "무릇 도적질하는 자"와 "무릇 맹세하는 자"들은 "끊쳐질 것이라"는 저주들로서, 바로 십계명의 제8계명과 제3계명에 해당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즉 "도적질하는 자"에 대한 저주는 바로 십계명의 후반부인 '이웃에 대한 계명'을 범하는 죄들에 대한 저주를 대표하는 것이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에 대한 저주는 십계명의 전반부인 '하나님에 대한 계명'을 어기는 죄들에 대한 저주를 대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컨대 스가랴가 본 그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은 바로 율법 전체를 대표적으로 상징하고 있었던 것이며,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큰 글자로 씌어 있었기 때문에 십계명을 다 들어가지 못하고 그 두 가지 계명들만 대표적으로 기록된 것이었습니다.


성경 말씀 중에서 '율법'이 특별히 강조하는 바는,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죄악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범죄자는 "끊쳐지는" 벌, 즉 이스라엘의 신앙 공동체에서 끊기어지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쫓겨나가게 되는 벌이 반드시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4절 상반절의 "내가 이것을 발하였다"라는 하나님의 선언에서 "이것"이란 바로 '죄에 대한 저주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이며, 범죄자를 반드시 벌할 것은 당신께서 스스로 천명하시고 공언하신 사실로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꼭 이루고야 마실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2.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영원한 저주에 스스로 사로잡히게 만드는 '에바의 함정'입니다.


  5절에서 11절 말씀에는 "5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6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7이 에바 가운데에는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8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9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10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 11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 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고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두루마리의 경고를 받고도 지키지 아니한 자들이 어떻게 되고야 말 것을 곧 이어지는 "에바"의 환상을 통하여 보여 주고 계십니다.

'에바'란 당시 곡식을 잴 때 쓰던 용기로서 약 22리터 정도의 양을 담을 수 있는 광주리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에서의 '에바'는, 아까 두루마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통의 것보다 훨씬 큰 것으로서 "한 여인이 앉을" 만한 크기로 나타났습니다.


그 "에바"를 가리켜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모양'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문자적으로는 '눈'이지만, 본문에서는 눈이 '사람 자신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마음의 창'과 같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의역을 했으며, 이 번역을 따른다면 그 '에바'가 바로 '불경건한 자들의 사는 모습'과 같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혹은 이 '모양'이라는 단어를 직접 '불법' 혹은 '죄악'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을 택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게 되는 것은, 그 에바 한가운데 앉아 있는 여인을 가리켜 "이는 악이라"고 그 천사가 해석을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이처럼 '죄악'을 어떤 여자로, 특별히 '음녀'라는 단어로 상징하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그것은 물론 여자가 남자보다 죄가 더 많다는 뜻에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비유하는 이유는, 죄가 사람을 유혹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마치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경우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8절 하반절에 보면 "그 여인을 에바 속에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고 했습니다.

즉 그 여인이 에바에서 나오려고 기를 쓰고 있을 때 그 입구를 눌러 덮고 무거운 납 뚜껑을 얹어서 완전히 가두어 버리는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 여인은 그 에바 속에 갇혀서 하나님의 심판의 날만 기다리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에바는 "학의 날개 같은 날개"를 가진 두 여인에 의하여 "천지 사이에" 즉 하늘 위로 들려서 "시날 땅"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 '시날 땅'이란 바로 바벨론 제국의 주요 도시들이 세워져 있던, 즉 온갖 종류의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악명 높던 지역이었습니다.

 

이것은 그 '악의 상징인 여인'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우상숭배하는 불신자들의 공동체 안이며, 그런 악한 불신자들의 종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준비하신 '저주의 집'인 지옥에 감금되어 영원히 "머물게" 되는 것밖에 없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지금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말 조심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몸은 바벨론에서 해방을 받고 돌아왔지만, 영적으로는 여전히 바벨론의 악한 잔재에 물들어 있을 위험이 다분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어떤 악의 요소라도 이 새 예루살렘 안에서는 깨끗이 구별해 내고 하나도 남김없이 그 악의 고향인 '시날 땅'으로 쫓아내 버리는 것이 실로 중요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성경은 우리에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라고 엄히 경고해 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죄악은 그 모양이라도 즉시 버리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바로 그 '악의 광주리' 속에 갇히게 되고 그 위에 하나님께서 심판의 날까지 가두어 놓으시는 '납 뚜껑'이 덮이게 되면 다시는 빠져나갈 길이 없음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통하여 '세상과 짝하려는 유혹'을 제거하고 '불신자와 자리를 같이 하게 되는 함정'을 철저히 피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도로에 경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궁극적인 목적은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벌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 역시, 사람으로 하여금 참다운 행복을 누리게 하려하심입니다.

성경 말씀의 경고는 우리로 하여금 걸려 넘어지라는 장애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경고를 예의주시하고 순종하여 참으로 평안하고 복된 금세와 내세를 달려가도록 인도하시기 위하여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아주 크고 높이 걸린 플래카드'처럼 누구나 다 보기 쉬운 것이며 '간단명료한 교통표지판'처럼 누구나 다 지키기 쉬운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이 성경의 '두루마리'만 보고 따라가면 우리는 틀림없이 그 복스러운 목적지에 안전히 도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우리의 부족함이나 연약함 때문에 우린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도 지키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우리 자신을 질책하면 경계하며 회개하여야만 합니다. 우리의 인생 길을 이처럼 밝고도 분명하게 비춰 주시는 '두루마리'의 지시와 '에바'의 경고를 따라서, 좌로나 우로나 조금도 치우치지 않고 아무 사고나 파선을 당하지 않는 가운데 끝까지 신앙의 대로를 안전하게 달려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편집:익선 09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