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롬 8:28)
우리의 삶에 전혀 문제가 없었을 때는 한 번도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의 고향이자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구호의 한 대상인 예루살렘 교회조차 문제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는 교인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섬기는 구제 때문에 헬라파와 히브리파로 갈라져 불편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문제를 통하여 오히려 사도들은 본래적 사명인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게 되었습니다(행 6:4).
모든 것이 확실하고 완벽한 것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투성이의 이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좋을까요.?
28절 전반 절입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먼저, 주목하려고 하는 말은 ‘우리가 알거니와’라는 말입니다.
I.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마치 안개 속에 쌓여 동서남북이 분간되지 않는 경우들이 허다합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성경도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고전13:9)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과 우리가 경험한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은사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체험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 신앙은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믿는다는 것은 확실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고 확실한 것을 말합니다.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흔들리지 않는 진리를 붙들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들이 알아야 할 것 중에 한 가지를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II.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합력하여 이룬다.[/쉬넬게오]는 것은 ‘동역자가 되다’ 즉 ‘함께 일하다’는 것입니다. 함께 동료가 되어 서로 도와가며 일하는 것이 합력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동료가 되어 좋은 결과를 가져오도록 일합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무관심한 사람도 있고, 반대하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는 훼방하는 사람도 있는 가운데서 그들이 우리의 동료가 되어 선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에 볼 때라야만 이해가 됩니다. 우리가 아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본문 말씀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시느니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눈으로 볼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 보이는 일들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데 나름대로 쓰이도록 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까?
III.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모든 것(all things)’이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는 말씀은 ‘그저 만사가 다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말씀은 로마서 전체와 최소한도 8:12이하의 긴 말씀 속에서 이해하여야 합니다. 18절에 보면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이라고 하였습니다. 7장 마지막 부분에서 사도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24)고 탄식하였습니다.
8:22에서는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라는 말은 고난을 포함하여 모든 것입니다. 나아가 힘들고 어려운 일들에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나쁜 일도 포함하여 모든 일입니다.
하고 싶은 일뿐만 아니라 하기 싫은 일도 포함하여 모든 일입니다. 순종하는 일뿐만 아니라 순종하지 않는 일도 포함하여 모든 일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그가 ‘사탄의 사자’라고 부르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심각한 질병이었습니다. 그것은 눈이 침침하고 눈곱이 끼는 안질이거나, 사람들 앞에서 거품을 내며 쓰러지는 간질이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면 성령이 임하고(행 19:6), 질병이 떠나갔습니다(행 28:8). 심지어 바울이 사용하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행 19:12).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의 병은 낫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병을 고쳐달라고 세 번씩이 간절하게 기도하였지만 그가 들은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그의 질병은 그를 자만하지 않게 하는(고후 12:7) 동료였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하는(고후 12:9) 동료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후 12:10)
모든 것이 - 고통스럽고 힘들게 하는 것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가도록 돕는 친구가 된다는 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우리가 잘 아는 ‘요셉’은 이복형제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창 37:28). 그의 형은 형이 아니라 그를 팔아버린 ‘웬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요셉의 형들은 동생 요셉을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애굽으로 유학 보낸 사람들입니다.
애굽에서 요셉은 성실하게 일하였지만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주인마님이 그를 유혹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에게 죄를 씌워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창 39:20).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주인마님은 요셉을 애굽의 최고 일류대학에 시험도 보지 않고 넣어준 사람입니다.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들어가 애굽의 높은 관리들과 지내면서 애굽의 정치와 행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감방동기인 애굽의 고위 관리가 곧바로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면 기껏해야 감옥에서 나오는 정도였을 것인데 바로의 꿈을 해석하여야 할 가장 적절한 때 그를 기억하고 바로에게 추천하였기 때문에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억울하고 답답한 일을 겪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선을 이루는 동료가 될 수 있습니다. 흔히 살아가면서 연륜이 쌓인다고 합니다. 이 때 연륜은 나무의 나이테를 가리킵니다. 나이테는 나무가 자랄 수 없는 추운 겨울이 있고 쑥쑥 잘 자랄 수 있는 따스한 여름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항상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이테가 없습니다. 그런 나무도 나름대로 유용하게 쓰이지만 나이테가 있는 나무라야 목질이 단단하여 유용하게 쓰입니다.
시편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
여러분은 자신의 탄식과 고난과 슬픔까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습니까?
아멘!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고 삶에서 경험하십시오. 우리는 사실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탄식할 때 우리만 탄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성령께서 탄식하심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셔서(롬 8:26)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가도록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 안에서 모든 일이 합력되는 것입니다. 성령님 안에서 우리의 슬픔도 기쁨도, 고난도 영광도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여러분에게 자신의 삶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보는 믿음의 눈이 열려지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은 누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IV.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선을 이룹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개인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교회적, 또는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마음 상하는 일도 있고, 몸을 헤치는 일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확실하고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는 슬픔과 고난을 포함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제 그 사랑에 메여 하나님을 더욱 사랑해야하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서 실천합시다.
편집:0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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