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한 백성의 의미 (벧전 2:9~10)
오늘 말씀은 바로 하나님 백성들의 그러한 고난 삶에 대한 것입니다.
배경 설명을 하면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독교 박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막 때려잡는 겁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다 때려잡아도 괜찮았습니다. “잔멸할새” 하나도 남김없이 다 없애버려도 괜찮다는 겁니다. 정부에서 공문서를 발행해서 사도 바울이 그 공문서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니 살려면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흩어졌습니다.
“흩어졌다.” 일종의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유대 영토 밖으로 나가버린 겁니다. 어디로 갔느냐? 베드로전서에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로 흩어졌습니다. 그래서 살긴 살았습니다. 지금으로 하면 터키 중북부 지방으로 끝없이 정처 없는 방랑의 길을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낯선 외국 땅에 반겨주는 사람 없이 온갖 서러움과 고통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사람들의 삶의 의미는 뭘까요?
바로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Who am I)?”의 문제, 크리스천의 아이덴티티(실체)를 알려 주려고 이 성경을 쓴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으로 규정하는 하나님 나라의 택한 백성의 삶의 의미는 여기 크게 두 가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그 첫째가 ?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의 소유된 백성은 이 땅의 나그네로 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베드로서는 나그네란 단어를 많이 사용합니다.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에게 권하노니” “흩어진 나그네”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 그래서 이 말씀에 기초해서 나그네 신학이라는 것이 정립되었습니다. 나그네란 말의 뜻이 뭡니까?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을 나그네라고 합니다. 지금 머물러 있는 곳이 내가 영원히 살 곳이 아닌 사람을 나그네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영원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땅은 우리가 잠시 나그네로 발을 붙이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기억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의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모델로 가르쳐주기 위해서 택함을 입은 사람! 인류의 역사 가운데 가장 고난을 많이 겪은 민족은 히브리 민족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영원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신명기 26장 5절에 뭐라고 말했습니까?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인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아람어입니다. 바벨론 제국에 가서 70년 나그네로 살았고 애굽에서 400년 이상을 노예 나그네 삶을 살았습니다. 앗시리아의 침략, 로마의 정복…. 끝없는 고난의 연속으로 살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유월절이 되면, 랍비라는 사람이 구슬픈 노래와 설교를 하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설교의 내용은 “우리는 나그네다. 아브라함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나그네 삶을 살았다. 이 나그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온 세상에 흩어놓으심으로 말미암아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어떤 뜻이 이루어지기 바라시는 것이다.” 이 랍비는 현대적으로 해석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영화 ‘쉰들러리스트’, ‘히틀러 언더루프’라는 유대인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아이들도 왔는데 쓴 나물을 민족 고난을 생각하며 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안 먹습니다. 강제로 먹입니다. “먹어야 돼! 우리 민족 모두가 먹었어! 너도 먹어야 돼.” 아이들이 막 불평하면서 먹습니다. 무교병, 아무 맛도 없는 과자입니다. “이것도 먹어. 우리 조상들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어. 우리도 그 뒤를 따르는 거야.” 나중에는 손들을 붙잡고 빙빙 돌아가면서 슬픈 노래를 부릅니다.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그렇게 많은 수난 역사를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을 영원한 안식처로 알지 말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살았던 인생 여정을 성경에서 바라보면 해답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아브라함은 자기 고향에서 편안한 종말을 마쳤을 지도 모릅니다. 75세나 된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그날부터 고생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첫 번째로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뭡니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75년 정들고 살았던 굳건한 터전의 고향을 떠나라!” “아니, 하나님!!! 제가 성공해서 이제 편안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데요?” 떠났습니다. 나그네로 삼아버렸습니다. “왜 가야 됩니까?” “그것이 내 뜻이니라.” “어디로 가야 됩니까?” “가나안 땅으로 가라.”
야곱도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보내졌을 때 20년 나그네 삶을 살았고 요셉은 17살에 애굽으로 보내져서 110세가 되도록 나그네로 살다가 나그네로 죽었고, 모세도 미디안 광야 40년을 나그네 생활을 했습니다. 이 나그네들은 이렇게 사는 가운데 아주 많은 시련을 경험했습니다.
떠나기 싫은 고향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떠나야 할 때도 있고 버리기 아까운 것도 버려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자기의 분신 같은 아들마저도 제물로 바칠 수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는 모델 선언한 택한 백성! 반대로 아무리 힘들고 고난스러워도 하나님이 인도하는 것이면 거기에 단을 쌓고 정착해서 거기에 살아야 합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때로는 실패도 경험하고 때로는 뼈아픈 일도 당하고 어떤 때는 성공하기도 하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필요한 대로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서 운명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것이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의 삶의 의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백성은 나그네로 길을 떠나지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 성경에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무엇을 하라는 것인지 왜 가라는 것인지 그런데 거기에 보면 한 가지가 나옵니다. “다만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갔으며” ‘아! 내가 모르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 내게 주어져 있도다.’
여러분,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까지 가는 거리는 한 달이면 넉넉합니다. 걸음 빠른 사람은 일주일이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40년 걸렸습니다. 이유가 뭔가? 하나님의 역사와 내 마음의 소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너희가 애굽에서 400년 동안 우상을 섬기고 살았기 때문에 적어도 40년 동안은 이 광야에서 신앙 수행을 해야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세상에 비출 것이다.” 성경에 위급한 사건이 일어나지요? 뒤에서 애굽 군대가 쫓아왔습니다. 앞에서는 바다가 가로막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갈라주셔서 다 같이 건넜다고 했습니다. “왜 보여주십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런 줄 알고 살아라.” 부인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습니다.
100퍼센트 하나님의 기적을 믿으면서 홍해를 건너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시내산 앞으로 왔을 때는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이것이 우리를 인도할 신이라.” 왜 그랬습니까? 400년 동안 애굽에서 하던 못된 습관이 버리기가 너무도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40년 동안 훈련시키다가 마침내는 애굽 문화에 쩔어있었던 사람들이 다 죽고 없어진 다음 광야에서 출생한 신세대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 두 사람만의 믿음을 인정하셔서 갈렙과 여호수아만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내 생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핍박으로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 비두니아에 흩어져있는 나그네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보내는 희망의 편지입니다. 비록 우리가 외국에서 나그네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가지만 “너희가 누구냐?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의 소유된 백성이라.” “왕 같은 제사장이 뭡니까?” “너는 제사장과 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너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이 세상에 이루어질 것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생각을 해선 아니 됩니다.
우리의 창고에 천년만년 쓸 것을 쌓아두지 마십시오. 내가 쓸 것, 어느 정도만 남겨두고 베푸십시오. 나누십시오. 뿌리고 심으십시오.
“하나님이 분명히 예비하신 우리가 알 수 없는 저 약속의 땅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택한 백성이라는 왕 같은 제사장의 영적 의미를 내 가슴에 품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서 오늘도 내일도 우리는 찬송을 부르며 내게 주어져 있는 순례의 나그네 길을 힘 있게 달려가는 이것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다.” 택한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하게 소유된 백성,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현지의 삶의 자리를 매일 믿음으로 정리하면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바로 여러분과 제가 되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편집: 091001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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