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합 2:1~4)

호걸영웅 2009. 10. 24. 12:10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합 2:1~4)

  


  우리는 이 세상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잘 사는 나라는 5만 불, 10만 불 소득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못 사는 나라는 정말 너무나 못 살고 있습니다.  화장실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계 인구에서 40%인 25억 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질병이 만연되고, 가난에 지쳐 일찍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소아마비 시인 송명희씨는 “나”라는 시를 썼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나 남이 없는 것 있으니/ 나 남이 못 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나 없지만,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시가 나오게 된 배경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송명희는 수차례 반복되는 이사와 찢어지게 가난한 자신을 보면서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말하는 대로 써라’고 하셨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가진 지식 없으나” 그는 왼손에 토막연필을 쥐고서 울먹이며 받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라 쓰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엉뚱한 말씀에 그는 울며 소리쳤습니다. “아니오! 못 쓰겠어요, 공평해보이지 않아요!  내겐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시키시는 대로 공평하신 하나님이라고 쓰라고 하셨고, 수없는 공방 속에서 결국 하나님이 이기셨기에 ‘나’라는 시가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는 불공평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는 구원교리이며, ‘이신칭의’라고 하는데,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사도바울 , 그는 구원의 진리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롬1:17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하박국2:4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하박국2:4의 하반절에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박국이 살던 때에 중동지역은, 중동의 강호 앗수르가 멸망하고  바벨론제국이 일어났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오늘달의 시리라)에게 멸망하였는데, 이제는 앗수르를 멸망시킨 바벨론(오늘날의 이라크 지역)에게 남왕국 유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유다가 하나님 앞에서 잘못을 저질렀고, 불의를 행하였어도 더 나쁜 나라, 악한 왕국을 불러들여 유다를 심판하시는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하박국은 불의한 사람이 잘 되고 의인이 고통 받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에게 많은 질문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의 도마”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는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하여 영성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나라에 불의가 난무하는가?  왜, 이 땅 위에는 의인이 고통을 받을까?  이 세상에는 왜 악한 사람들이 번영하는가?  의인들이 범죄할 때에 그들을 징계하고 심판하는 것을 마땅한 일이지만, 왜 더 악한 사람들을 사용하여 심판하시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몇 가지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그는 초소, 망루에 서서 하나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1.  하박국이 가진 질문--- 왜, 언제까지?


  하박국은 자기의 시대에 많은 부조리한 사회상을 보면서 한탄합니다. 


합1:2에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어느 때까지리이까”는 물음은 히브리 애가의 전형적인 형식인것입니다. 

  

  강포하다는 말은 ‘하마스’라고 하는데, 당시 사람들이 의롭지 못했습니다.  왕이나 귀족들은 백성을 무자비하게 억압하였고 선정은 사라지고 폭정만 있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죄악을 일삼았습니다. 거짓이 난무하고 패역하였고 포악하였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신데, 왜 이 땅에 불의를 용납하시는 것입니까?”  하박국 선지자는 불의한 사회를 바라보면서 악을 물리쳐달라고 기도하였지만, 하나님은 선지자의 기도를 응답하지 않았고, 악을 물리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어느 때까지리이까?” 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하박국의 불평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하나는 왜(Why)이고, 또 하나는 얼마동안(how long)의 문제입니다.

  

합1:13에서 하박국의 질문은 정점에 이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 공의의 하나님께서 잠잠하실 것입니까?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속성상 허락할 수 없는 일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2.  하박국에게 응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이 마침내 하박국에게 임하였습니다.

  

2절,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묵시의 내용은 유다를 침략한 바벨론을 반드시 심판하시겠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의인을 괴롭히는 악한 자들을 반드시 처벌하시겠다고 하십니다.

  

  하박국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느냐고 물었는데,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실행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반드시 성취됩니다.  그러나 때가 정해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성취를 향하여 날아가고 있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라십니다.   


3.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이러한 불의의 시대에 우리 의인들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응답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4절입니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악한 자들, 바벨론 군사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는 그 마음이 교만하며, 정직하지도 않습니다.  악인은 교만한대로 심판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악인의 특징은 교만합니다.  악인은 교만하기 때문에 자기를 믿고 삽니다.  자기의 힘과 능력을 믿고 마치 자기가 신이나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자기가 자기의 삶을 결정합니다.  자기의 인생을 불의의 병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라든지, 갈대아 바벨론이라고 구분하지 않습니다.  다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분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믿느냐?  아니면 믿지 않느냐를 보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비록 사람보기에는 더디다고 하여도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믿고 참고 기다리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인데, 그 믿음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의가 아니라, 의에도 높고 낮은 수준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의인이든지, 악인 둘 중의 하나입니다.  수준 높은 의인이 있고, 수준이 낮은 의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봐줄만한 죄인이 있고, 정말 심판받아야 마땅한 죄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은 심판받아야 하고, 심판 받도록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십니다. 

  

요16:9에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하박국2:4절의 말씀을 사도바울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인용하고 히브리서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수 믿어 구원받은 중심 사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구원은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믿음이란 말은 “에무나”라고 합니다.  이 “에무나”가 가지고 있는 뜻은 ‘견고하다, 강하게 버티다’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에 49번 나오는 말인데 모든 영역성경에는 신실함이란 의미로 Faithful, Faithfulness, Faithfully, honestly, truthful 이란 말로 번역되었고, 믿음이란 말로 번역된 곳은 오늘 하박국2:4절뿐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믿음이란 말로 사용하였기에 영향을 받아 같은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결론: 이제 하박국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믿고 보니, 합3:17-19절에서 하나님을 높여 찬양합니다.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노래합니다.

 하박국은 “어찌하여”라고 탄식한 사람이지만, “없을지라도 ”라고 바꾸어 말한 사람입니다.  “어찌하여”라는 탄식이 “ 찌라도 ”라는 감사로 승화시킨 사람입니다.

  

눅18:8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약속을 믿고, 끝까지 견고하게 신실하게, 완전히 맡기는 믿음으로 의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편집/091024 익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