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말세에 가져야 할 관심 (벧전 4:7-11)

호걸영웅 2010. 12. 8. 01:10
                                                               말세에 가져야 할 관심 (벧전 4:7-11)


“관심(關心)”이란 말은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해 마음이 끌리고 흥미를 갖는 심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관심은 집중력을 갖게 하는 강력한 힘입니다. 

 


본문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행동할 시간이지 낭비할 시대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올바른 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살아야 합니다.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고대 로마는 대제국이었다. 당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특권층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제국은 AD 395년에 힘없이 무너져 망하고 말았습니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1737년~1794년)은 영국이 낳은 역사학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쓴 “로마 제국 쇠망사”라는 책에서 로마제국의 멸망의 원인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①지나치게 성에 대한 관심.
②사치스러운 생활에 지나친 관심.
③쾌락에 대해 지나친 관심.
④국방에 대해 지나친 관심.
⑤신비주의에 지나친 관심.

한 마디로 관심이 잘못되었었다는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관심은 어떠한 것입니까?

 

 

1.기도에 대한 관심

본문은 기도를 하되 그냥 기도할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는 “분별력 있게, 경솔하지 않게”라는 뜻입니다. “근신”은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여”라는 뜻입니다.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말세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

기도란 사실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대해서 무관심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도무용론,기도모임들에 대한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욥21:15에 욥이 자기를 위로하러 온 세 친구들을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기도가 우리 생활에 어떠한 능력을 미치느냐? 에 대해서는 기도를 열심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스펄전 목사는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단 10분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천만 명의 군중보다 기도하는 단 한사람이 더 낫습니다. 이런 기도의 용사가 벌떼 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과학밖에 몰랐을 것이라 생각되는 발명왕  에디슨은 “나의 연구는 기도의 시간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말세 성도에게 있어서 말씀을 제외한다면 기도보다 우선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기도전문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최후의 승리는 기도하는 자의 것입니다. 

항구를 떠난 배는 항상 모함과 통신을 교신해야 하고, 비행기도 관제탑과 계속 교신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듯,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계속 교신을 하여야만 우리의 인생 항해는 안전할 수 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 때 긴박한 때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기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2.사랑에 대한 관심(8~9)

성경은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라.”고 했다. “뜨겁게” 라는 말은 “열심히” 라는 의미이다. 사랑에는 열심이 있어야 합니다. 열심이 식어질 때,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특히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두 가지입니다. 

①용서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특히 “용서의 사랑”이다. “허다한 죄”는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짓는 여러 가지 허물들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것은 내게도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요일4:8) 때문에 사랑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4:11)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형제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마18:22)은 말씀하십니다.

②서로 대접하는 것이다.

본문 9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며”라고 말씀했습니다. 대접도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맥콜 목사는  “하나님의 손”이라는 책에서 “손은 주기 위하여 있는 지체”라고 말했다.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복음이 없는 지옥같은 곳에 복음의 빛을 던져주는 일들은 사랑없이 되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갈수록 우리 시대는 우리 자신의 삶에만 관심을 쏟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말세의 한 징조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누군가가 주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아니하고 누가 곡하는데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사정도 크게 다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최근 몇년 전부터 한국에는 연말연시가 되면 이런 뉴스가 자주 나옵니다. 옛날에는 연말연시에는 사람들의 온정이 쏟아져서 양노원이나 고아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보람과 기쁨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 근래는 연말연시에는 춥고 배고프고 외롭기 그지없다고 합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이런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피한방울 남기지 않으시고 다 주셨습니다. 사랑은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책임을 지는 것이요, 주는 것이요, 희생하는 것입다. 그렇지 않다면 이 사회는 결코 교회를 교회라고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저기는 자기들끼리만 먹고 마시고 거룩하게 산다는 곳이야,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라고 말입니다.

 

또 성경은 우리가 접대하는 거운데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할수도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마25:31-40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그리스도를 접대하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친구에게 형제에게 내 힘닿는 대로 돕는 것 그것이 곧 주님을 접대하는 일인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3. 봉사에 대한 관심.


엡4:11-12에 봉사는 성도의 의무라고 햇습니다.

 

 11 그가(예수께서)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봉사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①은사를 받은 대로이다. ②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해야 한다. ③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봉사하고 난 다음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뿐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뒤에 숨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위해 주신 것입니다. 결코 개인 소유가 아닙니다. 은사는 교회의 등기되지 아니한 공동재산입니다.

본문에는 “서로” 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며(8), 서로 대접하고(9), 서로 봉사하라(10)고 했습니다.
성도의 사랑, 대접, 봉사가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쌍방통행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오직 순수하고, 자발적인 섬김과 봉사를 통해서만 유지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땅에 묻어두지 말고, 봉사하기 바랍니다.우리의 교회는 여러분의 깊은 관심과 봉사가 있을 때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을 함께 세워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 교회의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됩니다. 

구원받았다고, 천국 가겠다고, 복 받겠다고 하면서도 봉사할 줄 모르고, 교회에 관심이 없다면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주의 일은 공짜가 없습니다. 
고전15:58은,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하셨습니다.

 

결론.

만물의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기도와 사랑, 그리고 봉사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일에 관심을 쏟는 성도야 말로 이 시대에 참으로복되고  지혜로운 성도들이 될줄 믿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