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사 51:17-23)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하였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너의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였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 백성을 신원하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너로 다시는 마시지 않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곤고케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찌기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의 앞에 네가 네 허리를 펴서 땅 같게, 거리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위로조차 없는 땅
어느 독일의 철학자는 인간을 ‘세계-속의-존재(In-der-Welt-Sein)’라 했습니다.
그 말은 ,우리들의 삶은, 좋든 싫든 환경이나 조건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 환경은 가정일수도 있고 직장이나 도시, 혹은 국가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요즈은 차라리 지구촌이라 해야 정답일 것입니다.
그런 얽히고 설키는 우리의 삶이란 선택의 폭이 너무나 좁기 때문에 회피할 수가 없을 경우가 대부분인 것입니다.
우린는 매일 세계 곳곳에서의 전쟁과 기근과 지진 해일, 그리고 여러 모양의 재난의 소식을 듣거나 당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늘 평안을 말하고 기원하지만 결코 이 세상은 평안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평화 없는 세상을 원망하고 좌절하고 탓하기만 하며 살것인가? 아니면, 세상에 평화를 이루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것인가?
주님은 (마5:9)에서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화는, 물론 멀게만 느껴지는 길이지만 반드시 가야만 할 길입니다.
근래, 이 나라의 지구 반대편인 중동에서는 민주화의 거센 바람이 모래폭풍처럼 몰아쳐 불어 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 튀니지에서 시작되어 이집트로 번진 아랍 민주화의 불길은 지금 리비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철권통치를 해왔던 가다피는 그 권좌를 지키기 위해 ,전투기까지 동원해 시위대를 학살했습니다. 자유의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 자유, 그것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거리로 달려 나가는 것일까요? 무릎이 바깥으로 접히는 까닭은 무릎을 꿇기 위해서이지만 때로는 솟구쳐 일어서기 위해서라지요?
순박한 백성들을 민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풀이라는 것입니다. 풀처럼 무력하고 부드러운 식물이 어디 있을까요?
그러나 백성들도 마치 풀과 같아서 바람이 불면 바람보다 먼저 몸을 눕히지만, 결코 꺽이우지 아니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입니다.
리비아 뿐만 아니라 시리아,요르단,예멘,사우디 아라비아,튀니지,이집트 등등의 국가들의 백성들이 더 큰 자유를 누리고 더 큰 행복을 느끼고 더 놀라운 복음을 받아들일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길 우린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벨론 제국의 그늘 밑에서 신음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낙담하고 지친 백성들을 찾아오셔서/ 한갓 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아들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격려하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두려움의 뿌리는 하나님을 망각하는데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사51:13) 은 말씀하십니다.
“13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
느냐 너를 멸하려고 예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은 두려워 떠는 백성들에게 포로생활을 청산할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다에 물결을 일으키고 거친 파도와 일도 일으키는 만군의 하나님이 그들을 이끌어
내시고 /손 그늘 아래 보호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 이스라엘 땅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땅은 황폐해지고 백성들은 굶주려 죽었
습니다. 폐허와 파괴, 기근과 칼뿐이니 위로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포도주라도 마구 퍼 마신듯이 비틀거립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이 마셔야 할 진노의 잔이 이제 바닥까지 비워졌다
고 말씀합니다. 벌을 받을만큼 받았고 야단을 들을 만큼 들었다는 것입니다.할렐루야!
• 압제를 물리치시는 하나님
인간의 희망이 끝난 곳에서 하나님의 희망이 시작됬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지키시고 공의를 세우시는 분이십니다.
성경 속의 하나님은 이 땅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민감하게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창4:1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들려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너무나도 크도다”(창18:20)며 직접 울부짖음의 현장에 내려가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난 하갈과 이스마엘 모자의 비통한 울음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이스마엘이 자라는 동안에 늘 그 아이와 함께 계시면서 돌보시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창21:17, 20).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은 출3:7~10에서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려 하노라
9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10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할렐루야!!!
하나님은 땅에서 들려오는 당신의 백성들의 소리에 민감하신 분이십니다.
부르짖음을 뜻하는 히브리어 사크(sa'aq)는 아이들이 다쳤을 때 내는 ‘아야’ 소리 같은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비명입니다.
그런데 ‘사크’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인 동시에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요청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서 들려오는 부르짖음, 울부짖음, 비명 소리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정의의 심판을 개시하도록 하는 촉매제와 같은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땅에서 부르짖는 이들은 대개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강자들의 폭력 앞에서 속수무책인 사람들, 가난하다고 멸시 당하고, 배우지 못했다고 무시당하고, 뒤를 봐 줄 사람이 없다고 외면당하는 사람들….
세상은 마치 그런 이들이 아무런 가치도 능력도 권리도 없는 사람들로 취급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바로 그런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관심의 대상인 입니다. 그들의 살 권리를 찾아주
시고, 그들을 압제의 사슬에서 풀어주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십니다.
성서의 두 핵심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출애굽 사건과 부활사건이 가리키는 바가
바로 그것입니다.
(눅1:51-53) 자기의 몸을 빌어/ 메시야가 오실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마리아는/
기쁨의 노래를 이렇게 부릅니다.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 내리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도다. 주린 사람들을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을 빈손으로 떠나보내셨도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땅의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북돋우시는 분이십니다.
북돋운다는 말으에서 ‘북’이란 은 식물의 뿌리를 에워싸고 있는 흙을 일컫는 말인데,
북돋운다-는 말은 호미로 흙을 끌어올려 뿌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해주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랑으로써 우리를 북돋워주십니다. 삶의 뿌리가 뽑히지 않고 상하지 아니하고 많은 영양분을 공급받을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이길 힘은 세상에 전혀 없습니다. 구름이 잠시 해를 가릴 수는 있지만,
해를 이길수는 없습니다. 할렐루야!!!
• 진노의 잔
그러나 암담하고 희망이 없는 나날들이 길어질 때마다 우리는 지칠 수밖에 없습
니다. 시편을 읽을 때 우리는 도처에서 ‘일어나소서’라는 탄식들을 듣습니다.
“주여, 일어나옵소서. 나의 하나님, 우리를 구원해 주옵소서.”(시3:7a)
“주여, 일어나셔서 진노하시고, 내 대적들의 야만을 꺾어 주옵소서.”(시7:6a)
“주여, 일어나소서. 사람들이 주께 맞서지 못하게 하소사. 주께서 저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옵소서. 주여,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옵시며, 자신들이 한낱 하찮은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스스로 알게 하시옵소서.”(시9:19-20)라는 탄식을 듣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탄식에 대해 하나님은 오히려 “깨어라, 깨어라, 일어나거라, 예루살렘아!”(사51:17a) 하고 부르십니다.
사실 하나님의 싸움은 이미 벌써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들
이야말로 은 이제 그 무기력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켜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비틀거리게 하는 진노의 잔을 거두셨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 있는 베드자다(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던 삼십팔 년이나 된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가거라”(요5:8).
성경은 이 말씀이 떨어지자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갔다”고 전합니다. 참 간단합니다. 삼십팔 년 동안이나 누워있던 사람이 벌떡 일어나 걷다니요? 우리는 기적을 행하는 자인 예수님도 놀라우시지만/ 그 말씀에 따라 몸을
일으킨 그 병자의 믿음도 감동스러운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숙명을 박차고 일너날수 있어야만 참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일어나라는 명령을 듣고도 일어서지 않습니까?. 봄이 이미 왔는데도 겨울옷을 벗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우리 속에 오시면 우리의 삶에도 봄의 꽃을 피우게 됩니다.
• 예수가 마신 잔
주님은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이를 희생시키는 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다른 이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세상의 폭력과 미움을 당신의 온 몸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주님도 그 쓴 잔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고난의 잔, 진노의 잔을 누군들 마시고 싶겠습니까? 저는 예수님도 평범한 행복을 원하시는 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침묵에 잠기고, 올리브 나뭇잎을 살랑 살랑 흔드는 바람에 마음이 시원하고, 정겨운 이들과 음식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흐뭇해하시는 그런 행복 말입니다. 하지만 평화 없는 세상이었기에 주님은 세상의 모든 폭력과 증오와 죄를 당신의 몸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없애려 하셨습니다. 이보다 큰 사랑이 어디에 있습니까?
결론입니다.
바밸론 제국의 그늘 아래 살고 있던 백성들에게 이사야는 희망을 북돋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엎드리게 한 후 밟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고난의 쓴 잔을 넘겨주실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생각을 또 한 번 뒤집고 계십니다. 고난의 잔 돌리기는 누군가에게서 멈추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제자삼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자신들을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는 야고보와 요한의 청탁에 주님이 뭐라 하셨습니까?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막10:38)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겨울추위가 아무리 혹독해도 봄은 오게 마련입니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봄을 앞당기는 이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이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바로 여러분들 인것입니다. 이 냉냉하기
만한 겨울같은 이 사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주님의 따스함과 봄의 따스함을 불어넣으실수 있는 여러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우리 주위에는 아직도 삶의 고단함과 추위속에 떨고만 있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아직도 단 한번도 체험하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봄햇살과 같은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2011.3.26 익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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