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돈이나, 연인,혹은 자식, 부부관계, 권력, 모두 다 강력한 사랑의 대상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가기에 충분한 대상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대상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왜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일까요? 돈, 연인, 자식, 부부, 권력,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기 쉬운 것일까요?
① 첫 번째 이유는,하나님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나 보이는 것이 우선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쓰지 못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전능하신 모습으로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는 것을 누구나 다 볼 수 있다면 하나님 믿지 않을 사람 없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눈에 보이도록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시고 놀라운 일들을 일으키신다면 하나님 사랑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② 두번째 이유는,하나님은 별로 말씀이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어로든지 한국어나 중국어로든지, 무엇인가 직접 우리 귀로 들을 수 있도록 매일 말씀을 걸어오 신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마음을 더 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자연스레 하나님께로 우리의 마음이 쏠릴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만 같습니다. 물론 영적으로 신비한 경지에 들어간 사람들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경우가 간혹 있다지만 보통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그러니 대개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③ 셋째 이유는,하나님은 멀리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벗어나기 어려운 생각은 지극히 공간적이고 지리적인 '하나님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하늘 위에 계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한없이 높은 북극성에 그 보좌를 펴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 우주의 대기권 어느 한 지점에 계시는 분이 아니라,영으로 계시기 때문에 어느 곳에나 계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고 느껴집니다.
가). 그러면 ,왜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할까요?
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흔히 '쉐마'라고 합니다. '쉐마'라는 말은 본문 4절의 "이스라엘아 들으라"(쉐마 이스라엘)에서 온 말입니다. 그 첫 단어 '들으라'의 히브리어가 '쉐마'(shema)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오시기 70년 전에 로마가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성 안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밖에서는 로마군이 계속해서 공격을 가해왔습니다. 얼마 있지 않아서 예루살렘이 함락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이때 '아킵바'라는 유명한 랍비가 자리에 드러눕습니다. 그리고 종들을 시켜서 '아킵바'가 병이 들었다는 소문을 내게 만듭니다. 이제 점점 정세가 어려워져서 내일이면 예루살렘 성이 함락될 수밖에 없는 날이 되었습니다. '아킵바'는 그때 자기가 죽었다는 소문을 냅니다. 그리고 아킵바는 관 속에 들어가서 장례를 치른다는 명분으로 성을 빠져 나와서는 로마의 총사령관 '베스베잔'을 만납니다. '베스베잔'은 유대인의 지도자인 랍비 '아킵바'가 만나자고 하는 말에 응하여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킵바'는 '베스베잔' 앞에 가서 말을 합니다. ‘내일 아침에는 우리가 대항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문을 활짝 열고 로마 군인을 맞아들이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청만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베스베잔'이 묻습니다.‘그 한 가지 청이 무엇인가?’
'아킵바'가 말합니다.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조그만 집이 있는데 그 집만큼은 손을 대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약속해 주시기 바랍니다.’
'베스베잔'이 묻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손대지 말라는 그 집에는 무엇이 있기에 그러는 것인가? "
'아킵바'가 말합니다. "그 집에는 책이 있습니다. " '베스베잔'이 답합니다. "그 까짓 책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으니, 내가 그 약속을 꼭 지키겠소"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성문을 열어주기로 하고, '아킵바'는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생명을 걸고 보존하기를 원하는 작은 건물은 예루살렘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왕궁도 아니고 자기 집도 아니었습니다. 그 집은 예루살렘 성안에 있는 단 하나의 학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학교였습니다.
먼훗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근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살아오면서도 독립을 쟁취했습니다. 그리고, 세계 노벨상의 1/3을 받는 민족이 되었으며,현재 경제 분야에서는 65%를 손아귀에 넣은 민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근세에는 이스라엘인의 40배나 되는 아랍사람들이 이스 라엘 사람들을 없애려고 여러 번 전쟁을 하였지만, 전쟁을 했다 하면 이스라엘이 언제나 승리를 했던 것입니다.
지극히 작고 적은 민족이로되 ,이런 무서운 민족, 힘있는 민족, 이런 막강한 민족이 된 배후에 어떤 비밀이 있겠습니까?
바로 '아킵바'가 이야기 했던 ‘그 집’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그 집'만은 양보 할 수 없다는 가치관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억척스레 교육하는 것이 이스라엘이 강성한 민족이 된 비결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유대인을 멸망시키려면 그들의 학교를 멸망시켜야 한다는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신앙교육의 근원이 바로 오늘 읽은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을 '쉐마'라고 하는데, 그 뜻은 “들으라.” 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고 번역하지만, 직역하면 “들으라!이스라엘아”입니다. 이 ‘쉐마, 곧 들으라’에는 유대인들의 매섭도록 철저한 신앙의 고백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쉐마'의 말씀을 열심히 외우고, 또 이 말씀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삽니다.
‘쉐마’는 성경 전체의 요약이요, 성경 전체의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신앙을 누가 제일 잘 가르칩니까? 신앙교육의 최고 교사는 누구 입니까? 바로 부모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신앙의 교육을 가르치는 첫 번째 교사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가 아니라 집에서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부모가 성경과 전통을 가르쳐 왔습니다. 이래서 이스라엘 부모들은 가정에서 4가지 과정을 교육합니다.
과정1)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오늘 본문에 있는 신명기 6:4-9에 있는 말씀을 외우게 합니다. 유대인의 우수성은 암기력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도 유대인 랍비들은 토라라는 율법을 술술 외웁니다.
과정2) 그리고 아침 기도회를 아이들과 같이 합니다. '테릭트'라는 긴옷을 걸쳐 입게 하고 그 위에 '지지트'라는 푸른 천을 늘어뜨리는 장식의 옷을 걸치게 합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습관과 말씀을 묵상하는 습관을 어릴 때부터 부모와 함께 하게 합니다.
과정3) '테피린'이라고 하는 조그만 상자를 만들어서 한 개는 팔목에 차고, 또 하나는 머리에 가죽끈으로 묶어서 이마에 붙이기도 합니다. 이 가죽 상자 안에는 오늘 본문 '쉐마'가 쓴 종이가 들어 있습니다. 손에 매는 것은,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하고, 이마에 붙이는 것은 불안전한 인간의 지식이나 경험보다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더 먼저 떠올라야 된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과정4) 집 문간에다가는 나무로 혹은 쇠로 통을 만듭니다. 그리고 '쉐마'의 말씀을 양피지에 써서 거기에다 보관을 합니다. 이것을 '메주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나갈 때 마다 또 들어올 때마다 '메주자'를 손으로 만지면서 신명기의 성경말씀을 외웁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부모들은 그들이 당한 고난을 잊지 말 것을 교육을 시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되면 유월절 양을 잡습니다. 그리고 쓴 나물과 누룩이 없는 무교병을 먹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질문을 합니다. ‘엄마 왜 이렇게 맛이 없는 것을 먹으라고 하지요?’하고 물으면 부모들은 말하기를 "우리 조상들은 한때 애굽에 노예였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게 되었단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안돼겠지? 그래서 우리가 1년에 한번 씩 이렇게 하는 것이야’ 라고 답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아이가 부모의 말을 듣고, 쓴나물과 맛없는 빵조각을 되씹으며, "우리 민족들이 이렇게 고통을 당했구나!"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초막절'이 되면, 집 밖으로 나가 텐트를 치고는 불편하게 일주일 동안 생활을 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냐고 자녀들이 물으면, 우리가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를 지나올 때에 이렇게 지냈단다!" 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때를 잊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부모들은 이렇게 자녀들에게 성실하게 가르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게 멸망 당한 후 부터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거기서 성전을 대신해서 회당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회당(시나고그)에서 예배를 드리고 성경을 가르치고 전통을 전수하는 일들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녀가 초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면 '벳 핫 세포'라고 하는 성경의 집에 가서 교육을 받게 합니다. 여기에서 다른 교육은 없습니다. 성경을 외우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가 서당에서 천자문을 외웠던 것처럼 성경을 외웁니다. 잘 외우면 랍비가 칭찬을 합니다. 그리고 상을 하나 주는데 그것은 꿀로 바른 과자입니다.
요즘은 단 것이 많이 있지만 옛날에는 꿀맛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꿀로 과자를 만들었는데 그 과자 위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 놓습니다. 그 말씀을 달게 받아먹으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중학생이 되면 '벳 핫 탈무드'라는 '설명의 집'에 들어가게 됩니다. 거기서 탈무드를 배우게 됩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면 '벳 핫 미드라쉬'라고 하는 연구의 집에 들어가서 율법을 연구를 하고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 학교의 커리큘럼은 오전에는 성경만을 공부합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서야 지금 우리가 배우는 영어 국어, 수학 같은 것들을 배웁니다. 그러니 절대적으로 일반지식의 양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매우 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수재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에 하나님의 지혜가 무궁무진하게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곧 이 세상에 가장 으뜸되는 지혜인 까닭입니다.
나)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마땅한가?
①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4-5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기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마음과 뜻과 힘, 이 세 가지는 인간의 모든 인격과 모든 노력을 강조하는 중언법적 강조 표현이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전적인 헌신과 사랑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②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본문 6-7절엔: "오늘 내가 네가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라고 하십니다.
감리교 창시자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는 신앙의 힘으로 19명의 자녀를 훌륭하게 키운 여사입니다. 수산나의 자녀교육 방법가운데 하나는 “3세 이전에 아이들의 고집을 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경건의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올바른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자식을 키울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든지 항상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③ 삶의 구체적인 현장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본문 8-9절은: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말씀을 손목에 매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행동의 지침으로 삼으라는 뜻이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말씀을 미간(눈썹 사이=眉間)에 붙여 표로 삼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생각 곳곳에 ,깊이 스며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정을 온전히 주관토록 하라는 뜻입니다. 항상 눈에 뜨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나이든 사람 뿐만 아니라 젊은 사람들도 잘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특징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요즘 가장 당황스런 일 중 하나는, 나의 핸드폰 번호를 누가 물으면 거기에 답하는 것이 매우 곤욕스럽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편해질 수록 더욱 그렇게 되어간다는 말입니다. 고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쉬 잊지 아니하 도록, 온 사방 곳곳에 말씀을 써 붙여 놓으라는 것입니다. 말세가 가까울 수록 우리는 더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하나님의 성경을,그리고 경건의 시간을 위한 서적과 액자나 달력 등을 통하여, 더욱 우리 생활주변에 말씀이 눈에 보이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 될 줄 믿습니다.
7. 결론
시편 127:3을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자식은 내 자식이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를 경건하게 키우라고 내 가정에 맡겨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항상 "나는 너의 육신의 부모이지만 너의 참 아버지는 하나님이시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그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하나님 아버지를 잘 만나게 하고, 이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 하게 하는 것이, 좋은 부모가 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② 탈무드의 교훈에 이런 말이 있다. "양식 있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지식을 남기고, 지혜로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신앙을 남긴다." 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는 아이들이 지혜로워야 할 시대가 아니라 부모가 지혜로워야 할 시대입니다. 아이들에게 세상지식과 영양가만 채워준다고 해서 결코 축복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선지자 모세가 권면하는 바 그대로 성경을 배우고 가르치되,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끊임없이 하나님 말씀이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쉐마'의 말씀이 우리들의 온 삶을 지배할 때, 여러분의 가문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하는 훌륭한 신앙의 가문이 될 줄 믿습니다. 2012.8.19. 익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