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모음(Korean sermons)

주께 나아가는 청년(눅7:11~17)

호걸영웅 2013. 5. 20. 21:49

 

주께 나아가는 청년( 7:11~17)

 

 

 

 

*[] 7:11

그 후에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으로 가실새 제자와 허다한 무리가 동행하더니

[] 7:12

성문에 가까이 오실 때에 사람들이 한 죽은 자를 메고 나오니 이는 그 어미의 독자요 어미는 과부라 그 성의 많은 사람도 그와 함께 나오거늘

[] 7:13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 7:14

가까이 오사 그 관에 손을 대시니 멘 자들이 서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 7:15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거늘 예수께서 그를 어미에게 주신대

[] 7: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

[] 7: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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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청년주일입니다. 때문에 청년들을 위한 말씀을 특별히 준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젊은이에게 주신 특권은 도전정신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 경영의 신 ]이라 불리우며,  일본 최대의 경영 컨설팅 회사인 [ 후나이 총합 연구소 ]의 창립자요 회장으로 있는 후나이 유키오, 일단 도전해 보고 실패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도전해 보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다. 어떤 일이든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꿈을 꾸고 도전을 해야 할 자격이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비전의 사람이 가져야 할 4가지 태도(VACS)가 있다고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비전(vision)에 모험(adventure)해야 합니다. 그리고 도전(challenge)해야 합니다. 도전하는 자는 분명한 대가를 지불(sacrifice)해야 합니다. 도전정신을 잃어버리면 젊은이는 더 이상 젊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청년이 아름다운 것은 도전정신 때문입니다.

110:3

,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라고 말씀이 했습니다.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이란 성경의 말씀은 참 귀한 말씀입니다.

.새벽은 소망의 시간이요, 이슬은 은혜의 상징입니다. 새벽이슬은 성경에서 은총 가운데 은총입니다. 호세아 14:5은 말하기를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라.고 하십니다. 고로 이슬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제가 2005년도에 시나이 반도에 갔을 때 보니, 그곳에는 일년 내내 거의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아예 하늘에는 구름이 없습니다. 그런데 홍해 바닷가 근처에서 보니, 거기에는 많진 않지만 드믄 드믄 야생초와 가끔씩 아카시아 나무 따위가 서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것들이 살 수 있는가 보았더니, 새벽마다 이슬이 내려 그 이슬이 땅이 스며들면서 아카시아 나무와 풀들이 자라나며 생육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슬은 곧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고로 이슬의 고귀함은 이루 말할수 없습니다. 청년은 이슬 같다고 했습니다. 청년은 은혜로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역시, 청년이 살아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청년이 죽어 있는 것을 안타깝게 보시고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상태는 부모님에게는 불효가 됩니다. 나라에는 불충이 됩니다. 예수님께는 불신이 됩니다. 교회에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됩니다. 청년이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씀으로 돌아서야 합니다. 말씀으로 우리 청년들이 일어나는 놀라운 기적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청년이 성경대로 살아 있으려면 어떻게 되어야 합니까?

여기 세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첫째,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3절 상반절에는,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라고 합니다. 청년이 살아 있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는 것이 주께 헌신하고, 주께 나아오는 전제이며 조건입니다. 옷은 마음이며 자세입니다. 거룩한 마음 자세를 가진 청년들이 살아 있는 청년입니다.

  맥스 루케이도라는 사람은 옷은 성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옷은 그리스도인의 성품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옷은 그리스도인의 영성의 표현이요, 삶의 상징입니다.

청년의 행실인 옷은 거룩해야 합니다. 성경은 제사장의 옷을 거룩하게 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지금 예수믿은 우리 모두는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고로 우리 모두의 옷이 거룩하기를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도덕의 옷은 더럽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더러워진 옷은 십자가의 보혈로 빨아야 합니다.
 

전도서 9:8에는 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흰 것은 정결한 것을 의미합니다. 깨끗한 모습을 상징합니다. 흰색은 하늘나라의 옷 색깔입니다. 흰 옷은 그만큼 단정하고 깨끗한 것입니다.

  로마서 13:14에는 오직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한다 했으니, 거룩한 행실로 그리스도가 보이게 하라는 말입니다.

학개서 2:12에는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니라고 합니다. 우리의 옷이 더러운데 닿지 않도록 항상 거룩한 옷으로 구별된 옷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어느 신문에는 망하는 기업의 특징에 대하여 났습니다.

망하는 기업은 우선 화장실이 지저분하답니다. 그리고 사내가 항상 지저분하고, 정리 정돈이 엉망이고, 잦은 마라톤 회의를 하고, 깨진 유리창을 방치하고, 불친절한 직원이 많고, 상하 위계질서가 없고, 임원교체가 빈번하고, 사장은 툭하면 외출하는 회사라고 합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닙니다.

시편 119:8에는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고 합니다.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해선 아니되고, 행동하며 실천해야 거룩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둘째, 즐거이 헌신해야 합니다.

청년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무엇을 합니까? 즐거이 헌신하니…”라고 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는 까닭은 즐거이 헌신하기 위해서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할게 뭐가 있습니까? 거룩한 옷을 입고 할 일은 거룩한 일 밖에 없습니다. 즐겁게 헌신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더러운 것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은 거룩해야 받으십니다. 깨끗해야 받으십니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열망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준비도 다 했지만,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손이기 때문에 성전 건축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깨끗한 것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청년 여러분, 헌신하는 일에 즐거움을 갖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몸과 시간과 물질,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인정하는 삶을 사십시오. 이것이 헌신의 기초이고 이렇게 사는 것이 헌신입니다.

로마서 12:1에는 바울이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조금 바꾸어서 권합니다. 그러므로 청년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권하노니 너의 몸을 하나님이 받으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진정한 예물이니라. 아멘?

몸을 드리는 자가 예배하는 자입니다. 예배하는 자는 헌신하는 자입니다. 예배가 곧 헌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자체가 헌신입니다. 몸은 자꾸 써야 좋아집니다. 몸을 드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몸은 쓸수록 단련이 되고 건강해집니다.

지금은 작고 하셨지만, 황수관 박사라는 분은 우유를 마시는 사람보다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이 더 건강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주 안에서 섬기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한국에서 조금 우스운 일이 있었답니다. 어떤 지방에 절(사찰)과 교회가 이웃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늘 찬송을 하고 너무 시끄러워 사찰의 스님이 염불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표가 가서 조용히 하라고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가서 조용하라고 권할까 했지만 아무도 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 한 젊은 스님이 나서서 말했습니다. 젊은 제가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라고 했답니다. 절에서도 젊은이가 십자가를 집니다. 하물며 십자가를 참으로 모신 우리는?  

3. 주께 나아가는 청년이 되라

헌신하려고 하지만 바칠게 없다고 할 청년이 있습니까? 한국 초대교회에는 날 연보라는 게 있었습니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울 때에 드릴 것이 없어서 일주일에 한 날을 봉헌하는 제도였습니다. 특히 시골에서 성행하였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혹은 이틀씩 교회에 나와서 몸으로 봉사했습니다.(청소를 하든 잡초를 뽑든)

 고린도후서 8:12에는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 했습니다.

할 마음만 있으면 할 것도, 바칠 것도 많습니다. 나는 헌신할 것이 없다, 바칠 것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다 하더라, 내가 없어도 되더라 라는 생각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청년의 때는 잠깐입니다. 청년의 때가 쏜살같이 지나갑니다.

찬송 302 1절의 가사를 잘 보시면 주님께 귀한 것 드려, 젊을 때 힘 다하라. 고 했습니다. 젊을 때 귀한 것을 드릴 수 있습니다.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드리는 청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께 나아가지 않는 청년들이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무의식 중에 어디로 갑니까? 술집으로 가고 도박장으로 가고 댄스 홀로 갈 수 있습니다. 악한 친구들의 나쁜 모임에 어울릴 수 있습니다.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주께 나오면 은혜의 사람이 되고 새벽이슬이 됩니다.

전도서 11:9은 경고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 이 말은 내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살면 심판을 반드시 면키 어렵다는 말이지요?

이 시대는 청년들이 주께 나오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시대입니다. 젊은이들이 갈 데가 많습니다. 하고픈 일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세상의 일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께 나오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생의 성공 비결입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일주일에 하루를 쉬는 것이 더 두뇌발달에 좋고 학습능력도 더 좋다고 합니다. 일주일 내내 공부만 하는 사람보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사람이 더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반드시 지키는 유대인들이 노벨상을 휩쓰는 비결이 바로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몸도 일주일에 하루는 쉬어 줘야 건강하듯이, 두뇌도 그렇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으니까 그렇지요! 아멘?

(결론).

 오늘 본문, 7:14절을 보니까, 예수님께서 청년아 일어나라고 하신 한 마디에 청년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살려 주셔야 죽은 자도 살 수 있습니다. 죽었던 청년이었고 잠시 후면 무덤에 묻힐 청년이지만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함께 하시면, 지금은 무덤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어떤 청년이라도 벌떡!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이슬 같은 모든 청년들이 예수님의 말씀으로 일어나,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고, 주께 나오는 청년이 되어서, 청년이 살아 있는 소망 넘치는 우리 교회가 되고, 이 나라가 되고, 여러분들의 가정이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 참고 : 이성희 /편집:안익선 2013.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