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난 지혜 (약3:13~18 )
[약] 3:13 |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
[약] 3:14 |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
[약] 3:15 |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
[약] 3:16 |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
[약] 3:17 |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
[약] 3:18 |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
서론)
오늘 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정보의 홍수에 시대 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지식정보화의 시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은 바로 정보의 바다입니다.
애플 베리라는 분의 말에 의하면 1900~1950년까지 단 50년 만에 축적한 지식은,
그 이전 모든 인류역사(약6천년)동안 축적한 지식과 맞먹는다고 했습니다. 2배로 증가한 것입니다. 그 후 10년 마다, 인류의 지식은 다시 2배씩 증가하고 있는데, 앞으로 그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져서 2020년이 되면, 매 73일 마다, 인류의 지식의 양은 갑절로 증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별로 행복해지지 못하다는 것이.. 지식의 한계요 함정인 것입니다.
그리고 정작 필요로 하는 참된 정보는 그리 많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런 시대에도 여전히 지식, 정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야고보서가 말하는 “위로부터 나는 지혜”입니다
▲일찌기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말하기를 ‘지혜는 지식을 적절하고 바르게 사용할 줄 아는 기술’이라고 말했습니다. 곧 지식이 많아도, 지혜가 없으면 그 지식을 올바로 사용할 수 없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은 지혜에도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지적 합니다.
진짜 지혜와 가짜 지혜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치는 진짜 지혜는 무엇일까요?
가). 참된 진정한 지혜는 위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약3:17에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로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위로부터 난 지혜’는 성령의 9가지 열매와 비슷합니다.
한 마디로 은혜스럽습니다. 안정되어 있습니다. 평안한 가운데 얻어지는 것이고,
그 지혜가 누구를 해치거나, 괴롭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지혜)이 그렇습니다.
A가 이기고, B가 지는 그런 지혜가 아니라, A와 B가 모두 윈 윈(함께 득을 보는)하는 것이 곧 참된 지혜입니다. (악어+악어새, 콩+뿌리혹 박테랴, 꽃+벌나비)모든 사람에게 성결, 화평, 관용, 양순이 임합니다.
▲‘위로부터 난 지혜’와 반대가 무엇 입니까?
약3:14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다음 15절은 이런 행동의 배후에 도사린 지혜의 정체를 밝힙니다.
약3: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땅 위의 것이요, 정욕의 것이요, 귀신의 것이니..”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위로부터 나지 아니한 지혜는, 세상(땅)에 속한 지혜요, 육신의 정욕에 뿌리박은 지혜요, 마귀적 지혜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성경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3가지 세력으로, 세상과 육신과 마귀를 들고 있습니다.
위로부터 나지 아니한 모든 지혜의 근원은 세상이든가, 내 속에 자리 잡은 육신의 정욕이든가, 아니면 마귀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위로부터 난 지혜를 얻는 비결은 무엇 입니까?
참된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이미 그 지혜를 얻는 방법을 약1:15절에서 가르친 바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면 주십니다. 정말 지혜를 구해서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 솔로몬입니다.
솔로몬이 특별히 지혜를 구해서 하나님께 받은 이유는,
그가 자기 개인적 용도로 쓰지 아니하고 모든 백성을 재판할 용도로 (즉, 공익을 목적으로, 왕상3:11)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다는…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다고 했습니다.
나). 참된 지혜는 인간관계를 세웁니다.
▲그러나 마귀에게서 온 지혜는.. 인간관계를 깨트립니다.
우리 마음속에 솟아난 지혜가 위로부터 난 지혜인지, 마귀에 속한 지혜인지를 분별하는 지침이 무엇 입니까?
그 지혜를 사용하는 결과로 -이웃들이 결속 되었는지 -이웃들이 나누어 파당을 이루었는지.. 살펴보시면 됩니다.
‘마귀devil’의 어원은dia+ballo의 합성어인데, 이는 곧 ‘사이를 가르다’는 뜻 입니다
분쟁과 다툼의 사회집단의 현장들에서 일하는 대표적인 마귀들이 바로 시기와 다툼의 영들입니다. 약3:16절을 보십시오.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 혼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라.”고 했습니다.
약3:14~15에서도, 시기와 다툼은 세상과, 육신과, 마귀에게서 온 지혜라고 했습니다.
지혜가 다 좋은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위로부터 온 지혜’만 신령하고 좋은 것입니다.
▲십자군과 성 프란시스코
최근 출간된 시오노 나나미란 작가의 <십자군이야기>를 보면,
십자군 전쟁 당시 그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정당한 명분을 갖고 있었다고 할지라도
소위 십자군 지도자들 사이에, 얼마나 시기와 다툼의 영이 가득했는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던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약 6차에 걸친 원정 가운데, 성지 탈환에 성공한 적도 거의 없습니다.
성지 탈환 실패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1차 원정에서 예루살렘을 탈환했는데, 그 성 안과 주변의 약 7만의 사람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대량학살 했습니다.
만약 6번 다 성공했더라면, 그런 대량 학살이 6번이나 계속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지탈환 못 한 것이.. 차라리 ‘하나님께 영광’이었을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아니면 성지를 탈환할 때 마다 대량학살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을 테니까 말이죠.
그러나 같은 시기 13C에, 십자군과 정 반대의 길을 걸어간 성도가 있었는데, 이태리의 중세도시인 아씨시의 성자 프란시스코와 그 공동체였습니다.
우리는 오늘도 다음과 같은 그들의 평화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 위로하며.. 이해 받기보다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 사랑하며..
자신을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생은 그리스도로부터지요? 끝 부분은 본문을 참고하면 선한 열매와 화평을 얻기 때문이니….라고 해야 되겠습니다)
이런 기도가.. 오늘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또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 기도야 말로, 진정한 지혜를 구하는 기도였습니다.
결론)
오늘날 힘이 한참 커진 기독교는 무슨 때마다 기독교의 세력숫자를 과시하려 하고,
기독교에 대항하는 이단, 안티와 같은 세력들에 대해서는 마치 ‘십자군 전쟁’을 선포하는 듯한 일들을 자랑스럽게 행하는 일들 따위로, 마귀의 거대한 유혹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자기가 가진 물질, 인맥, 세상 권세를 등에 업고 싸우려는 것은.. 마귀적 지혜입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처럼, 성령 안에서, 참된 지혜 안에서 평화의 기도를 올린다면.. 그것은 위에서 난 신령한 지혜의 선한 열매를 거두게 될 것 입니다.
오늘도 우리 모두 날마다의 삶 속에서 위로부터 오는 지혜를 구하며, 사모하는 기도의 시간이 되시길 축원 드립니다.
참고: 냉수 한 그릇/ 편집: 익선 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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